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엄마가 되고나서

동글이내복 조회수 : 1,184
작성일 : 2011-11-16 16:57:07

 

 이번 겨울나기만 지나면 저도 38세에요.

요즘, 저는 직장을 잃은대신 낙엽진 뒷산길을 다녀오거든요.

그 정자 한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제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고도 와요.

그 고요한 숲길, 아무도 없는 그 산꼭데기 정장에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더욱더 우리 엄마가 생각이 더 나는 만큼 이해도 많이 되네요.

어릴때 우리 엄마는 화를 못참으셨어요.

특히 집이 어지럽혀져 있고 정리가 되지 않은걸 보면 눈에서 불꽃이 튀고 그 눈자위 전체가 붏게 물들곤했어요.

그때 우리아빠는, 이미 동네에서도 소문난 알콜중독자였고,

대신 엄마가 이런저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었는데, 챙겨가야 하는 학교준비물들앞에서 수수방관만.

비 오는날, 빈손으로 우산도 없이 학교에 가서 준비물들어있는 시간이 시시각각 닥쳐오는걸 얼마나 가슴뛰며 불안해하다가, 결국엔 선생님앞에서  목메인 울음만 꺽꺽...

 

이런저런일들이 참 많은데, 엄마아빤 우리들이 받아오는 상장들앞에서도 기뻐하거나 설레여하지 않았어요.

그래...하는 그 말에서는 일상을 벗어난 잠깐의 기쁨도 없었고, 나중엔  그 상장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도 되었어요. 따라서 우리들도 상장에 대한 의미가 없었고요.

오히려 상장앞에 무겁게 드리워진 가난의 굴레가 더 오히려 크게 부각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상장을 받아들고서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시던 엄마, 아빠.

그런데 제가 엄마가 되니 그 느낌을 알것 같은거에요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그 가야 할길이 가시밭길같은 푸른안개 뒤덮인 절망이었다면, 그 상앞에서도 마음놓고 크게 한번 웃어보지 못했나.하고

 

그런 엄마다보니, 우리들을 변호해준적도 없었던 사람.

언젠가 키큰 덩치큰 아이랑 싸우고 아무일 없듯이 넘어가려 했는데 그 덩치큰 아이 엄마한테서 제 이야길 들었답니다.

무슨 아이가 그리 성질머리가 나쁘냐고

그 덩치큰 아이에게 늘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은 못참고 같이 싸운걸 가지고 일이 그렇게 되었더라구요.

"너 그럼 시집 못간다. 성질이 아주 못되었다고."

그때가 11살때였거든요. 그때에도 참 황당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었을테죠..

엄마부터가, 푸른 안개가 다 걷히지도 않은 새벽나절마다 동네어귀를 돌아나오는 첫차에 그 발을 올려놓을까 말까 망설였던 가슴아픈 시절이었을테니말이에요.

 

낙엽이 지고 바람마저 고요한 그 산길 오솔길을 내려오다보니, 이해못할건 아무것도 이세상에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IP : 110.35.xxx.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순이엄마
    '11.11.16 7:00 PM (112.164.xxx.46)

    짧은 글이지만 단편소설 하나 읽은듯,

    가슴이 저려오네요. 엉뚱하게 글 한편 써 보시면 어떨까요.

    글 맵시도 나시구요.

  • 2. 순이엄마
    '11.11.16 7:00 PM (112.164.xxx.46)

    그리고 힘내세요. 산꼭대기 정상에 앉아 과거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심 축하드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7320 사진 보니 팍 늙었더라고요. 3 엠씨몽 2011/11/16 2,813
37319 쌀을 버려야해요... 2 ... 2011/11/16 1,252
37318 IQ 147 이면 어느정도 인건가요? 32 연찬엄마 2011/11/16 15,106
37317 민주주의여~!!! 2 쑥빵아 2011/11/16 699
37316 첫애 낳고 피임 오래하신후 둘째 임신 잘 되셨나요.. 6 둘째 2011/11/16 2,810
37315 화장품 주로 어디서 사세요 고민 2011/11/16 796
37314 평촌에서 이과 수학 잘 가르치는 학원이요~ 3 수학학원 2011/11/16 1,500
37313 할머니들 답례품 뭐가 좋을까요? 11 사랑초 2011/11/16 2,061
37312 2차선 도로 건너 이사왔더니 학구위반이래요. 7 고민 2011/11/16 3,470
37311 은행에 단기간 돈 넣기 2 돈놀이 2011/11/16 1,310
37310 이번 주 백분 토론 1 추억만이 2011/11/16 920
37309 카톡글을 상대방이 읽었는지 확인하는법~ 9 ^^ 2011/11/16 4,688
37308 안철수 원장, 기부액 주가 상승으로 2000억원 넘어 4 세우실 2011/11/16 1,664
37307 향수 어떻게들 뿌리시나요. 10 은새엄마 2011/11/16 2,926
37306 초등생 학습에 도움되는 iptv 추천 부탁드려요... 초딩... 2011/11/16 769
37305 한미FTA되면 공기업은 모조리 맥쿼리증권이 사들인다,,맥쿼리이사.. 5 ^^별 2011/11/16 1,793
37304 엄마가 되고나서 2 동글이내복 2011/11/16 1,184
37303 핵폐기 선언 독일 ISD소송직면 2 ISD 2011/11/16 1,296
37302 통장 명의 변경 가능한가요? 2 ... 2011/11/16 8,729
37301 요즘 노트북 괜찮은 거 추천해주세요. 어디서 살까.. 2011/11/16 622
37300 알러지 있는 아이들 어떻게 해줘야 하나요 4 알러지 2011/11/16 1,248
37299 1억피부관리실은 몇회? 나꼼수 2011/11/16 859
37298 아이 몇살부터 눈썰매 가능할까요? 2 겨울 2011/11/16 1,436
37297 미 NPR 인터뷰서 MB “FTA 시위자는 극소수의 반미감정 가.. 1 ^^별 2011/11/16 915
37296 김장할 때^^ 2 ^^ 2011/11/16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