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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 도발

며느리 조회수 : 2,890
작성일 : 2011-02-06 16:23:24
방학동안 아이들 데리고 연수다녀왔어요.
결혼 한지 16년차...
제 소개를 하자면, 설,추석,양가부모님 생신, 어버이날..
한번도 결석한 적 없는 며느리예요.
결석만 안했다 뿐이지, 그다지 훌륭한 며느리는 아니예요.^^
언제나 행사일이 다가오면 나도 한번 빠지고 싶다는 생각하곤 하지만
그래도 뭐..그닥 변수도 없고, 일부러 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결과...
그리 된 것이고,
시댁에서는 의례 명절날은  가구같은 존재..
있어도 고마운 줄 모르고, 없는 건 생각조차 안하는 그런...아마 그런 존재였는가 봐요,
설지나서 올까라는 생각 하지 않은 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설은 지내는 게 도리일거 같아서 2월 1일에 귀국했어요.
그리고, 곧 후회했어요.

한국에 온 바로 그 날
집으로 오는 길에 전화드렸고,
내일 천천히 올라오라는 말씀 들었고.
다음 날..그러니까 설 바로 전날...
알람 없이 일어나니 11시.
일어나서 씻고 식사하고 여행가방 풀지도 못하고
집은 어수선 그 자체. 그 상황아시지요? 모두들~
그래도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바로 가방 챙겨서 시댁으로 향하는데...
출발하자마자 핸드폰 울리더군요.
오는 중이냐고...
에고..그렇지..가긴 가야지..
그래도 그냥 지나가는 생각에
오늘은 쉬고 설 당일날 오라는 말씀하셨더라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하면서 시댁에 갔어요.

시댁에 두분만 계시더군요.
둘째는 며칠전에 와서 인사드리고 갔고, 세째는 아파서 오지 못한데요.
사실 좀 기가 막혔어요.
나름 다 이유가 있는데, 만약 나에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난 어찌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왔을거 같은데...
일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은 해야 되는 거니까...

저녁차리고 식사하는데, 일이 벌어졌어요.
저희가 결혼하고 시댁에서 6개월 살다가 나갔었는데,
그 때 살 때 생활비를 내지 않았으니 내라고 하시더군요.
아~이건 농담조라는 거 알아요.
그런데 그게 시발점이 되어서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갑자기 어머님이
남편에게 화를 내시기 시작했어요.

제가 나가있는 동안,
시댁에 어머니생신과 제사가 한번 있었어요.
생신때마다 동서랑 번갈아 식사를 준비했었는데,
이번엔 동서차례여서 전 출국하기전에 어머니 드릴 용돈과 명절에 드릴 돈을 모두 동서에게 보냈구요.
그러므로, 제가 생신에 참석못하는 걸 제외하면 제가 있으나 없으나 달라질건 아무것도 없었죠.
그런데 어머님이 갑자기 우시면서 남편에게 막 화를 내시는 거예요.
아들 놈 키워서 아무소용 없다...
어떻게 엄마 생일날 오면서 빈손으로 들어오냐면서..
옷한 번 사주었으면 신문에 나겠네..
또 뭐라셨더라...
그렇게 엄마한테 뭐 사주는 게 그렇게 아깝더냐...
동서에게 일이 있어서 힘들까봐 밖에서 식사안하고 집에서 어머니가 모두 준비하셨다고 해요.
전 사실 그 부분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쨋거나 어머님의 서운함에 뭔가 보탬이 상황을 제공한 건 분명하죠.
며느리는 셋이나 되는데...한명밖에 없었고,
그런데 남편이 손에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아 들어와서 동서한테 너무너무 창피했다고....
혼자 흥분하셔서 식사끝날 때까지 울고 불고..분을 삭히지 못하시더군요.
아무말 않고, 아이들도 놀라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설거지하려는데...
이제부터 제사 니들이 가져가라.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한다.뭐 그러시러라구요.
그러자 소파에 않아있던 남편...


-제사 안드려요.
아, 이런 상황 올 줄 알았어요.
이렇게 어머니랑 충돌할 날 올 줄 알았죠.
그냥 아무말없이 어머니를 따를 뿐이였지 본인의 생각은 언제나 없었으니까...
올게 온거죠..

-왜 안드려..장남이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도 안드려..
-죽으면 다 그만인데..그게 무슨 의미예요?

아.. 이걸 어쩌나..
남편이 무신론자예요.
제사니 예배니 이런 것들...의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그냥 드리면 앉아서 아무말 없는 사람인데...
저 역시 남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고...
어머님이 드리니 함께 하지만, 내가 주도해서 정성어린 마음으로 제사를 드릴 마음의 자세가 전혀 없는 사람이구요.
어머니 화가 절정에 달했어요.
무조건 제사가져가라고 소리소리 지르시고...
설거지 하는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화가 나더라구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접시를 세게 내려치고는...
조용히 한마디 했어요.

-제사 안 드려요.

완전 불기운에 기름을 부운 격이지요.

-니가 장남한테 시집왔으면 당연히 제사를 드려야지
-지금 꼭 이러셔야 해요?
저 한달동안 나갔다 온게 그렇게 맘에 안 드셨어요.
불만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셔요.
이거 다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아니세요?


-니가 어따대고 대들어???

나한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저도 알 수 없어요..
어머니가 그렇게 소리치시면 예전 같으면 울었을 텐데...
그냥 마구마구 소리 질렀어요.
서운함이 밀려들었어요.
아이들 한달만에 보는 데 꼭 그 자리에서,그렇게 하셨어야 되었나.
아들이고 며느리고 아이들이고, 얼마나 우스운 존재였으면 저리 나오나.
서운함이 밀려오고, 기가막히고..
어머니 좀 놀라신 듯.

-막내가 없어서 하는 거야. 니들 위신 생각해서..
-저희 위신이고 뭐고 그런거 애당초 없잖아요.

말하고 싶어도 니네 위신 떨어질까바 생각해서 지금 말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맏이 위신 예전부터 없었다고 말씀드렸죠,
어머님이 이미 다 바닥에 떨어뜨려 놓으셨거든요.
날 바라보며...그래 니가 나한테 얼마나 불만이 많은지 말해 보라더군요.

-설거지 끝내고 이야기 하죠..
그렇게 갑작스런 어머니의 그리고 나의 도발이 끝났습니다.
결혼하고 첨으로 눈 동그랗게 뜨고 울지도 않고 또박 또박 제 의견 힘주어 말했습니다.
보이기엔 대들기였지만 저로선 아주 크나큰 도발, 그 이상이였습니다.

제가 설거지 하는 동안...
아이들과 남편 아버님...다 방으로 들어가시고...
어머니 정리 끝내시고 소파에 앉으셨어요.
그리곤 갑자기 부드러워 지시더군요.
절 타이르시더군요.
본인이 이러이러 해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네가 금전적으로 장남대접 못받았다는 건 인정하지만..
앞으로 받을지 안 받을 지 어찌 아냐.
이 말이 사실 전 더 우스워요,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게 다 뭔가를 받기위함 이런 건가요?
그래서 그걸 받기위해서 남편과 전 맏이 노릇을 해야만 하는 건가요?
니 친정에 막내보다 소홀했던 건 ..뭐 이러이러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말씀하시데요.
차별이 있었음을...
다 변명.변명...
그냥 말씀들었어요.
그리고 한마디 했어요

-저희 돈 없어도 돈 없단 소리, 어머니한테 안해요.

잘못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어요.
잘못한 게 정말 없었으니까...
저희 올 때 변변하게 뭐 사오지 않았어요.
사실을 일부러 그랬어요.
음...세째 외국에 3년동안 나가있다 들어올때...
빈손으로 들어왔거든요,
빈손이 미운 건 아니예요.
나갈 때 100만원 해준 걸 기억해요.
그런데 3년살다 들어온 동서...달랑 프로폴리스 한병 제게 안기더군요.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지만...무시당했다는 기분 들었어요.
어머니....저 보자마자 그러시대요.
이우리 가족중에 한달동안이나 떨어져 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막내는 더 길게 떨어져 있지 않았냐 하니...그건 아니래요.
한달 만에 들어온 내가 선물제대로 들고 오지 않은것도 어머니 심기를 건드린 하나의 이유였죠.
다른 자식들은 그래요. 돈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면 안스러워 하시죠.
시댁에 둘째 아이 말씀 하시면서 ..
돈 좀 보태서 우리 나가는데 그 아이도 함께 보내지 못한 걸 많이 아쉬워 하셨어요.
저희 나간다고 말씀드릴때 그러셨어요.
이도 해야하고 이러저러 해서 돈이 없다. 그래서 돈을 보태줄 수가 없다.
저... 보태달라고 말씀드린 적 없어요.
다만, 다른 자식들은 뭔가 일이 있을 때마다 받아가는거 보아 온 터라.
그럼 그렇지 어머니가 나한테 돈을 줄 리가 없지...그냥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다른 동서들에게 나쁜 마음도 없어요.
다들 살기 바쁘니 그렇겠지.
내가 야무지지 못하고 맘이 약해서 주머니가 그리 쉽게 열기는 거지.
오히려 현명하고 야무진 동서가 잘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성격차이고, 어머니 동생들 예뻐하는 거, 그런 것도 어머니 맘이니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그러나, 나에게 뭔가를 더 달라는 건 아니지요.
제가 더 이상 뭘 어떻게 하겠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사랑은 없는데, 언제나 바라기만 하시는데, 견딜 에너지가 더 이상 없잖아요


그렇게 설 전날이 지나갔고...
다음날 설날행사가 모두 끝나고 어머니 갑자기 서두르시면서 음식을 챙기기 시작하셨어요.
12시쯤 막내네 가시겠데요.
그래서 우린 친정가겠다고 하니...
점심해 먹고 가래요.
알아서 하겠다...
꼭 먹고 가라....
이때 남편 처가에 가서 점심먹겠다.
갑자기 어머니 단호한 어조로
그런 점심은 거기서 먹고...여기 와서 저녁 먹어라...
남편...처가에서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을 거예요.
어머니....그렇게 먹을 게 있기라도 하냐?
그리곤 떠나셨죠.
이러거면 차라리 니들 힘든데 오지말고 집에서 쉬라고 하시던지...
한달이 넘게 있다 온 손주들...우리들은 안중에도 없고...
막내 아들 아프다고 음식바리바리 싸들고 가버리셨어요..

언제나 명절이면 같은 레파토리..
지겨워 질라고 합니다.
귄위도 없는 맏이 노릇..
사랑은 다 다른 자식에게 가고 언제나 의무만이 남아있는 이 자리..
이것도 사실 제가 야무지지 못하고 똑똑치 못해서 일어나는 일일런지도 모르지만,
저로선 어떻게 뒤집을 지 어떻게 해야 인정을 받을 지 그 방법을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제껏 제 식대로 해왔고, 그러나 언제나 마음아프고..

내가 너무 아까워서 이제 안하려고 합니다.
사람노릇하고 웃으면서 인정하고 인정받으면 살면 참 행복할텐데..
그건 불가능한 노릇인가 봅니다.
사랑받기는 이미 글렀고...
참아야 남는 건 가슴속에 화만 쌓일 뿐이고...

남편이 저 더러 잘했다고 해요.
다음 설에는 아예 나가서 들어오지 말래요.^^
그래야 사람 귀한 줄 안다구요.
참 고마운 남편이지요.
날 힘들게 하는 그분은 사랑하는 내 남편의 어머니.
어머니랑 잘 지내라고 말했어요.
남편이 그래요.
그건 이미 불가능한 일이라고.....
너는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남편이 하라는 대로만 한다면,
이젠 장남노릇 아예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데...


어머니 돌아가시면 한번 울어드릴 거다. 엄마니까 그 정도는 한다고 해요.
그게 자기가 할수있는 최선이라고...
정서가 다 말라버려서 분노조차 일어나지 않는데, 내가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그리고 자기 동생들한테는 잘해주래요.
자기 동생이니까....

저 이제 남편 말만 듣고 살려고 마음 다지는 중입니다.
그런데도 문득 드는 생각, 도리는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도대체 어디까지야 지켜야 할 도리인지..
무시당하는 거 알면서도 지켜야 하는 게 도리인지...
마음닫고 살아도 후에 후회할 일은 없을 지...

전 다른 사람들의 시선따위는 신경안 써요.
다만 내 아이들에게, 내 남편에게 그리고 나에게 만은 떳떳한 사람이고 싶은거죠.
나이드신 부모님들께 과연 이리해도 되는 지...
생각보다 파격적인 남편의 생각을 드러내고 살아도 되는 지...
좀 혼란스럽습니다.

16년만의 도발에 대한 후회따윈 없습니다.
속이 후련합니다.





IP : 122.35.xxx.173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클로로
    '11.2.6 4:30 PM (112.153.xxx.37)

    미래의 절 보는듯한 좋은 남편 만나셨네요~~ 여기분들 많이들 질투하실듯 ㅋ

  • 2. ..
    '11.2.6 4:34 PM (175.112.xxx.214)

    곪았던 것이 터지면 다시 새살이 나오지요.
    이런 글들이 많이 올라왔으면 합니다.
    그래야 관계 개선이 되지요.
    남편분이 합리적인 분인가 봅니다.

  • 3. 그러게요
    '11.2.6 4:35 PM (122.40.xxx.41)

    남편이 현명하시네요.

    뭐 글에 안적으신 사연이 구구절절 있으시겠죠.
    참지말고 사세요. 정말 화병나면 나만 손해.애들만 손해.우리가정만 손해입니다.

    우리가정 행복이 최고입니다.
    잘하셨어요

  • 4. ...
    '11.2.6 4:42 PM (121.160.xxx.44)

    남편분 의향도 존중하시되
    최소한 님이 후회 안하실 정도는 하고 사세요.
    그건 님이 선택하실 문제니까요.
    뭘 바라고 하는게 아니라 해야하니까 한다는 님의 생각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 5. 흔하지 않은
    '11.2.6 5:09 PM (121.134.xxx.44)

    남편이네요..

    시어머니 복은 없어도,,
    더 중요한,,남편복이 있으니,,
    원글님이 승자이십니다^^

  • 6. ..
    '11.2.6 5:14 PM (122.35.xxx.168)

    힘내세요 괜히 도리 따지다 다시 무덤파지마시고.. 남 신경쓰지마시고 남편님믿고 따르시면될듯..

  • 7. 저라면..
    '11.2.6 5:26 PM (58.120.xxx.243)

    시엄마부터..꼬박꼬박 잡고..동생들잍 더 문제네요.
    하긴 시엄마가..그리..만든거겠지만..
    동생들이 무시하네요.

    제사를 무기 삼겠어요.제사 드리던지 하고..받을꺼 다 받고..싫음 동생네 제사 드리라 하세요.
    아마 그럼..불똥이 뛰니..화닥 할껍니다.

    시엄마는 늙었어요...근데 동생들은 더 문제지요.

  • 8. ...
    '11.2.6 5:33 PM (180.64.xxx.147)

    글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네요.
    속 많이 상하셨겠어요.

  • 9. 에고
    '11.2.6 8:49 PM (110.10.xxx.29)

    님도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남편분이나 님이나...잘하셨어요. 나이들었다고 참는게 능사는 아닙니다.
    남편분도 용기내어 한 일일테니...토닥여 주시길....

  • 10. 역시나
    '11.2.6 9:31 PM (121.159.xxx.27)

    가치관이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의 갈등 구조이죠.
    평생 그렇게 살아온 연로하신 부모 세대의 가치관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세대가 지고 새로운 세대가 좀 더 합리적으로 개선시킬 날을 기다리며 공존할 뿐이지요.

  • 11. 원글님
    '11.2.7 9:20 AM (115.136.xxx.24)

    님 글 읽고 대리만족 하고 갑니다
    명절 지내고 온 생각만 하면 속이 부글부글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저도 그렇게 도발하는 꿈 한번 꿔봅니다
    다음부터는 저도 조금씩은 도발(?)하고 살려고 다짐해봐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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