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독립해서 살고 있고요.
부모님은 지방에서 할머니 모시며 살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혼자되시고 거의 30년을 혼자 사시다가
80되시면서 얼마 전부터 부모님이 모시고 살게 됐어요.
할머니 몸관리 엄청나게 하시고 아주 건강하십니다. 정신도 또렷하세요. 그 어려운 시절 고등학교도 나오시고 똑똑하세요.
병원에서 치매검사를 했는데 치매나 이런건 없으시대요. GDS, MMSE 점수 다 좋게 나왔어요.
성격이 너무너무 별나세요.ㅜ
아빠는 낮에 회사가시고 엄마는 화실에 다니셔서 낮에는 집을 비우십니다.
보온도시락에 할머니 드실 점심밥을 해서 싸놓으시고요.
근데 부모님 나가고 나면 온 집안을 다 뒤지십니다.
거실장의 서랍, 싱크대 문짝, 베란다 싱크대 까지 나가서 문짝, 냉장고 칸칸이 다 열어서 다 맛보고 찍어보고
그 다음코스는 안방....안방에 들어가서 화장대 서랍 하나하나 다 열어보고 드레스룸 들어가서 서랍 하나하나 다 열어보고
통장 있는 거 다 찾아서 읽어보고
침대 밑까지 뒤져보십니다.
여태껏 할머니 혼자 사셨고 모신지 얼마 안됐고 전 독립해서 사느라 할머니가 저러는지 몰랐습니다.
얼마 전 집에 내려가서 한 달 정도 쉬면서 알게 됐어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노인정에 가서 계시라 해도 절대 안나가시고요. 집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뒤지는 일만" 반복하십니다.
목욕도 잘 안하세요. 일주일에 한번 씻으십니다. 할머니 방 옆 복도만 지나가도 너무 이상한 냄새가 날 정도에요.
부모님이 여러번 말해도 듣는 채 만채 하십니다. 조금 듣기 싫은 말을 하면 아예 엉뚱한 말을 내뱉으세요.
저희 엄마가 "어머니 좀 씻으세요, 옛날 처럼 목욕탕 1주일에 한번 가는 시절도 아니고..매일 샤워는 하셔야 돼요."
이렇게 말했는데 " 오늘 반찬은 뭐야?" 이렇게 동문서답 하는 걸 봤어요.
저희 엄마 뇌경색으로 두달 전 입원까지 하셨습니다. 백퍼센트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할머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저렇게 집 안에서만 이상한 행동 하는 걸 보면 심심해서 그러신 것 같은데 왜 안나가시는 걸까요?
허리가 굽으신 것도 아니고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나가지도 않고 집안에서만 가족들을 괴롭힐까요?
외출 하는 건 한시간 정도 거리에 사는 고모나 여동생 만나러 갈 때 뿐입니다.
하도 뒤져대니 부모님은 안방문을 잠그고 나가시는데요. 어떻게 찾아내시는지 귀신같이 열쇠를 찾아내서 뒤집니다.
제가 목욕하느라 화장실에 한참 있다가 소리 없이 나갔는데 안방에 어느새 열쇠로 따고 들어가서 뒤져보고 계시더라고요.
맨날 봤던 거 또보고 하는게 뭐가 그리 좋으신지....
스트레스 받는 엄마가 너무 걱정이 돼요. 뇌경색이 재발될까봐 무서워요. 서울에 제가 모시고 와서 같이 살도록 할까요? 할머니가 집안일은 하실 줄 아니 아버지랑 같이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정말 머리가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