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꺾은 붓 / 2012-03-06)
나경원의 남편 김 모라는 판사는 어떤 시민이 인터넷에 제 마누라 나경원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자 나경원은 바로 고소를 하였고, 그 사건을 배당받은 같은 서부지검의 박은정이라는 후배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하여튼 간 기소만 해 달라, 그러면 그 시민을 콩밥 먹이는 것은 법원이 알아서 하겠다.”는
취지의 소위 “기소청탁”이라는 전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수사가 착수되지도 않은 단계이니 사실 관계는 조금 더 기다려야 드러날 것 같다.
이거 이런 일이 없었다면 김 판사는 박근혜한테 전화를 걸어 “공천만 해 달라, 그러면 당선은 법원이 알아서 책임지겠다,”고 하고 나올 물건이다. 이명박과 김윤옥같이 어떻게 그렇게 부창부수, 그 서방에 그 여편네인지 전해 내려오는 성어와 속담이 척척 들어맞는 것에 무릎을 안 칠 수가 없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라 기억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운현궁의 봄>인가 하는 책의 묘사를 빌리자면 조선 500년 사직을 말아 먹은 게 60여 년간 지속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였다. 그 안동김씨의 좌장이 영의정을 3번이나 역임한 김좌근이었고, 김좌근의 첩이 나주기생출신의 <나합>이라는 여인이었다.정승판서를 제외한 그 밑의 감투는 나합의 그 밑에 달린 구멍에 엽전을 소마차로 바리바리 들이 밀어야 최말단인 종 9품의 패랭이 감투라도 하나 얻어 쓸 수가 있었다.
당시는 조정의 폭정과 계속되는 흉년으로 배를 굶다 실성을 한 부모가 가마솥에 어린 자식을 삶아놓고 살을 뜯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시절이었고, 초근목피도 고갈이 되어 백성들은 하루에 멀건 죽 한 사발도 못 먹던 시절이다.그런 판국에 나합은 감투를 팔아 모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재물로 뒈진 다음에 극락세계를 가겠다고 흰 쌀밥을 산더미 같이 해서 소가 끄는 수레에다 싣고 오늘날 밤섬이 바라다 보이는 서강 가에서 한강물에 그 흰 쌀밥을 삽으로 퍼서 물고기들에게 보시를 했던 것이다. 그 흰쌀밥은 불쌍한 서민들의 등가죽을 벗겨 낸 가죽이었고, 염통을 찌르고 짜낸 뜨거운 핏물이었다.
서강 나루로부터 오늘날 강서구 생태 늪지가 조성되어 있는 양화 나루진까지 푸른 강물이 뜨물 같은 흰 물결로 뒤바뀌었던 것이다. 밤섬에 막혀 물살이 휘감아 도는 물귀신이 우글거리는 그 물속을 굶은 젊은이들이 삼베포댓자루를 움켜쥐고 숨바꼭질을 하며 잠수를 해서 쌀밥덩이가 풀리기 전에 건져 올렸다.그러다가 나합의 눈에 띄면 그게 생의 마지막이었다.그러니 나라가 왜놈의 아가리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지금 150여 년이 지난 뒤에 현대판 나합이 나서서 그 짓을 하고 있다.
4년 동안 “주어”로 시작해서 그 입으로 쉴 새 없이 헛소리를 해 대 국민들의 눈에 핏발이 서게 하더니 드디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최저임금도 못 버는 서민들은 꿈속에서나 만나 볼 수 있는 1억이라는 돈을 얼굴가죽에 처바르고도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밀었고, 제 손으로 싫다고 차버린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박근혜에게 공천 신청을 한 것이다. 나경원의 얼굴가죽에 처바른 돈만 갖고도 서민 가족 다섯 가족은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돈이다.
하로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나합의 말로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현대판 나합인 나경원의 말로가 눈앞에 닥쳐왔다. 얼굴가죽에 처바른 돈 때문에 서울시장후보로 나섰다 그렇게 곤욕을 겪었음에도 시장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요 사이에도 또 거기에 들러 얼굴 가죽을 손질했음이 밝혀졌고, 제 서방이 한 짓을 여편네가 나서서 오리발을 내밀다 이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직전이다.
안동김씨 세도 60년을, 아니 조선을 말아 먹은 것이 나합의 밑에 달린 조갑지였다면, 나경원과 그 서방을 말아먹은 것은 나경원의 얼굴가죽과 째진 입이다.
나경원과 그 남편이 나라와 국민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애국의 길이 하나 있다.
국민들의 이목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