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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봉하에 갔던 것 일까? ㅠ.ㅠ

어째서 조회수 : 1,991
작성일 : 2010-05-25 19:06:48
제목이 좀 낚시글같죠? ㅎㅎ

정치글이 싫다는 분들이 계셔서(음...이해해요)
봉하얘기는 안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 정말 봉하 다녀와서 피해막심이라 꼭 쓰고 싶었어요

저 대구 살아요.
아직 이곳 지리를 잘 몰라서 그날 아침에 집에서 택시 타고 대구역까지 갔더니
거금 14400원 나왔어요.
괜찮아요. 그까짓거...간식 안 사먹을거니까....
애써 위로하며 쿨~ 한 척 했어요.

사실 저는 아주 정직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단 한톨의 밥알도 그냥 흘리지 않고 차곡차곡 살로 만들어 주는 자동저축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답니다 .

그런 제가 최근에 본의 아니게 할 일이 엄~ 청 줄어드는 바람에
모두의 간절한 열망인 놀고 먹고 구르고...를 하고 있어 놀라운 체중재테크의 신기를 이루었죠.
야트막한 동산에 두어 달 만에 오르는데 허벅지가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맘 먹었죠.
독한 다이어트! 밥도 줄이고 운동도 빡시게 하고.....옷도 타이트하게 입고
무엇보다 식이조절이 가장 중요한 거라서 언제던가 기억도 가물 가물한
초식동물 시절로 돌아갔구요.

저, 봉하에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굳은 맹세를 했지요.
저에게 외출은 외식이므로 마음에 걸리지만 꼭 다음에 갈거라고....그런데 울 남편
혼자 가기 싫다고 봉하에는 먹을것도 없다고, 진영역도 읍이라서 먹을 곳이 없다고
아무도 널 유혹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봉하로 향했답니다. 어디에도 함정은 없는거니까
가뿐하게 토마토 두 개 갈아서 마시고, 생수만 한병 챙겼어요
역에서 절 유혹하는**도너츠도 가뿐하게 넘었답니다.
어머, 기차안에 식당칸이 있어요. 자꾸만 안내방송해요. 참아요. 그까짓거...

진영역에 도착하여 개찰구로 나가는데
역사의 직원분들 너~~무 친절하세요. 분홍장미가 아치를 이룬 장미넝쿨도 있어요.
상냥한 여직원분 여러 가지로 고마웠어요 ㅎㅎ

봉하재단에서 마련했다는
셔틀버스를 타고 평소 십분 걸린다는 거리를......1 시간 20분 걸려서 입구에 도착해요.
집에서 예전에 놀러갔을 때 썼던 재활용 하얀 우의를 남편이랑 나눠서 입고
수많은 인파에 우리도 끼어 들었어요. (...전 물건을 잘 못 버리는데 후회스러웠어요. 이 우의를 챙겨 놓은걸....이거 없었으면 노란 우의를 사 입고 간지나게 봉하의 노란물결이 됐을텐데..ㅜ.ㅜ)

앞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앞사람 뒤꿈치만 보고
걸어요. 가는 중간 중간 말끔히 손질해 놓은 논을 보니 오리가 없어요.
걔들도 그 날이 무슨 날인 줄 알았겠죠. 어디선가 그분을 그리워 하고 있을 거예요.
노란 바람개비가 꼼짝도 안하고 서 있네요.

어째 안으로 들어 갈 수록 사람이 너무 많아 움직이기도 어려워요.
그냥 앞사람 뒤꿈치, 등짝만 보기로 했어요
아장아장 펭귄처럼 한 곳으로 가다 보니 중간에 누군가 하얀 국화 한송이를 쥐어 줘요.
계속 걸어요. 조금씩 조금씩...
드디어 헌화를 했어요. 묘석이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헌화는 묘석의
아래에서 했어요. 발 아래 깔린 박석을 보면서......


헌화를 끝내고 일부러 부엉이 바위쪽은 외면해요.
생가를 지나면서 보니, 조금 웃음이 났어요. 너무 말끔하게 고쳐놔서....ㅎㅎ
그렇게 좋은데서 사셨을리 없잖아요~너무 새것이라는 티가 났어요 ㅋ~

헌화를 끝내니 너무 너무 허기가 져요.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파는 곳은 다 인산인해...
노짱님이 드셨다는 그 국수 먹어 보고 싶었는데, 구경도 못했어요

그 국수집 옆을 보니 엄청나게 긴 줄이 생겨나 있는 거예요.
화장실도 아닌데...쳐다 보니 봉하빵이라고 써있어요.
빠~앙? 전 빵귀신이에요
게다가 긴 줄만 보면 자동접수본능이 있는 저예요. 얼른 가서 붙어요.
빵을 싫어하는 남편이 이리 오라고 소리쳐요. 저는...안들려요. 쌩까요~

앞사람들이 대 여섯박스씩 사요.
헐~ 제 차례가 됐어요. 세...세개요~ 제가 미쳤나봐요.
저흰 딸랑 두 식구인데, 저거 맛없으면 남편이 창밖으로 저를 내던질지 몰라요

남편 눈치를 보면서 먼저 제가 맛을 봐요. 남편이 밀가루혐오증세가 있는데
어머, 얘는 보리빵이에요 밀가루0%래요. 어디서 본 적 있다 싶었는데 경주 여행에서
살까말까 했던 그 보리빵이에요.
근데...이게 너무 맛있는거예요. 도쿄바나나빵? 그까짓거 댈 것도 아니에요
(...못 먹어 봤어요 ㅎㅎ)
토마토 두 개로는 너무 너무 긴 여정이어서...ㅋㅋ  에너지가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요~

남편도 저를 흘겨보며 배가 고픈지 먹어 보더니 힐끗 포장지를 다시 주워 읽어요.
“맛있네~”

그런데 그게 실수였어요.
봉하빵을 먹는 순간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가난한 위장 만들기라는 프로젝트가
도로아미프로젝트가 됐어요. 날도 궂은데 감자전도 팔고 부추전도 팔고, 라....라면이
있어요. 도토리묵, 막걸리......망했어요. 완전 망했어요
라면에 감자전 도토리묵 ....다 먹었어요.

누가 경상도 음식이 맛이 없다는건가요? 묵은지로 주신 김치, 너무 짰어요.
그러나 어쩜 그렇게도 맛이 있는지..ㅎㅎ

처음에 허점을 허락하면 안돼요. 보리빵하나가 다이어트의 둑을 무너뜨려서
봉하 다녀온 그날 저녁 오리구이 먹었구, 다음날 미친듯이 빵을 굽고 있답니다
저기요...다이어트는 다시 시작할 예정인데요.
세상에는 절대 다시는 그래서는 안되는 일들이 있잖아요.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일들은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지켜보자구요.
네델란드 소년이야기 생각나요. 그 소년이 정말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았을까...
요샌 다 의심스러워요. 배가 고파서인가봐요 ㅎ

갑작스런 다이어트로 컨디션이 아주 최저였어요. 허기가 지니 보이는 것도 없어요.
그거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죠~  ㅎ
봉하에는 다시 가봐야 할까봐요.
앞사람 등짝만 기억나는 봉하에서의 다이어트 실패기 였습니다~


IP : 121.182.xxx.91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0.5.25 7:10 PM (125.139.xxx.1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원글님처럼 부부가 같이 움직이고, 같은 성향으로 다니실 수 있는 분들 너무 부러워요
    글도 참 잘쓰시네요. 원글님, 조만간 김연아 같은 몸매로 환원되실 겁니다

  • 2. ..
    '10.5.25 7:16 PM (59.9.xxx.65)

    넘 재밌게 읽었어요. 마치 눈에 보이는듯 그려져요. 혹시 동화작가?

  • 3. 봉하빵
    '10.5.25 7:20 PM (118.47.xxx.209)

    정말 맛있는데...
    이 번에 가지 못했어요.ㅠㅠ...
    그 잘난 남편 눈치...
    조만간 가야지요.
    봉하빵도 먹고... 내가 보낸 박석 눈 도장도 찍고...

  • 4. 은석형맘
    '10.5.25 7:22 PM (122.128.xxx.19)

    봉하에서 나눠주신 머핀처럼 생긴 봉하술빵이 자꾸 머릿속을 왔다갔다 해요...
    그거...먹고 싶어요........ㅠ.ㅠ

  • 5. 아~님~
    '10.5.25 7:24 PM (122.35.xxx.17)

    울기 싫어서 안볼라 했는데,, 고맙습니다.^^
    정말 재밌게 봤어요. 센스만점이세요~

  • 6. 시민광장
    '10.5.25 7:27 PM (175.120.xxx.96)

    전 6월에 갈 예정인데 그땐 좀 조용히 그분을 느껴보고싶어요
    저도 저와 성향이 비슷하고 또 흥분 잘하는 마눌얘기도 잘 들어주는 신랑과 함께가용

  • 7. 잘가셨어요
    '10.5.25 7:37 PM (119.192.xxx.73)

    롤러코스터 아줌마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어 읽혀져요..
    님 글 너무 재밌게 읽고 있어요.. 우리 굳은 각오로 다이어트 동참해요..
    근데 봉하빵이 먹고 싶어지네요.ㅠ.ㅠ

  • 8. ㅎㅎ
    '10.5.25 7:42 PM (119.67.xxx.223)

    즐거운 여행이었네요.
    부러워요.

  • 9. ㅋㅋ
    '10.5.25 7:46 PM (122.101.xxx.188)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로 읽으면서... 재밌어요~ 남편이랑 같이.. 부럽습니다~ ㅎㅎ

  • 10. 정말
    '10.5.25 7:48 PM (180.71.xxx.2)

    글을 맛깔나게 쓰시네요.
    마치 세밀화를 보는 느낌이에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구요.
    이런 우리들을 노짱님이 하늘에서
    그 인자하신 미소로 보고 계실거라 생각해요.

  • 11. ...
    '10.5.25 7:59 PM (124.56.xxx.155)

    빠~앙? <-여기서 막 하하하 웃어버렸어요.
    님 글 좀 자주 올려주세요. 정말 재미나게 잘 쓰시네요.
    그리고 도쿄바나나빵보다 그 보리빵이 저희 가족은 훨씬 맛있었어요.
    친정은 한나라당일색인데 봉하빵 선물했더니 너무 맛있다면서 더 안사왔냐고 하시더라구요.
    선물로도 최고에요~

  • 12. ..
    '10.5.25 8:03 PM (116.41.xxx.49)

    어쩜 글을 그리 재미나게 잘 쓰시는지.. 부럽습니다.
    저도 6월엔 한번 다녀오려구요.

  • 13. ㅋㅋ
    '10.5.25 8:09 PM (112.152.xxx.184)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어쩜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쓰시는지요~~
    고정닉 달고 자주 써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4. ㅋㅋㅋㅋ
    '10.5.25 9:11 PM (211.207.xxx.110)

    고정닉 달고 자주 써주세요 22222222222

    너무 글을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 15. 봉하빵 ㅜㅜ
    '10.5.25 9:21 PM (121.191.xxx.3)

    비오니까 추도식 끝난 다음 사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맛도 못보고 사지도 못하고 그냥 왔어요, 앙~~ㅜㅜ

  • 16. ㅋㅋㅋ
    '10.5.25 9:25 PM (125.177.xxx.24)

    저도 모르게 남녀탐구생활 톤으로 읽었네요.
    원글님, 너무 재밌어요.

    '앞사람 등짝만 기억나는 봉하'
    저도 비슷한 경험을.
    20년전 울산바위를 처음 올랐었는데,
    안개가 짙게 낀데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바위에 올랐다가 내려온 기억이 있어요.
    정말로 울산바위에 대한 기억이 앞사람 엉덩이밖에 없는 거예요.

    봉하에 다시 다녀오세요. ㅎㅎ

  • 17. ㅋㅋㅋ
    '10.5.25 10:18 PM (122.32.xxx.216)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ㅎㅎㅎ 거리면서 계속 읽었어요.
    다이어트는 꼭 성공하세요~^^

  • 18. 원글입니다^^
    '10.5.25 10:47 PM (121.182.xxx.91)

    글 올리고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다시 82 들어 왔는데...
    엄머? 제 글이 한참 뒤로 밀려 있네요 ㅎㅎ
    역시 우리 82의 생명력은 대단해요.

    우선 재밌다고 제 인생 최고의 칭찬을 아낌없이 날려 주신
    님들의 댓글, 정말 가보로 남길만한 극찬이에요 ㅎㅎ
    모두들 인사 받...아니 절 받으세요
    넙~~~~죽^^

  • 19. 웃음조각*^^*
    '10.5.25 11:18 PM (113.199.xxx.201)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녀와보지 못한 그리운 곳인데 다녀온 것 같은 기분도 살짝 들 정도예요^^

    아~~ 저녁 안먹고 이 시간인데.. 봉하빠앙~~~ 먹어보고 싶어요.

  • 20. phua
    '10.5.26 9:49 AM (218.52.xxx.107)

    등짝만 그 길을 가는 분들이 얼마나 든든했던지요.
    모두들 제 동지같아서...
    다음 이야기도 턱 괴고 기다리고 있을께용~~~

  • 21. 재밌게 읽었어요ㅋㅋ
    '10.5.26 10:22 AM (125.177.xxx.193)

    남편분하고 정답게 드시는 모습이 떠올라 정겹네요.

  • 22. 자주
    '10.5.26 11:55 AM (114.207.xxx.244)

    글 좀 올려주세요
    넘 재미나게 읽었어요 ^^
    하루 막 먹었다고 담날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던가요?
    그 뒤 다이어트 이야기도 또 올려주세요~ 기다릴게요 ㅎㅎㅎㅎ

    저도 봉하 함 가고싶은데 울집엔 같이 갈 사람이 없네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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