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연세가 환갑이 넘으셨는데, 술을 드시면 한번씩 속을 북북 긁으십니다.
주사가 있으세요... 폭력.. 뭐 그런 건 아닌데, 말 그대로.. 시비 -_-;;
드라마에 나오는 비틀비틀 아저씨.. 그대로입니다.
꼭 거실 한복판에 드러누워 노래를 부르시거나, 허공에 욕지거리를 하시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술 취한 모습이 정말 싫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엄마는 포기를 하셨고, 저는 늘 화를 냈고, 오빠가 다 받아줬었거든요..
그러던 오빠는 결혼해서 분가했고.
그러다가, 작년 초였을꺼에요..
제법 짧은 몇 주 간격으로 그렇게 취해서 들어오신 날,
평소보다 길게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말 싸움인데,
전형적인 술 마신 사람의 말꼬리잡기와 시비... -_-;;
서른 넘은 저도, 예순 넘은 아버지도 지지 않고 싸우다가,
야밤에 제가 확 나가버리려다, 마음을 다잡고 앉아서.. 짐을 꾸렸습니다.
회사에 숙직실(?)같은 곳도 있고, 돈도 있겠다..
며칠 밖에서 지낼 준비를 하고, 다음 날 새벽같이 집을 나왔습니다. 그냥 출근이었죠..
그리고 한 5일 정도 집에 안 들어갔습니다.
회사가 밥 세끼 다 제공되니, 먹고 자고 다 했죠..
엄마에게는 문자로 이야기를 했고, 기운 빠진 엄마도.. 그래 편한대로 해라..하셨고.
매일 밤, 아버지에게서 잘못했다고, 집에 들어오라고 문자가 왔고,
오빠도 전화해서는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하신다, 미안해서 전화도 못하신다고 들어가라고.
그렇게 며칠 밖에서 지내다가, 화요일에 나와서, 일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도 아버지와 냉전으로, 눈도 안 마주치고 며칠 있었는데,
풀죽은 아버지가 갑자기 왜 그리도 안쓰럽던지.. ㅠ.ㅠ
그때까지도 엄마랑도 말씀도 안하시고, 조용히 건넌방에서 혼자 주무시고, 유령처럼 지내고 계셨더군요.
결국 며칠 지내다가, 야밤에 아버지 좋아하는 오뎅 몇 개 구워놓고,
야식을 권하고서는 서로 뻘쭈름하게 말없이 나란히 앉아 오뎅을 씹고서..
다시 며칠 지나 예전처럼 쭈빗쭈빗 단답형의 대화들이 오고가고 그리 풀렸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 단 한번도 술에 취하신 적이 없네요.
술은 계속 드시지만, 대부분 집에서 반주 한 두잔..
밖에서도 주량 안에서 가볍게 하시고 들어오시고, 하십니다.
엄마가, 제가 대여섯 살 때, '담배 냄새 나' 한마디로 담배 끊게 하더니,
이제는 술까지 끊게 했다고, 딸이 쌔긴 쌘가보다.. 하시네요.
엊그제 아버지 핸드폰 보다가 빵 터졌습니다. 제 이름이 '절대금주' 로 저장되어 있네요;;;;;
평생 딴 짓 한번 없이 가족 위해 희생하시고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내가 너무 했나.. 싶은 생각에, 좋은 술은 더 사다 나르고 있긴 합니다.
여튼 주사도, 극복할 수 있는 거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