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엄마가 되고나서

동글이내복 조회수 : 1,653
작성일 : 2011-11-16 16:57:07

 

 이번 겨울나기만 지나면 저도 38세에요.

요즘, 저는 직장을 잃은대신 낙엽진 뒷산길을 다녀오거든요.

그 정자 한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제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고도 와요.

그 고요한 숲길, 아무도 없는 그 산꼭데기 정장에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더욱더 우리 엄마가 생각이 더 나는 만큼 이해도 많이 되네요.

어릴때 우리 엄마는 화를 못참으셨어요.

특히 집이 어지럽혀져 있고 정리가 되지 않은걸 보면 눈에서 불꽃이 튀고 그 눈자위 전체가 붏게 물들곤했어요.

그때 우리아빠는, 이미 동네에서도 소문난 알콜중독자였고,

대신 엄마가 이런저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었는데, 챙겨가야 하는 학교준비물들앞에서 수수방관만.

비 오는날, 빈손으로 우산도 없이 학교에 가서 준비물들어있는 시간이 시시각각 닥쳐오는걸 얼마나 가슴뛰며 불안해하다가, 결국엔 선생님앞에서  목메인 울음만 꺽꺽...

 

이런저런일들이 참 많은데, 엄마아빤 우리들이 받아오는 상장들앞에서도 기뻐하거나 설레여하지 않았어요.

그래...하는 그 말에서는 일상을 벗어난 잠깐의 기쁨도 없었고, 나중엔  그 상장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도 되었어요. 따라서 우리들도 상장에 대한 의미가 없었고요.

오히려 상장앞에 무겁게 드리워진 가난의 굴레가 더 오히려 크게 부각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상장을 받아들고서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시던 엄마, 아빠.

그런데 제가 엄마가 되니 그 느낌을 알것 같은거에요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그 가야 할길이 가시밭길같은 푸른안개 뒤덮인 절망이었다면, 그 상앞에서도 마음놓고 크게 한번 웃어보지 못했나.하고

 

그런 엄마다보니, 우리들을 변호해준적도 없었던 사람.

언젠가 키큰 덩치큰 아이랑 싸우고 아무일 없듯이 넘어가려 했는데 그 덩치큰 아이 엄마한테서 제 이야길 들었답니다.

무슨 아이가 그리 성질머리가 나쁘냐고

그 덩치큰 아이에게 늘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은 못참고 같이 싸운걸 가지고 일이 그렇게 되었더라구요.

"너 그럼 시집 못간다. 성질이 아주 못되었다고."

그때가 11살때였거든요. 그때에도 참 황당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었을테죠..

엄마부터가, 푸른 안개가 다 걷히지도 않은 새벽나절마다 동네어귀를 돌아나오는 첫차에 그 발을 올려놓을까 말까 망설였던 가슴아픈 시절이었을테니말이에요.

 

낙엽이 지고 바람마저 고요한 그 산길 오솔길을 내려오다보니, 이해못할건 아무것도 이세상에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IP : 110.35.xxx.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순이엄마
    '11.11.16 7:00 PM (112.164.xxx.46)

    짧은 글이지만 단편소설 하나 읽은듯,

    가슴이 저려오네요. 엉뚱하게 글 한편 써 보시면 어떨까요.

    글 맵시도 나시구요.

  • 2. 순이엄마
    '11.11.16 7:00 PM (112.164.xxx.46)

    그리고 힘내세요. 산꼭대기 정상에 앉아 과거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심 축하드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90487 남편이 이틀 연속 밤낚시를 갔어요. 많이 외롭네요. ㅠㅠ 18 낚시아님 2012/03/29 2,793
90486 분당에 초등학생 다닐만한 발레학원 알려주세요~ 3 아기엄마 2012/03/29 2,239
90485 더킹때문에 김재철 쪼이트 까이겠네요. 16 밝은태양 2012/03/29 3,801
90484 낡아서 12 알려 주사와.. 2012/03/29 2,013
90483 철학관에서 결혼한다는 해에 진짜 하셨나요? 7 결혼 2012/03/29 4,616
90482 회사에서 여자 선배나 상사는 무시하고 남자 상사 말만 듣는 신입.. 11 ?? 2012/03/29 3,057
90481 “MB공약 조급증탓 무상보육 6월 중단 위기” 5 베리떼 2012/03/29 1,484
90480 제 유언은 제사 하지말아라로 할렵니다.. 14 ㅡ.ㅡ 2012/03/29 2,494
90479 사골 많이 먹으면 치매 올 가능성 높나요? 7 먹고싶지만... 2012/03/29 3,153
90478 대구 경북 새누리당 지지율이 의외로 높게 나와 여론조사 사장도 .. 9 대학생 2012/03/29 1,649
90477 코스트코 양평점에 지금 디즈니수영복있나요?? 1 수영복 2012/03/29 894
90476 쑥을 데쳐서 질기지 않게 하려면 어찌해서 넣어둬야 하나요??(냉.. 2 .. 2012/03/29 1,118
90475 김용민 후보 무시녀 5 불티나 2012/03/29 2,263
90474 아이 일로 많이 속상한 날입니다. 3 엄마마음 2012/03/29 1,568
90473 싱크대 실리콘 곰팡이가 심하고 막 떨어져있어요 4 ㅇㅇ 2012/03/29 3,793
90472 남초사이트에 이 글 좀 퍼날라 주시길 부탁합니다 16 2012/03/29 3,033
90471 피아노 4학년 남자아이 처음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2 피아노 2012/03/29 1,191
90470 사후세계 '영혼의 터널' 발견…과학계 흥분 8 호박덩쿨 2012/03/29 4,796
90469 <충격>식약청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적합 판정 2 닥치고정치 2012/03/29 1,551
90468 지난번 영어 공부법 썻던...(글이 길어요) 27 각자의 개성.. 2012/03/29 3,949
90467 제 눈에는~~~ 2 ~~ 2012/03/29 716
90466 옥탑방 왕세자...왜 박하는 갑자기 존대를 하죠?? 2 드라마 이야.. 2012/03/29 2,430
90465 이놈의 돈이 뭔지........ 3 돈이 웬쑤.. 2012/03/29 1,710
90464 고장난 향수는 어째야 할까요? 3 향수향수. 2012/03/29 3,790
90463 서울의 초등이나 유치원 체험학습도 딸기따는 체험 있나요? 2 딸기 2012/03/29 1,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