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어제에 이어 오늘도 다시 찾아온 7세애엄마입니다. 후훗
우와, 제 글이 베스트에 가다니요, 오늘 82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영광+부담...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ㅜ.ㅜ.....
글 읽어주시고, 좋은 댓글까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댓글 중 제 나이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네, 저는 94학번입니다. 학력고사 폐지로 첫 번째 수능을 맞이한, 그리고 졸업 직전 IMF라는 핵폭탄을 맞은,
결혼 즈음하여 집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아직도 결혼 때 산 집 대출금 갚느라 인생을 보내고 있는...
흑..잠시만요...저 눈물 좀 닦고 다시 쓸께요...ㅜ.ㅜ;;;
뭐, 제 동기들끼리는 죽을사 구사학번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럼, 2탄, 시작해볼까요? *^^*
사실 오늘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대책없는 입시정책에 몰모트로 쓰여진 94학번으로서의 수능체험기를 쓰려고 했는데요, 제 글과 나란히 베스트에 있었던 어느 분이 써주신 ‘공부머리’에 관한 글을 읽고 이 글부터 먼저 써볼까 합니다.
그리하여 정말 고2 여학생의 체력이 허락하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겨우겨우 2등급을 만들어 고3이 되었습니다.
고3때 담임 선생님은 아주 객관적인 분이셨습니다.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분류하고, 각 수준에 맞는 입시전략을 매뉴얼대로 제안해주시는...
(나쁜 분은 아니셨습니다만 솔직히 지금은 선생님 성함조차 생각나지 않는군요..흠...)
저에겐 눈물과 땀으로 만들어진 2등급이었지만 그 분에겐 그냥 1등급 아래 2등급이었지요.
학기 초에 부르시더니 , 2등급이니 본인이 원한다면 서울대반으로 갈 수도 있다고 알려주시더군요.
서울대반이란 바로 그 당시 서울대가 수능이라는 정체불명의 정부시책에 대항하여 만들어낸 차별화 전략,
“본고사”를 따로 공부하는 반이었습니다.
왜 안가고 싶겠습니다. 당연히 얼씨구나 하고 본고사반에 동참하였죠.
그런데 거기는 또 딴 세상이더군요.
작년 일년 동안 저와 제 선생님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했던 제 성적이 거기서는 뭐, 바닥 수준인 겁니다.
이미 한 발은 서울대 안에 들여놓은 듯한 자신감과 오만함, 그리고 초1부터 고2까지 상위권에서만 놀아
그 아래 세상은 난 모른다는 듯한 아우라를 온 몸으로 풍기는, 그런 애들이 그곳에 가득 있더군요.
친구들을 상대로 지식을 공유하기? 흠..그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습니다.
누가 제 이 미천한 머리통에 뭐 들었는지 궁금해하기나 한답니까..ㅜ.ㅜ...
제 전공계열의 본고사는 제2외국어와 논술이었는데요, 뭐 논술이야 국어+문학의 연장으로 그러저럭 따라가겠는데,
문제는 제2외국어... 제 선택은 불어였는데,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내신에서 불어는 교과서를 통으로 외우는 것으로 어느 정도 승부가 났습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본고사 아닙니까. 교과서 외에 처음보는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튀어나오는데,,,
예,,저 고3 첫 번째 본고사 모의고사에서 거의 꼴등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다시 부르시더니, ‘이런 수준으론 지금부터 불어만 해도 어림도 없다. 그냥 서울대반 포기하고, 수능과 내신에나 더 집중해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흠잡을데 없는 정답이었지요. 근데 왜일까요.
어렸을 때부터 “쟨 욕심이 없어서..”를 칭찬으로 듣던 저인데, 그 순간에는 그게 포기가 안되더군요.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작년에 내신도 해냈으니 올해도 난 해낼 수 있어..뭐 이런 마음이었겠지요.
그래서 엄마에게 불어과외를 시켜달라고 졸랐습니다.
이때 이미 서울대에 입학해 있던 저희 오빠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oo아, 너 성실한 거 오빠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근데 본고사라는 건 보니까 머리싸움이야. 이건 공부머리가 있어서 응용하고 사고하는 능력이 필요한 거지, 너처럼 죽어라 암기하고 반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거 같은데...”
겨우 두 살 차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뛰어나서 항상 어렵고 우러러 보이던 오빠였는데, 이날 저 오빠에게 욕했던 것 같습니다. 나쁜 새끼, 니가 뭘 아냐고... 요.
엄마는 늘 그렇듯이, 제가 원하는 것이니 들어주시더군요.
최고의 과외선생을 구해오라고 제가 들들 볶았더니, 당시 강남에서 나름 제일 잘 나간다는,
서울대 갈 아이들만 맡는다는 한 여자선생님에게 과외를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그것도 오빠 후광으로 얻어걸린 자리라더군요.
그런데 거기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오히려 학교 본고사반보다 더하면 더했지.
거기 오는 애들은 어린왕자 쯤은 불어로 줄줄 읽고, 바까로레아(?)인가하는 프랑스 대입교재를 가지고 공부하는
그런 애들이었습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한달 동안 절 가르쳐보시더니 얜 안되겠다고 과외선생님도 절 포기하시더라구요.
엄마를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런데 뜬금없이 저희 오빠가, 본인과 어떻게 어찌어찌 아는 사이라며, 불어선생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한번만 더해보자면서요.
지금도 첫인상이 기억이 나는군요. 키가 아주 작고, 웃는 눈을 한 남자선생님이셨는데,
주로 프랑스 소설을 번역하시고,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불어도 가르치신다구요.
쪽집게는커녕 입시전문 과외선생님조차도 아니셨지요. 뭐, 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잘난 오빠와 아는 사이라는 것,(또 비교당하면서 시작하겠구나...) 이미 두 번이나 거절당한 기억(담인선생님+과외선생님)...
첫시간에, 정말 너가 날 무시하기만 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첫날 가져오신 페이퍼를 “읽을 수 있겠니?”하고 내미시는데,
이런,,,mon, ma, mes...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영어로 치자면 I, My, Me 이지요. 정말 기본 중의 기본....
퉁퉁 불어터져서 읽었더니만, “아이구,,,정말 잘하네,,난 또 니 오빠가 하두 엉망이라 그래서 진짜 엉망인줄 알았지...아, 이 정도 할 줄 아는데 뭘 못한대?”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여주시더군요.
뭐,,저도 이미 이꼴저꼴 본 몸인데, 저 칭찬이 진짠줄이야 알았겠습니까.
그래도 뭐, 피식 웃음은 나더라구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왜 불어가 싫은지, 싫은건지 무서운건지, 시험지를 받으면 어떤 마음인지 뭐,,이런 것들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 다음부터 서울대니 뭐니 이런 생각을 잠시 접고 그냥 언어는 언어로 공부해보자고 하시더라구요.
언어를 알면 문화가 보인다구요. 그리고는 정말 쉬운 문장들, 짧은 격언 같은 것들을 복사해오시고, 또 선생님이 번역했던 프랑스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구요.
그러니 불어에 대한 공포증은 사라지더군요, 그래도 실력은 여전히 바닥...
그 선생님에게 제가 제일 자주했던 말을
“선생님, 시간이 얼마 없어요. 저 고3이라구요.”와
“선생님, 전 오빠랑 달라요, 전 공부머리가 없다구요. 전 외워서 해야 되요.”이 두마디 였을겁니다.
그때마다
“00아, 달로 세지말고 날짜로 세보자, 남은 날 동안 너가 하루에 두 시간만 불어를 공부해도 그건 수백시간이야, 절대 시간이 없지 않아.” “너가 공부머리가 왜 없냐. 이건 너한테 세 번째 언어인데, 이 정도 하기가 쉬운 일 아니다.”
제가 가끔 우스운 얘기라도 해드리면 진짜 열심히 웃어주시면서 “야, 난 너처럼 웃기는 애 처음봤다. 너 사람 웃기는게 쉬운 줄 아냐, 그건 정말 머리 좋아야 하는 거다.”
그리고는 보기만해도 손이 덜덜 떨려왔던 불어 참고서들은 일단 치워놓고,
선생님이 구해오시는 불어로 된 짧은 동화책, 유머 시리즈들, 당시 귀하다면 귀했던 프랑스판 Vogue,,,
이런 것들을 같이 읽어보고, 거기 나온 단어를 외우는 걸로 수업을 대신했습니다.
정말..보기만 해도 앞이 캄캄하던 불어였는데, 놀랍게도 읽히더군요.
무엇보다 암기하지 않은 문제가 나오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던 저였는데, 자꾸 새로운 내용을 읽는 훈련을 했더니,
“그래, 이건 누구나 처음보는 문제야. 읽고, 이해하고, 풀 수 있게 내주는 문제라구.”라고 스스로 컨트롤도 되구요.
그 때 비로소 불어 입시 문제집을 정말 고1 것부터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시중에 있는 고1-고3까지의 모든 문제집을 거의 다 풀고
저는, 고3 2학기에, 다시 본고사 테스트를 보고 서울대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쓰다보니, 제 인생이 꽤나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군요. ^^;;;
하지만 저뿐이겠습니까, 누구나 학창시절에 이런 가슴에 남는 기억들 한 두가지쯤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저런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지만, 또라이 선생들은 더 많이 만났지요.
저에게, 너 니 오빠 동생 맞냐구,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데려다 기른 앤 줄 알았다는 말을 지딴에는 농담이라고
실실 웃으며 수시로 던지던 중학교 담임부터,
중2때인가, 수학문제 정 못풀겠으면 칠판에 답 대신 ‘나는 바보입니다’라고 써놓고 들어가라던,
정말 선생이라고도 불러주기 싫은 인간말종까지,,,
그래도 전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가슴에 따뜻하게 남는 선생님을 두분이나 만났으니까요.
글쎄요...공부머리는...제가 공부머리가 있는지, 없는지..정말 저도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제 인생에서 저에게 “머리가 좋다”고 말해주신 분은 저 불어선생님, 딱 한분 뿐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나 이때나, 그분이 진심이 아니셨던 것도 압니다. 하하...
그래도 그때 그 선생님이 해주셨던 그 말들이 아직도 절 흐뭇하게 미소짓게 하는 걸 보면...말의 힘이란, 참 놀랍지 않습니까?
아...오늘도 글이 길어졌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절대 공부 잘하는 비결에 관한 글도,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 는 취지의 글도 아닙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정말정말 아이들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주는 것!! 그리고 칭찬의 힘!!
이 두 가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자자..그럼...내일 이 시간 쯤 다시 3탄!!수능 이야기 나갑니다...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