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얘기입니다. 어려서부터 정말 부족함없이 자라서인지 약간은 이기적인 면도 보이고..
좀 제 잘난 맛(?)에 사는 동생이었습니다. 공부도 참 잘해서 별 어려움 없이 재수도 안하고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우는 학교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원래도 좀 자유롭고 누가 옆에서 뭐라하는거 딱 질색이고 정색하는 성격이었는데,
의대 가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워낙 누가봐도 예술하는 사람(?)처럼 생겼다고 할 정도로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이고 안좋게 말하면 너무 예민해요.. 자기가 보기에 왠지 별로인 동기들하고는 말도 섞기 싫고 퉁명스럽게 대했다고 하더라구요. 또 대학 가더니 노는 맛을 알았는지 공부는 아예 뒷전이고 주말마다 클럽에 쇼핑에 여행에... 학교 친구들은 싫다고 안어울리고 좀 노는 애들을 어디서 알았는지 그런 애들하고만 6년 내내 어울려다니더라구요.
어찌저찌 낙제는 면할정도로 공부했는지, 동기들 중에 과락해서 낙제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던데 제 동생은 낙제를 면할 정도의 등수로 꼬박꼬박 올라가서 6년만에 의대를 마쳤네요. 그리고 인턴을 모교 병원에 지원했다가 성적미달(아마도)로 떨어졌어요. 보통 다들 붙는 모교 병원인데 레지던트도 아니고 인턴을 떨어졌으니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름 쓴맛을 봤겠죠.
동생이 우는건 태어나서 그때 처음 봤지만 너도 이제 쓴맛좀 보고 성숙해져라 하는 의미에서 일단 군대부터 가라고 했어요.
그리고 공중보건의로 3년을 채우고 이제 돌아오는 1월에 인턴을 다시 지원해야하는 상황이예요.
얼마전 동생이랑 엄마랑 술을 한잔 하고 속깊은 얘기 할 상황이 되었는데...
동생이 첨으로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어릴때부터 너무 미대에 가고싶었는데 엄마아빠 욕심에 의대에 갔고
(실제로 미대 엄청 가고 싶어했어요.. 지금도 그림이면 자다가도 깹니다..)
자기의 이런저런 성격이랑 의대 친구들이랑 너무 안맞아서 6년 내내 친구 한명 없고
물론 자기 잘못이지만 동기들에게 좀 재수없고 띠껍게..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모습 많이 보여서
오히려 미운털도 많이 박히고.. 특이하고 재수없는 애로 인식됐다고.. 그걸 자기도 알고 그냥 도망치고만 싶었다고 하더라구요. 고등학교때야 그냥저냥 머리빨로 공부했지만 의대 들어와보니 애들이 너무 똑똑하고 잘해서 주눅만 들고..
자기도 첨엔 진짜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따라갈수가 없는게 반복되다보니 나름 스트레스 많았다고.. 그렇게 딴길로 놀지라도 않으면 미쳐버렸을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3년동안 공보의 온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수 있는 시간이었고
생각도 많이 하고, 시골 노인 환자들 보면서, 그리고 공보의 동료들이랑 지내면서 자기가 참 어리석었다고
이제라도 제대로 의학 공부도 열심히 해보고 병원 들어가서 환자들도 보고 일도 치열하게 하고싶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벌써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내년에 인턴 들어가면 자기 동기들이 레지던트 3년차가 되어있을거고..
몇몇 동생을 학생때부터 싫어하던 동기들이 동생 병원에 들어오면 가만 안두겠다.. 해꼬지 하겠다..고 벼르는
애들도 있다고.. 그런 생각 한번 들면 너무 두려워서 어쩔줄 모르겠다고..
그래서 큰맘먹고 그 동기들에게 연락해봤는데 만날 필요도 없다는 식의 대답을 들었나봐요.
제 동생이라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가 공보의 가서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봉사활동도 많이 다니고 자기 수양도 많이 하고 공보의들은 보통 많이 노는데 동생은 이제라도 공부 해보고싶다고
늘 책 쌓아두고 공부하고 그 와중에 미국의사면허 시험까지 다 붙었고 마지막 스텝 하나 곧 남겨두고 있어요.
요즘 그거 마지막 스텝 공부하는데 자꾸 내년에 병원 들어갈 생각하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공부도 안되고 잠도 못자고 늘 친구들한테 구박받는 꿈만 꾸다가 새벽에 땀뻘뻘흘리면서 일어난대요..
그 말 듣고 저랑 엄마는 괜히 예민하고 약한 놈 의대보내서 고생시켰나 눈물만 나더라구요..
그동안 오만하게 굴었던 동생 잘못도 크지만, 초딩들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싫은 동기를 해꼬지하는 의사들도 참 없어보이기도 하고..
동생한테 다른 병원 인턴 가라고 했더니 그래도 나름 국내 최고 병원인데 자기는 모교병원으로 다시 가서 진짜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익숙하기도 하고... 또 친한 친구들도 조금은 있으니까..
아산이나 삼성같은 병원에 가고도 싶지만 아무래도 모교 병원에 가야 조금은 과를 선택하는데 유리하고 자유롭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는 정말 많이 변했는데 동기들은 학생때 모습 그대로인것 같다고 너무 답답해하고 계속 불안해하더라구요.
어떻게 해야할지 옆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싶은데 마냥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하는둥 마는둥 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이 너무 안쓰럽네요.. 아무 조언이나 좀 해주세요. 엄마나 저나 동생한테 아무 말이나 해주고 싶은데 그쪽으론 경험도 없고 말주변도 없어서...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