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쿡의 고민글들 중에서 남편 또는 남자친구의 외도, 바람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이별을 준비하는 내용을 보면서 남자의 바람기에 대한 ‘과학적인 변명’을 하고 싶어 전에 써놓은 글을 올려봅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양한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바람기 또한 남자가 여자에 비해 많거나 강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남녀 사이에 발생하는 끊임없는 갈등들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해할 필요는 있지만 용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자가 바람기를 잘 컨트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자의 지혜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참고로 저는 남자입니다. ‘과학적인 변명’에서 과학에 방점을 둘지 변명에 방점을 둘지는 읽는 여러분 마음입니다. 그런데 과학에 방점을 두면 이해폭을 넗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지만 변명에 방점을 두면 짜증날 것입니다.
예전 MBC스페셜에서 방영한 "일부일처제 - 인간 짝지기의 진화" 1, 2편을 보고나서 좀 길지만 나름 소설형태로 써 본 글로 읽을 만합니다. 내용중 진화론적인 설명과 실험들은 모두 스페셜에 나온 것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 댓글을 보니 의도와 많이 다르게 소설속에서 바람핀 남자 주인공을 소설쓴이(저)로 대입시켜 감정이입해서 비판을 하시는데 그럴만하다고 생각은 되지만 일반적으로 소설속의 주인공과 소설가가 동일하지 않음을 모르시는 건 아니시겠죠? 다만 남녀차이에 대한 이해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남녀차이에 대한 진화론적인 이해를 위한 다큐영상풀이소설입니다. 그리고 위 소갯말 중에 '남자가 바람기를 잘 컨트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자의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란 문장에 자꾸 오해를 하고 계신데 바람기 있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책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발언이 아니라 82쿡이 여초사이트이기 때문에 여자의 관점에 포인트를 둔 것 뿐입니다. 남초사이트라면 남자의 관점에서 진화론적인 본능이 있지만 이를 남자가 잘 컨트롤할 절제력을 언급하겠지요.
[ 바람이 분다 ]
- 1편 -
혜린은 시선을 토막내지 않는 카페 통유리 밖으로 세차게 내리꽂는 장맛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행인들은 우산 속으로 웅크리며 피했지만 뼛속까지 젖게 하려는 장맛비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혜린은 뛰어나가고 싶었다. 비에 흠뻑 젖는 것이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이 순간 보다 나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민혁은 다 타 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호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또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혜린은 창밖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조금의 반응도 하지 않았다.
혜린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래서 잤어?"
"그래"
민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혜린은 심장부터 손끝까지 순식간에 타고 가는 진동을 멈추기 위해 주먹을 있는 힘껏 쥐었다.
"너도 별 수 없구나. 남자들은 모두 똑같아."
민혁은 담배연기를 폐 깊이 길게 빨아들였다.
"남자들이 바람기를 신이 주신 선물인 것처럼 즐기고 있는 걸 보면 치가 떨려. 파렴치한 족속들!"
민혁은 다리를 꼬고 담배를 재떨이에 털면서 말했다.
"바람기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 말은 못하겠지만 신의 창조섭리 안에 있는 건 분명해."
"뭐라고? 그걸 변명이라고 말해?"
"네가 화를 내는 건 이해해. 그러나 내 말을 선입견 없이 들어주었으면 해."
"그래. 알았어. 변명이라도 어디 한 번 들어보자."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남자를 포함한 수컷들은 종족보존을 위해 씨를 여러 곳에 퍼뜨리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어. 한 곳만 믿었다가는 종족보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지. 더 많은 양적의 짝을 추구한다는 거야. 그 본능이 바람기야. 그에 반해 암컷은 더 나은 질적의 짝을 추구하지. 어쩌면 일부다처제가 본능에 충실한 시스템일지도 몰라. 적어도 일부일처제가 인류 생존의 길은 아니란 거지. 변명으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신께서 주신 본능을 맘껏 누리는 것이 인류의 번성을 원하는 신의 창조섭리에 응답하는 길일 지도 몰라."
"별 소리를 다 듣겠군. 그건 퇴화되어야 할 남자 위주의 이기적인 본능일 뿐이야. 인간이 동물과 다를 수 있는 게 본능을 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넌 동물이니? 인간이니? "
"본능에 충실하라는 얘기는 동물적인 본능대로 살라는 의미가 아니야. 본능은 곧 느낌이야. 운명적일지도 모르는 느낌을 완강히 거부하고 싶지는 않아. 사회적으로 당연히 정죄하는 바람기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안될까?"
혜린은 민혁이 진화론적인 분석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바람피운 걸 후회하고 용서를 빌면 한 번 눈감아 줄 수도 있는데 계속 변명을 위한 논리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니 혜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혜린은 남자라는 동물이 맘에 안 들었다.
민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1주일 전에 <클로저>란 영화 본 거 기억하지?"
"그래. 같이 DVD방에서 봤잖아."
"네 남녀 주인공들이 나오잖아. 넷 모두 자기 파트너를 두고 지속적이었든 충동적이었든 바람을 피었어. 그런데 두 남자 주인공들은 파트너가 바람피울 때 성관계를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를 물고 늘어져. 마마보이의 유치한 면까지 보이며 집요하게 여자들을 괴롭혔지. 그러나 여자 주인공들은 파트너가 바람을 피워도 관계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지혜롭게 대처하잖아. 너도 지혜로운 여자니까 화만 내지 말고 이 상황을 현명하게 보면 좋겠어."
"그래. 말 잘했다. 너도 그 영화 보면서 남자들 참 못났다고 말했잖아. 난 지금 그 남자들 못지않게 변명을 늘어놓는 네가 못난 놈으로 보여."
"그래. 그 남자들 유치하기 짝이 없었어. 그러나 그 남자들을 이해할 수는 있어."
"이해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남편은 아내가 딴 남자랑 사랑에 빠지는 것은 용서할 순 있어도 성관계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어. 남자란 동물이 덜 진화된 종임을 반증하는 말이야. 그에 반해 여자는 달라. 사랑이 뭔지를 알아. 아내는 남편이 딴 여자랑 성관계하는 것은 용서할 순 있어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잖아. 사랑하는 사이에서 육체적인 관계 보다 정신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거야."
"그래. 그런 말이 있기는 하지. 그러나 그건 남녀의 우열을 가릴 성향으로 단정질 수는 없어. 그것도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어. 신의 창조섭리 안에서 행해지는 결과야. 그리고 난 지금 너와 남녀의 우열을 가리는 대결을 하고 싶지 않아."
"또 신의 섭리 운운하고 있군. 네 말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교묘한 술수에 지나지 않아."
"나도 정신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알아. 그러나 만약 출산을 여자의 몫이 아닌 남자의 몫으로 창조되었다면 네 얘기에서 정반대로 뒤바뀌는 현상이 나타날 거야."
"출산 때문이라고? 뭔 궤변을 늘어놓으려는 거야?"
"남편이란 수컷은 암컷인 아내가 딴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성관계의 여부가 더 중요한 걸로 여겨. 왜냐하면 정자의 경쟁에서 질 수 없다는 본능 때문이야. 출산을 담당하는 아내의 한 난자를 향해 남편의 수억 정자들이 서로 경쟁해.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아. 다른 남자의 정자와도 경쟁해서 이기지 않으면 안 돼. 서로 다른 남자의 정자를 섞어 놓으면 서로 공격을 한다는 거야.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장 정자의 경쟁에 뛰어들 위험이 없지만 성관계를 했다면 정자의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는 거지. 한 연구에 의하면 갓 태어난 아기가 ‘누구를 닮은 것 같냐?’는 질문에 엄마와 외가 쪽 가족들은 대부분 '아빠를 쏙 빼 닮았다'라고 대답한데. 이것은 ‘부계 확실성 확인’ 이라는 숨은 이유가 있다는 거야. 정자경쟁이란 남자의 중요한 본능을 여자들도 잠재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지."
"......"
"그리고 아내가 남편이 외도할 때 정신적인 관계 보다 성관계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남편이 딴 여자와 성관계를 맺어도 출산을 담당하는 아내 자신의 종족보존에는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야. 질 좋은 정자를 얻으려는 본능에 위협만 되지 않으면 되거든. 그래서 장기적인 종족보존 관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남편이 딴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막으려고 하지."
"종족보존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인간의 참삶의 목적은 그게 아니야. 인류가 계속 생존하면 뭐 해. 믿음이 깨지고 사랑이 깨지는데. 연인이나 부부나 서로에게 충실하지 않으면 혼돈스럽고 방탕한 세상이 될 거야."
"그래 그 말은 인정해. 그러나...."
다시 혜린과 민혁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민혁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혜린이 이해해줄 맘의 공간이 좁다는 것을 느꼈다. 혜린은 지금은 용서할 수 없지만 자신이 얘기한대로 민혁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용서해 줄 수 있는 여자만의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혜린이 다시 침묵을 깼다.
"나보다 예뻐?"
민혁은 혜린을 한번 물끄러미 쳐다보고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너도 예쁘고 그녀도 예뻐."
"나보다 예쁘냐고?"
민혁은 길게 내뿜은 담배연기로 통유리에 김을 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혜린은 시선을 돌린 민혁을 째려보며 말했다.
"날 좋아한 이유가 내가 예쁘기 때문이야? 난 네 외모를 보고 좋아한 게 아니었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모습이 좋았고, 거칠 것 없는 자유에 매료되었어. 그런데 넌 뭐야? 예쁜 외모만 좇고 있잖아."
"네가 예뻐서 좋아한 건 맞아. 그런데 외모만 예쁜 게 아니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인간에 대한 애정도 예뻐서 너한테 반한 거야. 그러나 또 얘기하는 것이지만 남자란 수컷은 여자와 달리 본능적으로 외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또 수컷타령이야?"
민혁은 자세를 다시 고쳐 잡고 말했다.
"결혼조건을 따질 때 남자는 첫째로 외모를 선택하고 여자는 능력을 선택한다고 하잖아. 그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근시안적이거나 표면적인 것에 눈이 먼 덜 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야.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여자가 출산과 양육을 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야. 외모가 보기 좋다는 것은 건강미를 의미해. 수컷인 남자는 건강한 2세를 출산하기 위해서는 외모적으로 건강하고 보기 좋게 진화된 여자를 첫째로 선택하고자는 본능이 있다는 거지. 그에 반해 여자는 오랜 기간 임신하고 출산 뒤 아이를 양육하려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가 필요해. 그래서 첫째 조건으로 능력을 따지는 거야. 만약 남자가 출산하고 양육하게 된다면 여자는 외모를 꾸미는데 돈을 쳐 바르지 않고 능력을 키우는데 힘을 쏟고 멋진 외모의 남자를 구하는데 목숨걸 걸?"
"진화론적 관점이 일면 타당해도 외모만을 따지는 남자들의 성향을 후손에게 길이길이 물려줄 만한 유산은 못된다고 생각해. 그런 태도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성형과 다이어트의 노예로 만드는지 알아?"
"난 다만 그런 남자들의 태도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말이 된다는 걸 말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이건 남녀 우열의 문제가 아니야. 단지 남녀의 차이일 뿐이야. 신이 그렇게 만든 걸 어떻게 하란 말이야?"
"신에게 책임을 다 떠넘길 셈이냐? 그럼 성적인 충동을 느껴 성폭행한 놈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성충동을 선사한 신을 성폭력 교사죄로 감옥에 처넣어 되겠네? 본능대로 모두 살다가는 인류는 한 달 만에 소멸될 거야."
"난 다만 본능을 사랑을 배신하는 데 한 몫 하는 못된 병균으로 보지 말고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사는 삶에 필요한 영양소로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야."
"그래. 지금의 본능은 뭐야? 그렇게 예쁜 새애인을 만나고픈 본능이 주야장천 땡기고 있냐?"
"애인은 아니야. 세 번 만났고 엊그제 잤을 뿐이야."
"잔 걸 숨길 수도 있는데 왜 솔직히 말한 거야?"
"난 거짓말하면 표정에 다 나타나잖아.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이 없어."
"자고났더니 볼 장 다 봤다는 거야?"
"말이 좀 심하군. 널 보니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아서야."
"날 보니 맘이 바뀌었다고? 참 나원. 또 다른 예쁜 애 만나면 맘이 또 바뀔걸? 맞지? 그 잘난 진화론적인 수컷의 본능이 있고 그 뒤에 든든한 빽인 신의 창조섭리가 있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어?"
민혁은 장맛비에 혼쭐나고 있는 행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빗물로 끈적대는 몸을 말릴 수 있는 곳으로 빨리 숨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페 안에는 쌍쌍의 남녀들이 눈을 맞대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민혁은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본능에 이끌려 지금의 만남을 성사시켰고 어떤 조건에 기대어 결혼에 골인하고 앞으로 일부일처제를 위협하는 것들에 어떻게 대처할 지를 말이다.
- 2편 -
민혁은 자꾸만 대화가 끊기고 정적이 흐르는 이 시간도 자신이 못난 남자로 코너에 몰리는 이 공간도 싫었다. 집요하게 따지는 능력과 빈도수는 늘 민혁이 혜린 보다 앞섰는데 오늘은 혜린이 벤치마킹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민혁은 장맛비에 혼쭐나는 행인들 속으로 도망가기도 싫었다. 분위기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혁이 말했다.
"재밌는 실험얘기를 하나 해 줄게."
"또 뭔 궤변을 위한 근거를 대려고?"
혜린은 민혁을 체념하듯 쳐다보았다.
"일단 들어봐. 흥미로운 실험이야. 킹카인 남자와 퀸카인 여자가 각각 남녀 대학생들 대상으로 대학교정에서 일대일로 대면해서 제의를 하는 거야. 킹카는 여학생들에게, 퀸카는 남학생들에게. A그룹 남녀학생들에게는 당신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하며 데이트신청을 하고, B그룹 남녀학생들에게는 당신이 정말 마음에 들어 오늘 자고 싶다고 제의를 하는 거지. 두 번째 제의는 황당하지? 어떤 반응들이 왔을 것 같아?"
"킹카라고 했으니 여학생들은 데이트에 응한 사람들은 있겠지만 섹스하자는 말에는 거부반응을 보였을 것 같은데. 남학생들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널 보니 생각났다. 섹스하자는 말에 흔쾌히 답했을 것 같은데? 그 잘 난 본능에 아랫도리가 꿈틀거렸겠지. 뭐."
"그래 얼추 맞췄어. 여학생들은 50%가 데이트에 응했고 섹스하자는 제의에는 아무도 응하지 않았어. 예상했겠지만 남학생들의 실험결과가 흥미로와. 데이트에는 60%가 응했고 섹스에는 이보다 10% 더 많은 70%가 응했어. 재밌지?"
"퍽 재밌기도 하겠다. 어떻게 생판 모르는 여자가 다가와 오늘밤 섹스하자는 말에 대부분 응할 수 있냐? 남자라는 동물은 두뇌가 거시기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거시기가 두뇌를 지배하나봐? 아니면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고 쌍방울 안에 쪼그만 뇌가 들어 있든지."
"나도 남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라 생각했어. 나라면 30%집단에 속해 섹스제의에 거부했을 거야. 아무리 퀸카라 해도 사랑이란 정서적인 교류가 없기 때문에 같이 자고 싶은 맘이 없거든."
"그 말 진심이야? 세 번 만나고 잤다면서? 세 번의 만남에 사랑이 용솟음쳤냐?"
"난 사랑하는 관계에서 하는 섹스가 정말 절정을 느낄 수 있다고 여겨. 섹스는 애무와 삽입이란 육체적인 접점 보다 정신적인 접점에서 그 환희를 더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렇다고 사랑 없는 섹스를 반대하는 것도 아냐. 자위행위를 비난하지 않는 이유와 같아. 난 그녀와 세 번 만나면서 사랑을 느끼지는 않았어. 매력에 끌려 좋아하기는 했지.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제는 안 만나. 약속할게."
"그 여자 만나. 누가 말린 뎄어? 내가 니 바짓가랑이 잡고 아니 눈물 흘리겠노라할 줄 알았냐? 그리고 아주 줄을 잘 타고 있는데? 본능과 섹스 그리고 사랑 사이에서 어디로 넘어가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봤자.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 니 바람기를 길이 빛내기 위한 합리화 놀이야. 남자들의 바람기를 주도하는 유전자가 있다면 싹둑 잘라낼 수 있으면 좋겠어."
민혁은 쥐의 뇌실험을 통해 바람기를 주도하는 유전자가가 발견되었다는 과학적 성과를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민혁은 첨예한 대립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실험얘기를 꺼냈는데 의도와 달리 자신이 또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실험얘기를 꺼낸 걸 후회했다. 오늘은 두뇌회전이 잘 안 되는 날이었다. 민혁은 이렇게 된 김에 하고 싶은 얘기를 계속 하기로 했다.
민혁이 말했다.
"넌 일부다처제를 어떻게 생각해?"
"이젠 후궁을 거느리는 왕이 되고 싶냐?"
"빈정대지 말고 진지하게 듣고 네 생각을 말해 줬으면 해."
"난 반대야. 일처다부제라면 몰라도."
"일부다처제는 잘은 모르지만 일부 중동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어. 그런데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미국에서도 일부다처제를 옹호하는 여자들 모임이 있다는 거야."
"선진국인 미국이란 나라에서? 어떤 얼빠진 여자들이 그런 시대착오적인 가족시스템을 옹호한단 말이야? 땅덩어리 큰 미국에는 별의별 놈들이 다 사니까 그런 희귀종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
"일반 사람들 세계는 아냐. 몰몬교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 얘기지. 어떤 연유로 몰몬교인들이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한 남편을 사랑하는 여러 부인들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부인들끼리 남편을 독차지하려고 싸우지 않고 대가족만이 누리는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것 같아."
"그래서 몰몬교로 개종하려고? 개종하고 너도 미국으로 이민 가라. 그게 낫겠다. 그런데 미국이란 나라에서 그게 가능하냐? 법에 걸릴 것 같은데..."
"남편되는 사람이 중혼죄와 몇몇 죄목으로 5년 형기를 살았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래도 부인들은 감옥에 갇힌 남편에게 자주 면회를 갔다고 그러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일부다처제라면 남편을 왕처럼 떠받드는 아내들이라는 반여성적인 이미지를 붙이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거야. 몰몬교 부인들 인터뷰를 들어보면 다른 부인의 자녀를 차별하지 않고 한 가족처럼 돌보고 가족일의 역할분담이 잘 되고 있데. 그리고 남편이 자기만 바라보지 않고 살기 때문에 구속을 느끼지 않고 자기 일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거야."
"그런 사회가 존재한다고 해도 화목한 건 일부에 지나지 않을 거야. 솔직히 네가 딴 여자를 만난다고 했을 때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질투도 많이 느꼈어. 여자들은 다 마찬가지일거야. 일부다처제의 부인들끼리 질투와 시기로 싸울 날이 많았지만 몰몬교라는 종교적인 믿음의 힘에 눌려 억지로 봉합되었을 수도 있어. 그리고 여성인권의식이 부재한 중동국가에서도 여자들이 이게 인생이겠거니 체념하며 살 뿐이지 진정한 가족의 행복을 느끼며 살겠어?"
"그럼 일처다부제는 어때?"
혜린의 빈정거림을 무마시키기 위해 민혁이 물었다.
"아까 일처다부제라면 괜찮다고 한 말은 네가 꺼낸 일부다처제에 대한 대항마 성격의 반응이었고 난 일부일처제가 가장 좋은 가족시스템이라고 생각해. 일부다처제의 남편이 부인들과 그녀가 낳은 자녀를 절대로 공평하게 사랑할 수도 없고 많은 시간 애정을 쏟을 수도 없어. 그러나 일부일처제는 그 모든 게 가능하지. 그리고 일부다처제가 보편화된 세상을 꿈꾸는 멍청한 남자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일부다처제를 꾸릴 남자는 얼마나 많은 돈과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걸 몰라서 그런 거야. 어떤 여자가 돈 없고 능력 없는 남자의 둘째, 셋째 부인이 되려 하겠어? 그 많은 가족들을 부양하려면 부자가 아니면 불가능해. 그리고 아주 공평하게 부인과 자녀를 사랑해야 하는 신의 반열에 오를 만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되거든.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간의 싸움으로 조용한 날이 없을 거야. 안 그래?"
"그래. 그렇기는 하지."
"니 바람기를 결혼제도 안으로까지 끌고 가려면 지금처럼 노는 거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거 알겠니? 죽어라고 일해서 10억 이상은 벌어야 될 걸? 알겠냐? 바람기는 허벌난데 능력은 좆도 없는 것아."
민혁은 꺼낸 얘기들이 본전도 못 찾고 있어 고개가 자꾸만 숙여졌다. 서서히 머리를 들어 카페 천정과 맞닿은 허공을 보았다. 허공은 알 수 없는 느낌들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창밖은 장맛비가 잠깐 멈추어 총총 걷던 발걸음들이 느려지고 물웅덩이를 피해 가고 있었다. 민혁은 먹구름이 엷어지는 하늘을 보았다.
민혁은 한 영화를 떠올렸다. 두 집 살림을 하는 남자의 실화를 다룬 영화의 몇몇 장면을 기억해 냈다.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양쪽 가정의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는 미국 남자의 이야기였고 두 집살림을 계속 유지하려다 거짓말이 들통 나 중혼죄로 감옥 가는 걸로 끝난 영화였다. 경찰에 끌려가면서 그 남자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난 두 여자와 자녀들을 정말 사랑해 둘다 놓칠 수 없어 이렇게 할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민혁은 그 말이 진심으로 들렸고 이해할 수 있었다. 민혁은 혜린이와 계속 사귀고 싶었고 엊그제 잔 여자에게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민혁은 거부하고 절제하려 해도 도저히 멈추지 않는 바람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결혼에 대한 꿈이 있는 민혁은 카페를 나가면 마음을 단단히 잡기로 결심했다. 먼저 서점에 가기로 했다. "직장인 초고속으로 10억 만들기"란 책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