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저까지도 마음이 무거워져
글 하나 보탭니다.
저도 비슷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엄마한테 지랄지랄하고
더 커서는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여전히 가끔 저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제 얘기를 먼저 해볼까요.
저도 엄청 모범생이었습니다.
성적은 향상 전교권이었고
비록 재수를 하긴 했지만,
제 출신 고등학교에서 졸업생 중에 유일하게 S대에 합격했습니다.
대학생활 동안은 뭐 이것저것하면서 나름 재미있게 보냈고
대학원도 진학했습니다.
저는 6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보다는 아버지랑 더 쿵짝이 맞았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부터는 일찍 철들기를 강요당한 아이처럼 살았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래야할 것같았습니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셨고,
정신적으로 무너진 채로 저희 남매를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시는 것을 가까이서 봐야했으니까요.
결국 저는 아빠가 돌아가신 것이 저에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냥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어요.
누가봐도 모범적인 딸이었지만
제 속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다 싫었어요.
살면 뭐하나, 정말 사는게 하루하루가 죽지 못해 사는 것같았고,
아무 재미도 없었어요.
해야할 일들만 있을 뿐, 하고 싶은 일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애를 낳고 키우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제 사춘기 시절의 지랄과 청년기의 무기력증의 가장 큰 원인은
엄마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대학원 졸업무렵부터 오랫동안 상담을 받았어요..)
엄마는 제 마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당장 살기에 너무 급급하셨고
당신께서 너무 힘드시니 자식들 마음까지 헤아리시기 힘드셨겠지요.
가끔 저희 남매가 아빠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안쓰러워하셨지만,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신다기 보다는
본인의 삶에 대한 연민이 자식들에게까지 불쌍하다는 마음으로 표현될 뿐이라 느껴지곤 했습니다.
엄마는 세상이 온통 불안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습니다.
하긴 이 거친 세상에서 혼자 어린 두 남매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그런데 엄마는 이 거친 세상에서 내가 너희를 지켜주겠다는 믿음보다는,
늘 자신의 불안을 저희에게까지 스며들게 하셨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큰 일 날것처럼,
조금의 일탈도 마치 인생을 망쳐버릴 것처럼,
조금 늦어지는 것이 인생 전체를 한참 뒤로 미뤄버릴 것처럼...
늘 그런 불안을 저희에게 전하셨어요.
대놓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작은 일에 대해서 며칠을 심란해 잠을 못 자는 모습으로 보여주시기도 했지요.
제가 훗날 엄마에게 가장 화가 난 것은
저를 믿지 못한다는, 그 근원적인 불안과 불신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엄마는 참 모르는구나,
그냥 조금 주저앉아있더라도 일어설 힘이 있다는 것을 엄마는 모르는구나.
그래서 이제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들어버렸구나..
늘 내 마음보다는 자신의 불안이 먼저였던 엄마에게 화가 많이 났고,
지금 역시 그 화는 잘 풀리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떡볶이 에피소드를 보면서도
그냥 간섭이 귀찮은 게 아니라,
그 저변에 깔린 불신이 진저리치게 싫은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단편적인 일화로 판단하는 것이 결례라 여겨지지만,
저 역시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도 깔깔거리며 함께 웃어줄 엄마,
그냥 내가 도와달라고 청하기 전까지는 온전히 내몫의 수고로움을 지켜봐줄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 역시 하곤 했습니다.
sky 아드님 걱정을 보면서도 생각했습니다.
학교 생활이 죽도 밥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도교수님께 상의를 드리는 엄마는 참 싫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불신이, 그리고 그 불안이
내 삶을 다 삶켜버리고 저의 팔다리를 잘라버리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제가 너무 감정이입을 했나 싶기도 하지만,
남일 같지 않아 적어 봅니다.
돌이켜보면 청소년기도, 대학생 시절도
이미 자신은 충분히 혼란스럽습니다.
해야할 일 투성이에,
그 일들에 짓눌려
딴짓을 좀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긴 커녕 쌓이기만 합니다.
놀아도 논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제대로 쉰 것 같지 않아 계속 쉬게 되는,
그러나 아무리 쉬어도 점점 더 피곤해지는...
아드님의 심정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좀 기다려주세요.
엄마가 무슨 해결책을 제시해주려고 하지 말고,
그 어떤 해결책도 아드님에게는 또 다른 삶의 무게로 얹혀진다는 것을 생각하시며
그냥 좀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진심으로아들이 가진 힘을 믿어주세요.
그 와중에도 좋은 대학에 갈만큼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알고,
또 노력한 것 이상의 결과를 거두는 좋은 능력도 가지고 있잖아요..
'믿는 척'해서 또 아드님에게 뭔가를 요구하려 하지 마시고,
쌀알만큼이라도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시면
그게 아드님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믿는 것과 믿는 척, 은 천지차이입니다.
아드님이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온 힘을 쏟길 바라는 그 마음으로,
원글님이 아드님을 믿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은 좀 비틀거리지만,
언젠가 다시 스스로 의미를 찾으면
분별력과 좋은 능력으로 제자리를 빠르게 찾을 겁니다.
제가 아드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간곡한 마음으로 글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