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재수한 스물한살 딸과
얼마전 끝냈던 수능과 논술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던중.
이젠 발길끊은 시댁 큰형님에 대한
대화로 잠시 이어졌어요.
딸이 일곱살이 되도록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았을때
그 가난을 비웃으며 시동생에게도
제게도 정을 주지않던 나이많은
큰 형님이 있었어요.
그 형님은, 시부모님의 제삿날에도
명절에도 저를 부엌에 못들어오게
필사적으로 막아서,
딸아이와 함께 부엌 문지방밖에서
앉아있었어요.
그 자리가 가시방석과도 같았어요.
그 형님은 그런 저를 흘끔거리다가
킥킥 웃었어요.
창백하고 무표정한 나이많은
형님을 처음 본날에도 전 겁을 먹었고
풋내기애송이티가 숨길수없이
티가 나는 저는 그 부엌 문지방을 넘어가본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사느니, 이혼하고 자유롭게
살아보겠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고난뒤로, 전 그 집을 가지않게 되었고
시댁 먼어른의 장례식날, 마주친 그 형님께
인사를 드렸다가
한번도 오지않아 괘씸하다는 형님의 분노어린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어요.
그냥 외면해버렸어요.
그 지나간 세월을 차분하게 설명할자신도, 들어줄 마음도
없을것이라고 체념했으니까요.
그 사람은 내게 킥킥대었어. 엄마가 부엌문지방너머 앉아있는것을 알면서.
그랬더니, 딸아이가 엄마,
그 킥킥대었다는 사람, 올해 국어 수능에 나왔어
라고 폰속의 지문을 열어 보여주는데
허수경 시인의 혼자가는 먼길이란 시 전문이 나왔더라구요.
처음 보는 시였는데,
너무 길어서 다 옮길수는 없고.
당신..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것을 이만큼의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당신을 부릅니다..
중략...
당신..금방 울것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음식도 없이
맨술 한번 치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것을.
킥킥 당시 이쁜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수없는
무를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나의 킥킥과 허수경시인의 킥킥.
똑같은 킥킥인데
삶의 무늬가 다른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도 전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