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참.. 제 남편에게 제가 메일 보내면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여쭙기도 하네요..
하지만 제 생각을, 제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한번 여쭤봅니다.
저희 남편은 학원을 운영해요. 강사선생님 세분 정도 있는 그럭저럭 잘 되어가는 학원이구요.
남편은 강의도 하면서 학원도 운영하면서 .. 바쁘죠.. 피곤하기도 해요.
서른 후반이고 체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디가 아픈 사람도 아니구요.
집에는 네살, 두살된 자매가 있어요. 순한편이고 아빠를 무척 좋아하지요.
남편은 학기 중에는 주중에 계속 일을 해요. 주말엔 고등부 수업이 있으니까요.
방학엔 주말에 쉬는 대신 주중에 월,수,금 사흘은 저녁에 고등부 수업을 하기에
그런 날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근무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주말에 쉬는거에요.
네살 된 큰애가 지난 여름 방학까지는 아빠가 쉬는지 어쩌는지 개념이 없다가
이제 좀 컸다고 아빠가 방학이고, 주중에 일찍 들어오는 날도 있고, 주말엔 쭉 집에서 쉬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아이가 아빠가 일찍 들어오는 화,목요일, 그리고 주말을 무척 기대하고.. 그래요.
하지만 저희 남편은, 네, 언제나 그렇듯 집에 오면 피곤과 짜증이 몰려와 먹고 자기 바쁘지요.
아이가 좀 놀아달라고, 책 읽어달라고 아빠한테 보채도 돌아오는건 아빠 짜증뿐이네요.
저희는 시댁도 친정도 집과 아주 가까워서 명절 연휴라고 해도 많이 바쁠 일은 없기에
이번 연휴엔 남편과 거의 집에 머물러 있었어요. 큰애도 아빠를 하루 종일, 며칠씩 보니 무척 좋아했지요.
그렇지만 역시 저희 남편은, 집에선 늘 어딘가 아프고 불편하고 짜증나고 피곤해 하는 사람이라서..
아이랑 뭐 별 달리 시간 보내준 것도 없이 연휴가 다 지나갔네요.
처음엔 저도 아이 마음이 이러저러하다, 피곤하겠지만 하루에 30분이라도 좀 놀아달라.. 부탁도 해 보고,
제가 무슨 말만 하면 툭 쏘듯 돌아오는 남편 대답이 듣기 거북해서 그냥 문자도 보내보고,
별별 소리를 다 해봤지만 주말이고, 연휴고, 늘 이렇게 지나갑니다.
바깥에 나가면 능력좋다 소리 듣는 사람이에요. 착실하게 일도 잘하고 수업도 잘 합니다.
밖에서 모든 에너지를 그렇게 다 쏟고 돌아오니 집에서 무슨 힘이 남아있을까,
학원 강사들이 대부분 그렇듯 잘 챙겨먹지 못하고 남들과 다른 시차로 살고 있으니 피곤할테지..
저는 이제 그렇게 이해하고 남편의 피곤함과 짜증을 그냥 받아들이게 됐지만
저희 아이들은.. 이제 곧 너무 빨리 자라버릴 저희 아이들은 뭔가요..
젊어 일할 때 바짝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고 자리 잡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게 결국은 다 자식을 위하는 것이라면, 지금 하루하루 너무 소중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도 한번 살펴주고 마음을 줬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일 중에 남편에게 보낼 메일을 썼어요.
그런데 써 놓고 보니 남편입장이라면, 이런 상황을 듣고 제 3자가 보는 객관적인 입장이라면
제가 이렇게 하는게 현명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좋은 방법이 또 있는 것일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아래는 제가 보낼 메일 내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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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은 지난 며칠 동안 우리 큰 딸에게 많은 눈물을 주었어.
밖에 나가자고 좋아하는 애, 모질게 내쳤고..
책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애한테 글이나 배우라고 했고..
아이들이 노는데 티비 크게 틀어놓고 졸리다고 하면서 애들 못 놀게 하고..
숨바꼭질 한번도 안했고.. 말타기 두번 해 준게 다야.
당신, 왜 열심히 일하는데?
우리 가족을 위해서, 라고도 대답하겠지.
가족을 위하는게 뭔데? 가족을 위한 결과가 이거야?
먼훗날 지금 당신이 열심히 일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당신이랑 놀고 싶어하는 애한테 피곤하다고 짜증만 되돌린 결과가 되었네.
별 대단한거 아니고 마주보고 짝짜꿍만 해 줘도 까르르 웃는 애한테,
나중에 나중에 더 좋은거 해 주고 나중에 나중에 더 잘 해 주겠다고, 바로 지금 당신만 바라보는 애를 울렸어!!!!!!
이런 말 자꾸 들으니까 짜증나고 싫기도 하겠지만,
나도 별 수가 없어. 당신한테 별 대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대안이나 의견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애는 하루하루 커 가고 저 아이가 커서 엄마와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 아이의 눈에 비치는 엄마아빠는 어떤 사이일까 생각하자니
나 역시도 바로 지금! 그게 그렇게 깝깝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자꾸 얘기하는거야.
이것도 지금이나 이렇지 이러다 나도 지치면 이런 말 마저도 하지 않고
그냥 나랑 애들이랑 알아서 잘 지내고 당신은 말 그대로 그저 밖에 나가 돈만 벌어오는게 다인 그런 아빠와 남편이 되겠지.
우리 가족이 그렇게 사는건 싫거든.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자꾸 얘기하는데 정말 이제 나도 점점 지쳐가고
기대를 안하게 되어가니 조만간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네.
피곤해서 죽는거 아니잖아.
아버님이랑 누님들 사이좋게 지내듯이 그렇게 좋은 아빠 되고 싶다면서.
이렇게 지내서 그게 잘 될까. 자기는 '다음번에는..'하고 또 다짐하겠지만
그 다음번이 언제 오는거야. 그 다음엔 또 다음에, 그 다음엔 또또 다음에.. 그러기가 쉽지.
여보,
우리 큰 딸.. 이제 제법 커서 눈치를 제대로 봐.
내가 종종 히스테릭하게 애를 잡기도 하고 별거 아닌걸로 과하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나는 적어도 애가 내 눈치보며 마음에 상처는 받지 않도록 노력해.
어쨌든 나는 애랑 붙어있는 시간이 많으니 화해의 시간도 많이 가지니까.
하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잖아. 이렇게 자식들이 아빠와 점점 멀어져가는구나 싶어.
예전엔 나 너무 힘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화도 내고 속도 뒤집어 보였지만
이젠 애들이 다 보고 듣고 있겠거니. .싶어서 그저 깊은 한숨 내쉬는걸로 내 마음 조금 달래지만
그마저도 우리 착한 큰 딸이 그 한숨의 의미를 알아가는거 같아서 점점 더 두렵네.
좋은거 해 주고, 공부 잘 가르치고, 넓은 집에서 살게 해 주고, 좋은 차 태워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게 오직 행복이라면, 산골마을 여덟남매 있는 그런 집 애들은 다 불행하게? 안 그렇잖아.
제발 내가 더 지쳐서 말을 끊기 전에 제발, 여보, 제발, 지금 이 순간 좀 놓치지 말아줘.
제발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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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렇게요. 이게 솔직한 제 심정이기도 하고. 최선인것 같아요.
그런데 혹시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걸까요, 너무 제 입장에서만?
어떻게 현명하게 저희 아이들에게 너무 소중한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을지..
그게 하루하루 고민입니다..
남편들은 왜 집에만 오면 아픈걸까요. 휴..
차라리 애들과만 집에 남을 내일이 더 반가운, 그런 연휴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