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문득 생각나서.. 아버지가 주사를 버리신 이야기....

그냥 조회수 : 4,025
작성일 : 2012-01-28 01:16:49

아버지 연세가 환갑이 넘으셨는데, 술을 드시면 한번씩 속을 북북 긁으십니다.

주사가 있으세요... 폭력.. 뭐 그런 건 아닌데, 말 그대로.. 시비 -_-;;

드라마에 나오는 비틀비틀 아저씨.. 그대로입니다.

꼭 거실 한복판에 드러누워 노래를 부르시거나, 허공에 욕지거리를 하시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술 취한 모습이 정말 싫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엄마는 포기를 하셨고, 저는 늘 화를 냈고, 오빠가 다 받아줬었거든요..

그러던 오빠는 결혼해서 분가했고.

 

그러다가, 작년 초였을꺼에요..

제법 짧은 몇 주 간격으로 그렇게 취해서 들어오신 날,

평소보다 길게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말 싸움인데,

전형적인 술 마신 사람의 말꼬리잡기와 시비... -_-;;

 

서른 넘은 저도, 예순 넘은 아버지도 지지 않고 싸우다가,

야밤에 제가 확 나가버리려다, 마음을 다잡고 앉아서.. 짐을 꾸렸습니다.

회사에 숙직실(?)같은 곳도 있고, 돈도 있겠다..

 

며칠 밖에서 지낼 준비를 하고, 다음 날 새벽같이 집을 나왔습니다. 그냥 출근이었죠..

그리고 한 5일 정도 집에 안 들어갔습니다.

회사가 밥 세끼 다 제공되니, 먹고 자고 다 했죠..

엄마에게는 문자로 이야기를 했고, 기운 빠진 엄마도.. 그래 편한대로 해라..하셨고.

 

매일 밤, 아버지에게서 잘못했다고, 집에 들어오라고 문자가 왔고,

오빠도 전화해서는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하신다, 미안해서 전화도 못하신다고 들어가라고.

그렇게 며칠 밖에서 지내다가, 화요일에 나와서, 일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도 아버지와 냉전으로, 눈도 안 마주치고 며칠 있었는데,

풀죽은 아버지가 갑자기 왜 그리도 안쓰럽던지.. ㅠ.ㅠ

그때까지도 엄마랑도 말씀도 안하시고, 조용히 건넌방에서 혼자 주무시고, 유령처럼 지내고 계셨더군요.

 

결국 며칠 지내다가, 야밤에 아버지 좋아하는 오뎅 몇 개 구워놓고,

야식을 권하고서는 서로 뻘쭈름하게 말없이 나란히 앉아 오뎅을 씹고서..

다시 며칠 지나 예전처럼 쭈빗쭈빗 단답형의 대화들이 오고가고 그리 풀렸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 단 한번도 술에 취하신 적이 없네요.

술은 계속 드시지만, 대부분 집에서 반주 한 두잔..

밖에서도 주량 안에서 가볍게 하시고 들어오시고, 하십니다.

 

엄마가, 제가 대여섯 살 때, '담배 냄새 나' 한마디로 담배 끊게 하더니,

이제는 술까지 끊게 했다고, 딸이 쌔긴 쌘가보다.. 하시네요.

엊그제 아버지 핸드폰 보다가 빵 터졌습니다. 제 이름이 '절대금주' 로 저장되어 있네요;;;;;

 

평생 딴 짓 한번 없이 가족 위해 희생하시고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내가 너무 했나.. 싶은 생각에, 좋은 술은 더 사다 나르고 있긴 합니다.

여튼 주사도, 극복할 수 있는 거더라구요..

IP : 210.222.xxx.204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착하신분이네요
    '12.1.28 1:20 AM (59.27.xxx.200)

    참 잘하셨어요;;

  • 2. 오예
    '12.1.28 1:38 AM (220.116.xxx.82)

    잘하셨어요 ^_^ 아버지 건강해지시겠네요

  • 3. ..
    '12.1.28 1:45 AM (175.117.xxx.119)

    훌륭한 아버지시네요. 매년 어버이날, 생신날, 그 고마움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전달해드리겠어요.

  • 4. 정말
    '12.1.28 1:51 AM (125.191.xxx.34)

    훌륭한 아버지시네요
    원글님을 정말 사랑하시나봐요
    잘 하고 계시겠지만 더 잘 해드려야겠네요
    그런 아버지 정말 1퍼센트도 안 될 거에요

  • 5. ㅇㅇㅇ
    '12.1.28 2:47 AM (168.103.xxx.187) - 삭제된댓글

    착하고 훌륭한 아버지네요.
    감동스럽게 읽다가 절대금주 에서 빵 ~~ ㅋㅋㅋㅋㅋ

  • 6. 뭉클
    '12.1.28 3:09 AM (112.187.xxx.237)

    아버님이 따님을 많이 사랑하고 계시네요.
    눈물이 찔끔 날려고 해요.

  • 7. 그러게..
    '12.1.28 4:47 AM (175.215.xxx.19)

    아버지가 딸을 무척 사랑하시네요 ㅠㅠ
    저희 아버지였음.. 대든다고 벌써 손올라왔...
    저도 서른 넘고 아버지도 예순넘었죠.
    저흰 변함이 없어요 늘 아버지 마음대로..
    제 평생 아버지께 사과받아본 적이 없네요
    저도 부모이지만... 잘못을 했다면 인정하고
    사과할줄 아는 부모가 될겁니다
    큰아이 여섯살.. 지금까지는 실천하고 있네요 ^_^
    부러워요 아버지께 잘해드리세요

  • 8. sdf
    '12.1.28 6:36 AM (59.1.xxx.81)

    맘이 짠하네요.
    행복하게 잘 사세요~

  • 9. 정말
    '12.1.28 7:59 AM (14.47.xxx.151)

    정말 아버님이 따님을 많이 사랑하시나봐요.
    제가 만약 그렇게 대들었음 저도 죽일년이 되어 있어 연을 끊었을 겁니다.
    저도 진짜 부럽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게 어려운 사람도 많더라구요
    특히 술먹고 한 일은 다 용서 받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반성이 힘든데....
    아버님이 그래도 대단하신것 같아요

  • 10. 나무
    '12.1.28 9:41 AM (115.23.xxx.228)

    절대금주에서 빵 터졌어요...^^
    아빠가 따님을 많이 사랑하시나봐요...
    잘해드리세요........
    저 일부러 로긴 했단 말예욧~~!!!^^

  • 11. 잘해드리세요.
    '12.1.28 10:11 AM (114.201.xxx.141)

    나이 40인 남편..딸둘..다 필요없다 합니다.시집가면 그만이라고요..그런 아빠도 있어요..님 아버님은 좋은 아버님

  • 12. 대단한
    '12.1.28 10:19 AM (118.46.xxx.27) - 삭제된댓글

    의지시네요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맘대로 마신다...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 13. 아버님이 좋은분이시네요
    '12.1.28 10:24 AM (211.107.xxx.33)

    딸바보 아버님이신듯 딸래미가 담배냄새 싫다니 담배 끊으시고 술주사도 딱 끊으시고

  • 14. ....
    '12.1.28 10:57 AM (121.138.xxx.42)

    진정한 딸바보이시네요.
    젊은 아빠들은 딸바보가 있는데 나이드신 딸바보는 별로 못봤어요.
    딸이 싫어해서 담배를 ㅠㅠㅠ
    두가지만으로도 아빠가 자랑스러우시겠어요..

  • 15. phua
    '12.1.28 12:37 PM (1.241.xxx.82)

    훌륭한 아빠이신 게 분명함..

  • 16. 원글
    '12.1.28 1:32 PM (210.94.xxx.89) - 삭제된댓글

    아이코, 밤사이 댓글이.. 감사합니다. (_ _)

    네, 아버지.. 온 세상이 다 아는 딸바보, 애처가.. 그러세요.
    그런 아버지셔서, 취한 모습이 너무너무 싫었거든요.
    세상에 없는 좋은 아버지가 왜 그 순간 그리 변하시는지..
    사실 그래봐야 한달에 한번 정도... 고닥 몇 시간..
    못 견딜 것도 아니건만 제게는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았어요.

    얼핏 듣기로 술 취해서 나오는 게 본심이라는 말을 믿을 때에는,
    저 모습이 아버지의 본심인가.. 싶어서 슬프기도 하고 그랬네요.

    여튼 그 뒤로는 한번도 비틀거릴만큼 드신 적도 없고,
    저녁에 야식과 반주로 때우셔서.... 배는 더 나오셔서 걱정..ㅠ.ㅠ

    친구분들께서 가끔 술하자고 불러내셔도, 더 권하셔도 안드시나봐요.
    술 자리 가실때에는 현관에서 인사가.. '술 자꾸 먹이면 딸래미 가출한다고 그러세요~' 네요;;

    물론 대 전제는.. 서로 얼마나 아끼고 배려하느냐.. 겠죠.

    아버지의 젊으신 시절 주사 덕분에, 저도 진절났는지..
    전 지금도 결혼할 사람의 조건중에 절대 안 변하는 하나가, 술/담배 안하는 사람이에요.

    예전에는 아빠같은 사람이었는데...
    아빠 같으면 딸만 너무 이뻐할 것 같고, -_-;; 가끔 너무 소심하시고,

    여튼 아직 결혼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만큼 절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서.. 라는게 단 하나 이유입니다.
    (정녕?? ㅡㅡ;;; 그것 뿐이더냐)

  • 17. 쉽지않아요
    '12.1.28 1:45 PM (222.239.xxx.22)

    그래도 그렇게 갑자기 줄이는게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 아빠가 정말 딸을 사랑하시나봐요. 평생 잘 해 드리세요. 부럽네요.

  • 18. 자식이...
    '12.1.28 10:02 PM (125.184.xxx.197) - 삭제된댓글

    무서운것이지요.
    아버님 참 좋으신분 같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63117 오래 정을 나누어 왔던 지인에게 식사권 선물.. 5 선물하기 힘.. 2012/01/28 1,345
63116 남편이 술먹고 핸드폰 잃어버렸요 4 .... 2012/01/28 1,642
63115 적금탄돈으로 대출 갚아야될까요? 3 2012/01/28 1,662
63114 색기있는 여자는 어떤여자인가요? 84 궁금해요. 2012/01/28 169,272
63113 입술이 부르텄는데 3일째 가라앉지를 않네요. 10 입술포진 물.. 2012/01/28 1,248
63112 안구건조증일까요? 2 블루마운틴 2012/01/28 759
63111 여보..당신은 참 마눌복이 많은줄이나 아슈.. 4 울남편에게 2012/01/28 1,508
63110 홈쇼핑에 나오는 왕영은요 33 쇼호스트 2012/01/28 12,779
63109 드라마 남주에 자주 빠지시나요? 6 수렁이다. 2012/01/28 1,518
63108 지금 뉴스타파 보고있는데요... 5 ss 2012/01/28 966
63107 식수로 마실만한 맛있는 차 뭐가 있을까요? 13 맛있는 차 2012/01/28 2,489
63106 ㅎㅎ 남편이 개처럼 집에 기어들어오는 걸 동영상으로 찍었어요.... 34 ... 2012/01/28 11,449
63105 선생님 선물 5 2월 말 2012/01/28 3,249
63104 맛있는거 추천해주세요 1 경복궁 투어.. 2012/01/28 503
63103 급하게 여행가방사려고 남대문 시장가도 될까요? 8 가방 2012/01/28 3,409
63102 요즘 한복 드라이비용 얼마나하는지 아시는분?? 2 드라이비 2012/01/28 3,595
63101 30대 중후반 남자 선생님 선물 추천 해주세요. 4 학기말선물 2012/01/28 13,813
63100 고등학교 졸업식 안가는 애들 있나요? 8 글쎄 2012/01/28 5,144
63099 샤넬 J12 세라믹 화이트 시계 중고가격요... 2 도움 절실합.. 2012/01/28 1,518
63098 갈비찜 하고선 닦아 말려놓은 압력솥 집어넣으려다가 9 압력솥 vs.. 2012/01/28 2,445
63097 [절실]부동산업자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나 조언 알려.. 4 .. 2012/01/28 1,292
63096 "직권 조정" 영어 표현이 어떻게 되나요? 1 질문 2012/01/28 576
63095 이 기사 사실일까요? 부산에서 방사능이 유출됐다네요 1 어휴 2012/01/28 2,079
63094 혹시 초등 3-1 새교과서 받아온분 계시면 좀 알려주세요~ 7 질문 2012/01/28 875
63093 데코타일 접착체 본드 없이 셀프시공 가능할까요? 8 - _- 2012/01/28 7,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