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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하고싶은데 할만한 곳이 없어서...

외국사는 외국인 조회수 : 1,006
작성일 : 2011-01-25 17:47:32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요, 저는 외국에있어서 장례식에도 갈수가 없어요.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질줄은 알고 온거지만, 그래도 외국나온지 1년반 남짓된 신참이다보니
여러가지로 마음이 이상하네요.
물리적거리가 주는 느낌이 꽤 강한거같아요. 별로 돌아가셨다는 기분도 안들어요.
내주변엔 아무일도 일어나지않았는데, 한국에서는 난리가 난거에요. 정말 기분이 이상해요.
할머니는 작년부터 식물인간상태였기때문에
어차피 일년전 이맘때에 지금 울 분량까지 울어놔서 별로 많은 눈물도 안나는데요,
저 한국 떠나기전에 인사할때 왠지 이럴거 같았어요. 왠지 그게 마지막일거같다고 생각해서
새로산디카로 사진도 왕창찍어놨었죠. 정말 잘한거같아요. 사진이라도 왕창 안찍어놨으면 어쩔뻔했을까.
왠지 기분이 마지막일거같았지만, 그래도 일시귀국했을때 또 볼수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무덤으로 보겠네요. 기분이 아주 이상할거같아요. 굉장히 개성이 강한 양반이었기때문에
죽지않을줄 알았어요. 다른사람들이 다 죽어도 끝까지 살아있을줄 알았어요. 그만큼 엄청 쎈 양반이었어요.
저랑 별로 사이는 안좋았는데, 운명인지 숙명인지 늘 같이살았어요. 다른 자식들도 많고, 다른 손자손녀들을
훨씬 이뻐했지만, 왠지 계속 저랑 엮여서 지냈어요. 저를 괴롭혀서 정신병원도 다녀봤지요.
아무튼 그래도 싫든좋든 늘 제가 옆에있었으니까, 지금도 제가 가있어야할거같은데
전 돈이없어서 한국에 지금 날아갔다올수가없어요.
원래는 김치를 참 맛있게 만들던 양반이었는데, 치매가 느릿느릿 오기시작하면서 김치맛이 해마다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었어요. 결국은 온갖남은재료로 짬뽕국을 만드는 시기까지 왔었는데
안먹으면 서운해해서 뭐가됐든 계속 먹어주다가 나중엔 화도내고 그랬어요.
그 변천사를 낱낱히 지켜본다는게 정말 기분이 이상했어요. 분명 사는게 힘들었기때문에 치매가 왔을거에요.
남편이랑 아들 둘이 먼저 죽었거든요. 그래서 엄청 힘들어했었죠.   남편복은 좋은 양반이었어요.
일제시대에 위안부 끌려갈까봐 옆동네 총각하고 얼굴한번 못본채 조기혼인시켜버린건데, 운이 참 좋아서 엄청
잘생기고 착한남편만나서 가정을 호령하며 살았죠. 그런남편은 천사이기때문에 일찍 하늘이 데려간듯해요.
근데 유전자는 할머니 것만 물려받는건지, 그 잘생긴 할아버지랑 닮은 사람은 자손중에 아무도없네요.
아 그양반 폐지도 주우러 다녔었어요. 이불장밑에 돈도 많으면서, 다른 폐지줍는 노인분들께 폐가되는 행동을 했었죠.폐지를 주워서 돈으로 바꾸는것도아니면서 집안 마당에 곳곳에 박스지를 접어서 빌딩처럼 쌓아두곤 했어요.
치매에서 오는 기행이기도했지만 마치 그거 무슨 예술같았어요 내생각엔.

마지막모습은 요양원에서 두유를 마시고 있었고, 어린애처럼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족들은 잠깐 면회하고 바삐 어딜가야해서 얼른 얼굴만보고 빠져나왔어요.
근데 그냥 빠져나오면 막 같이 집에가고싶어하고 힘들어하기때문에,
주의를 분산시키기위해 크게 트로트를 틀고, 같이 노래부르고
놀다가 가족들이 한명씩 한명씩 밖으로 나가는 방식으로 나갔어요.
난 그게 정말 슬펐어요. 그래봤자 고작 몇시간 더 있어주는정도겠지만.
내가 늦둥이 동생이랑 가장 늦게 나왔는데, 계속 트로트는 크게 울려퍼지고 막둥이는 계속 춤추고 노래부르고싶어했고, 나는 어쩌지못하고 동동구르고있었는데 부모님이 얼른 잡아끌어서 나왔어요.
그게마지막.
그리고나서 식물인간되기전에 울엄마한테 멘트 하나 던졌대요. 아마도 그게 유언에 가까운거같네요.
제가 잔재주가많아서 너네(엄마랑 아빠)를 먹여살릴테니 늙어서 걱정없겠다고 그랬대요.
지금 꼬락서니를 봐서는 어디서 돈을 벌어와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수있을지 전혀 이해가 안가지만
그렇게되면 저도 좋겠네요.
치매가 심해졌던때에 늘 집앞에 나와서 하루종일 앉아있거나, 어디론가 가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했을때에.
그때 어떤기분이었을까 무슨생각이었을까. 전 그게 가끔 궁금해요.
버스로 40분도 넘게걸리는 거리를 무작정 걸어가서 그동네 파출소에서 발견되서 가족이 찾으러가는 등
그런일이 많았어요. 집에가고싶어서 계속 걸었다고 대답해요. 집이 어딘데.
근데 노인은 냄새도나고 치매까지 걸렸으니 여러모로 같이살기 편하진 않잖아요
그래서 가족들이 말년에 엄청 외롭게 뒀어요. 난 그거 계속 보면서도 나도 별다르게 살갑게 해주지 못했어요.
쌩쌩했을때 날 괴롭혔으니까 라고 생각하면서요. 근데 진짜 그런거 비겁한거같구요. 후회해요.
어딘가에서 생긴 결핍이나 상처를 나한테 투사한거겠죠. 충분히 있을수있는 일이에요.
그런거 서로 물려주고 물려받지않도록 애쓰고싶지만, 나는 어떤 노인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사랑받는 노인이 되고싶은데 그런거 역시 힘들겠죠.
근데 큰 전쟁도 두번겪고, 젤 사랑하던 자식도 죽고, 치매도 걸리고, 사람들이 냄새나고 사고친다고 싫어하고, 외롭고아무것도 세상에 남은것도 미련도 없을거 같았는데도
정말 살고싶어했어요. 늘 더 오래살고싶어했어요. 그걸보고 부모님은 엄청 신기하다고 했었어요.
그래도 사는게 행복했나봐요. 어떤형태로 사는것이든 죽는거보다는 사는게 좋았나봐요.
하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좋을거라고 믿고싶어요. 삶속에서도 뭔가를 놓았을때 느끼는 쾌감같은게 있잖아요.
모든것을 놓아버린 지금, 그런 쾌감을 느끼고 있다면 좋겠어요.
게다가 그 아끼던 먼저 간 자식이랑 천사남편이 마중나와있는거라면, 훨씬 여기보다 낫지않을까요.
나같은거랑 지지고 볶는거보단 행복할거라고 믿고싶어요.
이젠 진짜로 집을 찾았을까요. 집에가고싶어했는데.



IP : 93.217.xxx.79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이불
    '11.1.25 5:52 PM (125.176.xxx.20)

    우리 외할머니랑 비슷하세요...ㅡㅜ
    저도 외국에 있어서 외할머니 임종도 못봤는데...
    한국에 있을때 토마토 갈아서 드린게 마지막이였는데..그렇게 언제오냐고 언제또 오냐고 물었었는데
    우리 외할머니도 참 외로우셨겠구나..싶은데..
    지금은 우리엄마가 참 외롭겠구나 싶은데 참 살갑게 안되요..인생이 참..그래요

  • 2. 심성이
    '11.1.25 5:53 PM (211.58.xxx.64)

    참 고우신 분이로군요.
    토닥 토닥 ~~~

  • 3. 마음이
    '11.1.25 5:57 PM (122.34.xxx.19)

    차암 먹먹해지네요. ㅠㅠ
    원글님의 진심이 듬뿍 담긴 추도사같아요.
    할머니는 분명 사랑하는 가족들과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고 계실거에요.

  • 4. 감정이입
    '11.1.25 6:01 PM (118.220.xxx.178)

    외국이 아니라 한지역에 있어도, 애먹인 할머니가 아니라 가여운 엄마였어도...저도 비슷해요.엄마가 너무 오랫동안 힘든것이 너무 안스러웠어요. 돌아가셨을때 이제는 편히 쉬시게 되셨길 하며 믿고 싶었어요. .... 근데 엄마없는 제가 이젠 너무 무거워요. 애들때문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아직은 배려를 받고 있어요. 저도 털고 일어나 쓸모있는 밝음을 전파시킬 발동을 걸어봐요.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역시 스스로에게도 주변에게도 가장 적합한 위로인것 같아요.

  • 5. ....
    '11.1.25 6:05 PM (221.151.xxx.13)

    해는 져서 어둑어둑해지는데 원글님 글이 꼭 다큐멘터리 드라마같아서 가슴이 참 먹먹해졌어요.
    할머니가 원글님은 많이 아끼신것 같아요.할머니만의 방식으루요..
    머나먼 외국땅에서 어떤 기분이실지...그 거리란게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현실성이 없는 느낌.알것도 같아요.
    기운내셔요...

  • 6. Anonymous
    '11.1.25 6:24 PM (221.151.xxx.168)

    저 지금 한국에 나와 있는데 혼자 사는 우리 친정 엄마 놔두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이즘 이게 젤 걱정이예요 ㅠㅠ

  • 7. ...
    '11.1.25 6:42 PM (121.169.xxx.129)

    소설책 한 권 읽은 느낌이예요.
    엄마를 부탁해 같기도 하고....
    먹먹해지네요.

  • 8. 훠어이!
    '11.1.25 6:50 PM (117.53.xxx.31)

    내 엄마였던 우리 이모가 지금 그래요.
    경우 바르고 지적인 여성이었는데, 쉬이 지는 꽃잎 같은 존엄성마저 찾아보기 힘든.
    내 어릴적 그 사람은 다 사라지고 없어요.
    멀리 이사갔다는 걸 이유로 내 마음 속 엄마가 사라질까봐 애써 안보려 합니다.
    나만의 사람이었는데.... 사라져만 갑니다.

  • 9. 아..
    '11.1.26 11:26 AM (115.91.xxx.13)

    눈물이 돌면서 가슴이 먹먹하네요.
    가족이 참 그런건가봐요. 모든 감정의 대상이고 또 어디에 가서든 끊어지지 않는 연결이고.
    원글님을 참 많이 사랑하셨던 것 같아요. 원글님도 그렇고.
    가야 할 곳으로 가셔서 행복하고 편안하실거예요. 이제 더 헤메지 않으실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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