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완벽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정말이지, 버릴게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천만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은 어찌 이리 흠잡을때가 없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부러워합니다.
신랑은 절대로 돈을 헤프게 쓰지 않습니다.
지난 10년동안 잠시 직장을 바꾸느라 1달을 쉰거 제외하고는
일을 쉬어본적도 없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오면 술주정 따위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잘합니다.
놀아주는법은 잘 모르는듯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큽니다.
따뜻한 말한마디 조근조근 할줄은 모르지만,
퇴근길에 항시 아이들 간식거리 사올줄 아는 사람입니다.
아이 선물로 책을 사면 어떨까라며 제게 먼저 물어오는 사람입니다.
맞벌이 하는 저를 많이 도와줍니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제가 퇴근하기전에 설거지, 청소, 빨래를 해놔줍니다.
그래놓고도 도와줬다 생색내지 않습니다.
같이 사니, 당연히 같이 하는게 맞다고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10년동안 음식투정하는걸 못봤습니다.
주면 주는대로 먹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반찬이 이게 뭐냐고 투정하면,
엄마가 해주신 음식은 뭐든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혼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꼭 밥을 다 먹으면 잘먹었어 라고 말해줍니다.
어떤날은 김치에 라면만 끓여줘도 잘먹었어란 말을 잊지 않고 해줍니다.
듣는 제가 다 민망할 정도입니다.
주말엔 어디를 가든 꼭 저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시댁부모님께 잘하라고 저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시댁부모님께 전화 좀 하라고 저를 볶지 않습니다.
성격이 단호하고, 약간은 냉정하고, 말수도 별로 없고, 다정다감하지 않습니다.
인상마저 험악한데, 덩치까지 커서 사람들이 좀 매섭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저에게만 보여주는 애교가 있고,
지난 10년을 한결같이 저를 이뻐라 해줍니다.
결혼하고 한 4년동안은 무지하게 싸웠습니다.
둘다 성격이 안좋아서 험악해지면 엄청 험악해집니다.
물건을 집어던진다거나, 저에게 폭언, 폭력을 한다거나, 그런거 없습니다.
그냥 말로만 싸울뿐입니다.
그것도 이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와 금방 화해를 하게 됩니다.
결혼 10년차 맞벌이 주부입니다.
저는 우리 집안의 사고뭉치입니다.
초딩, 유딩 딸들이랑 맨날 투닥거리면서 싸우고,
그걸 또 신랑한테 이르는 철없는 엄마입니다.
신랑입장에선 딸을 셋이나 키우는 기분일겁니다.
아이들 옷이나 이쁜것들을 보면 막 사주고픈 충동을 느끼는 대책없는 엄마입니다.
매번 필요없는 물건을 샀다고 신랑에게 혼이 납니다만,
그건 세모녀의 패션스타일을 이해못하는 고리타분한 신랑탓이라며 저는 신랑을 혼냅니다.
4인가족, 그냥 먹고 쓰는 돈만 한달에 50만원정도입니다.
이것도 집 사기전에는 30만원이였는데,
집 사고 나서는 제가 배가 불러서? 돈을 막 써서 이정도입니다.
카드값 나올때마다 반성합니다.
매번 반성하고 있는 저를 보며, 신랑은 어이가 없는지 그냥 웃습니다.
가계부라도 써서 생활비를 좀 줄여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귀찮아서 잘 못하게 되는 귀차니즘 엄마입니다.
음식을 잘 못합니다.
인터넷에서 레시피 뽑아.. 그대로... 만들어도 맛이 안납니다.
저는 정말 타고 났습니다.
전국민이 다 끓인다는 라면을 끓여도 매번 맛이 다릅니다.
신랑하고 같이 컴퓨터를 하다보면 저는 늘 요리코너를 봅니다.
성의가 없는것도 아니고, 관심이 없는것도 아니고...
늘상 요리를 잘하고픈 욕망에 시달리는 저지만...
결정적으로 손맛이 없는게... 치명타입니다.
이런 괴로움을 신랑도 이해하나봅니다.
아니, 10년동안 겪으면서 자연스레 포기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정말... 미치게 미안한 부분입니다.
아침에 부랴부랴 두아이 챙겨서 출근하다보니, 잘 꾸미고 다니질 못합니다.
그릇, 이불, 화장품, 옷... 이런것에 별로 관심이 없고,
또한 그것들을 사러다닐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어떤분은 이런 사정을 모르시고 저에게 검소하다고 하시지만,
사실 사러다니기 귀찮아서 안사는것 뿐입니다.
그걸 신랑도 알고 있고, 신랑또한 저와 같은 성향입니다.
이해해주는건 알지만, 간혹가다 이쁜 아내가 되주지 못한것에 미안함을 느낍니다.
아줌마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말하며 집에서든 밖에서든 잘 안꾸미고 있지만
신랑은 밖에서 한껏 꾸미고 다니는 여자들만 볼텐데 당연히 비교되겠지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가끔가다 신랑 무릎배고 누워 협박합니다.
- 바람피지 마. 바람피다 걸리면 다 난리나는거야. 너죽고 나 살고. 알지?
이번 생애에는 그냥 나 하나로 만족하고 살아.
어쩌겠어. 이미 이렇게 엮여버린걸.
다음에 태어나면 이쁘고, 착하고, 요리 잘하고, 멋진 여자 만나.
그때는 내가 당신이 태어난 지구 반대편에 태어나서 근처에 얼씬도 안할게.-
그럼 신랑이 아주 비장하게 말합니다.
- 그래.. 다음 생애에는 좀... 정말 좀... 그러자... - 라고.
저는 충동구매끼가 있나봅니다.
원래 텔레비전을 잘 안보지만, 어느날 갑자기 홈쇼핑에서 오븐기? 가 나오길래
생선 구울때 참 좋겠다!! 라고 구입했습니다.
여기에 삼겹살을 구우면 기름기도 쪽 빠져 좋다합니다!! 라고 의기양양하게
연설한뒤 겁도없이 시댁부모님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오븐기에 구운 삼겹살을 드신 부모님들께서는 그냥 웃으셨습니다.
아니, 좀 과하게... 웃으셨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 oo야, 너 또 한껀 했구나. - 했고,
시어머니께서는
- 한번 써서 반품도 안될꺼고.. 이걸 어쩐다니. - 하셨습니다.
신랑은 생선만 굽는 오븐기를 8만원이나 주고 샀다고 시간날때마다 저를 약올렸고,
빈정상한 저는 오븐기 2번 사용후 시누이에게 넘겼습니다.
살던대로 살면 되는데, 갑자기 살은 왜 빼겠다고....
두달동안 다이어트를 하며 더 강한게 필요하다 느낀 저는
인터넷에서 자전거 운동기구를 샀습니다.
신랑에게는....
엄청 멋진 여자가 되겠다!!
내가 살빼고 이뻐지면 당신을 뻥차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기전에 조심해라!! 라고 엄청 뻐겨댔습니다.
그런데 자전거가 도착하는 시점에서...
저의 다이어트 의지는 한풀 꺽여있었나봅니다.
결국.... 나이드니 힘들어서 살도 못 빼것다... 라고 다이어트를 포기하게 되었고,
지금 자전거 운동기구는 거실 한쪽에서 수건 걸이로 쓰이고 있습니다.
구매한지 3년쯤 되었는데 아직도 생각날때마다 신랑에게 구박을 듣고 있습니다.
-살은 언제빼서 나를 뻥차줄꺼냐!!!!!!!!!! -
라고 이제 신랑이 저에게 뻐기고 있는 중입니다.
취미생활로 미싱을 구입했습니다.
남들이 척척 만드는거 보니 만만해 보였나봅니다.
맞벌이 하느라 저녁에 시간도 없다는 사람이 그건 또 하고 싶었나봅니다.
지금까지 사다 나른 원단 값만해도 옷 몇벌은 좋은놈 샀을겁니다.
이상한걸 옷이라고 만들어놓고 나름 자뻑하며 신랑에게 입혔습니다.
하지만 저도 양심이 있기에, 집에서만 입고 나가지는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은 죽어라 안듣는 신랑이 그걸 또 입고 나가 시댁부모님들앞에서
제가 만들어줬다고 자랑까지 합니다.
물론 시댁부모님들은 저를 잘 아시기에 그냥 웃으십니다.
그냥 속으로 아들이 불쌍하다고만 생각하셨겠지요.
처음 만든거라 여기저기 삐뚤빼뚤한데도 괜찮다고 맘에 든다고 말해주는 신랑.
아마도 처음 생긴 제 취미생활에 용기를 주고자 해준 말이였을겁니다.
실력을 더 쌓아서, 미싱사준거 후회안하게 하겠다고 신랑에게 다짐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너무 강하게 다짐다짐을 하자, 신랑이 그럽니다.
- 하다보면 나중엔 잘 하겠지. 괜찮아. -
- 음식도 10년동안 안 늘었는데, 미싱이라고 늘까? -
- 그래도 사람인데.. 10년을 하다보면 뭐가 좀 늘겠지..
음식도 옛날보다는 찌개랑 밥은 잘 하잖아. 미싱도 그렇게 될꺼야. -
- 10년동안 찌개랑 밥 할줄 알게된게 자랑은 아니잖아. -
- ....................................... -
- .. 미안하다.. 다음생애에 태어나면 이쁘고 요리잘하고 멋진여자 .....*&^(^&%^$^$% -
- 알았어. 알았어.-
그냥 말로만 싸울뿐입니다.
그것도 이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와 금방 화해를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사람들은 버릴게 하나도 없다고 칭찬합니다.
시댁부모님은 물론, 친정부모님, 회사 간부님들, 주변 지인들, 심지어 제 친구들까지...
성실하고, 자기 주관뚜렷한 이 사람을 모두 치켜세웁니다.
한마디로, 너같은 애가 무슨복으로 어떻게 저런 사람을 만났냐... 이거겠죠.
이렇듯....
우리집엔 가장의 모범답안인 신랑과,
아내의 최악꼴지답안인 제가 같이 삽니다.
남들은 좋은 신랑 만나서 좋겠다고 하지만,
항시 실수도 없고, 흠잡을때 없는 신랑과 사는 저도 약간의 스트레스는 있습니다.
네... 다 배부른 소립니다.
알지만, 가끔가다 왜 하필 이런 각시를 만나 신랑이 고생하나 싶어서 미안합니다.
그 미안한 마음이 넘치면, 에휴.. 내가 좀 똑부러지고 잘나고 이쁜 여자였음 얼마나 좋아!!
라고 자책까지 가게되죠.
하지만 심각하진 않습니다.
그냥 살다보면 가끔 1년에 몇 번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는거죠.
신랑에게 고마운 마음도 모르고
오히려 신랑에게 당신은 이런 각시 만나서 복 터진줄 알아! 라고 큰소리치기도 하는
뻔뻔한 아줌마입니다.
이런 아줌마가 뭐가 좋다고,
신랑은 아직도 저를 애처럼 이뻐라 해줍니다.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생일은 제가 조금 빠릅니다.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다가 집에서 쫓겨날뻔했습니다.
우리집은 경노사상이 꽝입니다.
노인공경은 커녕 구박을 합니다.
내가 무슨 세 살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하나에서 열까지 훈계를 하고, 걱정을 하고, 챙겨줍니다.
다,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렀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면서 그사람을 탓하는 마음보다는
늘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