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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베스트글하고 아래 sky다니는 아드님 글 보고..

어렵다 조회수 : 2,259
작성일 : 2012-02-27 10:02:52

글을 읽고 저까지도 마음이 무거워져

글 하나 보탭니다.

 

저도 비슷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엄마한테 지랄지랄하고

더 커서는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여전히 가끔 저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제 얘기를 먼저 해볼까요.

저도 엄청 모범생이었습니다.

성적은 향상 전교권이었고

비록 재수를 하긴 했지만,

제 출신 고등학교에서 졸업생 중에 유일하게 S대에 합격했습니다.

대학생활 동안은 뭐 이것저것하면서 나름 재미있게 보냈고

대학원도 진학했습니다.

 

저는 6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보다는 아버지랑 더 쿵짝이 맞았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부터는 일찍 철들기를 강요당한 아이처럼 살았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래야할 것같았습니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셨고,

정신적으로 무너진 채로 저희 남매를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시는 것을 가까이서 봐야했으니까요.

결국 저는 아빠가 돌아가신 것이 저에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냥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어요.

 

누가봐도 모범적인 딸이었지만

제 속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다 싫었어요.

살면 뭐하나, 정말 사는게 하루하루가 죽지 못해 사는 것같았고,

아무 재미도 없었어요.

해야할 일들만 있을 뿐, 하고 싶은 일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애를 낳고 키우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제 사춘기 시절의 지랄과 청년기의 무기력증의 가장 큰 원인은

엄마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대학원 졸업무렵부터 오랫동안 상담을 받았어요..)

 

엄마는 제 마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당장 살기에 너무 급급하셨고

당신께서 너무 힘드시니 자식들 마음까지 헤아리시기 힘드셨겠지요.

가끔 저희 남매가 아빠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안쓰러워하셨지만,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신다기 보다는

본인의 삶에 대한 연민이 자식들에게까지 불쌍하다는 마음으로 표현될 뿐이라 느껴지곤 했습니다.

 

엄마는 세상이 온통 불안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습니다.

하긴 이 거친 세상에서 혼자 어린 두 남매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그런데 엄마는 이 거친 세상에서 내가 너희를 지켜주겠다는 믿음보다는,

늘 자신의 불안을 저희에게까지 스며들게 하셨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큰 일 날것처럼,

조금의 일탈도 마치 인생을 망쳐버릴 것처럼,

조금 늦어지는 것이 인생 전체를 한참 뒤로 미뤄버릴 것처럼...

늘 그런 불안을 저희에게 전하셨어요.

대놓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작은 일에 대해서 며칠을 심란해 잠을 못 자는 모습으로 보여주시기도 했지요.

 

제가 훗날 엄마에게 가장 화가 난 것은

저를 믿지 못한다는, 그 근원적인 불안과 불신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엄마는 참 모르는구나,

그냥 조금 주저앉아있더라도 일어설 힘이 있다는 것을 엄마는 모르는구나.

그래서 이제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들어버렸구나..

늘 내 마음보다는 자신의 불안이 먼저였던 엄마에게 화가 많이 났고,

지금 역시 그 화는 잘 풀리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떡볶이 에피소드를 보면서도

그냥 간섭이 귀찮은 게 아니라,

그 저변에 깔린 불신이 진저리치게 싫은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단편적인 일화로 판단하는 것이 결례라 여겨지지만,

저 역시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도 깔깔거리며 함께 웃어줄 엄마,

그냥 내가 도와달라고 청하기 전까지는 온전히 내몫의 수고로움을 지켜봐줄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 역시 하곤 했습니다.

 

sky 아드님 걱정을 보면서도 생각했습니다.

학교 생활이 죽도 밥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도교수님께 상의를 드리는 엄마는 참 싫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불신이, 그리고 그 불안이

내 삶을 다 삶켜버리고 저의 팔다리를 잘라버리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제가 너무 감정이입을 했나 싶기도 하지만,

남일 같지 않아 적어 봅니다.

 

돌이켜보면 청소년기도, 대학생 시절도

이미 자신은 충분히 혼란스럽습니다.

해야할 일 투성이에,

그 일들에 짓눌려

딴짓을 좀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긴 커녕 쌓이기만 합니다.

놀아도 논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제대로 쉰 것 같지 않아 계속 쉬게 되는,

그러나 아무리 쉬어도 점점 더 피곤해지는...

아드님의 심정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좀 기다려주세요.

엄마가 무슨 해결책을 제시해주려고 하지 말고,

그 어떤 해결책도 아드님에게는 또 다른 삶의 무게로 얹혀진다는 것을 생각하시며

그냥 좀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진심으로아들이 가진 힘을 믿어주세요.

그 와중에도 좋은 대학에 갈만큼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알고,

또 노력한 것 이상의 결과를 거두는 좋은 능력도 가지고 있잖아요..

'믿는 척'해서 또 아드님에게 뭔가를 요구하려 하지 마시고,

쌀알만큼이라도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시면

그게 아드님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믿는 것과 믿는 척, 은 천지차이입니다.

아드님이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온 힘을 쏟길 바라는 그 마음으로,

원글님이 아드님을 믿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은 좀 비틀거리지만,

언젠가 다시 스스로 의미를 찾으면

분별력과 좋은 능력으로 제자리를 빠르게 찾을 겁니다.

 

제가 아드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간곡한 마음으로 글 남깁니다.

 

 

 

 

 

 

 

IP : 211.177.xxx.105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감사팝니다
    '12.2.27 10:07 AM (61.72.xxx.203)

    저는 마흔에 그런 무기력 상태인데 님의 글을 읽고 제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2. 감사해요.
    '12.2.27 10:08 AM (175.211.xxx.206)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ㅠㅠ 저 스스로도 자신을 좀 믿어줘야 겠어요. 실수해도 용납해주고.

  • 3. ...
    '12.2.27 10:10 AM (122.36.xxx.11)

    원글님 좋은 글 갑사합니다.
    제가 그 글들의 원글자는 아니지만
    저는 애들 키우는 엄마로
    애들 입장의 깊은 마음을 생각해볼수 있는 기회를 주었군요

    애를 위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느라
    힘을 쏟기 보다는
    애를 믿기 위해 힘을 쏟으랴는 원글은
    아마 많은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저는 엄마 입장에서 그런 댓글을 썼지만
    자식 입장에서 쓴 글을 보니
    제 깨달음이 더 다듬어지고 깊어져야 함을 느꼈습니다.
    고마워요.

  • 4. 엄마
    '12.2.27 10:15 AM (124.49.xxx.22)

    가슴을 적시는 글이네요

    50대 중반의 엄마입니다
    저도 님의 어머나랑 많은 부분 비슷해요

    노력해보겠습니다

    글을 무척 잘쓰시네요
    정말 좋은글입니다

  • 5. 동감
    '12.2.27 10:27 AM (118.46.xxx.27) - 삭제된댓글

    참 좋은글입니다.

  • 6. 고마워요
    '12.2.27 10:40 AM (59.2.xxx.187) - 삭제된댓글

    그 글 쓴사람은 아니지만

    아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보는것 같아 고마워요.
    유용한 참고가 될것 같네요.
    진솔한 글 고마워요.

  • 7. ok
    '12.2.27 10:40 AM (14.52.xxx.215)

    원글님도 불쌍하지만 어머님도 안쓰럽습니다
    남편잃고 삶이 얼마나 막막했을지..
    또 자녀를 잘키워야한다는 책임감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지 생각해봅니다.
    이젠 원글님이 성숙해서 그런 마음까지 알고있으니
    엄마를 품어주세요
    정신적으론 힘들었지만 그래도 삐뚤게 나가지않고 좋은학교도 가셨고...
    모진 부모, 스승이라도 순종한사람은 또 그나름 보상이 있더군요
    글로 봤을때 원글님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잘 큰 분 같아요.

  • 8. mm,
    '12.2.27 11:09 AM (121.200.xxx.126)

    원글님 ...정말 이제껏 무언가에 억눌렸던 성격이 이거였구나...하는 순간입니다.
    내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늘" 다운된 ", 에너지가 고갈된것 같은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원인이 그것이었군요 어려서 돌아가신아버님 ,,도덕적으로 결벽증이 있다고 봐야할 엄마 그속에서 기쁨과 슬품에 대해 표현도 못하고 살았던 시절 늘 어떤 죄책감에 ....

    그래선지 항상 마음의 여유가 없이 화가차있습니다
    내마음을 들여다본것 같습니다.

    원글님 서울대나오셨다니... 글정말 잘쓰십니다. 설대 나오신분들 괜히 설대설대 하는것 아니군요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시면 어때요 칭찬드림니다

  • 9.
    '12.2.27 11:37 AM (116.122.xxx.204)

    근데요..
    님도 이젠 엄마잖아요.
    그 무기력 압니다.공부 좀 잘한 사람들의 그러나 전문직이 아닌사람들의 무기력이고..
    그 공부란 것들로 인해 ...공부만이 살길이였던 사람들의 무기력..

    근데요.
    님 엄마의 불안 알듯도 합니다.
    그 불안이 님에겐 무언의 채찍질이 되어 괴로웠겠죠.
    이 세상은 가혹한 겁니다.그 불안보다 그 엄마의 마음을 이젠 알아주세요.

    저도 님과 비슷은 합니다...더 못한 ..
    내가 내 아이에게 님의 어머니같이 할때도 있습니다.제 어머닌 그렇지 않았죠.
    그래도 가끔은 합리화도 해 봅니다.
    내아이가 느낄 감정을 가진...님에게..

  • 10. 원글이
    '12.2.27 11:48 AM (211.177.xxx.105)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좀 민망하고 쑥쓰럽기도 하네요.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댓글을 또 답니다.

    죄송하게도
    제 무기력에 대해서 공부만이 살길이었던 사람들의 무기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공부를 못했으면 안 무기력했을까요..
    전 그냥 공부를 했어요.
    해야한다니까, 안하면 엄마가 너무 우울해져서, 내가 그 우울에 숨을 쉴 수 없으니까..

    저는 제 우울과 무기력의 원인이
    자라면서 제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고 노력해볼 자신만의 동기를 갖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가서 저도 주위를 둘러보며 정말 천재구나 싶은 친구들 많이 봤습니다.
    근데 그 친구들 때문에 우울했던 기억은 없어요.
    천재다 싶은 그 친구들도 다 나름의 고민이 있고, 문제가 있었고,
    저보다 더 공부를 못했던 친구들이 저보다 불행해보이지는 않았거든요.
    그냥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이 행과 불행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에요.

    저는 20대 후반에 그렇게 많이 무기력했지만
    정해진 시기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버티다버티다 못 버틸 때, 그때에 터지는 것 뿐..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라는 분들의 말씀도 잘 압니다.
    자라면서 늘 그래왔으니까요..
    만약 엄마의 고생에 대해서 몰랐다면..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냥 마음에 안들면 화를 내고,
    하기 싫으면 안해버리고,
    그렇게라도 풀어냈으면 엄마에 대해서 그렇게 화가 쌓이지는 않았을거에요.
    화는 나지만 화를 내기엔 엄마가 위태위태해보였고 힘들어보였어요.
    그냥 내가 참는 것이 더 쉬운 길이라 여겨졌지요..

    그 글들의 자녀분들하고 저하고 다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스스로 껍질을 깨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뭔가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11. ...
    '12.2.27 1:49 PM (123.246.xxx.130)

    원글님 글에 저도 감정이입이 많이됩니다. 이런글이 있어서82 못 떠나요.
    원글님께서는 그런 아픔을 딛고 잃어서서셔, 더 성숙한 분이 되신거 같에요.
    박수 보내 드립니다.^^

  • 12. ....
    '12.2.27 5:42 PM (183.101.xxx.26)

    님의 어머니가 그런 조바심으로 님을 키웠기때문에 님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운겁니다

    그런 조바심 없이 님의 말씀대로 무관심으로 키웠다면 학생이 해야할 기본적인것도,의무감도 없었을지몰
    라요

    서울대 마저 못갔다면 님은 지금처럼 배부른 소리안하고

    부모님 원망할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님이 고뇌어린 생각은 알겠으나 어머님이 겪어야 했던 모진세월에 남겨진 두남매를 키워야하는 심정은

    님의 고뇌의 몇배였을거라 생각합니다.

    님의 어머니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 13. sky원글입니다
    '12.2.27 9:41 PM (211.246.xxx.15)

    많은 도움 감사하게 받았지만
    아이를 내놓고...
    너무 많은 글들이 올라오니
    그 또한 부담이라 글을 내렸습니다
    잘못해서 다 삭제가 됬내요
    내용만 지우려했는데...


    아....
    님글을 읽고 나서
    방향을 찾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14. 나랑
    '12.2.27 9:44 PM (182.211.xxx.135)

    같은 사람이 있었네요.
    나이들면서 엄마의 존재로 부터 분리되는 한순간이 두렵고 힘들었지만 자유로와지니 엄마도 이해되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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