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왕위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을 것 같고
그 와중에 피바람도 많이 불었을 것 같은데 정말 그랬나요?
혹시 장자 세습으로 바뀐게 그런 일을 방지하고 왕권을 안정화 하려고 그런건가요?
그럼 왕위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을 것 같고
그 와중에 피바람도 많이 불었을 것 같은데 정말 그랬나요?
혹시 장자 세습으로 바뀐게 그런 일을 방지하고 왕권을 안정화 하려고 그런건가요?
장자세습이 원칙이었음
장자 중에도 적장자
아.. 고려도 장자세습이 원칙이었나요? 제가 잘못 들었나봐요. 공부 좀 해야겠네요. 부끄러워요. ^^;;
장자세습이 원칙. 다들 빨리주고 직계 후손이 없어서 방계로 넘어갈 거죠
장자세습이 힘들었던게 왕족은 무조건 왕족끼리 결혼해야 했기때문에 갈수록 결혼할수 있는 사람들이 적어져요 그래서 꼭 왕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친척이라면 왕위를 받을수 있었어요
어차피 왕족은 모두 왕건의 후예였거든요
고려의 왕은 34명이었고 이중 적장자가 계승한 경우가 18번이면 적장자 원칙이 맞다고 봐야죠
적장자 우선...
친척들도 순서가 있어요
조선도 어디까지만 적장자에요
고려는 왕족끼리 근친혼이 가능했다고 하는데, 유전병문제이나 기타 건강 문제는 없었나보네요. 사극같은거 보면서 사촌끼리. 배다른 형제들끼리 결혼하는게 낯설었는데 그 유럽 합스부르크 가문인가(?)처럼 유전병은 없었나보네요.
고려왕실의 근친혼기간이 합스부르크가보다 짧았거든요. 그리고 합스부르크가의 근친혼은 펠리페1세와 정신병을 앓았던 후아나공주사이에 태어난 이들의 자손간에 이루어진 반면에 고려왕실은 왕건의 부인이 25명이나 되는 관계로 합스부르크가에 비하면 디엔에이풀이 넓었다고나 해야하나..뭐 그렇습니다. 고려왕실의 근친혼은 왕건의 손자이자 증손자인 현종을 끝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