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30대 초반의 게이입니다. 제가 게이임을 자각한 것은 좀 어릴 때입니다. 6~7살때부터 동성의 신체에 호기심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빠르게는 그 나이대에 여성의 신체에 호기심을 느꼈던 기억을 이야기하더라구요. 보통 남자아이들이 그즈음부터 성적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 같네요..
그렇지만 가정에 큰 문제가 있거나 하지 않았어요. 부모님과의 관계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 혹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에요. 제 주변의 수많은 게이들의 사례를 볼 때, 가정사를 통해 게이가 된 원인을 찾는 건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형제관계에도 이렇다할 공통점은 없네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좀 문제가 있던 친구들이 있지만 이것은 이성애자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제가 선천적 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꽃미남도 아니고 패션 감각이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학교 선배를 약 2년간 짝사랑하게 되면서 죽을만큼 힘들었어요. 고백도 할 수 없었고, 친구들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을 저주했습니다. 그때의 일기장을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교과서, 성경, 온갖 서적에 따르면 저는 더러운 변태에 불과했습니다. 여성스러운 친구들이 호모라고 놀림당하는 걸 볼때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저 친구들을 괴롭히는 놈들이 내가 그렇다는 걸 알면 내게 어떻게 굴까... 그 친구들과 엮일까 두려워서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비겁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괴로워서 자살기도까지 했었어요. 심지어 저는 모태 크리스찬이었지만 한때 종교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를 인정해주는 곳이 있긴 있더군요.
세상에 저같은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았고, 저는 평생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여자를 좋아하게 되길 바라면서 억지로 여자친구를 사귀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춘기에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여러 책에 나오더군요. 정말 일시적으로 찾아온 감정이기만을 바랬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때 인터넷으로 또래 게이와 레즈비언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좀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몇번의 불같은 연애를 거쳐 솔로 게이로 살고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제 기반을 단단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엄청났기에 전문직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만족합니다. 좀더 저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사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제 경우엔 집안에서 아직까지 결혼 압박은 없습니다. 부모님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독실한 크리스챤이시라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들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실 것이 뻔해서 말할 수가 없네요.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아마 말씀드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는 의아하게들 생각합니다. 선자리며 소개팅자리를 정말 수백차례 거절하고 살았습니다. 어디선가는 제가 게이라느니 하는 뒷얘기가 오갈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런 제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그냥 외계에서 떨어진 변태병 환자가 아니라, 주변 어디에서도 볼 수 있지만,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쉽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좀 가까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미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는 자기 자신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초짜 게이들 말고는 저런 건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습니다. 고칠 수 있다는 광고들이나 신문기사들을 보면 다들 비웃는 분위기랄까요.
이 글을 보시는 수많은 이성애자 주부 분들께서 상담이나 무슨 충격요법을 당한다고 해서 레즈비언이 될 리 없듯이... 말입니다. 게이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게이물을 공중파에서 해주다니 우리 애들이 보고 게이가 되어서 에이즈 걸리면 책임져라!> 라는 식의 무지한... 생각을 볼 때마다 너무 괴롭습니다. 저는 철저히 이성애자의 규범에 따라 교육받고 자라왔지만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가 되었습니다. 영향을 받으면 게이가 되고 안 받으면 게이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발견하거나 발견하지 못하는, 발견 속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봐요... 게이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매우 높습니다...
심지어 결혼 후에야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결혼생활이 어떠할지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그 부인과 자식들이 불쌍할 뿐이네요.. 강제로 게이 아들을결혼시키는 어머니도 보았구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상처가 되실 수도 있겠지만, 자제분은... 우리나라 20~30대 게이들의 보편적 성장과정과 비슷한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절대로 고칠 수가 없어요. 제가 감히 단언하겠습니다. 계속 치료를 하겠다느니 강제로 결혼을 시키겠다느니 하는 부모님 통에 집안과 아예 연을 끊고 사는 게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서로 가족역할을 하고...
그냥 기다려 주세요. 니가 어떤 삶을 살든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 부모님의 역할이 아닌가.. 조심스레 말씀드려 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드라마를 보시면 좀 이해에 도움이 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쉬워지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아직 직접적으로 따지거나 하지 마세요. 본인도 아직 고통스러운 단계를 지나가고 있는 중일 겁니다. 아들이 행복한 것에 포커스를 맞추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알고, 그래서 저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사네요.. 다만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세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구요.
그리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절대 어머니의 탓이라고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 가르치신 것도 아니고, 자책하고 괴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모의 양육방식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없지만, 부모의 양육방식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없어요. 일단 제 자신이 그렇고... 괴로워하시거나 자책하지 마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동성애자라는 존재들을 뉴스나 신문으로, 혹은 소문거리로만 피상적으로 접하면서 그게 진리라고 믿고 있는 분들이 꽤 계신 것 같아 그냥 제 이야기를 조금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