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옥
글/김덕길
안동의 농촌 마을에 해가 떴다. 해는 겨울 풍경에 얼어 붉은 빛을 담고 떠올랐다가 이내 은색으로 빛나며 젖은 서리를 털었다. 서리꽃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날렸다. 텅 빈 논바닥 베어진 벼 포기에도 서리꽃이 피었다.
농부인 김용태는 서리꽃을 털어내며 짚가리의 볏단을 끌어내렸다. 김용태는 볏짚을 기계에 넣었다. 수염이 덥수룩해 초췌해 보이는 김용태는 귀마개를 만지작거리며 기계의 스위치를 올렸다. 기계가 요동쳤다. 잠시 후, 기계에선 잘게 잘린 지푸라기가 쏟아졌다. 김용태는 지푸락에 사료를 섞고 밤새 불린 찹쌀을 섞었다.
김용태는 펄펄 끓인 쇠죽을 다라에 싣고 축사로 향했다. 돼지에게는 사료를 먹이통에 들어부었고 소의 축사에는 쇠죽을 쏟아 부었다. 뜨거운 훈김이 축사 안을 맴돌았다.
380마리의 돼지가 폴짝폴짝 뛰어 먹이통으로 몰려왔다. 26마리의 소가 먹이통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김용태는 돼지가 골구로 사료를 먹도록 돼지들을 사방으로 분산시켰다. 소에게는 쇠죽을 떠서 각각의 여물통에 고루고루 들어부었다. 모든 돼지의 눈이 먹이통으로 향했고 모든 소의 머리가 구유로 향할 때 김용태의 눈은 차마 돼지와 소의 눈을 쫒아가지 못했다. 그는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멀리 산자락에도 희끗희끗 눈이 보였고 헐벗은 산의 나무가 겨울 추위에 오돌돌 떨었다. 바람은 나무와 나무사이를 사정없이 헤집고 다니다 축사의 양철지붕에 들이쳤다. 양철지붕이 삐그덕소리를 냈다. 김용태는 긴 숨을 내 쉬었다. 들숨에 날아간 수증기가 쇠죽의 수증기와 어울려 한 몸이 되었다.
멀리서 흰색 자가용이 축사를 향해 달려왔다. 자가용은 축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췄다. 운전을 한 그녀는 이미림 기자였다. 그녀는 나머지 신문을 마저 읽었다.
-영국은 2차 대전 중 비밀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Porton Down 과학자들은 세균 공격을 위해 구제역, 티푸스, 콜레라를 연구했으며 치명적인 전염병 확산 방안을 강구했다. 영국 정부는 2차 대전 중 독일의 소들을 감염시키고자 탄저병 케이크 500만개를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의 문서들에 의하면, 대부분 Salisbury 근교의 Porton Down과 Surrey의 Pirbright에서 훨씬 더 다양한 질병들에 대한 연구가 실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실험은 '적'의 그런 공격에 대해 방어할 때도 필요하고, '보복의 수단'으로 사용할 때도 필요하다. 탄저병, 구제역, 소 페스트 등 일부 동물 질병들은 비행기로 목초지에 살포될 수 있을 것이다. 전염성의 탄저병 균들은 며칠의 말미를 주면, 대량으로 생산될 수 있었다.
신문을 다 읽은 이미림 기자는 긴 숨을 내 쉬었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축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돼지가 서로 주둥이를 들이밀고 싸우며 먹이쟁탈전을 했다. 유난히 털이 검은 돼지의 주둥이에는 굳은살이 박혔다. 굳은살이 박힌 돼지의 주둥이는 흰점박이 돼지의 주둥이를 사정없이 들이밀었다. 흰점박이 돼지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실컷 먹은 검은색 돼지가 뒤로 물러나자 흰점박이 돼지가 걸신이 들린 듯 먹이를 먹었다. 소 우리에선 소가 콧김을 불어가며 쇠죽을 식혔다. 쇠죽이 식자 소는 씹지도 않은 채 쇠죽을 삼켰다.
잠시 후, 돼지는 배가 부른지 서로의 배를 내밀고 두엄바닥에 드러누웠다. 소는 축사 밖 겨울풍경을 바라보며 선채로 방금 삼켰던 먹이를 되새김질 했다.
김용태가 젖은 외양간의 거름을 치우고 마른 지푸라기를 우리 안에 수북이 뿌렸다. 바닥이 푹신해지자 소는 일제히 걸어가 새로 깔린 지푸라기 더미에 앉았다. 소가 되새김질하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렸다. 김용태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김용태는 담배 한가치를 물었다. 담배연기가 축사 안을 맴돌았다. 조금 떨어진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에 까치가 앉아 울었다. 멀리 포플러 나뭇가지에는 까치집이 만들어졌다. 이파리 떨어진 포플러 나뭇가지가 앙상했다. 하늘엔 하얀 구름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흘러갔고 땅에선 모처럼 배불리 먹은 돼지와 소가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축사 밖에서 누군가가 신호를 보냈다.
축사에서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이미 대기하고 있던 공무원들중 지휘자로 보이는 자가 방진복을 입은 채 서두르라고 손을 저었다.
김용태는 담뱃불을 끄고 마침내 결심한 듯 돼지우리의 빗장을 열었다.
두엄 바닥에 누워 구린내를 맡고 있던 돼지들이 자유를 만난 듯 빗장이 열린 우리 밖으로 뛰어갔다.
실컷 먹은 돼지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돼지들은 질척한 두엄자리에서 벗어나 우리 밖으로 뛰며 신선한 겨울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러나 몇몇 돼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예고한 몇몇 돼지가 축사주인 김용태를 바라보며 가녀린 시선을 보냈다. 몰이조가 채찍과 몽둥이를 들고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는 돼지를 몰아냈다. 느닷없는 몽둥이찜질에 돼지들은 혼비백산했다.
380마리의 돼지가 줄을 지어 우르르 뛰기 시작했다. 우리에서 백 미터가 끝나는 지점에 커다란 구덩이가 하나가 새로 생겼다. 구덩이는 깊었고 떨어지면 다시는 오를 수 없는 절벽 속 같았다. 물이 없는 구덩이다. 구덩이 속은 두툼한 비닐이 깔려있었다. 여기저기 하얀 석회가루가 날렸다.
갑자기 앞서가던 돼지가 구덩이 앞에서 멈칫거렸다. 돼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태파악에 나섰다. 돼지의 눈에는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침울한 사람들의 표정이 들어왔다. 시종일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김용태의 초췌한 표정이 들어왔다. 주위는 숙연했고 알 수 없는 공포가 차가운 겨울공기를 더 얼렸다. 겁을 먹은 돼지가 구덩이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몰이조의 채찍에 돼지는 구덩이 안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충격에 돼지의 턱에 금이 갔다. 흰점박이 돼지의 다리는 부러져 너덜거렸다. 떨어진 돼지 위에 또 다른 돼지가 떨어졌다. 떨어진 돼지의 머리가 터졌다. 터진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흰 점박이 돼지의 몸이 금세 붉어졌다.
포클레인 기사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23,500kg을 들 수 있는 육중한 몸무게의 포클레인은 6,980m의 구덩이를 팔 능력을 갖추었다. 포클레인 기사는 그 육중한 버켓을 들더니 이윽고 돼지의 무리를 향해 팔을 뻗었다. 포클레인의 버킷에 맞은 돼지의 창자가 터졌다. 돼지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미 만삭이 된 돼지의 뱃속에서 돼지 새끼들이 튀어 나왔다. 운전기사의 표정이 침울했다. 기사는 죽어 나자빠진 돼지를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뒤이어 따라오던 돼지는 영문도 모르고 구덩이로 뛰어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차에서 내린 이미림 가자가 뛰었다. 뛰어온 그녀의 손이 포클레인 기사의 운전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손엔 신문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기사가 운전을 멈췄다. 투여조 네 명이 긴급히 뛰어와 그녀를 끌어냈다. 운전은 다시 시작됐다.
여자가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녀가 내민 신분증에는 ‘민중의 소리 신문사 기자증’ 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녀는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
그녀가 재빨리 메모를 해서 투여조 책임자에게 보였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락사를 시킨 다음에 매장해야죠. 산채로 매장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동물이라지만 이래서는 안 됩니다. 돼지들의 저 눈빛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메아리에 불과했다.
투여조 책임자는 간단히 메모를 해서 보여주었다.
-안락사를 시킬 약조차 없어요. 저리 가세요.
아래쪽 축사에서 돼지를 실은 5톤 트럭이 구덩이 앞에 다다랐다. 트럭의 뒷문이 열리자 트럭 짐칸이 하늘로 솟구쳤다. 차에 실렸던 수십 마리의 돼지가 구덩이 안으로 떨어졌다. 현장은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수백 마리의 돼지가 발버둥을 쳤다. 허사였다.
같은 시각 수의사들은 방진복을 입고 소의 우리 앞으로 다가섰다.
나오지 않는 소를 몰이조가 끌어냈다.
소가 한 마리씩 우리 밖으로 나오자 수의사는 근육이완제인 독극물 0.1g을 주사했다. 소는 15초를 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젖을 짜는 젖소는 아예 한 발짝도 우리 밖으로 나가려하지 않았다. 몰이조가 몽둥이들 들고 소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소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다리를 꿇고 주저앉았다. 몰이조가 소의 다리를 내리쳤다. 소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고꾸라진 소를 묶음조가 뛰어와 포획했다. 이미 죽음을 알아차린 듯 소들의 눈에선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매달렸다. 몰이조가 소의 코뚜레를 잡고 일부는 다리를 묶은 줄을 강제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독극물을 투여했다. 소가 정신을 잃자 운반조가 소를 질질 끌어 돼지가 떨어져 난장판인 구덩이에 다시 떨어뜨렸다. 죽은 소가 산 돼지를 밟고 축 늘어졌다. 수십 마리의 돼지가 압사했다.
두 마리의 소는 배에 가스가 가득 찼다. 이미 독극물에 죽은 소의 돼지를 그들은 낫으로 다시 찔렀다. 배에서 가스가 새 나왔다.
마지막 소가 우리에서 끌려나왔다. 마지막 소에게 독극물이 투여되는 순간이었다. 소는 임신이 되어있었다. 소는 죽으면서 송아지를 낳았다. 송아지가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다. 수의사는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송아지에게 다시 독극물을 투여했다.
민중의 소리 신문사 이미림 기자가 이 장면을 찍었다. 그녀는 긴급으로 이 사진을 본사에 송고했다.
수의사의 손이 덜덜 떨렸다. 수의사는 끝내 뒤돌아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이미림 기자가 수의사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참담합니다. 정말 못할 짓입니다. 동물이 아프면 병을 고치라고 여태 공부를 했는데 이게 뭐란 말입니까? 저 소를 따라서 차라리 나도 죽고 싶습니다.
이미림 기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물었다.
-혹시 구제역으로 죽은 소를 보셨습니까?
-죽은 소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죽인 소가 대부분이지요.
이미림 기자는 축사 밖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농부 김용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 기자가 내민 메모지는 이미 반 쯤 젖어있었다.
-힘드시겠지만 현재 심경을 한 말씀만 해 주세요.
김용태는 떨리는 손으로 인터뷰 용지에 글을 썼다.
-죽을 맛입니다. 태어나서 눈도 뜨지 못한 저 소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저렇게 죽여야 합니까? 이 많은 돼지와 소는 모두 내 가족 같은데 이렇게 무참하게 죽여서 내가 어떻게 조상을 볼 낯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김용태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서서 벽을 치고 통곡했다.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먼발치서 이 모습을 보며 오열했다.
-혹시 이 곳 축사에서 구제역으로 죽은 소가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소 한 마리가 상태가 이상해서 신고했을 뿐인데 그곳에서 다짜고짜 구제역이니 매몰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혹시 텔레비전에서 다른 지역의 소라도 구제역으로 죽은 소를 보셨나요?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의심 신고만 하면 확진 판정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소와 돼지가 모두 구덩이에 들어가자 공무원들은 그 위에 소와 돼지가 먹던 먹이통과 볏짚 오물까지 모조리 집어넣었다. 모든 일이 끝나자 공무원들이 구덩이 위로 석회가루를 뿌렸다. 살아있는 돼지가 꽥꽥 소리를 내며발광했다. 그리고 소독차를 이용해 소득액을 살포했다. 뒤이어 포클레인 기사가 흙을 퍼서 발악을 하는 돼지의 몸통위로 흙을 뿌렸다. 포클레인의 육중한 버킷이 퍼 올린 흙은 순식간에 구덩이를 메웠다. 통곡의 소리가 한동안 흙무덤 안에서 들리더니 이윽고 소리는 차츰 낮아졌다. 순간 세상은 고요했다. 정적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아수라장이던 축사가 텅 비었다.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갔다.
수십 명의 방진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팔짱을 낀 채 무심히 이를 지켜보았다. 구덩이에선 악취가 풍겨 올라왔다. 이들은 차를 타고 다시 다른 매몰지를 향해 출발했다.
이미림 기자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소의 비명과 돼지의 비명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서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문사 본사에서 긴급 전문이 들어왔다.
-침출수 문제를 취재할 것.
이미림 기자는 잠시 눈을 부친 후 새벽녘에 일어났다. 문득 고향에 계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이 기자는 문자를 보냈다.
-딸 미림입니다. 아버지! 구제역으로 난리인데 거긴 어떠세요?
문자를 보내놓고 미림은 축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매몰지에서 나는 악취는 가시지 않았다.
길가 진입로 방역작업장에는 소독액이 추운 영하의 혹한에 얼어붙어 거대한 눈 더미로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우뚝 서서 말이 없는 산뿐이었다. 미림은 발끝에 차이는 서리꽃을 털어내며 걸었다.
축사에서 500m떨어진 곳에 작은 논이 있다.
비양구지댁 논이다. 논은 그해 벼보다 더 웃자란 억새풀로 밀림을 이루었다. 벼는 억새풀 사이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쭉정이만 매달렸다. 억새풀이 흔들리자 쭉정이가 된 벼가 억새에 치여 같이 흔들렸다. 탈곡할 게 없어 그대로 방치된 논은 이미 풀숲으로 변해있었다. 땅은 검푸른 색을 띠었고 땅위로 악취가 진동했다. 축사에서 떠내려 온 가축의 인분이 이곳 논에 쌓여 땅이 너무 비옥해지자 벼가 성장을 못하고 멈춰 버렸다. 잡초들의 키가 벼보다 훨씬 커서 햇빛을 차단시켜 버린 결과였다.
미림은 비양구지댁 논 아래쪽에 사는 형언이네 집 수도를 살펴보았다. 수돗물은 얼어서 나오지 않았다. 중학생인 형언이 어머니께 사정을 손짓발짓으로 설명하고 물이 나오는 부엌으로 갔다. 형언이가 쪼르르 뛰어나와 미림의 행동을 관찰했다.
미림이 부엌에 있는 수도를 틀자 수도에서는 맑은 물이 쏟아졌다. 미림은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인사를 하고 막 돌아가려는데 형언이가 다급하게 불렀다. 미림이 듣지 못하고 막 마당을 나서려는데 형언이가 뛰어와 미림의 팔을 붙들었다. 미림은 형언 이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미림은 깜짝 놀랐다. 수돗물에서는 붉은 핏물이 심한 악취를 풍기며 쏟아졌다. 미림은 기겁을 하고 놀랐다.
형언이가 깜짝 놀라자 미림의 어머니가 달려왔고 미림의 어머니가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채 넋을 놓았다. 어제까지도 멀쩡했던 수도가 위에서 매몰한 뒤부터 이런다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미림은 이곳저곳을 취재하며 하루를 더 묵었다.
지하수는 땅속으로 무수히 많은 물길을 만들었다. 매몰 현장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작은 강이 있다. 마흔 살 노총각 차현준은 강의 물을 끌어들여 장어를 키웠다.
전국 민물 장어의 80%를 납품하는 그 곳에는 장어 수만 마리가 아침마다 각 장어식당으로 팔려갔다. 그러나 올해의 농사는 흉년이었다. 가을부터 가물기 시작한 강의 물이 바닥을 드러냈다. 차현준은 할 수 없이 지하수를 팠다.
지하 수백 미터에서 뿜어져 나온 물을 하루 동안 빈 논에 가두었다가 다음날 장어농장으로 흘려보냈다. 모든 시스템은 자동으로 이어졌다. 논에 가둔 물이 얼지 않도록 비닐하우스를 씌웠다. 차현준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에 일어나 장어를 사러 올 손님들을 위해 물을 끓였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손님들에게 건네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차현준이 막 수돗물을 틀 때였다.
수돗물에서는 붉은 피가 쏟아졌다. 차현준은 깜짝 놀랐다. 순간 차현준은 부리나케 가두어둔 논물로 달려갔다. 이미 논에 가두어둔 물은 핏물범벅이었다. 악취까지 심하게 진동했다.
“안 돼!”
차현준이 지하수로 연결된 수돗물을 막고 황급히 장어농장으로 뛰었다.
그러나 이미 장어농장은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수백만 마리의 장어가 배를 드러낸 채 물위에 둥둥 떠 있었다.
마흔 살 노총각 차현준이 농협 빚을 얻어 크게 한번 성공해 보겠다고 장어 농사에 뛰어든 지 어언 10년, 이제 겨우 빚을 갚고 내년이면 아파트를 장만해서 결혼까지 하겠다고 들떠있었는데 그의 꿈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차현준은 다음날 장어 양식장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미림은 내비게이션 DMB TV자막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미림이 송고한 침출수 원고가 이튿날 밤 아홉시 뉴스 톱기사로 실렸다.
다음 날 저녁쯤에 미림의 아버지가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가 문자를 보낼 줄 몰라서 하교하는 학생을 시켜 문자를 대신 보낸 것이다.
-미림아! 얼른 내려와 봐! 이곳은 지금 조류인플루엔자로 난리구먼. 그동안 키운 씨오리 수천마리를 모두 땅에 묻게 생겼어야.
미림은 차를 천안으로 몰았다.
미림은 자신이 벙어리가 된 어릴 때의 처절했던 상황을 잊지 못했다.
잊고 있다가도 취재에 큰 사건이 생기면 어김없이 어릴 때 기억이 미림을 괴롭혔다.
천안에서 오리농장으로 유명했던 미림의 집에서 미림은 오리들과 곧잘 어울렸다. 미림은 오리를 몰고 개울에 가서 조개를 캐먹도록 시키기도 했고 그것으로 먹이가 부족하면 모이통에 모이를 놓고 휘파람을 불었다. 오리들은 미림의 휘파람소리를 기막히게 알아맞혔다. 어느 날이다. 미림이 오이들과 놀다가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 먹던 참이었다. 미림은 근처 의자에 누워 새우깡을 머리맡에 둔 채 잠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미림이 남긴 새우깡을 향해 달려왔다. 오리의 부리가 새우깡을 쪼았고 새우깡 옆의 미림의 얼굴을 쪼았다. 새우깡은 봉지가 터진 채 난분분했다. 터진 새우깡이 미림의 귀로 들어가자 오리는 미림의 귀를 쪼았고 미림의 고막을 쪼았다. 미림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되었고 그 후 미림은 영영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미림은 오리만 보면 겁에 질렸고 그 후론 고향집에 잘 가지 않았다. 미림이 기자가 된 것은 다름 아닌 특출 난 사진 때문이다. 미림은 어릴 때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미림이 찍은 사진은 사람이 아니었다. 동물을 찍었고 동물의 아픔을 찍었다. 어느 날 미림이 찍은 사진 한 장을 ‘민중의 소리’신문사에 기고하자 신문사측에서 사진기자로 일해 볼 생각이 없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미림이 자신의 처지를 알고 극구 사양했으나 신문사의 집요한 설득 끝에 허락하고야 말았다.
고향집으로 가는 내내 도로에 설치된 방역 기는 오십여 곳이 넘었다.
천안에는 구제역과 조류독감현황을 파악하고자 국무총리와 농림수산 식품부, 국정운영실장, 공보 실장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꺼번에 천안시로 몰려와 야간 초소에서 대체 근무를 하겠다고 나섰다. 살을 에는 추위에 이들은 적응을 하지 못했다. 대체근무소리는 현장에 와서 사라지고 현재 근무 중이던 공무원과 같이 근무를 했다. 이들은 갖가지 지원약속을 해 놓고 사진만 커다랗게 찍은 후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고향집은 이미 도로가 통제되어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아예 봉쇄시킨 것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초소 근무자한테 저녁 식사가 배달되었다. 막힌 도로에서 식사 바구니를 전해주면 방역초소 근무자가 밥통을 찾아왔다. 이미 음식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꽁꽁 언 밥을 이들은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주야로 근무하는 이들은 차츰 지쳐갔다. 아산에 근무하던 고령의 근무자가 지난밤에 추위에 얼어 죽었다. 음식과 약품을 운반하던 임산부 여직원들 세 명이 하혈을 하며 쓰러졌다. 이들은 모두 유산했다. 군인 두 명이 초소에서 근무 중 안면 마비가 와서 군부대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매몰 작업은 밤에도 이어졌다.
바로 미림이의 집오리들이 매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넋이 나간 채 병원에 실려 갔다. 아버지는 가까스로 멍한 표정으로 포대에 담겨지는 오리들을 바라보았다. 오리들은 거대한 포대에 산채로 담겼다. 포대 한 개에 수십 마리가 동시에 담겼고 오리는 숨도 재대로 못 쉰 채 묶인 포대 속에서 발버둥 쳤다.
근처 공주에 사는 박 씨네 가축농장에서는 조류독감이 오기 전, 이미 오골계 수천 마리가 야음을 틈타 비밀 장소로 이동했다.
전라도 인근 지역이다. 반경 10키로 안에 가축 농장이 전혀 없는 곳으로 오골계는 옮겨졌다. 마치 수송 작전을 방불케 했다. 닭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나면 그 마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수송은 밤에 몰래 이루어졌다. 혹시라도 있을 매몰처분에 대응하고 씨오골계는 꼭 살려야한다는 주인의 고집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미림은 아버지에게 수화를 했다.
-아버지! 사람은 살고 봐야지요. 어쩌겠어요?
-죽고 싶다. 자식같이 키운 오리들인데 이제 어쩌면 좋으냐?
-아버지! 혹시 조류독감으로 닭이 죽었나요?
-아니다. 이상 증상이 있어 신고를 했을 뿐인데 당국에서는 다짜고짜 매몰부터 해야 한다고 난리구나.
-확진 판정은 났나요?
-말은 확진판정이 났다고 그러는데 내가 아냐? 그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이미림 기자는 살 처분의 저의를 의심했다.
분명 이것은 뭔가 잘못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수십 명의 방진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수백 개의 오리를 묶은 자루를 지게차에 실어 날랐다. 포대를 끄르자 오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반은 죽어있었고 반은 장시간 자루 속에 쳐박혀있어 일어서지도 못했다. 이들은 오리들을 구덩이에 몰아넣었다. 살자고 도망치는 오리를 몽둥이로 쳐 내렸다. 오리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꺾였다.
죽는 순간에도 오리들은 오리 알을 낳았다. 깨진 오리 알의 진액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오리의 몸을 뒤집어썼다. 인근 축사에서 실어온 닭이 오리위에 퍼부어졌고 죽은 닭과 산 오리가 엉켜 아비규환을 만들었다.
포클레인과 불도저가 흙을 밀어 덮었다. 이윽고 매몰현장의 불이 꺼졌다. 아버지는 술에 만취된 채 방에 쓰러졌고 미림은 아버지의 방 보일러 온도를 올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야밤에 이루어진 끔찍한 매몰 현장은 이렇게 덮여졌다. 이미림 기자는 그 생생한 생매장 현장을 본사에 송고했다. 현장을 빠져나가려는데 뭔가 푸드덕 거리는 것이 보였다.
오리다.
매몰 현장을 뚫고 용케 살아나온 오리 세 마리가 산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이미림 기자는 산으로 도망치는 오리를 찍었다. 그리고 내버려두었다. 산으로 가도 어차피 죽을 목숨들, 이미림 기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앞을 가로막아 더는 운전할 수가 없었다. 이미림 기자는 운전대를 붙잡고 꺼이꺼이 통곡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미림은 바로 어머니의 입원실로 향했다.
병원 텔레비전에서는 마감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방송에는 바로 오늘밤 매몰된 미림의 고향집이 텔레비전에 잡혔다. 산채로 생매장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그대로 방송되었다. 미림의 어머니가 절규했다. 절규는 끝내 사람의 넋을 빼 놓았고 미림의 어머니의 심장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채 끝내 숨이 넘어갔다.
미림은 어머니를 붙들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1년 후, 오리를 묻은 매몰지구 현장 근처에 무덤하나가 생겼다.
이미림 기자는 독극물에 죽으면서도 새 생명의 씨앗인 송아지를 낳던 소의 처절한 모습을 찍어 신문에 냈던 그 사진 한 장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미림 기자는 수상을 거부했다.
퓰리처상 수상 거부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전 세계가 이미림 기자를 취재했고 이미림 기자는 세계의 수많은 언론 앞에서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이미림 기자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원고를 세계의 언론 앞에 공개했다.
원고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전쟁에서 한국은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이것은 한미 FTA협상에서 미국의 축산업을 유리하게 진행 시키고자 계획한 미국의 치밀한 작전이었고 연평도 도발로 발목을 잡힌 한국정부의 굴욕외교였습니다.
이에 말려든 한국은 이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했고 한국의 축산업은 끝내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저렇게 죽은 소의 영혼을 위로하고 누가 저렇게 생매장된 돼지의 영혼을 위로하고 누가 처참하게 죽어간 닭과 오리의 생명을 위로해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이 전쟁의 패배 대가로 받은 퓰리처상 수상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수상 거부 소식을 이 차가운 무덤 속에 누워계신 어머니에게 전합니다. 아울러 처참하게 매몰된 수백만 마리의 가축에게도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그러나 희망을 잃지 맙시다.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질경이처럼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민중의 소리 신문사 이미림 기자 올림.
같은 시간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고 백악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관계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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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생지옥
김덕길 조회수 : 333
작성일 : 2011-01-17 12:00:01
IP : 112.152.xxx.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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