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더위에 뜬금없는 짓1
덥다. 습도도 높다.
이런 날 뜬금없이 뜨거운 것이 먹고 싶었다.
김치찌개다. 왜 뜨거운 게,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심지어 찬밥을 끓였다.
아주 푹푹~. 죽처럼 퍼지도록 끓였다.
본래 콩과 죽순을 넣고 지은 밥이었는데 죽처럼 퍼지도록 끓여 놓고 보니
애초에 죽을 끓인 것처럼 보인다. 살짝 간장으로 간했다.
한 젓가락씩 남아 각자 냉장고 한켠을 지키던 반찬,
고구마순, 버섯, 가지를 한군데 쓸어 넣고 들기름에 달달 볶았다.
따로 간할 필요도 없고 그냥 달달 볶았다. 먹을 만했다.
# 이 더위에 뜬금없는 짓2
아침부터 푹푹 찌던 어느 날 퇴근길.
시커멓게 소나기가 쏟아진다. 자동차 와이퍼를 3단으로 돌릴 정도로. 후드득후드득.
신호를 기다리며 빗소리 듣다가 느닷없이 또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어졌다.
그런데 수제비가 떠올랐다. 감자수제비.
집에 오자마자 감자부터 삶았다.
삶은 감자를 채에 바쳐 으깨줬다.
무슨 정성이 뻗쳤는지, 감자 넣은 수제비가 아닌 감자로 반죽을 한 수제비를 준비했다.
채친 감자에 밀가루를 넣고 손 반죽을 한다.
이 여름 이 정도 땀 흘리며 음식 준비하는 정성은 하늘에 닿았다.
맛이 없을 리 없다.
냉장고에 반죽 넣어 놓고 숙성되는 동안 다시마로 국물을 냈다.
30여분 지나 H씨 퇴근하고 ‘저녁은 수제비니 조금 기다리라’ 말을 하니,
“오늘 같이 덥고 끈적거리는 날 수제비!” 하며 놀란다.
아무튼 감자수제비 반죽을 나름? 얇게 떠 놓고 호박 채도 넣고
마지막으로 들깨가루도 두어 숟가락 넣어주고.
묵은 갓김치와 풋고추, 고추장아찌를 반찬으로 먹었다.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비록 땀을 좀 흘리긴 했지만.
날씨만큼 알 수 없는 입맛, 몸의 반응이다.
# 아~ 곰배령!
곰의 배를 닮아 곰배령이라 불렸다나.
하루 200명 예약인원과 곰배령 마을 두 곳에서 묵은 사람만 오를 수 있다는 곰배령.
곰배령까지 오르는 길은 두어 시간 거리 숲길이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꽃과 나비, 숲과 물, 하늘 때문에 실컷 웃었던 숲길 여행이었다.
곰배령 내려오는 길
슬그머니 H씨에게 반지 선물을 했다. ‘여름 잘 나시라!’며
# K가 온다
K가 카톡으로 보내온 여행 사진을 H씨가 보여준다.
사진 몇 장 넘겨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 부럽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게 나도 부러워, 왜 남도 아니고 딸이 이렇게 부러운지 몰라”
라는 얘길 나누게 했던 K의 여행이 끝나고 며칠 후면 그녀가 온다.
K에게 “ ‘환승 시간 길다.’며? 기다릴 때 읽어 봐”라고 선물한 책들이다.
가져가긴 한 것 같은데 읽었는지 모르겠다.
지식이 아닌 ‘생활양식으로 사유하기’가 몸에 익기를 바라지만
대개는 부모의 욕심일 뿐임을 안다.
녀석의 고민과 부모의 걱정과 바램은 말 그대로 터울이다.
세월의 터울.
어쩔 수 없는 터울 앞에
그저 “K야, 오늘 행복하렴.”
이 말을 해줄밖에.
오늘도행복하렴.딸오늘도행복하렴.아이야오늘도행복하렴.오늘모두행복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