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나경원의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를 졸업하신 남자분께서 쓰신 글입니다.
82cook에 대해서는 지난 촛불 때 행동하는 실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신 곳이라며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졸업생들 이야기가 올라와서 저도 올려봅니다. ( DP회원 '모험왕'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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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교장으로 있던 시절 저는 H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80년대 중후반입니다.
1.
재단 이사장과 교장을 겸임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느낌을 어린 학생임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한번 걸음을 옮기면 모세가 홍해를 갈라 놓듯 쫙 길이 열리곤 했습니다.
2.
그는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공군대령으로 전역을 했습니다. 별을 달지 못하고 전역한 것을 일생일대의 한 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인지 매주 월요일 아침 전교생 조회를 하는데 군대식 사열과 분열을 했습니다.
중학생들은 그냥 서 있고 고등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했는데 본부석에 서서 사열과 분열을 받는 것이 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고등학생들이 본부석을 지나면서 “충성”이라는 구호소리와 경례를 해야하는 아스트랄함을 그는 마치 사단장이 된 듯 즐기고 있었습니다.
3.
2번의 사열과 분열을 위해 주 2-3회의 교련시간은 그야말로 군대식 폭력이 난무합니다. 몇 년 후에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간 군대 훈련소의 연습(이라고 쓰고 폭력이라고 읽는다)의 강도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면 나무로 된 목총의 개머리판으로 얻어맞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그 결과는 전적으로 나채성씨의 기분에 달려있었습니다. 그가 기분좋게 미소를 띄우면 합격이고 그가 인상을 쓰고 있으면 그야말로 죽음의 사열연습이 기다리는 셈이죠)가 나오면 체육시간까지도 교련시간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4.
원래 홍신학원의 이사장은 나채성씨의 장인입니다. 즉 공군사관생도였던 그가 있는 집안으로 가게 된 것이죠. 그의 장인에 대한 아부는 하늘을 찔렀는데 그 절정은 홍신학원 이사장이 사망했을 때 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전교생이 장례기간 내내 검은 옷을 입도록 하고 검은색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습니다.
발인이 있던 날 학교에서부터 도로까지 이어지는 언덕길에 전교생이 동원되어 검은 리본을 달고 서서 추모를 해야 했습니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를 상상하면 될 것입니다.
5.
H 중고등학교가 있던 교정 옆에 산이 하나 있었고 그 산을 깎아서 새로운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H 여상입니다.(나중에는 H 고와 여상이 서로 건물을 교체함)
그 산을 깎는 일에 학생들이 동원되었습니다. 돌과 흙을 날랐죠…(그것도 나이어린 중학생들까지 동원해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데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그 당시에는 벌어졌습니다….
7.
아무도 그를 교장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난채(누드) 성(섹스)…즉 누드섹스 떴다..라고 했습니다.
학교 선생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학생들에게는 희화의 대상이었습니다.
외모는 중후한 편인데 목소리는 저주받은 파리넬리의 목소리인지라 더욱 코믹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무게잡고 사열 분열 받고 연설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드섹스가 기분이 나빴던 이유가 아마 그 특유의 연설 때문에 학생들이 웃고 그래서 기분이 나쁘고 그래서 분열 연습으로 이어지고 했던 악순환이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8.
한 집안이 무려 17개의 사학재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정말 교육열이 탁월한 집안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는 그냥 교육은 돈벌이의 수단이고 학생은 장교들이 사병을 생각하듯 노비처럼 소모적으로 마구 써도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식으로 17개의 사학재단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그 속에서 세금탈루는 없는지 그 17개 사학재단 속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지…그런 것을 검증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비를 보면 자식을 안다고 나채성씨를 겪어 본 바 나경원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의 인성과 삶의 철학 등을 미루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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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다른 분에게 더 들은 이야기
1.
김포평야 벼베기라는 이벤트도 있었답니다.
학생돈으로 낫을 사고 벼베기가 끝난 후엔 주지도 않고 그 다음해에 또 돈 걷어서 낫사고 ... 또 낫 어디다 팔아먹는지 돌려주지도 않고 ... 해마다 벼베기는 계속 되었답니다.
2.
중학교 때 체육과 교련시간에 벽돌나르고 시멘트를 날라서 지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