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한 번 읽어보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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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스타들 중에 20대 초 중반에 결혼을 한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리고 30대 이후에 다시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많고 말이다. 그들에게 붙는 수식어들 중에 그런 게 있다. '아줌마 같지 않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아줌마란 '주부, 특히 30∼40대의 주부'를 부정적인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부정적'에 한 표 던져보자. 우리가 결혼하지 않은 미혼여성에게 '아줌마같다'라고 말할 때의 그 느낌을 한 번 보자는 말이다. 몸매의 S라인은 어디로 가고 H라인만 되도 봐줄만한 술통형 몸매에, 생활력은 어찌나 강한지 남은 거 싸가고 남의 거 뜯어오고, 덤받고 깎는 데는 일등이고, 염치없고 줄서기 싫어하고 지하철에서 자리잡으려고 괴력을 발휘하고 남의 눈치 안 보고 남의 이목 신경 안 쓰는 사람들... 이게 바로 '아줌마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텔레비전 스타들에게 '아줌마같지 않다'라는 말은 몸매와 피부, 그리고 머리스타일이나 옷차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촌스럽고 생활력강한 아줌마들과 다르다는 말이다. 이게 맞는 표현일까?
아줌마라는 표현이 아주머니의 부정적 표현이거나 말거나, 위에서 말한 아줌마들의 특성을 한 번 잘 살펴보자.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도 한 번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중학교 시절, 집안이 부유하던 가사선생님에게 분개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 말씀이, 남편이 돈을 못 벌어다주더라도, 다양한 반찬으로 가족들의 영양이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쓰는 것이 가정주부로서의 역량이라는 말씀이었다. 집안에 돈 한 푼 없어도 매일 반찬을 김치만 올려놓는건 주부로서 실격이라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분이 선생님만 아니었다면 내 성질머리에 덤벼도 한 판 덤볐을지도 모를 일. 내가 왜 분개했는지 이해하시는 분들은 이해하시리라.
이 땅에서 '아줌마'들이 생겨난 이유는 딱 하나다. 서민들의 삶이 이어지는 끈. 딱 그거다. 아줌마들은 최저생계비에서 약간 위를 상회하는 남편의 수입 안에서 집을 건사하고, 아이들을 키워 학교에 보내며 남편에게 용돈을 주고 살림을 한다. 남편이 힘들여 벌어온 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남아 버릴 음식들을 다 먹어치우고 나서,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운동할 시간이면 인형 눈알이라도 하나 더 붙이자고 앉아 있으니 몸매의 S라인은 술통보다 더 두꺼워진다. 빠듯한 돈으로 한 끼라도 더 맛있는 것을 올려놓고 싶은 마음에 남의 이목 생각하지 않고 한 개라도 더 받기 위해, 하나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덤을 요구하고 돈을 깎는다. 그리고 그 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미장원에서는 오래가고 싼 파마를 하고 화장품은 이름도 없는 회사의 길거리표를 기꺼이 선택한다. 싸고 편한 옷을 찾으니 스타일을 찾을 수도 없는 건 당연지사.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줌마들의 자리 쟁취 욕구 말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우리는 40-50대의 아줌마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 핸드백을 던지고 사람을 밀치는 것을 종종 보며, 술자리나 뒷자리에서 그걸 희화화하며 웃는다. 하지만 과연 그 웃은 사람들이 집에 가서 자기 어머니, 아내, 여동생이나 언니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을까? 20대 초반에 아이 하나를 낳은 다음 함께 지하철만 타면 자리를 잡기 위해 온 신경을 쓰는 친구가 그런 말을 했었다. 20대 중반인데도 아이 하나를 낳고 모유를 먹여 키우고 나니 5분만 서 있어도 어지럽고 다리가 아프다고 말이다. 그걸 과연 물어보고 이해해도 그렇게 씹고 웃을 수 있었을까?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텔레비전 스타들 중에 '아줌마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 최저생계비에서 약간 위를 상회하는 수입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용돈을 주고 집을 장만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텔레비전 스타들 중에 '아줌마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 남편이 번 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버려야 할 남은 음식을 아구아구 먹어치우고, 운동하며 S라인 몸매를 가꿀 시간에 앉아서 인형 눈알을 붙이거나 케익성냥봉투를 붙여본 사람들이 있을까? 그들 중에 누가 미장원에 가서 '오래 가고 싼 파마로 해주세요'라고 말할까? 화장품이건 옷이건 싸고 편안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걸 찾는 사람들이 텔레비전 스타들 중에 있을까?
우리가 아줌마라는 표현을 욕으로 사용하며 그분들을 모욕하면서, 텔레비전에 나와 잠깐 웃으면 수백 수천만원을 버는 사람들에게 '아줌마 같지 않다'고 칭찬을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들, 그들처럼 수십만원의 피부관리를 해본 적도 없고, 협찬이랍시고 명품 옷을 전문 코디네이터가 입혀주지도 않으며, 매번 머리를 매만져주는 전문가도 없는 우리의 어머니들, 아내들, 딸들, 언니와 여동생들을 욕하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를 욕하면서도 정작 그 외모지상주의에 맞는 외모를 가꿀 시간도 돈도 없고, 오히려 돈이 남으면 자신의 가족들이 외모 지상주의에 맞는 모습을 가꿀수 있도록 기꺼이 내어놓는 우리 곁의 아줌마들을 욕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스타들에게 '아줌마 같지 않다'라고 표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이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고, 우리를 삶으로 이어주고 있는 모든 '아줌마'들에 대한 모욕이다. 언젠가 '아줌마'라는 말이 '아주머니'의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존대하는 표현이 되었을 때, 그때 텔레비전 스타들에게 '아줌마 같지 않다'라고 말하라. 나는 텔레비전에 나온 가공된 여인이 아닌, 최악의 '아줌마' 같은 내 어머니를 통해 삶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한가인은 아줌마 같지 않은 게 아니라, 아줌마 같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