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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의 나비부인.......

흠... 조회수 : 2,147
작성일 : 2010-07-16 13:09:17
빠리의 나비부인
저자
정귀선 지음
출판
띠앗 펴냄 | 2003.10.20 발간
소개
빠리 오페라단 최초의 한국인 소프라노 가수였던 정귀선의 자전적 소설


유명목사와 사랑을..... 파리의 프리마돈나 '정귀선'

그녀의 자전적소설 <빠리의 나비부인>이 대한민국 대표 주간신문인
2004년 10월 14일자 <일요신문>에 대대적인 기사화가 되었다.


아래글은 빠리의 나비부인의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목사님과의 예기치 않은 사랑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유럽에 오시는데, 그 목사님을 일부러 빠리로 모셔서 사장님의 사업TGV 건에
도움을 청하고자 한다며 아주 중요한 저녁 초대라고 하셨다.

7시 정각에 샹제리제 부근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호텔의 살롱 쪽을 두리번거리면서 찾고 있을 때,
오늘 만나기로 한 목사님으로 보이는 분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듯 앉아 계셨다.
그리로 가서 "목사님" 하고 부르면서 인사를 했다.

오늘 저녁 초대에 사장님께서 초대해준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면서,
작년에 목사님이 빠리에 오셔서 설교할 때 특송을 부른 사람이라고 인사했다.
목사님은 그 때를 기억한다며 이리로 앉으라고 하셨다. 또 강 사장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항상 잘 늦는다고 하시곤
원래 여자들이 잘 늦어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셨다며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미인으로 알려진 사장님은 무척이나 목사님에게 잘 하려고 노력했다.
그 분들은 서로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이인 듯 했다.
목사님은 사장님과 10년 이상 된 아주 절친한 친구로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옆에 있는 나를 보고는 아주 귀하게 생긴 분이라고 했다. 마음이 넓고 깊으며 아름다운 분이라고 칭찬하시면서
온유하게 생긴 이런 사람을 애인으로 한 번 삼아보고 싶다고 웃으면서 나를 한껏 추겨 주셨다.
순간, 사장님의 얼굴빛이 변하여 미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계속해서 목사님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내 이름을 물어보시더니 이름이 외모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하시며,
내가 원하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하셨다.
사장님과의 대화 속에서 알게 된 어려웠던 나의 인생이 새 이름으로 바뀌어질 수가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목사님은 자신의 기도 리스트에 내 이름도 포함하겠다고 하셨다.
또 자기는 노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외국으로 많이 돌아다니면서 외로울 때면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노래를 해달라고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도 부탁할 수 있냐고 물으셨다.

그러는 동안 사장님께서는 여러 번 사진을 찍으셨고, 우리는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다시 그 분을 호텔로 모셔드리고 사장님과 나는 헤어지기 전에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장님께서는 그 목사님은 서울에 들어가면 감히 만나볼 수도 없이 아주 대단한 분인데,
오늘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을 보니 대단히 즐거우셨던 모양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올 때의 74년도에는 그렇게 큰 교회가 있었던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그 때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고 그 후에 교회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유명하고 대단한 것에 대해서 나는 별로 관심을 갖고 싶지 않았고,
그저 힘든 내 생활을 스스로 꾸려 가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다. 어쨋든 그렇게 대단한 분에게 높이 평가받고 관심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거의 밤 11시가 되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들과 잠깐 대화를 나무면서 잘 준비를 하기 위해
목욕탕에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목사님의 목소리였다.

좀 전에 레스토랑에서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단지 사장님이 너무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목사의 입장에서 좀 불편해서 거리를 갖고 싶어서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랬는데 금방 헤어져서, 그것도 처음 만난 나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한 것에 놀라면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은 잘 들어갔냐고 안부를 묻고는, 오늘 저녁에 참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서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했다.
그리곤 영어로 'I love you'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당황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잘 보아주셔서 감사하다며 나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었다고 대답했다.
잊지 않고 전화를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 드렸더니 목사님께서 자주 전화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웃으면서 얼마든지 생각나실 때 전화를 해도 된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조금 이상한 예감이 들었으나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쨋든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님께서 나를 한 번 만나보고 찬사를 보낼 정도로 좋게 생각해주시는 것이 기쁘고 행복했다.
그저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피곤에 지쳐 잠자리에 들었다.

이튼날 아주 이른 새벽,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깼다. 6시가 될까 말까 한 시각이었다.
목사님이셨다. 그 분은 나를 생각하느라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고 하셨다.
자기가 어쩌다 빠리에 와서 나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나에게 빠져드는지 모르겠다며 괴롭고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셨다.
밤새 기도하면서 나에게 줄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고 하면서 '혜진'과 '귀선' 두 이름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말씀하셨다.
목사님께서 알아서 골라 달라고 했더니 둘 중에 하나를 굳이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귀선'이라는 이름을 골랐다.
목사님은 그 이름을 종이에 직접 서서 사장님에게 전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곤 오늘 독일로 떠나신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는 오늘 공항에서, 떠다는 길에 나를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온통 내 생각으로 꽉 차있다고 하시면서 자주 전화를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그후부터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나는 좋다, 나쁘다고 할 여유도 없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목사님이 이끄는 그 사랑 속으로 급속히 빠져 들어가게 된 것이다.

민이 아빠가 죽은 지 11년째 접어든 때였다. 다시는 어떤 사람과도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나는 맹세했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그가 남기고 간 아이들을 보살펴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이 이끄는 사랑이라는 수렁으로 생각할 여지도 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나갔더니 사장님을 비롯, 빠리 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간부 집사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목사님은 남의 눈을 피해가면서 나에게 사랑의 표정을 전해주셨고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속삭이셨다.

그 분이 떠나고 나는 사장님과 함께 공항에 남게 되었다. 차를 마시는데 사장님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셨는지
목사님이 너를 아주 잘 보신 것 같다며 부러워하는 듯 하면서도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분은 한국에 가면 만나기 힘든 분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 나는 좀 곤란하고 어색한 마음으로
뭐라고 답변할 수는 없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뭔지 모를 기쁨이 일고 있었다.

그날 저녁, 목사님은 잊지 않고 전화를 주셨고 우리는 길게 대화를 이어갔다. 목사님과의 대화는 지루하지 않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어져, 꼭 아주 오래 전부터 만난 사이인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벌써 목사님께서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듯했다. 이제는 죽은 사람은 잊어버리고
자기를 사랑하면서 새 출발을 하라고 하셨다. 그 동안 너무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걸 다 아신다면서
나를 영원히 사람하며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달콤하게 속삭여 주셨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는 자꾸만 꿈을 꾸는 듯 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몇 번이고 오는 전화와 긴 대화를 나누는 내 모습에 익숙하지 않았던 민이는
몸시 궁금해하면서 누구길래 전화로 무슨 말을 그렇게 길게 하느냐고 물었다.

목사님은 매일같이 전화로 하루 일과를 이야기해 주셨고 다음 일정을 알려주기도 하셨다.
한참 대화를 하다가 내 모습이 자꾸만 흐려진다며 빨리 보고 싶다고 하셨다.
어디를 가든지 온통 나의 생각으로 꽉 차있다며, 스위스에서 마지막 집회가 있는데, 그 곳으로 오라고 권했다.
나의 모든 것을 더 많이 알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 마침 민이는 한국 교회 청년회에서 주관하는 수양회에 며칠 가 있었고,
오페라는 쉬는 날이라 그곳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가장 빨리 스위스로 가는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아침 일찍 첫TGV를 타고 쥬네브에 도착, 거기에서 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갑자기 애인이 생긴 나는 입고 나설 옷들이 변변치 않았다.
다만 목사님의 애인이니 그저 검소하게 차려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있는 옷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속옷은 조금 야한 차림으로 입고, 하룻밤만을 보낼 수 있는 간단한 짐을 챙겼다.
그런 다음 그 분이 머무는 큰 호텔의 방을 예약한 다음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집회는 2시반에 시작해 4시 반경에 끝날 예정이었다. 나는 예약한 방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목사님을 기다렸다.

집회가 끝나는 시간을 계산해서 목사님 방으로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받은 목사님은 부지런히 내 방으로 건너 오셨고, 나는 그 분의 품안에 안겼다. 기다렸던 만남에 우리는 너무 행복했고, 꿈같은 사랑을 나눴다.

목사님은 당시 유행하고 있던 건강 팔찌를 선물로 주시고 호텔비까지 두둑하게 행겨주셨다.
저녁 시간에는 일행들과 간단히 저녁 파티에 초대받으셨다고 하면서 혼자 저녁을 먹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며 내 방을 떠났다.
목사님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나 역시 몸은 피곤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목사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목사님은 파티에 대충 참석하고 부지런히 돌아오신 것같았다. 그 분은 자신이 어쩌다 나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 많은 여성들이 자기의 손 한 번 만져 보고 싶어서 야단인데
나를 이렇게 처음부터 사랑하게 되었으니 자신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나도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버리지 말라며, 이제부터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도 하셨다.
나는 이렇게 단 한 번이라도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고 행복하니 부담갖지 말고 가볍게 생각하시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달콤한 사랑을 나눴고, 목사님은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른 새벽, 목사님을 깨워 그 분의 방으로 보내고 아직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각에 조용히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고 생각했었던 지난날 나의 인생이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오늘 나를 긍휼히 여겨 이런 시간, 이런 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목사님과의 만남이 단 한 번의 불장난으로 끝난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오후 1시가 되었을 때 강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계속 전화를 했었는데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며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우리의 관계를 말하지 말라고, 특히 사장님이 모르게 하라던 목사님의 당부가 생각나 적당히 둘러댔다.

목사님이 3시 비행기로 빠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기로 예정이 되었다.
사장님과 함께 마중 나가서 집회장소인 프랑스 북쪽 지방까지 목사님을 모시고 갈 계획이었다.
또 다른 빠리 교회의 신도들도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목사님은 마중 나온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의 눈길을 보내주시고
수행한 장로님과 함께 사장님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나도 뒤쪽의 목사님 옆자리에 올랐는데,
조심스럽게 내미는 그 분의 손을 잡고 집회 장소로 향했다. 나는 그저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사흘 간의 집회 중 첫 날에는 오페라에 결근을 하고 사장님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빠리로 돌아왔다.
집회가 끝나는 날 다시 목사님을 모시러 가기로 약속했다.

목사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느꼈는지 사장님은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나를 아끼는 마음과 시기심이 동시에 이는 듯했으나, 자존심 때문인지 나에게 직접 물어보려 하지는 않았다.
나역시 계속해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사장님은 자제하려고 몹시 노력하는 것같았으나 시기하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돌아오는 길에 사장님은 목사님을 모시러 갈 때는 내가 필요가 없으니 혼자서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나와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화를 했다. 내가 떠나고 나니 허전하고 쓸쓸하다고 하면서 나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셨다.
집회 마지막 날 다시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분에게 '사장님이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으니
직접 전화를 하시라'고 전했다. 목사님의 전화를 받은 사장님은 하는 수없이 함께 거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목사님을 다시 빠리에 모시고 와서 우리는 사장님의 점심식사에 초대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과 목사님은 골프를 좀 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만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더 있다 가라고 붙잡는 사장님께 나는 약속이 있다고 하면서 나왔다. 목사님도 피곤하니 호텔에 가서 쉬겠다고 해
장로님과 목사님을 호텔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도 곧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은 서울로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마음에 담고 떠나길 원하셨다.
나는 얼마 후 호텔로 달려가 목사님을 집으로 모시고 왔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목사님을 모시고 라데팡스의 소피텔 호텔까지 가서 방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분이 사장님과 저녁 약속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후 목사님이 돌아오셔서 나와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또한 자기가 사용하던 칫솔도 나에게 남기고 가겠다고 했다. 그 분은 그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나에게 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한 달후 러시아(당시는 소련) 집회가 끝나는 길에 빠리에 들러 나를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면서
한 달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이튼날 떨어지기 싫은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 분은 모든 일정을 끝나고 서울에 도착하자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
"너를 빠리에 두고 혼자 떠나야만 되는 것이 너무 슬퍼서 울면서 돌아왔다" "내가 어쩌다 너에게 이렇게 빠져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괴로워하셨다. 나는 "목사님께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위로해 주었다.

목사님은 매일 전화를 하셨다. 어떤 대는 하루 두 번씩 전화를 할 때도 있었다.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할거라는 자기의 모든 일과를 전해주었다.
그 분은 나를 자신의 영의 아내로 생각하고 있으니 나도 자기를 남편으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일이 손에 잘 안 잡히고 온통 내 생각으로 차 있어 하루종일 멍해질 때도 있다고 했다. 비서들이 목사님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고도 하셨다.

나는 그분에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 마음 편히 가지고 힘을 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나에게 불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하고, 공식적으로 프랑스 선교를 선포했다고도 했다.
그것을 그 분이 발행하고 있는 신앙잡지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빠리에서의 선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다.

또한 나에게는 옛것을 전부 정리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했다. 건강검진도 받고, 집도 깨끗이 새롭게 단장하라고 권했다.
헌 옷도 다 버리고 새 옷으로 바꾸라고 했다. 침대도 모두 다 새것으로 시작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 분의 말대로, 우선 아파트를 다시 깨끗하게 단장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목사님은 가끔씩 나에게 전화로 '비목'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 분은 그 노래를 좋아하셨다.
가사가 나를 말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성경도 모르고 기도할 줄도 모른다고 했을 때 그 분은 내가 인도함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었다.

그 분은 습관적으로 매일 나를 불렀고, 나는 매일 그 분의 전화를 기다렸다. 우리는 서로를 높이 인정하고, 존경해 주었으며,
믿어 주었는데 그럴수록 사랑의 마음은 더욱 더 타올랐다.

어느 날 그 분은 사장님이 서울의 자기 사무실로 찾아와서 내 흉을 보고 갔다고 했다.
시기심에 불타는 마음을 이처럼 유치한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목사님은 불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또 6월에 나를 보러 빠리로 올 때는 나에 대한 사랑의 약속으로 반지를 끼워주시겠다고 미리 이야기도 했다.

어느덧 6월이 다가왔고 목사님은 러시아에서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러시아는 위험해서 밖에 잘 돌아다닐 수 없어서 계속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내 생각만 한다고 했다.
"내가 너를 떳떳하게 내놓고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서 네가 불쌍한 마음에 많이 울었다"고 말해 내 마음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나마 큰사랑을 받고 있어 행복하니 그런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해주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내가 너무 많이 보고 싶으니 마지막 날에 생삐트흐부그르로 와 함께 구경을 하고 바리로 돌아오자고 젠안했다.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 모두들 관광하는데 자기는 나늘 생각하면서 쓸쓸히 있다고 전화를 했다.
오페라에 말도 없이 2, 3일 동안이나 결근을 하고 그 멀리까지 가려고 하니 너무 복잡한 것 같아 못 가겠다고 했지만
그 분은 자꾸만 오기를 원하셨다. 자기가 나의 남편이니 남편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며 기분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러나 거기까지 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그 대신 목사님께서 빠리에 오시면 오페라 카르멘을 구경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웃으면서 전화를 끊는 그 분은 많이 고독해 보였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정명훈 지휘자님 사무실에 찾아가서
목사님이 빠리를 지나는 길에 오페라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지휘자님은 자신도 목사님과 안면이 있다며 쾌히 승낙하셨다. 목사님을 모시는 표 2장은 지휘자님이 직접 사드리겠다고 하셨다.

목사님께 그 소식을 전했더니 무척기뻐하셨다. 목사님은 이번에는 빠리의 니코 호텔에 예약되어 있으니
나도 그 호텔에 방을 예약해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부푼 마음으로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렸다.

목사님은 그렇게 매일같이 전화를 주셔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셨고,
나를 향한 사랑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한결같이 나를 곁에 두고 싶어 하셨다.
시간이 갈수록 그 분의 마음 속에 나를 더욱 깊이 간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넘치는 사랑에 황홀해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감사와 기쁨을 마음속에 품었다.
꿈만 같아서 울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 분의 사랑을 이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갖게 되었고 나도 온 정성을 다해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빠리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를 하셨다. 그런데 간밤에 컴컴한 데서 잘못 움직이다가 조금 다쳤고, 배까지 아파 좀 불편하다고 하셨다.
나는 다른 교인들과 함께 공항에서 그 분을 기다리며, 내내 걱정이 되었다. 그때는 우리 민이도 담임 목사님의 아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 저녁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급히 녹두죽을 끓여 목사님이 계시는 호텔로 달려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목사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 온 반지를 나에게 끼워주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나를 영의 아내로 삼고, 나도 그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나의 마지막 남자로 죽을 때까지 사랑해 달라는 기도와
천국에 갈 때까지 나를 인도하며 함게 하겠다고 하시는 간절하고도 눈물나는 기도였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우리만의 비빌결혼식이었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둘만의 약속에 고개 숙여 응답했다.

그리고 그 분은 나에게 용돈을 두둑하게 주며 외국에서 설교해서 받은 돈이니 내게 줘도 된다고 하셨다.
이제는 고생하지 말고 집안일 하는 사람도 쓰고, 새 옷도 사 입고, 좋은 음식도 사먹으라고 하셨다.
같이 살지는 못하지만 나의 남편으로 생각하고 항상 자기의 마음을 내 곁에 두겠으니 좀더 생활에 여유를 가지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나의 월급만큼의 금전적인 보탬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날은 내가 생전 처음으로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본 날이었다.
내 앞에 찾아온 이 꿈같은 현실 앞에서 무어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나에겐 과분한 행복이었는데,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감히 꿈도 꾸어볼 수 없었던 행복이었다.

이튼날 목사님은 나와 함께 시간을 좀 더 가지려고 골프 약속도 취소하고 우리 집에서 내가 해드리는 점심을 드시기로 했다.


목사님은 내가 아는 최고의 남자였다. 매우 박식했고 완벽했다.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면도 있었고 재미있었으며, 여자를 사랑해주는 매너가 최고의 수준인,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다.
능력 있고 멋진 남자이니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 이상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나의 모든 것을 사랑을 해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또 목사님은 소련에서 나를 위해 사왔다며 웃옷 안주머니에서 나무로 만든 소련의 목각 인형(마뜨료쉬까)을 꺼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사장님이 예약해 놓은 빠리 장에서의 저녁식사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사장님이 같이 가자고 말은 했지만 나를 별로 붙잡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약속이 있다며 니코 호텔에 예약되어 있던 목사님의 방으로 갔다.

얼마 기다리지 않았는데 목사님이 오셨다. 그 분은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서둘러 돌아온 것 같았다.
이제 내일이면 목사님은 서울로 떠나야 했기에 그 밤이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교회에서 생활을 하며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만 다녀오신다고 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 분만의 비밀스런 휴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 분은 이렇게 나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시며,
한달 후인 7월말 일주일 정도의 여름 휴가가 있으니 그 때 다시 만날 계획을 잡겠다고 하셨다.

그 날은 호텔에서 밤을 지새지는 않았다. 민이가 집에서 혼자 자고 있었고, 아침에 등교하는 것을 도와줘야 했기 때문이다.
또 서로가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그 분 옆에서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새벽 4시경 집으로 돌아왔다.

목사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매일같이 전화를 주셨다.
그 분은 선교를 하고 아들과 손녀를 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일본에 다녀온다고 하셨다.
방학 때 일본에서 만나자고 하셨지만, 나는 그 분을 생각해서 그 쪽에는 얼씬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생각하더니 모나코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번에는 수행장로들과 함께 오면 불편하니 아들 내외와 함게 오겠다고 했다.
그러자고 했더니, 그 곳 H호텔에 예약했다면서 나도 그곳에 방을 예약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 분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 분이 남기고 간 잠옷을 입고 일어나는 아침, 내 손에 끼워준 반지, 그가 준 러시아 인형, 그 분이 지어준 나으이 새 이름,
매일같이 전화로 들을 수 있는 사랑이 담긴 그 분의 음성... 이 모든 것이 꿈 같았다.
어떤 때는 아침에 일어나 그를 생각하면서 벅찬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

나는 7월말에 목사님을 만날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가 거의 다 되었을 때 그 분은 다시 약속 장소가 바뀌었단 걸 알려주었다.
5일 동안의 짧은 휴가기간에 이곳저곳을 왔다갔다하면 시간 낭비라고 하면서 직접 빠리에 와 이틀동안 나와 함께 보내고,
이틀은 오스트리아에서 음악 연수에 참석하는 사모님과 함께 지내기로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가기 전에 빠리에서 마지막 하룻밤을 나와 함께 보내겠다고 하면서
브리스톨 호텔에 예약되어 있으니 그 곳으로 다시 예약하라고 말씀 하셨다.

드디어 목사님이 오셨다.
목사님은 며느리가 미인이라고 자랑하셨는데 정말로 아름다운 일본 미인이었다.

다음날 목사님은 오스트리아로 떠나셨고, 나는 이틀 후 다시 돌아오실 목사님을 기다렸다.
곧 돌아오실 거라서 전화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 분은 그 곳에서 다시 시간을 내어 전화를 주셨다.
내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서 떨어져 있지만 오직 나만을 생각하고 있다며
따뜻한 음성으로 사랑을 표현하셨고, 나 역시 목사님으로 인해 너무 행복하니까 내 걱정말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라고 말씀드렸다.
그의 지극한 사랑에 흠뻑 빠져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아픔을 주지 않고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남자들이 능력이 있어 모두를 사랑해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를 소유하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문제를 만들어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목사님은 이틀 후 어김없이 내게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다시 빠리 리츠호텔에서 우리는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그 분은 한 달만이라도 나와 함께 살아보고 싶다면서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슬퍼하셨다.
이렇게 나를 외로운 그늘 아래서만 만나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사랑해줄 수 없는 내가 불쌍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두고 떠나지만 항상 마음은 나와 함께 있으니 나는 혼자가 아니라면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하라고 덧붙이셨다.

곧 헤어져야했기에 슬펐지만 나는 그 분의 사랑에 감격해서 밤새도록 그의 품에 안겨 울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다음날 오후, 목사님이 우리 집으로 오셔서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 우리는 헤어졌다.
목사님은 8월 말경에 빠리를 거쳐 영국과 독일에서의 성회에 갈 때 또 들르겠다고 하며 떠났다.

나는 민이와 함께 8월 초 빠리교회에서 세례를 바딕로 결정했다.
목사님의 연인으로서 당연히 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례식은 도빌 옆의 바닷가에서 진행되었다. 세례식에는 남불의 친구 제니 할머니가 와서 함께 해주었다.
제니도 나와 그 분의 관계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세례를 받고 목사님께 소식을 전했더니 무척 기뻐하셨다.
이제는 정말로 내가 새 사람으로 출발하고 태어났으니 성실히 믿음의 생활을 하라고 하셨다.

어느 날 오후, 보통 그 시간엔 목사님이 전화를 하는 시간이 아니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도원에서 전화를 한다면서 내가 이에 세례를 받아 세사람이 되었으니 기도원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일주일 정도 서울에 왔다가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8월 20일경 자기가 빠리에 오는데, 돌아오는 길에 같이 오자고 하셨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는 싶었지만 그 분과의 사랑이 탄로 날까 봐 서로를 위해서 그냥 이 곳에서 목사님을 기다리겠노라고 거절했다.

그분은 몇 번이고 설득하시다가 결국은 실망한 목소리로 남편 말을 안 듣는구나 하면서 포기하셨다.
목사님이 금방 오실 텐데 괜히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 후 그 분은 예정대로 20일경 빠리에 왔고, 이번에는 INTERCONTINENTAL 호텔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곤 하룻밤을 지내고 영국으로 떠나셨다.

사장님은 이제 부르지 않아도 나타나는 나를 아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시기심에 불타서 어쩔 줄 몰라했다. 겉으로는 아직도 우리는 좋은 관계로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으나 서로 대하기가 무첫 힘들었다.
그러나 사장님과의 그런 관계와는 상관없이 나와 목사님의 사랑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권사님이 집으로 와서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있을 때 영국에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많이 보고 싶다고 하시며 독일에서 성회가 끝나는 날 나더러 뒤셀도르프로 오라고 하셨다.
권사님이 옆에 있어서 긴 얘기는 하지 못하고 대충 그렇게 하겠다고만 대답하고 끊고는 잠시 후 동네의 여행사에 가서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목사님께는 전화를 걸어 그쪽 도착 시간을 알려 드렸다.

그 곳의 니코 호텔에 도착해 목사님을 뵈었을 때 그 분은 피곤에 지쳐 있었다.
또 아들과 비서가 사업 때문에 어디로 돈을 받으러 갔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면서 불안해 하셨다.

그렇게 목사님과 하룻밤을 보낸 후, 나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빠리로 돌아왔다.
그 분은 오후에 아들과 함께 빠리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빠리에 도착해 전화를 하겠다던 시간이 되어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다시 빠리의 INTERCONTINENTAL 호텔이라고 하시면서 그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공항에서 아들의 짐을 도난 당해 늦었다며, 피곤하고 기분도 좋지 않다고 하셨다.

이튿날에는 빠리 교회에서 목사님의 특별집회 설교가 있었다. 나는 그때 특송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목사님은 앞으로의 프랑스 선교를 위해 샹제리제 쪽으로 사무실을 얻었으며,
아들이 독일에 자동차를 주문했다고도 했다.

천천히 호텔로 돌아왔을 때 목사님이 예상보다 일찍 전화를 하셨다.
나와 함께 있고 싶어 모든 것을 제쳐놓고 잠깐 사무실만 보고 일행들과 헤어져 호텔로 급히 와서 나를 찾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곤 급히 내 방으로 오셨다. 그 때까지 아직 점심도 안 하신 상태였다. 피곤하고 지친 듯 힘들어하셨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나라에서 자유롭게 예술을 하는 나를 좀 염려하며 남자들의 식사 초대 같은 것은 피해야 한다고 하셨다.
덧붙여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도 했다. 나도 목사님께 나를 버리지 말라고 말했더니,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많은 성도들을 위해서 너를 버릴 수 있지"라며 무거운 대답을 하셨다.

이른 새벽, 목사님은 자신의 겉옷과 속옷 몇 가지를 주시며 이제 오랫동안 만날 수 없을 테니 자기가 옆에 있는 것처럼 늘 가지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자기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목사님은 서울에 잘 도착햇다며 연락을 했다.
내가 드린 약 때문에 피로가 많이 풀렸다고도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는 날짜만 세면서 빨리 12월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 시간이 못 견디게 긴 것 같았다.

얼마 후 목사님은 홍콩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주셨는데, 또 전화를 하겠다고 하고는 마를 며칠 기다리게 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니, 그 분은 사모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전화할 수가 없었다며
야단치는 듯한 음성으로 내가 기다리고 있으면 부담이 되니 기다리지 말라고 하셨다.

하루는 홍콩 시간으로 한밤중인데 전화를 하셨다.
나는 반가이 이 시간에 어떻게 전화를 주셨냐고 했더니,
"네 생각이 나서 이렇게 전화를 했지" 라며 짧게 대답하셨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한밤중이라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뭔가 굉장히 괴로운 듯 그 분의 목소리가 우울하게 들렸다.



10월이 되었다. 사장님이 빠리에 와서 나를 만나고 있었으면서도 다른 성도들에게 내 안부를 물으면서 잘 있냐고 물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 어느 날은 그 집 식당에서 일하던 집사가 우리 집에 와서
사장님이 목사님과 나와의 관계를 이상히 보고 끝까지 추적해서 캐내겠다고 하면서 이를 갈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 집사는 목사님은 미국에서도 바람둥이로 소문이 났다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들로 굳게 약속한 사랑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말들로 국게 약속한 사랑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목사님과의 연락이 끊어지게 되었다.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조바심 내며 그 분의 전화를 기다렸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님의 개인전화 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그 분께 부담 드리기 싫어 연락 드리지는 않았다.

기다림이 너무 괴로워서 성경공부를 함께 하던 권사님을 모시고 기도를 해달라고 했더니
그 분은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소식이 잠깐 끊어져서 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만 말씀드렸다.

연락이 끊긴지 21일째 되는 날 밤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기쁜 마음과 걱정스런 마음으로 안부를 물었다. 그 분은 잘 있다면서
지금 일본에서 공중전화를 하는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 동안의 형편을 이야기 하였다.

그 동안 그 분은 아주 곤경에 처해 있었다. 우리의 관계를 누가 알고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해
사모님께 보내꼼짝 못하고 사모님께 당하고 있다고 하셨다.
게다가 며느리가 집을 나가서 아들이 이혼 위기에 처해 있고, 동생하고의 재판 문제로 아주 복잡하고
힘들다면서 12월초에 만나기로 했던 우리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다고 하셨다.
지금도 감시당하고 있어서 더 긴 말을 못하니 그런 줄 알라고 하셨다.

나는 그 분의 힘들어 하는 말을 듣고는 그저 목사님을 사랑하면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본에서 감시를 받으면서까지 한 장거리 전화인데 내가 무어라 다른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를 연락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드디어 12월 6일,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헝가리에 도착했는데, 부목사 감시 하에서 방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고 하시며 부목사가 내려간 사이에 전화한다고 하셨다.
교회에서 몇 명의 중요 간부 장로들이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는 것 같고,
사모님께서 이혼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이혼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고
또 동생이 걸어온 재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사면초가 같다며 "내가 어쩌다 너와 사랑에 빠져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들 나에게 뒤늦게 주책을 부린다고 하겠지"라고 괴로워했다.
나는 목사님께 내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그 곳의 일이나 진정시키고 잘 처리하시라고 전했다.

목사님이 "어떻게 되겠지" 하시길래, 사모님이 이혼하자고 하면 이혼하고 이 곳으로 오라고 하자,
그 분은 웃으면서 사정이 이러니 그리 알고 다시 연락할 수 있을 때 연락하겠다면서 전화를끊었다.

언젠가는 올것이 온 것이다. 이제 막연한 상태에서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분의 부인이 비서도 교체하고 전화번호도 모두 바꾸었다고 했다. 목사님이 9월에 떠날 때....

------------------------------------------------
흠....이목사가 누구일까요? 대단히 궁금해지네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라....... 누굴까?
IP : 112.144.xxx.205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0.7.16 1:21 PM (121.130.xxx.42)

    너무 길어서 글은 안 읽었고요...
    전 또 82의 나비부인인줄 알고 클릭 ^ ^

  • 2. ㅎㅎㅎ
    '10.7.16 1:23 PM (61.254.xxx.129)

    조용기 목사입니다.. ㅎㅎㅎㅎㅎㅎ
    결국 불륜 저지르면서 사랑이네.........하는 똑같은 남녀이네요.

    여기 보면 중간에 조용기와 정귀선 얘기가 아주 잠깐 나옵니다.
    http://blog.naver.com/ddoksaseyo/103795331

  • 3. ..
    '10.7.16 1:39 PM (222.107.xxx.144)

    말하자면 프랑스에
    사랑하는~~ 현지처를 부인 몰래 두었다는 얘기군요.
    참, 대단한 사랑일세

  • 4. ...
    '10.7.16 2:18 PM (211.209.xxx.189)

    참 기독교인으로서 부그럽네여....

  • 5. 쇼킹..
    '10.7.16 3:03 PM (117.196.xxx.0)

    이거 정말 사실인가요? 너무 충격입니다,
    정말 기독교가 싫어져요. 부분을 전체로 생각하는점은 제잘못이지만..
    법정스님이 다시한번 존경스러워집니다.
    어떻게 이런짓을 저지른 사람이 그렇게 영화롭게 살수가 있죠?
    ...

  • 6. 참나,,원
    '10.7.16 6:09 PM (222.112.xxx.48)

    사랑을 아무대나 갖다붙이네

    사랑이 아니고 섹스로 대입해서 읽으면 덜 간지럽네
    뭔 얼어죽을 사랑이여 사랑은~~
    사랑이 있기나하나
    그리고 첫만남에 섹스를 기대했고만
    야한 속옷을 챙긴것보니

    이 여자분 자신이 억울하다고
    책 냈나보네,,,읽어보니
    유뷰남과 같이 즐겼으면 그걸로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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