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선거공약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8만호 건설이었죠. 그런데 이 공약은 문제가 많습니다.
1. 우선 전임 시장 시절에 장기전세주택(SHIFT)를 짓느라고 SH공사의 재정상태가 대단히 악화됐습니다. 임대주택이라는 건 민간에 분양을 하는게 아니라 서민들에게 무상으로 지어주는거나 다름 없고, 월세를 통해 천천히 비용을 환수하게 때문에 짓는 족족 적자가 됩니다. 8만호 지을 돈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2. 두번째 문제는 서울시내에 그렇게 대규모로 임대주택을 지을만한 땅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서울은 강북이고 강남이고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8만호 정도면 분당-일산신도시 급의 규모인데, 그런 땅은 서울에 없습니다. (은평구나 도봉구 끝자락엔 혹시 모르죠) 노무현때 마지막으로 지정한 송파(위례)신도시도 땅이 부족해서 송파구 맨 동쪽 끝자락과 성남시 서쪽 사이에 걸쳐서 간신히 지었습니다. 그나마도 4만호 규모입니다. 즉 위례신도시급 신도시를 두개를 짓고서 그 신도시에 민간분양 하나도 없이 모조리 임대주택으로만 지어야 8만호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재개발과 재건축 뿐입니다. 노후주택들과 다세대-다가구 및 좁은 골목이 밀집한 지역을 대단지 아파트로 개발해서 주거환경도 개선하고 용적률 상향으로 인해 임대주택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이미 서울시는 전임 시장 시절부터 이런 방법을 통해 민간분야에서 임대주택이 건설되는 걸 촉진해 왔습니다. 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3종으로 상향에서 용적률을 299%까지 올려준다면, 그 늘어난 용적률의 일부는 무조건 임대주택으로 짓도록 해서 저소득층의 주거지를 마련해 준다는 발상이었죠.
그런데 박원순 시장은 전세-월세난 악화를 우려하며, 강북지역의 뉴타운 정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이미 선언했을 뿐 아니라 일반 재개발-재건축도 속도를 늦추겠다고 천명했습니다. 땅도 없는데 재개발-재건축도 싫다고 하니 대체 어디서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3. 땅의 부족과 재정적인 문제라는 두가지 관문을 넘고 임대주택 8만호를 계획대로 건설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저로서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은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북에서 20평대 아파트 전세로 사는 서민들만 하더라도 주변에 임대주택이 대규모로 건설된다고 하면 기겁까지는 안하더라도 좀 경계하는 건 사실입니다.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주변 거주환경과 학군이 악화된다는 '편견'은 대다수 서울시민들에게 퍼져 있습니다. 이건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몰표를 준 40대 중산층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누구보다도 자녀 교육에 여념이 없는 세대니까요.
따라서 저는 박원순 시장이 임대주택을 계획대로 건설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짓게 될 경우에는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40대 중산층 및 서민층의 이탈을 불러 올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