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다른 글에서 일본인 이주라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설에 대한 감정적 대응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정확히는 이주 노동자) 및 결혼이주여성과 소위 다문화 가족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는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이야기 했습니다만 문명사회의 인권중시와 이들 외국인 문제가 점점 양립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는게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저의 알팍한 사회과학 지식으로 보건데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대도시 주변 또는 downtown의 게토 증가와 슬럼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시골마을은 인구구성비 변화로 그 전세대와 전혀 다른 문화를 갖는 사회로 변할 것 같습니다. 단적으로 그런 지역은 현재 한국인의 정체성(인종 및 문화)을 갖는 사람들이 매우 이질적인 곳으로 느껴서 솔직히 피해서 다닐 곳으로 인식하게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후손이 저임금 한국인 노동자와 일자리를 두고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놓이면서 사회적 긴장을 높일 것 같습니다. 마치 몇년전의 프랑스 폭동이나 92년 LA폭동 하다못해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인도내 이슬람 마을 습격 같은 상황과 유사한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갈등은 진정한 의미의 인종적 극우주의 그룹의 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고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을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저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분명 기업주의 논리가 이주노동자의 증가를 유발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린 상황에서 경제성장을 유지하려면 젊은 외국 노동인력의 유입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좋든 싫든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리고 수직적 연계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생산직 노동자의 노령화에 대한 대안(혹자는 OECD 최저의 여성취업률에서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만) 마련이 없이는 제조업의 해외이주는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비록 경제성장의 과실을 피라미드 상위의 사람이 대부분 가져가고 있어 이에 대한 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현실이지만 제 짧은 머리로는 어쨌든 그런 성장이라도 유지해야 사회를 지탱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그리고 대외 개방적인 국가체제에서 아무리 외국인 문제가 심각해도 이들의 합법적 또는 불법적 이주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외교관계상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설사 외부 유입을 막더라도 다문화가정의 후손이 증가하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어느 분이 댓글에서 홍콩과 싱가포르 필리핀 메이드 처럼 여권을 주인이 소유하고 임금 통제하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런 계약관계는 일종의 인신구속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의 범주를 벗어나는 불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국가에서 주인집 남자와 여자로부터의 학대(성적 착취 포함)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조금만 신경쓰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홍콩이나 싱가포르 처럼 도시국가와 우리는 인구와 경제규모에서 비교조차 안됩니다.
저도 아직 뾰족한 방법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사회가 혈연중심의 공동체에서 공동의 가치관을 향유하는 열린 공동체로 진화하는 것이 그나마 갈등을 줄여나가고 경제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합니다. 즉, 단군의 후손, 단일민족, 백의민족, 충효사상 뭐 이런 것이 아니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공동체의 가치관을 개발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새로운 가치관에는 개인의 인권과 다양성을 인정하되 공동체에 대한 책임도 함께 나누는 어떻게 보면 한국인이라는 인종적 개념을 지양하고 이러한 가치관에 동의하는 한국시민이라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형태의 개념이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실제로는 어떤 사회도 인종적, 종교적, 경제적으로 나뉘겠지만 그래도 공동의 목표 및 가치관(민주주의, 약자에 대한 배려,개방적 다원주의)을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이를 사회통합의 근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럴때야말로 전통적 혈연주의 아래 결혼과 시댁문제, 자식교육에 얽매여 있는 많은 한국여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바람입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서 이러한 사회가 어떤 정책을 가질지 몇 가지 추측을 하면 (이건 뭐 안드로메다적 상상입니다.)
1. 이민을 허용하되 우리 공동체에 포섭을 거부하는 자기정체성이 너무 강한 집단에 대한 통제 --> 종교적 근본주의 세력 및 특정 인종의 과다한 유입 방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극단주의(종교적, 인종적, 이념적)의 발호를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우리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2. 혼인 이외의 다양한 가족(정확히는 비혼)관계에 대해 법률적 사회적 차별 폐지 --> 육아 및 노년에 대한 사회보장 확충과 민법의 개정이 필요하겠습니다만, 박노자 교수의 주장대로 우리 역사 고대의 자유로운 남녀간의 교접이 허용되는 것이 사회적 긴장을 감소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성적개방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대표적 사례인 유인원 보노보의 평등 및 평화주의를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결혼제도가 형애화되면 1부1처제는 유지되지만 전 인생에서 파트너를 여러번 바꾸는 형태로 가고 이성 및 동성에 대한 매력(육체적 아름다움과 경제적 능력만 아니라 유모가 많다던지 또는 취미가 같다던지 하는 여러가지 개성)이 다른 기존의 가치(경쟁, 독점 등)와 대등하기만 해도 사회적 활력은 커지면서 불필요한 긴장(누가 잘살고 학벌은 어떻고 하는 것 그리고 분노, 적개심)은 낮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들어 우리 공동체의 민주주의적 가치체계를 인정하는 무함마드나 존슨 또는 다나까와 김씨가 이성(또는 동성)에 대한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고 이러한 매력에 근거하여 파트너를 정하고 또 바꿀수만 있다면 윗세대가 보기에 풍기가 매우 문란해질지는 모르지만(그것도 삼국시대나 고려 어른이 보기에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인생이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3. 그러기 위해 한국어와 함께 영어 공용화는 어쩔 수 없지 않나 합니다. 무함마드에게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도록 원하기 보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개방성은 급격히 올라가지 않을까 합니다. 솔직히 수십년후 중국경제권에 완벽히 편입되어 중국어가 실제 공용어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 보다는 선제적으로 국제화하는 것이 거꾸로 우리의 정체성을 좀 더 오래 지킬 수 있지 않을까도 상상해 봅니다.
그럼 이것은 우리의 전통을 완전히 없애자는 것인가? 또는 서구화와 동일한 것인가? 뭐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번 써보기로 하겠습니다.
너무 길고 두서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원글은 3월 초에 썼던 것인데 당시 워낙 인기(?)가 없어서 묻혀지내고 있었는데 수정 후 다시 한 번 올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