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친정이 되게 못 살아요.
30대 후반인데 어렸을 때부터 가난해서, 학원이나 과외 같은 건 해본 적이 없고
대학도 거의 제 힘으로 다니느라 휴학해서 돈 벌고 학비 마련되면 다니고... 학기 중에도 학원에서 강사 열심히 뛰면서 그러고 다녔어요. 그럭저럭 졸업하고 취직해서 저 혼자 먹고 살기는 어렵지 않은 정도였는데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지금은 전업으로 집에 있어요.
저희 친정은 서울에 전세 2천만원 반지하에 사시는데
아버지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으시고(거의 안 계신 분이라고 보면 돼요)
엄마 혼자 생활하고 계신데 엄마가 암이세요. 저 큰애 낳을 때 발병하셨는데, 지금은 거의 완치 단계시긴 하지만
사회생활 하실 수 있는 정도는 못 되거든요. 연세는 60 전후 되시고요.
친정 식구로는 남동생 하나 있는데 이 집도 아이가 둘이고 외벌이에 대출도 많아서, 본인 생활하기 바빠요.
그러다보니 엄마는 수입이라는 게 거의 없으신 편이에요.
저희집은 남편이 자영업이라서 통장 관리는 본인이 하고 저한테는 딱 생활비만 줘서, 제가 엄마를 도와드리거나 할 여력이 없어요. 저희 남편은 여자는 출가외인이라는 생각이 강한 남자인지라..
본인이 집 마련하기 전에는 시댁에도 친정에도 용돈 같은 건 못 드린다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고요.
엄마 큰 수술하실 때도 병원비는 커녕 정말 용돈 한푼 안 드렸어요. 경우를 잘 모르는 편이기도 하고, 인색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결혼 초기에 친정 못 산다고 구박을 많이 들어서, 저도 자존심 상해 더 말하지 않아서 친정 형편을 자세히 알고 있지 않은 것도 있어요. (안다고 도와줄 사람도 아니에요. 아들 있는데 내가 왜? 이런 마인드...)
제가 저희 생활비에서 친정 전화비, 아버지 앞으로 보험을 두 개 붓고 있고(예전에 제가 처녀 적에 들어뒀던 것), 짬짬이 하는 부업으로 월 2~30 정도 수입을 엄마께 드리고 있는데, 수입은 이게 거의 다일 거에요. (남동생네가 10만원씩 드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진 않고요)
그러니 얼마나 쪼들리고 사시는지..사실 너무 빤하지요.
그래서 무슨 경조사가 있거나 하면, (아주 목돈 들어가는 큰 경우에만) 모아뒀던 돈 헐어서 부조는 거의 제가 대신 내드리고
또 소소하게 낯을 세워야 하는 때가 있으면 알아서 제가 챙겨드리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저는 아무리 허리를 졸라매고 살아도 저축 같은 건 할 수도 없고
돈을 빌렸다가, 월에 얼마씩 모아서 갚고 또 빌렸다가 갚고..늘 적자를 멤돌고 있네요.
(엄마랑 저는 사이가 좋은 편이에요. 저희 엄마는 정말 천사 같은 분이시라..늘 본인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기다리고 참고..그런 삶을 사셨어요. 저희 친가 식구들, 조카들 대가족 살림 엄마가 다 하셨고요. 아버지가 큰아들이 아닌데도 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고, 할머니가 계시니 제사도 좁아 터진 저희 집에서 지냈고요. 그렇지만 그만큼 아버지나 친가 식구들한테 인정을 받거나 고마움을 받거나..하진 못하셨어요. 더구나 지금은 몸까지 아프셔서.......)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저희집 오셔서, 제가 딸애 옷 택배 받는 것을 보시고는
"아무리 쪼들리다고 해도 여유가 있으니까 이런 옷들도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비난이나 나무람..같은 뜻이 있진 않으셨고
쪼들린다고 해도 나보단 네가 낫다..그런 말씀?? 이신 것 같아서..제가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그래 나는 딸애 옷을 사입힐 돈은 있는데, 엄마를 너무 못 챙겨드린 것 같아서..
한 달에 8~9만원씩 1년 모을 생각으로 100만원을 엄마를 드리기로 했어요.
정말 저로서는 허리에 허리를 졸라매는 각오를 하고 돈을 드렸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면서 그 돈으로 백화점 메이커 원피스를 한 벌 사시겠다고 하시네요.
어휴, 그 말씀을 들으니 정말 기운이 다 빠져요.
한달에 3~40가지고 생활하시는 분이..100만원짜리 원피스를 사시겠다니..
제가 사실 엄마 가까이 살 때는, 백화점에서 여성 부띡쪽 비싼 옷들 7~80% 할인해서 10~20만원 대까지 금액이 떨어지면 티셔츠랑 원피스를 가끔 사드리곤 했거든요..그 메이커를 아셔가지고 얼마 전에 친구분이랑 그 옷 매장에 갔다가 원피스를 하나 봐두셨다면서..그게 그렇게 꼭 사고 싶으시대요. ㅠ.ㅠ
무심한 남편 모르게 친정 챙기느라, 얼마나 애를 쓰고 발을 동동구르는지..저희 엄마는 모르실까요?
꼭 필요할 때, 맛있는 거 드시고 싶으실 때, 친구들 만나서 한번은 얻어 먹고 한번은 쓰고 싶을 때 그럴 때 쪼들리지 않게 쓰셨으면 하고 드렸는데....당최 원피스 한벌이 뭔지... 저도 되게 힘들게 드리는 건데... 자꾸 서운한 마음이 들어요.
(글을 올리면서도, 엄마 욕하시는 분들 계실까봐...걱정이 되네요.
그냥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고 해서 82에 올려봅니다. 엄마 탓하는 댓글들이 올라오면 저 더 속상할 것 같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