정치도, 이념도 아닌 북한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존엄성의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남쪽이 아니라 북쪽에 살기에 온갖 가치는 다 잃어버리고 단지, 쌀밥 한 그릇이 꿈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재중 탈북자
김성옥(가명, 여, 1968년생)
북한에서 권력 없고,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권력 있거나 돈 있는 사람들은 그런대로 사는 것 같은데 저는 그곳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요. 배급 아니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체제에서, 당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듣고 살아 온 저로서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원도 굶어 죽는 것을 보고 북한에 있다가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1998년 4월. 강물이 얼음같이 차가웠지만 살기 위하여 차디찬 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했습니다.
2001년 1월 16일, 연길 기차역전에서 잡히어 그곳 역전 공안에 잠시 있다가. 도문 국경 집결소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탈북자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아 충격적이었지요. 이제 북한에 이송되면 죽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도문 집결소에서 도문 세관을 거쳐 북한 온성 보위부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를 넘겨받은 북한 보위위원들은 우리를 나라 망신시킨 반역자라고 사람 취급도 안했어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혀 놓고 서류를 작성하고 우리를 온성 보위부에 넘겼습니다. 그 곳의 고통은 참기 힘들어서 쇠못을 먹고 나가서 배를 째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어요. 우리는 밥 먹는 잠깐의 시간을 빼고는 오로지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다가 잘못 걸리면 밥도 안 줬어요. 처벌로 밥을 안주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옆 사람이 밥 먹는 소리를 듣는 것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귀머거리가 되고, 소경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습니다.
재중 탈북자
김소연(가명, 여, 1974년생)
북한에서 탄광 일에 종사했는데 배급과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을 다니던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가 “중국에 가면 먹을 것도 많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살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했습니다.
중국 길림성 안도시에서 살았는데, 2002년 6월 중국 공안들이 호구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구류소에 가니 경비병들이 우리들을 둘러쌓고 우리는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옷을 벗고 브래지어 철사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온성 보위부로 이송되었는데 항문이나 자궁에 돈을 감추었는지 보려고 우리를 앉았다 일어섰다를 101회씩 시켰습니다. 돈이 나오면 빼앗았고 없으면 다시 들어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온성 보위부에서 조사 받는 매 순간이 고문의 연속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