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정문 앞에 김밥집이 있어요.
전에는 노부부가 운영하시다가 다른곳으로 이사하시면서 가게를 중년부부에게 인계하셨어요.
노부부가 운영하실때는 메뉴도 김밥이랑 국수 두가지가 전부였고, 마치 집에서 만든 것처럼
정성가득, 맛도 좋아서 인기가 많았죠.
새로 가게를 받으신 중년부부는..
떡볶이, 순대, 오뎅, 쫄면 등 메뉴가 많이 늘었지만 확실히 맛이 떨어지고 그대신 쓸데없는 친절이 증가햇어요.
마치 부족한 맛을 친절로 대신 채우려는 ;;
근데 남편되시는 분은 너무 지나치게 친절해서 가끔 귀찮을 지경이었고
(이것저것 안부를 물으시는데 좀 과한 느낌이 들때가 많아요)
저는 좀 가식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럴때마다 내가 너무 까칠하고 경계심 많은 탓인가보다...하고 말았어요.
저희 아이들이 유난히 김밥을 좋아해서 가끔 그 집에 가서 김밥을 사먹어요.
얼마전에 저희 작은아이가 치즈김밥을 한줄 포장해 달라고 했더니
"에잇~ 싸야되잖아!" 하면서 짜증을 내시더래요.
아이가 그 말을 저한테 하길래 아저씨가 너무 바쁘고, 손님이 많으면 치즈김밥 한 줄 싸기가
번거로워서 그랬을 수도 있다고 달랬어요. 근데 그때 손님도 한명도 없고 한가했다더군요.
그 후로 한동안 안가다가 어제 점심에 김밥이 먹고싶다길래 제가 출근하면서
돈을 주고 왔어요. 그리고는 퇴근해서 기막힌 소리를 들었답니다.
저희 아이가 그냥김밥 한줄, 참치김밥 한줄을 포장해 달라고 했더니
"아니, 웬 또 참치김밥이야. (자기 아내를 향해 소리치며) 야~! 이거 니가 싸" 그러더니 나갔다는거에요.
그말을 듣고 너무 화가나더라구요.
제가 아이를 데리고 갈때는 가식이 느껴질만큼 친절하게 굴더니
아이 혼자 보냈다고 두번이나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는게 너무 불쾌했어요.
저희 아이도 너무 기분나빠서(마음에 상처도 받았겠지요) 이젠 그 집에 안가겠다고 하고요.
전화를 했죠.
예상했던 대로 친절하게 받더군요 -_-
"사장님, 저희 아이가 오늘 낮에 참치김밥을 사러 갔었는데요..." 까지 얘기하자
목소리가 갑자기 저자세로 바뀝니다.
"아, 네..." (왜 전화했는지 알겠다는 뉘앙스)
그래서 제가 이러이러해서 기분 나쁘다고 얘기하고
엄마랑 가면 그렇게 친절하신 분이 아이만 가면 태도가 달라지는건
문제 있지 않느냐..(너무 점잖게 얘기한 것 같아서 후회되요)
이런 얘기를 했는데 제가 한구절 할때마다
"예, 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듯이 반복하더군요.
길게 통화하진 않고, 기분나빴다고 얘기하고, 다시는 그집 안가겠다고 하고 끊었어요.
그랬더니 두어시간 후에 문자메시지 왔더군요.
사모님~어쩌구 하면서 좋은지적 감사하다고.
앞으로 시정하겠으니 용서해달라고.
새해복많이 받으시라는 내용이네요. -_-
참..내 전혀 진심도 안느껴지고, 받고싶지도 않은 사과였네요.
제가 평소에 누구랑 싸워본 적도 없고, 가능하면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아이한테 두번이나 그랬다고 하니까 진짜 화가 나더라구요.
전화 끊고 나니 더 강력하게 얘기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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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를 달리 보게 된 계기가 뭐냐하면
김밥집 옆 가게에 가는 손님이 김밥집 앞에 잠깐 차를 댔어요.(주차공간을 같이 써요)
그랫더니 아주 무례한 말투로 "거, 차좀 빼쇼" 하더래요.
차주인이(키크고 건장한 체격) 기분나빠서 그 전화를 받으면서 김밥집 앞으로 갔더니
주인아저씨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그래서 문열고 들어갔더니 그 사이 주인아저씨는 도망가고 없고 주인아줌마가 대신해서
코가 땅에닿도록 사과했다더군요.(늘 아저씨가 질러놓고 아줌마가 사과하는 모양새)
이처럼 약한사람에게 강하고, 강한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목격담이 종종 있었답니다.
추신 : 댓글 보고 추가합니다.
위의 주차관련 에피소드는 주차했던 아저씨가 갔던 가게 사장님한테 직접 들은것이고,
평소에 손님들이 있건없건 아내나 대학생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저도 좀 의아하게 느끼던 차였어요.
손님들에겐 친절하면서 자기 가족들에겐 너무도 막 대하시더군요.
제가 단편적인 한번의 경험으로 김밥집 사장님을 평한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적인 뒷담화가 아니라)
평소에 막연히 느끼왔던 우려가 좀 더 확실히 드러났다는 걸 말씀드리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