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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튀니지입니다.

북아프리카의보석상자 조회수 : 2,027
작성일 : 2011-01-17 11:40:23
    

  여기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입니다.



안녕하세요?

예전에 세계사시간에 배우신 한니발 기억나시죠? 여기는 용맹한 한니발의 고향 카르타고( Cartage), 머나 먼 북아프리카 튀니지입니다. 또 하얀집들에 파란 창문들만 있는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 사진도 어디선가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저는 지난 해 3월부터 튀니지에 살고 있는 주재원 가족입니다.
지중해를 품은 아름다운 풍광에도 반했지만 그런 첫인상보다 살면서 서민층사람들이 친절하고 순박하고 젊은이들이나 중산층들은 나름대로 자존감이 높고 남의 권리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식이랄까 국민성같은 것이 느껴져서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옛 페니키아부터 로마, 이슬람, 서구문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유적지를 간직한 나라이구요. 이태리,아랍계혼혈이 많아서 여성들은 몸매가 놀랍고 선이 뚜렷하고 매력적인 미인들입니다.
이슬람이 국교이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으로 개방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가경제는 안중에도 없는 대통령측근들(특히 처가쪽)의 비리와 부패가 극에 달해 중산층 이하의 생활을 해야 하는 국민들은 몹시 어려운 삶에 시달려 왔습니다.

요 며칠 제가 겪은 일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지난 14일(금요일) 전 대통령 벤 알리가 망명하자 시위대를 가장한 과격한 폭도들이 벤 알리의 친척들이 사는 집들을 공략, 약탈하고 방화까지 했습니다.
대부분의 한인분들은 아파트에 사시지만 저희 집은 치안이 좋다고 해서 비교적 선호하는 단독주택지에 잡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 근처에 대통령의 먼 친척집이 있었던 가 봅니다. 셔터를 내린 채 2층  창문 틈새로 내다 본 바로 앞 동네풍경은 이게 현실인 지, 영화속인 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놀랍고 충격적이었습니다.
몇 십명이 먼저 휩쓸고 간 뒤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 와서 그 친척집의 온갖 세간들과 창문까지 끝없이 떼어 가는 모습(세간살이가  엄청나다는 것도 놀랍더군요. 저희집의 10배는 되었어요)과 마침내 불까지 지르는 모습을 지켜 보며 표현할 수 없는 공포심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여러 경로로 경찰들을 불렀지만  경찰들이 와서는 인파에 질렸는 지  줄행랑을 놓더군요. 통금이 오후 5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였는데도 어둠을 틈탄 무리들이  며칠 전에 피신한 그 옆집(외국인)의 문을 부수고 약탈을 해 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긴장했는 지 모릅니다. 한 잠도 못자고 새웠습니다. 아침에 내다 본 현관 앞에 어른 주먹 두 개 크기의 돌덩이들이 다섯 개나 있었습니다.  정말 아찔했습니다. 대문 앞은 등과 인터폰이 부서져 있었고 뼈대만 남은 자동차의 잔해, 깨진 문,창문들, 그을린 집들, 부숴진 각목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동네뿐 아니라 시내 곳곳의 주요시설들과 은행, 상점들이 약탈되고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15일(토요일)도 하루 종일 긴장감속에서 지냈습니다. 잠시 군인들이 피해정도가 심한 집들 근처를 지켜 주더니 군부와 전임 대통령 측근경찰세력의 충돌이라는 연락을 받고 황급히 자리를 이동하더군요.

그 와중에서도 본사 상사님, 대사님, 영사님 ,거래선, 현채인, 직원들과 현지사정에 밝은 지인들...수많은 전화를 주고 받던  남편이 우선 가족들만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피하기를 원해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집에 남기고 떠나 오던 중 제가 가려던 곳의 도로가 봉쇄됐다는 남편의 황급한 전화를 받고 되돌아 가기도 했습니다.
그 날 밤도 집주변에서 계속 총소리가 많이 났습니다.
16일 (일요일)드디어  주변을 살피고 인적이 드문 틈을 타서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온가족이 피신해 있는 상태입니다. 오는 도중 군인들이 여러 차례 삼엄한 검문을 했는데 동양인이라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여기서 꽤 거리가 있는데도 대통령궁이 있는 지역(Cartage)에서 계엄권을 부여받은 군부와 전임 대통령의 남은 측근들과의 충돌로 예상되는 총격전이 벌어졌는 지 저녁 내내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다행히 오래전부터 자리잡으신 교민어르신들과 대사관가족분들,주재원가족분들,코이카단원들 현재 남아 계시는 100 여 분 모두는 무사하십니다. 마흔분 가까이 국외로 나가신 상태이고요. 정부에서는  조금만 더 사태를 지켜 보시다가 전세기를 보내 주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남편과 주재원 두 분은 현지직원들과 회사를 지키기 위해 좀 더 남을 예정인 가 봅니다. 아이들만 아니라면 저도 -지금은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있으니- 남편곁에 남아서 힘이 되어 주고 싶기도 합니다. 늦게까지 TV뉴스를 지켜 보다 며칠 만에 곤한 잠에 빠진 남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함께 가지 못하다니...저는 혹시나 해서 아직 바깥의 동태를 지켜 보는 중입니다.

여러 분들께서 전화와 이메일로 보내 주신 위로와 염려 말씀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어느 전임상무님은 폭동시 대처방법까지 보내 주셨고 , 본사의 어느 전무님께서는 주재원(직원)과 가족들의 신변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 실행에 있어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전문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성심에 감동받아 또 눈물이 났습니다.

형식적인 선거로 오랜 집권을 유지한 부패한 정권에 지친 국민들이 정체된 경제와 대학졸업자들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거리마다 붙어 있던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린 벤 알리의 사진은 이나라를 잠그고 짓누르는 어둡고 무거운 빗장같기만 했습니다.
어느 가난한 노점상 청년의 절망에 찬 분신자살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결국 국민의 숙원은 이루어 주었지만 그 과정의 고통은 참으로 큰 것 같습니다. 저도 피신처에서  안정이 되니 역사의 산 현장에 있다는 숙연함을 느낍니다.

이나라에서 흔한 꽃 재스민의 이름을 붙여 재스민혁명이라고 불리는 이번 역사적 사건이 큰 진통을 이겨 내고 반드시 밝고 건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IP : 41.226.xxx.50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1.1.17 11:50 AM (175.112.xxx.77)

    그저 안전 무고 하시길 두손 모아 바랍니다. 튀니지의 민주화가 큰 희생없이 잘 마무리 되길바랍니다.

  • 2. 동그라미
    '11.1.17 11:51 AM (125.143.xxx.90)

    글 올려 주셨는데 조회수가 적네요.

    읽으면서 또 한번 울었어요.

    튀니지에 대해 잘 몰랐는데 어느 청년의 분신자살 뉴스를 보고 울었거든요.

    원글님 무사하셔서 다행이구요.

    조만간 사태가 진정되지 않을까요?

    가족들 다 무사히 평온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눈물이 흐르네요....

  • 3. ..
    '11.1.17 11:55 AM (211.194.xxx.126)

    우리나라 사람중에 생 그런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할 사람이 몇 사람이 될까요.

    너무 충격이시겠고, 아직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아 힘드시곘어요. 비록 남의 나라 일이긴 하나, 직접 이웃의 일로 목격을 하셨다니...

    약간의 거리감을 두시고 생각하시고, 부디 마음의 안정을 빨리 찾으시길 바랍니다.

  • 4. ,,,,
    '11.1.17 12:01 PM (58.233.xxx.142)

    그저 안전 무고 하시길 두손 모아 바랍니다. 튀니지의 민주화가 큰 희생없이 잘 마무리 되길바랍니다. 2222222

  • 5. ***
    '11.1.17 12:02 PM (211.198.xxx.73)

    거기 계신 우리나라 국민들 다들 무사하시길 바라요.

  • 6. ...
    '11.1.17 12:02 PM (121.182.xxx.59)

    무사히 잘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 7. ..
    '11.1.17 12:06 PM (219.254.xxx.146)

    그저 안전 무고 하시길 두손 모아 바랍니다. 튀니지의 민주화가 큰 희생없이 잘 마무리 되길바랍니다. 333333

  • 8. 튀니지
    '11.1.17 12:11 PM (121.128.xxx.250)

    그저 안전 무고 하시길 두손 모아 바랍니다.
    튀니지의 민주화가 큰 희생없이 잘 마무리 되길바랍니다. 44444

  • 9. 에구
    '11.1.17 12:24 PM (218.39.xxx.20)

    튀니지에 대한 뉴스 저도 보았어요. 교민분들 대사관으로 피신하셨다고 자막 나오길래 생각 보다 많이 위험한 상황인가보다했어요. 무사하시니 다행이고 남편분도 무사히 귀국하시기 바래요

  • 10. 기도
    '11.1.17 12:40 PM (14.32.xxx.25)

    급박한 상황이 영화 호텔르완다를 생각나게 하네요.
    저 또한 모두 안전하고 무사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11. .
    '11.1.17 12:59 PM (110.8.xxx.231)

    어젯밤 뉴스에서 튀니지얘기 들었습니다.
    그저 안전 무고 하시길 두손 모아 바랍니다.
    튀니지의 민주화가 큰 희생없이 잘 마무리 되길바랍니다.555

  • 12. ...
    '11.1.17 1:19 PM (112.151.xxx.37)

    글보면서 눈물을 울컥하세요.
    먼 타국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부부가 얼마나
    가슴조렸을지.... 남편을 남기고 가는 마음이
    어떠했을지....
    튀니지에 있는 한국인들이 모두 탈없기를
    튀니지 국민들이 원하는 세상으로 변하기를...
    기도합니다.

  • 13. ...
    '11.1.17 1:23 PM (203.128.xxx.169)

    아... 그 와중에도 이런 글을 쓰시다니요 놀랍습니다.. 목격하신 바를 차분히 정리하셔서 책으로 내셔도 되겠습니다. 가족 모두 무사하시기를 바라구요

  • 14. ..
    '11.1.17 3:16 PM (211.40.xxx.140)

    자스민 혁명,,,,이름이 넘 좋네요.
    원글님, 곧 가족분즐 무사히 귀가하실거여요.

  • 15. 매리야~
    '11.1.17 5:04 PM (118.36.xxx.72)

    아...부디 몸조심 하세요.
    튀니지 사태가 궁금했었는데..감사해요.

    글 잘 읽고 갑니다.

  • 16. 깍뚜기
    '11.1.17 8:43 PM (122.46.xxx.130)

    ㅠㅠ 가족과 주변분들 무탈하시길 기도할게요~

  • 17. 무사히
    '11.1.18 4:33 AM (116.32.xxx.230)

    무사히 나오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폭도 들이란 표현은 좀 그렇네요.
    그 사람들도 그냥 일부러 폭도 되지는 않았을텐데요.
    그곳의 민주화도 잘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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