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사설] 말의 죽음, 시인의 죽음 / 한겨레

저녁숲 조회수 : 1,236
작성일 : 2013-01-10 11:17:44

[사설] 말의 죽음, 시인의 죽음

2013.01.09 19:06

 

 

시인의 말은 핍박받는 이들의 무기다. 가난한 이들의 위로이며 소외당한 이들의 벗이다. 말로 말미암아 이들은 다시 일어서고, 저항하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의 말마따나 시와 문학은 고통의 산물이고, 시인이 시대의 아픔에 누구보다 예민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런 시인의 맨 앞줄에 새겨진 이름 가운데 하나가 김지하다. 그의 글은 황토에 선연한 땀과 피의 긴장 속에서 튀어나와 독재자와 부역자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었다. 치명성으로 말미암아 그는 사형 선고를 당해야 했다. 당대인들은 그 앞에서 숨죽여 몸서리쳤다.

 

그런 그의 말은 어느 날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 불의에 맞서는 이들에게 수치심이 되었다. 시대의 절망이 강요한 산화를 두고 죽음의 굿판으로 몰아붙였다. 요즘엔 그 자신을 옭아맸던 빨갱이 공산당 따위의 말을 마구잡이로 날린다. 황토를 떠나 허공을 맴돌던 그의 말이 언제부턴가 권력의 추력을 받아 가난한 이들의 가슴을 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치명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고통을 외면하고 슬픔을 잊은 말이 힘을 가질 순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요설은 한갓 현혹이고, 협박, 깡통, 쥐새끼, 똥꾸멍, 찢어죽여… 따위의 말은 ‘오적’과 ‘비어’의 말 그대로지만, 맥없이 코앞 시궁창에 박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가 신앙하는 후천개벽과 여성시대의 도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내공에 대한 믿음 따위를 무작정 비난할 순 없다. 신념은 신념대로 존중해야 한다. 여성성에 대한 판단을 놓고 논란은 있겠지만, 시비를 일도양단할 순 없다. 변신을 안타까워할 순 있지만 훼절이라 매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의 졸렬한 증오와 마구잡이 가해는 참기 힘들다. 누군가는 그에게 서푼짜리 분노를 집어치우라고 했다지만, 요즘 그가 토해내는 공연한 분노는 서푼 값어치조차 없다. 상생을 말하면서 저 혼자 옳다 우기고, 섬김을 말하면서 섬기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한때 서운했던 감정 때문에 평생을 저주하는 그의 말들이 어찌 한푼 값어치나 있을까.

 

그 자신도 말했듯이, ‘오적’ 이후 말이 육신이 되고 힘과 희망이 되는 그런 시를 그는 쓰지 않았다. 그러니 ‘시인 김지하’는 아주 오래된 전설 속의 이름이다. 하지만 몇몇 시편과 그로 말미암은 수난은 한 시대의 가시면류관으로 우리 기억에 각인돼 있다. 설사 오늘날 그의 말들이 수치스럽다 해도, 그 이름을 쉽게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래도 이제 그를 책갈피에 묻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오늘의 아픔을 담아낼 오늘의 말과 시인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IP : 118.223.xxx.230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ㅁㅁ
    '13.1.10 12:08 PM (211.246.xxx.209)

    창비 영인본 살 때 외판사원이 슬쩍 끼워준 시집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폴 엘뤼아르를 읽을 때 자꾸 겹쳤던 이름 김지하. 한겨레가 많이 참으며 글썼구나 싶은 기분, 몇 번이고 자기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썼구나 싶은 기분. 옛 김지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의.

  • 2. 바이
    '13.1.10 4:03 PM (1.236.xxx.103)

    내 마음은 너를 잊은 지 오래.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68068 부승찬의원이 새로운 계엄설계자를 밝힐 예정 2 .... 04:15:23 743
1668067 중소기업같은 일자리 못가게 하는 부모님 2 ..... 04:14:08 407
1668066 저도 오징어게임후기 (스포스포) ..... 04:10:26 434
1668065 버거보살 판결문 04:10:15 247
1668064 사랑없이 결혼하면 후회하나요? 12 ㅇㅇ 03:40:50 749
1668063 오징어게임2 전 재미있게 봤는데 (스포) 1 03:37:44 533
1668062 스포! 오징어게임2 후기 (왕스포!! 클릭주의!!) 8 ㅇㅇㅇ 03:07:09 740
1668061 오징어게임2 ….. 질문 (스포유) 1 ㅁㅁㅁㅁㅁㅁ.. 02:35:53 520
1668060 어제 국짐이 민주당이 경제 망친다고 5 .., 02:35:16 928
1668059 노래방 100만원 2 . 02:35:09 651
1668058 미드 프렌즈 다시 보는데요 2 111 02:28:58 519
1668057 장관들한테 설문조사한 후에 2 wave 02:09:57 619
1668056 한덕수 in 구치소 4 ,,,,, 02:09:18 1,590
1668055 태극기부대가 이렇게 얽히네요 19 ... 02:00:26 2,520
1668054 한국인들은 왜 수돗물 마시는거 싫어할까요? 11 ㅇㅇ 01:53:05 1,529
1668053 트렁크 보신분 이해안가는 부분좀,.. 6 sksmss.. 01:48:31 609
1668052 환율 어쩐다요? 8 ㄱㄴㄷ 01:48:04 1,701
1668051 근교에 1박으로 간다면 4 ㅡㅡ 01:47:39 343
1668050 구글에 '오징어게임' 검색하면 무궁화꽃 게임 시켜주네요. ㅎㅎ .. 2 ,,,,, 01:40:50 517
1668049 故 김도현 일병 사망 사건 3 ........ 01:31:37 1,269
1668048 (일상) 자라 공홈 외에 다른 곳에서 파는건 짝퉁인가요 1 화이트스노우.. 01:29:37 462
1668047 애둘 딸린 사별한 스토킹 남자. 여자 주소 정보를 알아내어 2 01:25:59 1,143
1668046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폐지안에요 5 대구지역분 01:06:14 779
1668045 나경원 vs 이언주 2 ........ 01:04:52 1,550
1668044 이와중 문체부가 공무원들 한달한번 한복입으라는데요 9 ........ 01:02:25 1,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