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의 2008년 11월 10일자 칼럼 전문
한미 FTA 국내 비준을 놓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신중한 대응이 필요한 때입니다.
비준을 하기 전에 두 가지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비준을 서두르는 것이 외교 전략으로 적절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하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재협상이 필요 없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입니다.
우리국회가 먼저 비준에 동의하면 과연 미국 의회도 비준에 동의를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비준을 한다 하여 미국 의회가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재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 의회는 비준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미 FTA 는 폐기가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먼저 비준을 하고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한미 FTA를 폐기하자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한미 FTA를 살려 갈 생각이 있다면 먼저 비준을 할 것이 아니라 재협상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비준을 해놓고 재협상을 한다는 것은 두 벌 일일 뿐만 아니라 국회와 나라의 체면을 깎는 일이 될 것입니다.
결코 현명한 전략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협정의 내용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 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경제와 금융 제도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국제적으로도 금융제도와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도 그리고 다른 나라도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한미 FTA 안에도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금융 제도 부분에 그런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도 고치고 지난 번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하지 못하여한 아쉬운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재협상 없이는 발효되기 어려운 협정입니다.
폐기해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비준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재협상을 철저히 준비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폐기할 생각이라면 비준 같은 것 하지 말고 폐기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한미 FTA는 당장의 경기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당장 발효하는 것보다 5년, 10년, 15년 기간이 지나야 효력이 생기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비준만 해도 미국 쪽의 사정을 보면 어차피 상당한 시간은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준을 서두르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 위기 극복을 위한다면, 당장 결판이 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국회를 극한 대결로 몰고 가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걱정이 많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양심선언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입장은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정책은 상황이 변화하면 변화한 상황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실용주의이고, 국익외교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요즈음에도 한미 FTA의 타당성에 관하여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온 나라가 들썩거릴 만큼 토론을 했습니다. 모든 언론이 참가하고, 많은 시민단체가 참가하여, 많은 학자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반대토론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KBS, MBC특집도 반대편에 섰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하는 국민이 많았으나, 그렇게 1년이 넘도록 토론을 한 후에는 훨씬 많은 국민이 지지를 했습니다.
지금 다시 질문에 답하고 토론을 한다는 것은 제겐 감당하기 좀 벅찬 일입니다. 좀이 아니라 한참 벅찬 일입니다.
저는 모두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FTA를 한다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EU도, 중국도, 인도도, FTA를 합니다. 이들 나라가 모두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정책을 이야기 하거나 정부를 평가할 때, 걸핏하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들이대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저는 '너 신자유주의지?' 이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때마다 옛날에 '너 빨갱이지?' 이런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왜곡되고 교조화되고, 그리고 남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문* 민주주의 2.0 / 노공이산 / 2008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