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린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그러나 아프게 떠오르곤 합니다.
초등 3학년이었던 1976년 겨울.
그때 당시에도 비상연락망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집에 전화를 두고 사는 아이들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 강북
변두리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화가 없는 아이들은 반 아이들 중 누군가
그 집의 위치를 알고 있어야 했어요.
슬레이트를 지붕으로 얹은 초라한 한 칸 짜리 집이 그 때도
몹시 부끄러웠던가 봅니다. 새침하고, 자존심 강했던 탓에 반 친구
그 누구에게도 집을 보여준 적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집 전화가 없었으니 방학 전에 비상연락망을 만드려면 누군가
우리 집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어요.
그 당시, 친하게 지냈던 우리반 반장 아이.
어렵던 그 시절에도 빨간색 모직 코트를 입고 다니던,
윤연선의 "얼굴"이라는 당시 유행곡을 청아한 목소리로
잘 불러 선생님의 사랑을 등뿍 받던 아이였답니다.
어느 날 방과 후, 선생님의 명령으로 반장아이가 우리집에
함께 가서 위치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걸어가는
그 길이 너무도 힘들었고, 당장이라도 혼자 내달리고 싶은
마음에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내 속을 모르는 그 아이는
천진하게 너희 집에서 놀다 가고 싶노라고 했었지요.
지금도 10살 소녀의 그 터질 것 같은 마음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집에 도착을 하니 그 아이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더군요.
좋은 옷은 아니었지만 늘 깨끗한 입성에 똘똘하기도 했던 내가
그리 초라한 집에 살고 있으리란 생각을 못했던 듯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전 생애 최초로 "절교"라는 단어를 들어 보았습니다.
"이제 부터 너랑 절교야"라는 생소한 문장을 남기고 그 아이는
총총 사라졌습니다.
아... 그 이후로는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절교라는 생경한 단어의
뜻을 한참 후에나 알게 된 것과, 반장아이와는 더 이상 친하게
지내지 않게 된 것.
그 아이와는 같은 중학교를 또 같은 고등학교를 진학했습니다.
같은 반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학생 수가 워낙 많은
학교였으므로, 가끔 마주치기는 했지만 단 한번도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는 S여대
독문학과로 진학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36년 전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칸방에 살던 그 소녀는
이제 직장에서 꽤 높은 직급을 달았고, 넓은 아파트와
중형차를 지닌 중년이 되었습니다.
굴곡지고, 험난한 시절을 겪었어도 현재 행복하고 충만하면
과거는 좋을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네요. 30년도 훨씬 넘은 시절의
기억이지만 가끔은 저를 아프게합니다. 10살 짜리 어린 아이가
겪었을 좌절감, 무기력, 자존감의 붕괴가 생생한 참담함으로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그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요? 가끔 궁금합니다.
82쿡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는다면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