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토요일날 임신테스터기로 두줄 확인을 했어요.
지금 첫 딸이 15개월 되었구요.
시부모님이나 신랑 모두 둘째를 바라고(신랑은 아이 셋을 옛날부터 바래왔어요;;)
저는 사실 그다지 바라지 않았어요.
불임이다, 난임이다 고민 많으신 분들도 있고, 아기 간절히 원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돌맞을 소리일지도 모르지만요...
저는 지금 워킹맘입니다. 시부모님이 우리 딸을 키워주고 계신데...
두 분 워낙 늦게 아들 결혼시키셨고, 워낙 늦게 처음으로 손주를 보신거라 그야말로 애지중지 금지옥엽 불면 날아갈까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시고 계시는데요..
신랑이 종손이라 은근히 아들이 하나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들은 온 일가친척들이 다 하고 계셨던 건 저도 알아요. 아무도 대놓고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요.
저는 사실 우리 딸 임신했을때에도 아들이길 간절히 바랬거든요. 아들이라면, 얘 하나만 낳고 둘째 안가져도 괜찮을거니까요. 근데 딸이라서 -물론 너무너무 이쁘고, 사랑스럽고, 정말 지금은 얘 없으면 어떻게 사나 싶지만요-좀 서운했었고...언젠가 아들 낳긴 해야겠구나...하는 숙제를 못끝낸 듯한 부담감이 컸어요.
물론, 언젠가 아들 낳으란 소리 듣게 될거고, 그렇게 되겠다 싶긴 했지만 지금은 너무 빨라요.ㅠㅠ
일단, 우리 딸 너무 어린 나이에, 자기도 아가인 주제에...이제 겨우 말 몇마디 하고 아직 기저귀도 못 떼었는데 동생이 생길거라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미안하고 불쌍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미래가 너무 무서워요.
저는 회사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사무직 치고는 꽤 전문적인 업무를 하다보니, 늘 헤드헌터들이 접근하고 지금 회사에서도 핵심인재로 대우받고, 임원아닌 직원치고는 스톡옵션 등도 꽤나 배정받고 그런 사회적인 인정도 저에겐 너무나 절실하고, 또, 제가 다행스럽게도 전공과목 그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문과쪽에선 경영학과 빼곤 이렇게 일하긴 쉽지 않거든요) 너무너무 일이 재미있고 좋거든요.
저 자신을 위해서도, 저는 살림에 취미도 소질도 능력도 없구요. 출산휴가 3개월 동안 집에 있으면서, 살림하는게 너무너무 싫고 귀찮았어요. 회사 나오면 일단 집안 살림을 덜 신경써도 별로 뭐라하는 사람 없고요...
제가 누구 엄마, 누구 와이프 이렇게 대우받는 것보단, 제 이름 석자로 대우받는게 좋았어요.
그런데 애가 둘이 되면 일단 제 커리어가 사라지겠죠.
애 둘을 모두 칠순된 시부모님께 맡긴다는 건 무리일거구요.
특히나, 결혼 초부터 오매불망 제가 집에 들어앉기를 바라온 우리 남편은 지금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거에요. 시어머니도 은근히 제가 집에 있길 바라시구요.
이 업계에서 제가 일년넘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거니와, 육아휴직을 한대도 그 일년후엔 또 똑같은 문제에 봉착할 거에요.
신랑과 시어머니를 비롯, 시댁 식구들(저희 시댁 특징이 이상하게 일가친척들 교류가 많고 입김이 세요) 모두가 애보다 중요한게 어딨냐고, 니 애들 니가 키워야 한다..주의라서, 애가 둘이 되면 당장 회사 그만두라고 하실거에요.
첫째 낳을때만 해도 다들 제가 회사 그만둘거라고, 그만두게 하라고 서로들 말씀하셨지만, 다행히도 시아버지가 '우리가 봐줄수 있으니 괜찮다.'하는 식으로 다른 분들 입을 막으셨거든요.
근데 둘이 되면 시아버지도 그렇게 막아주시지 않을거에요.
이 문제에 대해 늘 얘기해봤자 신랑과 시어머니는 벽이에요.
애 둘을 다 시부모님께 맡길수도 없으며, 시부모님도 아닌 시터나 어린이집에 아기때부터 보내는거는 제 커리어만을 위해서 그런다는 건, 제가 너무 이기적이고 엄마 자격이 없는거래요.
근데 엄마이기 이전에, 저도 한 사람인데.....제가 제 스스로의 인생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게 이기적인 건가요?
전 진짜 회사 관두라고 하면, 그냥 이혼할 생각까지도 해봤어요. 제가 너무너무 극단적인 사람인거 같지만, 울 신랑과 시어머니는 말로 설득되실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언젠가 닥칠 일이라고 생각해 오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너무너무 심란해요.
거기다 더불어 둘째가 딸이면 회사 문제에 이어, 또 아들 얘기가 나올텐데 그것도 너무너무 듣기 싫고요.
아, 이거 정말 저한테는 너무 미치겠는 고민인데 어떡하죠?
어떻게 이상황을 벗어나야 하나요...82의 인생선배님들...저 어떻게 마음잡아야 하는건지 이런 저런 충고들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