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안 만나는 20여년 전 옛날 대학 친구 중에 제 옷차림에 되게 시시콜콜 참견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제가 입고 간 옷이 새 옷인 걸 귀신 같이 알아보고 무슨 브랜드인지도 맞추고 백화점에서 샀는지 캐묻고 등등.
자기도 청바지 톰보이 입은 날에는 누가 묻지도 않는데 톰보이 입었다 자랑하기도 해서
처음에는 전 걔가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볼 때마다 풀메이크업에 하이힐 신고 다녔던 애가 점점 안 꾸미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패션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 게 아닌 거 같은 게 제 옷차림에 대한 지적질은 더 늘었고요.
플러스 틈틈히 브랜드 입는 골빈 인간들에 대한 분노와 험담을 하곤 했죠.
저는 쟤가 왜 갑자기 저러나 왜 멀쩡히 대화하다가 갑자기 이상한 대목에서 버럭하나 이해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이제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알겠어요.
걔한테는 애초에 자기가 우월감을 느끼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처음 만난 옛날부터 그랬다는 걸.
뭘 해도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 있도록 사고 회로가 고정됐달까.
그러니까 걔한테는 뭘 입고 꾸민다는 게
오늘 나 예쁘다 만족^^이 되는 게 아니라
오늘 내가 이 무리 중에 제일 예쁘군 후후 난 역시 잘났어^^
가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주변 친구가 어떤 브랜드 쓰고 입는지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신경을 곤두세웠던 거구요.
나보다 좋은 거 나보다 예쁜 거 입으면 상대적으로 내가 초라해지니까.
애초에 타인이 좋은 브랜드를 입은 걸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자기 만족을 위해 꾸민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고
아니 저 년이 오늘 나를 만나는데 기 죽이려고 저런 비싼 옷을 입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화가 치미는 거였어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걔가 어느 순간부터 꾸밈을 포기하고 수수하게 다녔던 건 되게 역설적인 행동이었더라고요.
나는 그런 천박한 년들과는 다르거든! 하고 다른 쪽에서의 비교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수수한 게 스스로 좋고 자랑스러우면 그러면 되는데,
그 애의 선택은 애초에 소신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한 게 아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돋보이기 위해 방편으로 한 것이니까
여전히 끊임없이 남이 입은 브랜드가 뭔지 촉각을 세우고
친구가 명품이라도 입고 오면 심정이 사나워져서 명품만 입으면 뭐해 몸매가 꽝인데 같은 심술맞은 말을 면전에서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였죠.
평소에 틈틈이 자기 좋은 몸매와 저의 슬프게도 꽝인 몸매를 비교하기를 즐겨하면서요.
그때는 몰라서 그 애가 이유를 모르게 돌변해서 나를 비난하곤 할 때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ㅎㅎ
이제 나이가 들어서 생각하니 비로소 그 심리가 보이는 것 같아요.
걔가 참... 밴댕이 소갈딱지였구나 ㅎㅎㅎㅎ
작년에 역대급 망언을 뱉는 바람에 그 친구와는 절연했어요.
자기는 옛날부터 비싼 핸드폰도 두 개씩 잘만 갖고 다녔으면서 공짜폰만 쓰는 제가 그렇게 미웠을까 싶네요 ㅋㅋ
쓰다 보니 이런 에피소드도 떠올라요.
걔가 어느날 학교 도서관에서 저에게 너 폰 어디 꺼냐고 물어서 공짜로 가게에서 준 거 쓴다 했더니
어머나아 왜 그랬니? 하면서 가방에서 자기 모토로라 폰이랑 남친이 사줬다는 뭐 다른 폰 두 개 꺼내서 보여주며
비싼 건데, 과 동기 누구도 이거 쓰더라 걔가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드라
길게 늘어놓던 대화가 떠오르네요 ㅋㅋㅋㅋ
그때는 별 생각 없이 그래 예쁘네 하고 말았는데 참 ㅋㅋ
이런 게 이제야 보이네요
인간 참... 시시하다 해야 할지 재밌다 해야 할지
나이 드니 안 보이던 게 막 보이면서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