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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송편만들기

| 조회수 : 6,207 | 추천수 : 7
작성일 : 2006-09-26 17:42:52

안녕하세요. 살림돋보기에만 몇 번 글 올리고 키톡에는 요리꾼 분들의 요리들만 눈을 희번덕거리며
엿보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 올립니다.

남들에게 보여줄 실력이 못되어 그냥 제 블로그에만 제가 만든 요리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글을 쓰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송편을 소개합니다. 떡을 예술로 승화시킨 님들의 작품에 비길 수 없기에, 만들어진 사진보단 기냥
글만 읽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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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도 아닌데 송편을 만들었다. 재소자들 주려고 만들었던 떡케익 만들고 쌀가루가 좀 남았길래, 그리고 소로 들어감직함 깨와 팥고물도 남아있길래 만들었다. 요즘이야 송편을 가족들이 둘러앉아 함께 빚어 만드는 풍경보다는 명절이 다가오면 떡집에서 유난히 김이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떡집에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나는 풍경들이 더 많아졌지만, 그래도 홈메이드 송편은 또다른 의미를 준다.

근데 우습게도 나같이 단독플레이를 좋아하고 남에게 간섭받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의 경우, 이렇게 혼자서 미술시간 공작하듯 송편을 만드는 일은 나만의 '즐거움'인 반면 시댁가서 시어머니와 마주앉아 빚는 송편은 아마도 귀찮고도 싫은 '노동'일 것이 분명하다. 다행(다행? --;)히도 집에서 송편을 빚는 일은 드물어졌으니 망정이지. ^^; (어머니, 용서하세요. 그래도 그게 진심인데 어떡하나요... ^^;)

송편 잘 빚으면 예쁜 딸 낳는다고 하여, 딸 낳기를 원하는 난(시어른들이 들으시면 분위기 싸~~해질 말이다) 더더욱 분발하여 송편을 빚었다. 만들다보니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밋밋한 송편보단 머리핀 찔러 넣듯이 장식을 해보잔 생각에 꽃 장식도 해넣고,(헉, 그렇담 미친년 머리에 꽃꽂은 거야?) 거기서 더 장난기가 발동하여 노란색과 빨강색 반죽은 아예 모양을 사과와 참외 모양으로 빚었다. 예전의 미술실력이 나온다. 찰흙공예든 회화든 미술은 참 잘하는 편이었는데, 쌀을 빚은 쌀공예인 송편의 결과도 그럭저럭 괜찮다. 근데 겉모습은 사과와 참외인데, 맛은 깨와 팥고물 맛이다... 하하...
이 정도면 딸 낳으면 미스코리아감 아닌가. ^^

사실 겉모습만을 놓고본다면 송편과 흔히 '바람떡'이라고 부르는 개피떡, 그리고 꿀떡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여러가지 색깔로 물들이는 것도 그렇고, 반달모양으로 접은 모양새도 그렇다. 그렇지만 만드는 과정과 열을 가하는 순서를 보면 확실히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송편은 익히지 않은 쌀가루를 반죽하고 난 후에 찜통에 넣고 쪄내는 '찐떡'이고, 개피떡은 이미 쪄내서 절구로 쫀득하게 찐 반죽을 가지고(여기까지만 하면 절편이 된다) 소를 넣어 빚어낸 '치는 떡'이다. 말하자면 반제품과 완제품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런지, 개피떡은 이미 다 완성된 떡반죽에 소만 넣으면 되기 때문에, 떡이 쫀득한지, 색이 잘 나왔는지 모든 것을 다 아는 상태에서 마음 편하게 빚어낼 수 있다. 그러나 송편은 반죽을 예쁘게 되었으되, 찌는 과정에서 잘못되면 반죽이 갈라져 소가 밖으로 삐져 나올 수도 있으며, 쪄놓고 나서 보니 생각한 것보다 물들인 색깔이 곱지 않게 나올 수도 있어, 찌는 과정이 끝나고 찜통을 열었을 때야 비로소 결과물의 성공/실패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쪄내는 30분과 뜸들이는 10분, 도합 40분간은 불확실성을 안고 기다려야만 한다.


수확기에 먹는 송편인 만큼, 그 해 농산물의 수확이 잘 되었는지, 과실들이 잘 영글었는지, 오랜시간동안 기다리다가 수확을 하는 그때야 비로소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절기의 특성과 유사한 미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송편을 추석때 먹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쪄놓고 특별히 예쁘게 생긴 사과한개와 참외 한 개, 그리고 색이 가장 곱게 나온 포도즙 넣은 연보라빛 송편을 비롯한 잘생긴 놈으로 골라 어머니를 드렸다. 손이 많이 가고 재료가 얼마 남지 않았던 탓에 많이는 드리지 못했지만. 예뻐서 아까워 못먹겠다고 하시더니 바로 덥석 한 개를 베어 무신다. ^^  불확실함을 안고 40분 동안 기다린 끝에 윤기나고 탱글탱글하게 잘 익은 열매를 수확한 결과로 어머니의 가을만큼이나 넉넉한, 만족감이 깃들어있는 표정과 그 표정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나의 뿌듯한 마음을 얻었다.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세헤라자드
    '06.9.26 5:47 PM

    너무하세요.... 이뿌기만 하고만....ㅠ.ㅜ 저것이 보여줄 실력이 안되는 것이라면 전 죽어야 할까요? ㅠㅜ

  • 2. 딸둘아들둘
    '06.9.26 5:55 PM

    지금 시어머님과 마주앉아 '노동'하다가 잠깐 꽤부리느라 들어왔어요..^^;;
    멍하니님 송편...예술 맞네요~
    블로구 주소 알려주심 놀러가곳 싶어요..
    전 다시 노동하러 갑니다..ㅠㅠ

  • 3. 맑은웃음
    '06.9.26 6:55 PM

    저는 송편이 꼭 만두처럼 되는데...너무 예쁘시고...좋은 일도 하시니..정말 훌륭하십니다.

  • 4. 권희열
    '06.9.26 8:47 PM

    너무 이뻐서 먹기가 아까울것같아요

    눈으로 맛있게 먹구 갑니다 ^0^

  • 5. 봉나라
    '06.9.26 8:52 PM

    참 고옵다~~~ 예술입니다요.
    제주도식 송편은 이따만해서(왕투박함, 물론 작게작게 만드시는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앙증맞은 게 어떻게 먹어주면 좋을 지 잠시 고민해봐야겠네요.^^ 음 윗분처럼 눈으로만 먹어야겠어요.

  • 6. 태능맘
    '06.9.27 12:33 AM

    짝짝~곱네요..이런 남편에게 넘 미안해집니다,,

  • 7. 솜사탕
    '06.9.27 2:43 AM

    재미있는 송편이네요.
    블러그 저도 알려주세요 떡 좋아해요

  • 8. 일새기
    '06.9.27 10:04 AM

    님 글을 읽으니 한해 농사를 갈무리 하며 송편을 쪄냈을 그네들이 떠오르네요.
    송편과 개피떡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고...좋은 글 잘 읽었어요.

  • 9. 장영란
    '06.9.27 11:07 AM

    너무너무 부럽네요.

  • 10. 하얀
    '06.9.27 11:13 AM

    색색 송편 넘 이뽀여...^^

  • 11. 줌마렐라~~
    '06.9.27 12:14 PM

    훌륭한 작품이예요.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요.....

  • 12. apple
    '06.9.27 1:37 PM

    봉나라님 맞아요. 제주도 송편은 마치 비행접시처럼 생겼지요..^^;;
    완두콩 들어간 비행접시 송편 먹고프네요..ㅠ.ㅠ

  • 13. 포도공주
    '06.9.27 3:28 PM

    어머, 송편이 정말 너무 색색깔로 예뻐요.
    참외모양, 사과모양도 아이디어 좋으시네요.
    예뻐서 먹기 아까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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