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낼 아침에 미역국 끓일게, 가져가서 먹어요. 보온 통에 담아가면 점심때 먹을 만 할 거야.” H씨 생일이다.
생일날 퇴근이 늦는다기에 전날 함께 저녁 먹고 들어가며 한 말이다. 둘 다 아침을 안 먹으니, 생긴 일이다.
“아무리 밤에 늦어도 먹을 테니, 저녁에 끓여요. 먹지도 않는데 아침 일찍 수고스럽잖아”하는 H씨 말에
‘그러마’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H씨 생일 날 차린 저녁밥상이다.
처음엔 그냥 미역국만 끓이려고 했다. 저녁은 먹고 올 것 같아서.
그래도 생일인데 혹시 몰라 새 밥도 앉혔다. 싹 띄운 현미에 조와 콩을 넣고.
미역국은 10여분 불린 미역을 들기름에 볶다가 다시마 우린 물 붓고 끓였다.
팔팔 끓어오를 때 표고버섯과 다진 마늘 넣고 소금 간하고 중불로 30여분 더 끓였다.
마지막 간은 간장으로 했다.
지난 일요일 장볼 때, 무를 골라 드는 H씨에게 “조금 있으면 밭에 무 먹을 만 할 텐데, 뭐 하려고?” 했더니,
“무 조림 하려고, 무 조림 이 좋아!” 했던 말이 생각나기에. 무 조림도 했다.
적당한 크기로 숭덩숭덩 썬 무를 역시 다시마 우린 물 자박하게 붓고 냄비에 끓였다.
무가 익는 동안 양념간장 만들었다. 들기름, 파, 고춧가루, 다진 마늘, 청,홍고추도 썰어 넣고.
적당히 무가 익었을 무렵 양념간장 붓고 역시 낮은 불에서 뭉근하게 조렸다.
생각보다 H씨는 일찍 왔고 저녁 전이라기에, 둘이 딱 저렇게 미역국과 무 조림만 놓고 생일 날 저녁을 먹었다.
보기는 초라한 생일상이다. 하지만 맛있게 먹어준 H씨가 있었기에 나름 풍성한 밥상이 되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멋진 생일 축하 노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뿐.
그래도 저녁상 치우고 작은 치즈 케익에 둘이 맥주 한 잔씩 했다.
#2
지난 추석, 가평으로 캠핑 갔다.
캠핑장서 장작불 피우고 맥주 한 잔 기울이다 본 보름달.
남이섬, 지금쯤 단풍 들었을까? 이곳에 단풍든 풍경이 보고 싶다.
이 가을 남이섬으로 단풍구경가야겠다.
어머님 생신은 명절 뒤끝인 추석 이틀 뒤였다.
생신과 명절이 겹치니 당신께서 원하지도 않으셨지만 자연스럽게 따로 생신 분위기 내기 어려웠다.
생전에 긴 연휴였던 어느 해인가? ‘이번 생신엔 제주로 가족 여행을 가자’고 계획을 세운 적 있다.
얘기 들으신 어머니 “명절에 제사 안지내고 어딜 가냐?” 반대하셨고.
‘여행지에서 제사 지내도 되지 않겠냐?’는 자식들 의견에도 요지부동.
결국 ‘명절 음식은 최소화 하고 아침 먹고 가까운 공원이라도 갔다가 저녁은 외식’ 하는 걸로 의견 조정되고.
추석 당일 아침 먹고 서울대공원에 갔다.
초입부터 죽 늘어서 있는 차량들을 보고 “명절에 놀러온 사람들이 왜 이리 많니?”하며 놀라시던 어머니.
하지만 겨우 걷기 시작한 K 안고 “명절인데 사람들이 많이 놀러 다니는구나.”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셨다.
돌아오는 길, “명절에 문 연 식당이 어디 있냐? 애비야 찾느라 고생하지 말고 집에 가서 밥해 먹자.”
한 걱정 하시던 어머니. 미리 예약해 놓은 대형 횟집이 꽉 찬 걸 보시고.
“이렇게 하는 것도 한갓져서 좋긴 하다.” 하셨다.
그날 이후 명절연휴에 당신은 안 가셔도 자식들 여행 간다 하면 ‘잘 갔다 오라.’ 하시고.
‘음식 조금만 하고 외식합시다.’ 하면 ‘니들 좋을 대로 해라’ 하셨다.
캠핑장서 추석보름달 보고 누워 그냥 잠시 어머니 생각했다.
어머니 생각나는 한 가지 음식, 호박볶음과 찐 고구마 말린 것.
찐 고구마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꾸덕꾸덕하게 말린다.
보관도 오래 할 수 있고. 딱딱한 듯 졸깃한듯 오며 가며 집어먹는 간식으로 그만이다.
#3
몇 해 전부터 다이어리 같은 메모장을 가지고 다닌다. 이것저것 끼적거리는데. 가끔 다시 들춰보곤 한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눈에 띄는 게 있다. 대표적으로 ‘단백’ ‘보안’이다. 문맥상으로 분명 ‘담백하다.’ ‘보완하다’인데
왜 단백질의 ‘단백’으로 쓰고, 보안업체의 ‘보안’으로 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더 웃긴 건 이런 걸 발견할 때마다 고쳐 놓는데 다시 읽어보면 같은 짓을 또 해놓았고.
‘데로’ ‘대로’ ‘되’ ‘돼’ ‘안’ ‘않’ 같은 건 수정하기를 포기할 만큼 많다. 가끔 ‘읍니다’로 끝나는 서술어도 보인다.
이게 언제 적 맞춤법이던가?
맞춤법 뿐 아니라 문맥상 명백히 다른 말을 저리 소리 나는 대로도 아니고 엉망으로 써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창피해지기도 하고 좀 분해지기도 하는 일이다.
노안으로 휴대폰 문자가 안보여 멀리 보는 것만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일상이다.
부추꽃
깻꽃
호박꽃과 호박
차조기 꽃
가을 상추
부추밭, 고추, 저 멀리 배추
고구마 밭, 청홍고추!!!
상추와 사과, 고추 샐러드.
올리브유로 버무린 재료에 간장과 식초를 연하게 섞어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