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한 삼한·삼국·고려 역사 대대적인 수정 시급해
국가와 민족, 조국의 뿌리가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민족의 고매한 정신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지금, 누가 닫힌 역사의 문을 열어 진실을 규명할 것인가? 광활했던 한민족의 대륙 역사를 회복하고 외세가 훼손해 말살했던 선조들의 웅비한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학자가 있다. 그는 경북대학교 섬유공학과 이광우 교수다. 쌀·누에·곶감으로 유명해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부르는 경상북도 상주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Q. 섬유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상고사 연구를 시작했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A. 1995년부터 실크의 어원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실크는 중국에서 개발했다고 하는데 “왜 실크(silk)라고 부를까?”에 관한 의문이 들었거든요. 실크(silk)라는 용어는 ‘신라칸(新羅干, sillakhan)’ 즉, 신라에서부터 유래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크가 우리나라 신라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역사 자료와 관련 지역을 추적했습니다.
Q. 어떤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셨습니까?
A. 고려시대 책자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입니다. 연구를 위해 이 책자를 30번 이상 읽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통일신라·고구려·백제·신라의 유물과 유적, 문화재의 명칭이 현재 한반도에 있는 지명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Q.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2010년까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교수로서 시간을 갖고 실크에 대해 집중적으로 답사하며 조사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이 맞으며 고조선과 삼국, 고려가 지금의 중국 지역에 위치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얼마 전‘아랍인의 눈에 비친 신라’라는 논문을 봤습니다. 논문에는 과거부터 14세기(조선건국 1392년)까지 동양을 방문했던 아랍과 유럽 방문자의 기록이 있었어요. 그들이 남긴 기록에는 신라(기원전 57~935)가 중국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저는 1931년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구입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지명을 중국 지명에 대입해봤습니다. 그 결과 임나설, 삼한과 삼국, 고구려의 강역, 신라 묘지 등의 내용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어요.
Q. 과거 한반도 지역 내에 고조선과 삼국(고구려·백제·신라), 고려가 없었다고 보십니까?
A. 물론입니다. 최근에 상고사학회 이중재 선생의 저서 <상고사의 재발견>을 보고 그동안 가졌던 의문이 너무나 시원하게 해결했습니다. 그분이 발간한 모든 책을 구입해 2주일 동안 학교도 출근하지 않고 읽었어요. 그 후 제가 내린 결론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는 한반도 지역 내에 위치했던 신라를 대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 김부식과 일연도 한반도 지역에서 생활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우리 민족이 한반도 지역에 정착했던 시점은 언제부터라고 생각하시나요?
A. 조선시대부터 한반도에 국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조선과 삼국(고구려·백제·신라>, 고려가 중국 지역에 있었던 것이라면 역사에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합니다. 역사는 혼란과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Q. <삼국사기> 혹은 <삼국유사>의 내용과 오늘날 역사학계에서 말하는 내용 중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A. 두 가지 예를 들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목화에 관한 부분입니다. 마한시대에는 목화를 많이 재배해 무명옷을 많이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만일 지금 역사학계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한이 한반도 지역에 위치했었다면 대단히 우수한 목화가 한반도에 계속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록을 통해 확인해보면 목화는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 선생이 한반도로 최초로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한반도에 마한과 신라를 제한해 놓는다면 목화에 관한 기록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마한·삼국시대 때 우리 민족이 중국 지경에 살면서 목화를 수입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또 다른 예는 인구에 관한 신라 강역 기록입니다. 신라의 강역은 삼국시대에 동서 2천리, 남북 2천리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현재의 계산법으로 계산하면 800km입니다. 이는 한반도 지형에 맞지 않는 면적입니다.
Q. 현재 우리나라 각 지역에는 고조선과 삼국(고구려·백제·신라), 고려가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화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재들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A. 지역의 역사를 개발해 문화재로 등록하고 지역의 축제로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경우입니다. 고증도 전혀 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것이 문제지요. 저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전국의 유명 지역을 방문해 <삼국사기>와 문화재가 있는 그 곳의 지명이 일치하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확인한 결과를 몇 가지 말씀 드리자면, 부여의 백제왕국건설, 의성의 조문국, 고령의 가야유적, 전국에 있는 김해 김씨 기념관 입구에 있는 설명서, 상산 박씨 비문 내용 등 전국 사찰에 있는 많은 유물들이 역사서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Q. 역사 해석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학계나 정부에 건의한 경우가 있으신가요?
A. 끊임없이 민원을 보내 질의했습니다. 상고사 관련 전공교수, 문화재청, 교육과학기술부(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경북교육청,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국회의원 등에게 역사에 오류가 있는 것 같다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청했어요. 하지만 질의를 하면 이상한 답변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자료를 제시하면서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도 모른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상고사학회 전 회장 고 이중재 선생의 글을 근거로 문제제기를 하면 재야사학자의 의견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스럽고 황당한지 모릅니다. 역사를 밝히고 역사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정부와 역사학자의 의무이며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역사를 배우도록 방치하는 역사 관련 기관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Q. 오류가 있는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기존 학계의 역사학자가 바로잡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삼국사기>를 참고해 그 자료를 근거로 검정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 몇 년 전부터 상고사학회는 교육과학 기술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삼국사기> 정역본 등 여러 책을 발간했는데 이를 근거로 상고사학회 이중재 선생이 밝혀낸 역사를 여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가에서 상고사학회에 자금을 지원해 연구하도록 했던 자료를 공개하도록 국회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생각입니다. 일부 잘못된 행정학과의 교수가 우리나라의 행정을 망치는 데 앞장서고, 정치학과 교수가 우리나라의 정치를 망치게 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은 국가의 지원금을 많이 받고 교수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스스로 진정한 학자라고 생각한다면 한반도에 신라와 고구려가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Q. 언제쯤이면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 보십니까?
A. 역사는 언젠가 반드시 바로 설 것입니다. 저는 최소 3년에서 최대 1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현재 역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신진학자들이 중국과 관련된 서적을 읽고 역사 고증이 가능한 자료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활용해 역사 관련 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편리하게 자료 검색이 가능하게 하면 조기에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 젊은이들이 한자 원본을 배우지 않고 있고 우리나라도 젊은이들도 한자에 대한 중요성을 알지 못해 한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역사 서적이 있다 해도 우리 다음 세대가 한자를 몰라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히 잘못된 역사로 고착되는 것이지요.
Q. 끝으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역사는 정확한 근거를 기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역사 관련 책에는 참고 문헌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소설이 아니라면 반드시 근거자료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배우는 사람은 관련 자료에 대해 검정하는 습관을 가지고 사실에 대해 항상 확인해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검정작업 없이 믿어버리게 하는 주입식 역사 교육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자와 작가는 역사 관련 책이나 기사, 그리고 소설을 적을 때 항상 신중하고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항상 기득권의 지식인에 의해서 작성되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후대는 필히 검정작업을 해야 하고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故 이중재 선생이 모든 자료를 공개했기 때문에 역사를 검정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항상 공개할 예정입니다. 역사에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반드시 바로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교수. 그는 한민족 역사를 왜곡해 위치와 면적, 거리까지 조작한 외세에 분노한다. 그들이 말살한 우리 역사는 강역(疆域)만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빼앗기고 잘려나간 조국의 뿌리가 회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글마루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