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폭탄맞은 집구석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옛날 추억의 물건들이 잔뜩 쏟아지네요.
끌어안고 있기도 뭣하고 버리기도 뭣한 물건들...
어쩔까 고민하다가 다시 또 박스에 쌓아두기를 몇 차례 반복한 것 같아요.
그중에 대표적인게 편지 뭉치같은 거잖아요.
방 치우다가 주저앉아서 또 한참동안 편지들을 읽었는데
유치하고 민망해서 죽을 것 같은 것도 있고... 눈물 찔끔 날 만큼 찡한 것도 있구요.
그러다가 종내는 마음이 좀 씁쓸해졌어요.
오랫동안 마음을 나누고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은 연락할 수 없는 친구들,
그러니까 지금은 유부남이 된 제 옛날 친구들때문에요.
그중에서도 정말 친했던 친구가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동갑이고 한 명은 후배.
특히 동갑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많이 가까웠어요.
중고등학교 사춘기 때, 누구를 짝사랑했는지도 알고
대입 때는 같이 머리 맞대고 어느 학교 지원할지 고민하기도 하고
저보다 공부 잘 했던 그 친구에게 수학같은 거 배우기도 했었죠.
그 친구 군대 갔을 때, 몇 차례 면회를 가기도 했고 편지는 주구장창 많이 썼고
연애하다가 실연당해서 찌질하게 울고 진상 떨 때, 술 먹이고 위로하기도 했고요. 긴 세월만큼 추억이 많아요.
아무리 친해도 때로 동성친구와는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미묘한 감정싸움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것도 없어서 좋았고... 같이 오락실 가서 게임도 많이 하고 서로 연애상담도 많이 해 주고.
그렇다고 서로 남녀 연애감정같은 건 전혀 없었고 그냥 코드 잘 맞고 말 잘 통하는 친구였어요.
후배 녀석도 마찬가지.
이런저런 재미있는 기억들이 많고 애틋한 정이 있어요.
그런데 각자 결혼해서 아내, 남편이 있고 가정이 생기니까 이제는 연락을 할 수가 없네요.
서로 경조사가 있거나 단체모임이 있을때 가끔 보지만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할 수는 없잖아요.
제 남편도, 그 친구의 아내도 우리가 각별히 친한 사이였단 걸 알고 있지만
지금 연락하거나 만난다면 기분 좋을 리 없겠죠.
왜 유부남 친구를 굳이 만나고 연락하려고 하느냐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냥 좀 아쉽고 씁쓸한 마음이 들어요.
오직 그 친구와만 공유한 추억이 있고, 나눴던 마음들이 있는데
이제 결혼했다는 이유로, 서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조차 아니게 돼 버렸다는 게요.
시간이 지나고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관계도 변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그렇게 받아들이면서도... 결혼하고 나서 나는 좋은 친구 둘을 잃었구나 생각하면 왠지 조금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