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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끔찍한 기억
전두환 시절, 용감한 선배 언니들이 데모를 했지요. 지금처럼 모일 수도 없고, 의사전달의 수단은 자살 뿐이었습니다. 학교 건물 높은 곳에 올라가서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뿌리고, 그리고 아래로 몸을 투신합니다. 그럼 학교에 들어와있던 일명 짭새들이 그 유인물을 단 한사람이라도 집을까봐 소리지르며 달려와서 싹 수거해갔습니다. 떨어진 사람의 시신보다 그 유인물에 먼저 달려들었지요. 그렇게 개죽음을 하면서도 그 시절 투신한 선배들이 여럿이었습니다.
데모를 하다가 잡혀가면 남학생들도 다 보는 앞에서 옷을 벗기고 조롱을 했지요. 여학생은 발가벗겨서 욕조에 넣고 미꾸라지 고문을 한다는 유언비어도 돌았습니다. 미꾸라지는 몸안에 구멍을 파고 드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잡혀갔던 어떤 선배는 임신을 한 채 나왔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던 저는 무섭고 또 무서워서 운동권이 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범죄자들이 데모 학생 하나 잡으면 뭔가 포상을 받는다는 목적으로 금단의 여학교에 진을 치고 앉아서 휘파람을 휙휙불면서 학생들을 희롱하던 시절, 한밤중에 공부를 하던 교내에서 한 학생이 화장실에서 자살을 합니다. 신문에 실린 사인은 실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그 시신를 목격한 학생의 말로는 손목에 노끈으로 묶인 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밤에 교내에서 공부하다가 심화교육받고 데모 학생 잡으러 진치던 범죄자들에게 집단 윤간을 당하고는 자살로 위장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아 아무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터지자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학생인데도 아무도 학교에 들어갈 수 없고, 시험은 리포트로 대치되었습니다.
끔찍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그 모든 공포를 물리치며 악착같이 달겨들던 운동권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누가 있나요? 그때와 같은 학생들이 없습니다. 야당 정치인들? 진보신당? 노무현 정권에서 그렇게 말 잘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누가 무슨 말을 하고 있나요?
저는 얼떨결에 데모를 함께 하다가 바로 눈앞에서 전경의 방패와 무자비한 주먹질로 얼굴이 뭉개지고 콧뼈가 무너지고 처참하게 피를 흘리면서 끌려가던 학생들을 실제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닭장차에 갇혀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던 선배들.... 교문에서 대치하면 뒤에서는 앞으로 가자고 외치지만 막상 앞에 서면 너무 무서워서 슬그머니 뒤로 도망치게 됩니다.
민중이 맨몸으로 맞서면 된다. 맨몸으로.... 옆에서 보기만 한 사람인 저도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압니다. 아마 그래서 촛불시위대도 점점 흩어졌겠지요.
제 평생에 그런 폭력과 비이성의 시대는 다시 보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점점 불안해집니다. 6월 2일, 제 불안을 잠재워줄 희망이 보이기를 정말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1. 그러게요
'10.5.28 10:52 AM (125.178.xxx.192)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데.. 그걸 몇년만에 다 뭉개버렸네요.
국민들이 다시 찾아야지요.
투표로 찾자구요.
주변사람들 독려하자구요2. 글쵸..
'10.5.28 10:58 AM (121.88.xxx.172)전쟁세대는 그 시절이 끔찍하겠지만, 80년대 대학 다니던 우리도 나름 끔찍했죠..
저도 솔직히 데모는 안해봤지만(그냥 주변인...), 원글님이 듣던 소문(?) 전부는 당시에 들었습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 소문이 아니고 증거가 인멸된 사실이었지 싶네요..
그래서 지난 대선때도 정동영 찍었습니다.. 누가 더 훌륭하냐가 아니고, 누가 더 끔찍한 사태를 막아줄것인가.. 그래서 민주당에서 내세운 정동영 찍은 겁니다..
순진무구한 우리 신랑은 문국현 찍더군요...
저도 촛불 들다가 들어 왔습니다.. 할만큼 했지만, 프레스 센터 옆에서 아무 방어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군화발로 짓밟고 방패로 찍는 모습을 보고는 접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도 국민도 아니었죠.. 그냥 정부가 한나라당이 하려는 일들에 반발하면 안되는 일하는 짐승들이었어요..
그래서 진보신당에 애증이 생깁니다.
제발 정치적이 되달라고... 우리가 다치지 않게 하면서 원하는 바를 이뤄줬음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음에 남는 것은 아무리 높은 가치를 위해서라지만, 사람을 위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나를.. 가족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이웃도 최소한 다치지 않게 하려고 정치를 했다는거...3. 정의 아내
'10.5.28 10:59 AM (58.229.xxx.204)저도 어제 그 글 보고 참담했더랬습니다.
민중이 맨 몸으로...ㅠ.ㅠ
2년 전에 촛불이 맨몸으로 나갔었죠.
유모차가, 촛불소녀가, 예비군이...
물대포를 쏴대도 '세탁비'와 '온수'를 외치던
옆 사람과 팔을 엮은 것 말고는 믿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이...
그걸 다시,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는 말이군요.
아... 저 무력한 사람들이
입으로만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믿는 거였군요.
우리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맨몸으로 거리에 나서기를 믿고
여유잡고 있었던 거군요...
이번 투표 꼭, 진짜 꼭 이겨야겠습니다.4. 이런...~
'10.5.28 11:04 AM (203.249.xxx.21)민중이 맨몸으로 막으면 된다고 글을 쓴 진보주의자가 정말 있었나요? 헉............너무너무 놀랐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야말로 한나라당못지 않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5. .
'10.5.28 11:13 AM (211.192.xxx.148)눈물이 터지는데
사무실이라 참습니다.6. 아...
'10.5.28 11:16 AM (118.223.xxx.247)눈물나올려 해요.
우리 모두...그때 그날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올바른 투표 하나가..세상을 바꿀수 있습니다.
제발....우리...놀러가기 전에...꼭! 투표하기로 해요.^^7. 무거운엉덩이
'10.5.28 11:21 AM (59.10.xxx.139)그때는 인터넷이 없어서 토론을 하려면 몸을 움직여야했고, 구체적인 조직이 있었어요.
지금은 다들 컴퓨터앞에 붙어 앉아서 입만 나불나불...
시청광장의 촛불모임 때도 인터넷 앞에 앉아서 지금 상황이 어떻다고 떠들었던 사람들 중에서는 못 나갈 사정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엉덩이가 무거워 안 움직인 사람도 많을걸요.
이번 선거에 대하여 열 올리면서도 막상 당일날 투표하러 안가는 사람들도 많을걸요.8. 무거운엉덩이
'10.5.28 11:37 AM (59.10.xxx.139)82쿡에 보면 이런분들 계세요. '제 주변에 다들 딴나라당 지지자만 있어요. 말 꺼냈다가 저만 바보되었어요. 가슴이 꽉 막히고 답답해 죽겠어요. 그나마 82쿡이 있어서 숨쉬고 살아요. 여기선 마음놓고 정치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살거 같아요.'
그때에는 숨쉬고 살기 위해선 주변인을 설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막힌숨을 82에 와서 풀고, 생활속에선 그냥 또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살다가, 다시 82쿡에 와서 숨 몰아쉬고, 또 일상생활은 꾹 참고 하고.... 그러면서 사시는 거 같아요.
숨 쉴 구멍이 있다는게 약인가 독인가....9. 무거운엉덩이
'10.5.28 11:42 AM (59.10.xxx.139)내가 사는 공간에 독가스가 밀려들어오면 살기위해선 힘을 합쳐서 그 가스를 뿜어내는 것들을 처치하던지 해야 하는데, 요새는 각자 주섬주섬 방독면 꺼내서 숨쉬며 사는 형국이랄까? 그러니까 방독면 없는 사람들만 미쳐 날뛰는 거고, 방독면 가진자는 '이를 어쨰 이를 어째' 하면서도 힘을 모으지는 못하는 형국이고.
10. 무거운엉덩이
'10.5.28 11:53 AM (59.10.xxx.139)그 때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란 수치심을 가슴에 매달고 살지 않으려면 두려움이나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용기를 내야했고, 지금은 양심의 무게와 수치심을 인터넷상에서 '아바타'를 통해서 상쇄시키면서 심리적인 위안을 얻으며 견디며 살 수 있게 된거죠.
11. 원글
'10.5.28 12:07 PM (219.241.xxx.42)지금은 그럴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용기 없이도 투표라는 좋은 기회가 있지요. 제가 두려운 것은 이번 투표에서 지고나면, 그런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예전과 같은 암흑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뭐를 기대해도 그 이상을 보여주는 지금 정권에서는 개헌이나 계엄 선포 등등의 여러가지 방법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예전에도 운동권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학교에서 수삼일 밤을 새면서 데모대에 참여했구요. 지금도 열심히 주변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비겁하고 용기없었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려고 하고 있구요. 이 글을 쓴 것도 아마 그 일들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