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인 친정에서 애들 데리고 남편과 오래 사셨죠.
한국이 중국보다 더 여자에게 가혹하게 변질된건 유교자체보다는
유교를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가혹하게 발전시킨 사람들 탓이겠죠.
그러니 한국만의 성리학이 글케 발달했을 거구요.
제사도 원래는 간단하게 물떠놓고 초와 향피우며 사당에서 공자를 모신 의식이었다는데
갈수록 종손집안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음식을 뻑적지근하게 차렸다해요.
종손집안의 종부는 음식을 하는게 아니고 인근 없는집 여자들이 모여 음식하면 감독이나 하고요,
그러니까 대지주집안은 집안의 세를 과시하기위한 행사로 제사를 이용했고,
이때 며느리는 음식하느라 고생하는게 아니고 감독이나 하며 집안을 과시하는 역할이었다죠.
많이 낳고 많이 굶어죽었던 시대에 종가집 제사라도 하는 날이면 그마을 없는 사람들이 모처럼 기름진 음식을 맛볼수 있는
날이니 그래서 제사를 칭송했을거구요.
이러다 일제시대가 되고 법적으로 소위 근대화,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이건 형식적이죠, 실제 대지주나 부자는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종가집아니고 그저 먹고살만한 집들도 집안과시용으로 제사를 지내기시작한게 시초가 되어
갈수록 너도나도 뿌리있는 집안입네 하는 표시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거 중인집안이나 심지어 천민들도 어쩌다 친일을 하건 뭘하건 큰돈을 벌 기회를 가지면
족보를 위조하거나 사서 뿌리있는 집안인척 해야했고, 그 수단중의 하나가 제사였다는 거죠.
오늘날은 핵가족시대에 뿔뿔이 흩어진 자식들을 모으는 기능으로 제사를 유지하려 하고요,
가족간의 모임이 싫은 사람들은 제사도 무시, 명절도 그냥 해외여행휴가로 생각하고 놀러나가는 거구요.
결국, 애초 본산지는 중국이라도 이게 오랜세월 한국땅에서 한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안위세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거죠.
장남 장손 하는 이유도 과거엔 거의 모든 토지를 장남 장손에게만 물려주는 장자상속제도 때문이고
제사도 그집안 종가집며느리가 지휘함으로써 집안세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던거죠.
근데 이러던 제사가 요즘엔 대지주는 커녕 별재산도 없는 집에서도 한상 가득 차리는걸 묵묵히 이어오고 있네요.
이것도 다 집안어른들의 필요에 의한 거겠죠. 흩어져사는 자식을 모으는 수단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