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32에 한국을 떠나 낯선 이국땅에 둥지를 틀었어요.
한국서 이미 오랫동안 직장생활 했었기에 다시 어딘가 다닌다는게 별 매력이 없었고, 그것보다 우리 아이를 남의 손에 파란눈의 여자들에게 턱 맡기고 다닐 용기가 안 났죠. 하지만 다 이건 핑계에 불과했고 결정적으로 제나이 32이면 뭔가 시작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괜한 몸고생 마음고생이다라는 스스로의 포기였어요.
전혜린의 에세이에 나오듯 서른...끔찍한 시간의 축적이다,라는 글을 뼈속깊이 공감했었죠. 한국서 이미 겪은 30대로의 진입은 정말 힘들었네요. 도무지 타협의 길이 안보이는듯 했었죠. 이젠 정말 주어진 시간안에 그냥 숨쉬기만 하는게 남은일 같았거든요. 써놓고봐도 제가 얼마나 염세적인지 보이네요.
그런데 외국에 나왔더니 제가 다시 서른이 된거예요. 여기 사람들이 만으로 나이를 세니 어딜가도 전 공식적인 서른.
갑자기 2년을 번것 뿐인데 몸과 마은은 20대 대학 캠퍼스 폴짝거리며 다니던 생기가 생기더라구요. 더불어 뭔가 막연한 희망도 생기고...
2년을 버니 몇번의 새해을 맞이해도 난 아직 30대. 뭘해도 성공 가능한 30대 더라구요. 시간도 참 길구요.
남편도 같은 예길 하더라구요.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아직도?
그러다 가끔 한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면 이상하게도 친구들은 한국나이 (두 살많은) 의 그 모습들이 나오더라구요. 친구들이 마흔이라 할때 전 아직 서른 여덟이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제가 만으로 세어도 마흔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네요.
요즘 82를보면 초창기때보다 엄청난 폭의 연령대가 존재하는것 같아요. 중 고생도 꽤 있는것 같고, 20대 아가씨들도 많은거 같구요, 물론 제 엄마또래의 분들도 많으시구요. 전 정말 이런 분위기 너무 좋아요.
저보다 젊은 30대 여러분들. 아마 화려한 싱글이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가슴이 답답하는, 혹은 갓난아기와 끝날것 같지않은 육아에, 돌보지못해 엉망이 되어버린 몸매에 핏기없이 부은 얼굴의 젊은 아기 엄마들.
한번 자기가 얼마나 든든한 젊음이라는 빽이 있는지 돌아보세요. 그리고 용기내 보세요. 일단 움직여보면 지금 자기 나이 그대로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는걸 아실거예요.
제가 한국에서 보낸 서른이란 숫자는 내가 해놓은것을 정리하는 과정. 발버둥은 쳐봤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포자기의 과정이었다면, 다시 맞은 서른은 뭐라도 이룰수 있을것 같은 희망의 시간들, 내 젊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잠도 잘 안자던 시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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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만으로 세어도 꽉 찼네요.
나이란... 조회수 : 564
작성일 : 2010-05-18 21:56:01
IP : 99.245.xxx.180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ast
'10.5.18 10:38 PM (211.200.xxx.38)좋네요. 나이에 치여서 진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다가 이런 글 보고 또 다짐하고
다시 의기소침해졌다가 또 어떤 계기로 각성하고...이 과정 무한반복하면서 살고 있다능;;
님 덕분에 오늘부터는 또 다시 상승싸이클이겠네요^^ 감사.
태어난 순간 바로 1살 되는 한국이 싫어요..ㅠ
한두살 차이가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압박이 참 커요.
제가 1월생이라 만나이로 치면 2살이나 까먹을 수 있거든요.
늘 만나이로 생각하고 삽니다. 그러나..선자리 나갈때는 결국 제나이로 소개되는 현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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