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저도 나이를 먹을만치 먹었군요.
그렇다면 시집식구들에 대해 초월해야 하는 내공이 쌓였어야 할텐데 아직 제 속이 모자라나봐요.
그냥 이 아침에 저 혼자 마당에 땅 파고 소리지른다 생각해주세요.
제남편, 시댁 가족들 식사모임에 항상 계산을 합니다.
그까짓거 하루가 멀다하고 모이지도 않고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데 여유가 있으면 낼수도 있지,
생판 남인 얼굴 한번 못 본 아이들을 후원하기도 하면서 가족에게 내는 밥값이 뭐 그리 아깝다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기백만원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몇십만원 아까우면 그게 가족이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20년이 되었네요.
제남편, 형제들 중에서 막내예요.
다른 형제들이 어렵게 사느냐.....
물론 우리보다 좀 어려운 형제도 있죠.
제가 이해할 수 없는건 우리부부보다 더 나은 형편인 시누이들이예요.
평소에는 아직 시대가 이래서 아들이기 때문에.....라고 애써 자위하는데 그렇다고 결혼할 때 뭐 하나 더 받기는 커녕
집안이 쫄딱 망해서 간신히 둘의 힘으로 결혼을 했구요.
그놈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집안 일에 돈 내는데에만 써먹히더군요.
결혼할 때 우리 둘이 합쳤던 전세비만큼의 시어머니 병수발 비용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자잘한 밥값까지 말이죠.
그래도 받은 거 없고 받을 거 없으니 떳떳하고 속 편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아니, 이야기가 빗나갔군요.
시누이 이야기로 돌아가서 말예요.
걸핏하면 자기 아이 발표회니 입학식이니 졸업식에 저희를 부릅니다.
외삼촌이고 외숙모이니 당연히 가야죠.
문제는 행사 후의 식사비를 항상 저희가 낸다는 거예요.
그 행사 주인공의 엄마와 아빠인 시누이와 시누이 남편은 '**네가 부자니까 조카한테 한턱 쏴라, 잘 먹었다.' 라고만 해요.
이제는 우리를 부르는게 바로 그 '한턱 쏴'로 들리는데 그래도 조카를 봐서 '못가겠다'소리가 안 나와요.
시누이 입에서는 '삼촌한테 용돈 좀 달라고 해라.'는 말도 빠지지 않죠.
네.......남도 아니고 조카에게 용돈 줘야죠.
그런데 시누이들에게는 제아이도 조카잖습니까.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시누이들이 '조카'인 제아이에게 해준거라고는
아이 돌잔치에 돌반지 하나, 5년전 설에 세배돈 3만원,
2년전 여름에 우리 세식구와 시누이가 먹은 밥값 2만원이 전부예요.
세배돈 3만원 주던 그 순간에 저는 큰시누이가 미쳤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가 않더군요.
돈이 아닌 선물로는큰 시누이가 책 세권, 작은 시누이가 색연필 한 다스.
평생 조카에게 해준 선물이라고는 색연필 한 다스가 전부인 시누이는.....
(돌이키면 제 속만 괜히 쓰린, 시어머니를 졸라 남편몫을 홀랑 가로채버린 위인이라서요.)
그 색연필을 주면서 가르치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주고 남은 거라고 킬킬대더군요.
이런 소소한 것들을 기억하는 제자신이 쪼잔스럽지만 정말로 그게 다예요.
그렇다고 우리는 시누이 아이들이 커가면서 명절,입학,졸업 때마다 모른척 했느냐.....아니거든요.
남편이 막내라 시누이 아이들과 제아이의 나이 차이가 좀 있어서 제아이는 이제 고등학생인데
그쪽에서는 이미 받을 거 다아 받았으니 아쉬울게 없나보다 생각하면서도 혼자 괜히 약이 올라요.
그렇다고 또 제가 시누이 아이들에게 해준게 아깝다는건 아녜요.
지금 칠순,여든을 넘긴 우리 고모들도 어쩌다 만나면 번번히 용돈을 주려고 하시는 통에 실랑이를 해대고
그러다가 우리 몰래 가방이나 서랍장, 씽크대에 봉투를 숨겨놓고 가셔서는
'니들이 돈이 없어서 우리가 그러겠냐, 내 조카가 예쁘게 잘살고 있으니 그게 기특하고 고마워서 그런다.'하시고
제 동생들 역시 제아이를 예뻐하며 뭐라도 하나 더 해주려고 안달이니 그게 조카를 위한 마음이구나 생각하고
남편이 본가에 잘하는 만큼 처가에도 끔찍하게 잘하니 이래저래 공평한거다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이젠 동생들이 '형님! 이젠 우리가 낼 차례다!'며 나서서 계산을 하는데 말이죠.)
단지...........
가끔 이렇게 쪼잔해지는 제가 그동안 먹은 나이가 아깝다 생각하며 혼자 주절거리고 싶어서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