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도 미니가 나왔는데 미국 명절 음식도 미니 버전으로 만들어 보았어요 :-)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큰 명절이어요.
크리스마스는 설날같은 느낌이구요.
성대하기로 치자면 크리스마스가 단연코 명절 1위이지만 추수감사절은 칠면조 디너 때문인지 음식에 더욱 방점을 두는 것 같은 느낌의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의 대표 음식 칠면조 요리!
이렇게 차려서 먹죠.
테이블이 커서 칠면조 크기가 가늠이 잘 안되는 분들 계시죠?
미드 프렌즈에서 유명한 이 장면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어마어마한 칠면조의 크기가 짐작되실 겁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댁에 삼촌 숙모 고모 이모 사촌들까지 다 모이는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저거 한 마리 구우면 십수명이 배불리 먹으니 저렇게 커도 한 번 해먹어볼만 하죠.
하지만, 고작 네 식구인 저희 가족이 함부로 칠면조를 구웠다가는...
이런 화를 면치못할 것이야!
(아이 무셔...)
대가족이 모이지 못하더라도 추수감사절의 맛인 칠면조 요리를 포기할 수 없어서 만들어 먹은 후 며칠 동안은 남은 터키를 먹어치우느라 이런 비법을 담은 책이 잘 팔리기도 해요.
남은 칠면조로 해먹을 수 있는 7가지 음식 아이디어!
꼭 이런 느낌이 들어요 :-)
명절 지나고 해먹는 전찌개 :-)
거대한 생칠면조를 사다가 씻어서 요리를 하는 중노동도 겁나고...
그 큰 덩어리를 자칫 잘못 요리해서 맛없게 만들게 될까봐 더욱 겁나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고 계속 냉장고에 남아있을 칠면조 고기는 마치 좀비영화 엑스트라를 보는 것 같아서 후덜덜...
이러한 전차로 저는 미국생활 20년이 넘어가도록 칠면조 요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친구집에 초대받아가서 감사하고 맛있게 얻어먹기만 했죠.
하지만 코난군이 어느날 제게 물었어요.
"우리집은 왜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안하나요?"
친절하게 위의 모든 설명을 해주었으나 이 녀석의 반응은...
"나는 스터핑이 무척 맛있는데... 먹고 싶은데... 전에 친구네 집에서 먹어본 스터핑이 아른아른거리는데..."
스터핑이란,
칠면조를 구울 때 뱃속에 가득 채우는 (stuffing) 재료로 요리한 음식입니다.
(조리법은 나중에 나옵니다 :-)
우리가 삼계탕을 먹을 때 닭 뱃속에 찹쌀과 인삼 등등을 넣고 끓이듯이, 미국사람들은 칠면조 뱃속에 부재료를 넣고 익혀서 고기와 함께 먹어요.
어쩐지 살벌해 보이지만, 칠면조 육수를 가득 머금은 스터핑은 참 맛있긴 해요.
그런데 저렇게 진짜로 칠면조 뱃속에 넣으면 많이 먹고 싶어도 만들 수 있는 분량에 제한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아예 따로 스터핑을 요리해서 곁들여 내곤 합니다.
(여기까지 나온 모든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이 아니고 인터넷 검색해서 줏어온 것들입니다 :-)
저는 증조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개신교를 믿어온 집안에서 태어난지라, 제사를 지내본 적이 없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건강하게 살아계실 때는 증조할아버지 추도일에 명절처럼 맛있는 음식을 차려서 추도예배를 드리기는 했었지만, 20세기 말이 되면서 친척들은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고 그러다보니 조상님 추도일에 모이기가 힘들고 기타등등...
그래서 제사음식은 어쩌다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친척댁에 놀러가거나, 종가집 자손인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몇 번 얻어먹으며 황홀해 했던 기억이 있어요.
무려 "국민학교" 시절에 분명히 우리집 보다도 형편이 부유하지 않은 친구들이 "어제 우리집 제사였어!" 하면서 도시락 반찬으로 통고기를 싸온 걸 보았을 때 (산적 고기였나봐요), 우리집도 제사를 지내는 집이었다면 일년에 최소한 서너 번은 저 순수한 고깃덩어리 조림 반찬을 먹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엄마는 주머니 형편이 넉넉지 않다며 고기반찬을 한 달에 한 번도 못해주셨거든요.
게다가 고기보다 야채를 훨씬 더 많이 넣고 볶는다든지, 아니면 물을 왕창 부어 국을 끓여주셨기 때문에, 산적 처럼 비계도 없이 순수 고깃살을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ㅠ.ㅠ
친구의 도시락 반찬을 보면서 깨달았죠.
제사음식이라는 것은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차려야만 하는 메뉴와 조리방식이 있으니, 우리집도 교회만 안다녔다면 일 년에 몇 번은 맛있는 제사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을요... ㅎㅎㅎ
제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보니 스터핑이 먹고 싶다는 코난군의 마음이 마구마구 이해가 되었어요.
오냐,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읭? 문맥 상실! 그래도 암튼 :-)
그깟 스터핑 엄마가 만들어주마!
다행히도 코난군이 먹고 싶은 건 칠면조가 아니라 스터핑이니까요 :-)
만개의 레서피? 올레서피 닷컴? 뭐 그런 사이트를 뒤져서 만만한 레서피를 골랐습니다.
프렌치 브레드를 하루 정도 꾸덕하게 말려서 사용하라는군요.
시간이 없다면 오븐에서 아주 낮은 온도로 맞춰놓고 한 시간 정도 넣어서 건조하면 된대요.
분량은 원래 레서피의 절반만 만들었어요.
우리는 명절 음식으로 먹을 게 아니고 점심밥으로 먹을 거라서요.
밀가루 3컵으로 만든 프렌치 브레드 한 개를 다 썰어 넣었어요.
6컵쯤 됩니다.
다음은 양파와 샐러리를 잘게 썰어요.
분량은 각기 한 컵입니다.
후라이팬에 버터를 왕창 넣고 양파와 샐러리를 너무 오래는 말고 부드러워질 정도로만 볶아요.
칠면조를 구울 때 이런 허브를 쓰기 때문에, 마치 칠면조 뱃속에 있다가 나온 것같은 맛을 만들기 위해서 똑같이 허브를 넣어요.
로즈마리, 타임, 세이지는 조금씩, 파슬리는 많이 준비합니다.
(재료 계량이 마이~ 허접해서 죄송합니다 ㅎㅎㅎ 파슬리는 밥숟갈 하나 정도, 나머지 허브는 차숟갈 하나씩 되게 넣었슴다...)
프렌치 브레드위에 양파와 샐러리 볶은 것을 넣고 허브를 넣고 소금과 후추도 조금씩 뿌려서 섞어줘요.
다음은 육수를 준비할 차례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칠면조 뱃속에서 사우나를 하면서 칠면조 육수가 저절로 스터핑에 스며들겠지만, 이렇게 따로 만드는 스터핑은 치킨스톡을 사용하면 간편해요.
치킨스톡 1컵에 계란 두 개를 풀어 넣으면 육수 준비 끝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칠면조 뱃속에서 스터핑을 긁어내다보면 아무래도 고기도 좀 섞여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원래 레서피에는 없었지만, 제 마음대로 고기를 좀 잘게 뜯어서 넣었어요.
그리고 육수를 부어서 잘 섞은 다음 오븐에 넣어요.
빵이 하루 정도 꾸덕하게 말라야 육수를 잘 흡수해서 더 맛있게 된다고 하네요.
고기는 바로 마트에서 파는 로스트 치킨입니다.
기름기를 쫙 빼고 구운 통닭은 칠면조보다 연하고 더 촉촉해서 먹기에 좋은 것 같아요.
로스트 치킨도 살을 잘 발라놓으면 위시본도 나와요 :-)
추수감사절 디너에서 위시본이 나오면 두 사람이 각기 한 쪽을 잡고 뜯어서 긴 뼈를 가진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풍습이 있대요.
칠면조의 쇄골이 (? 암튼 가슴살 언저리에 있는 뼈) 소원을 비는 뼈라서 소원뼈, 즉 위시본 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화씨 350도 (섭씨 180도) 에서 호일로 덮어서 35분 익히고, 마지막에 호일을 벗겨내고 5분 더 익힌 스터핑입니다.
닭고기와 곁들여서 스터핑을 먹는 코난군.
친구네 집에서 제사음식을 얻어먹던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해마다 추수감사절에 김장을 하기 때문에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어서 우리 가족만의 추수감사절 디너를 준비했었는데, 올해에는 미국식으로 (그러나 칠면조 대신에 닭으로) 한 번 차려볼까 합니다.
며칠 전에 연습삼아 만들어본 그린빈 캐서롤도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이 나왔고...
미국 고구마 요리도 별로 어렵지 않더구만요.
한국의 명절 음식, 제사 음식에 비하면 무척 만들기 쉬웠어요.
보나쑤: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아이들 그림을 한 개씩 보여드릴게요 :-)
코난군이 그린 바다거북이가, 82쿡 회원님들의 무병장수를 빌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