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볼커와 미국 금융개혁안
볼커는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카터 대통령 시절 연준의장이 된 뒤 강력한 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퇴치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를 역대 최고 FRB 의장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다우지수 1000 포인트에서 1만포인트로 가는 초석을 볼커가 깔았다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귀싸대기를 맞을 것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난의 길을 택했다. 미국이 일본처럼 10년 불황에 빠지지 않았던 것은 볼커가 정직하게 사태를 직시하고 애둘러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리스가 볼커 같은 인물이 일본에 없었기 때문에 20년 불황의 늪에서 허덕인다며 쓴 글의 일부다.
"일본은 문제를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기성 정치인과 은행가들이 합작해서 문제를 은폐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아직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오늘날 미국의 금융부문은 1970년대에 비하면 훨씬 강력한 상태다. 그런데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위기에 대한 미국 금융시장의 지금까지 대응이란 소극적 은폐 뿐이었다. ... 바로 이점이 앞으로 수십년간 진행될 비극으로 고통스럽게 빠져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다."
볼커의 바통을 이어받은 그린스펀은 혼자 잘난채하면서 18 년간 온갖 영광의 찬사만 받다가 위기 직전에 털보 버냉키에게 연준의장직을 내줬다. 볼커가 애써 만들었던 탄탄한 성장 기반 위에서 룰루랄라 하면서 호시절을 보냈으니 그린스펀처럼 억수로 운좋은 사내도 없을 것이다. 파티가 끝난 후 설거지 하느라 버냉키는 요즘 진이 다 빠졌을 것이다. 설거지 해본 사람은 안다, 설거지가 얼마나 힘들고 해 놔도 빚이 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폴 볼커 (1927.9.5~ )
오바마 대선 캠프는 볼커를 경제자문역으로 다시 불러들였고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금 볼커의 정식 명함에는 이라고 박혀 있다. 만신창이가 된 금융시장과 경제를 회복시키는 묘수를 짜내야 하는 자리다. 그가 오바마 귓속에다 대고 금융개혁안의 큰 밑그림을 속닥거렸을 것이 틀림없다. 볼커식 개혁이 만일 도입된다면 미국은 당분간 혹독한 시련에 직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금융기관이 엄청난 레버리지를 쓰면서 돈지1랄을 하지 못하게 엄격하게 규제하면 금융기관의 자금수요는 그만큼 줄어들고 금리를 높여 조성된 자금이 자연스레 산업 쪽으로 흘러가게 만들어서 미국경제의 기반 자체를 튼튼하게 하자는 거다. 이렇게 되면 땅콩장사 하다가 대통령이 된 카터처럼 장기 긴축 모드로 갈 가능성이 높다. 천문학적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막아내지 않고서 미국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볼커의 고민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아래 글은 매일경제 정진건 기자가 쓴 볼커에 대한 글인데 상당히 멋진 글인거 같아서 퍼왔다. 미국 금융개혁안이 만들어지면 당장 증시가 폭락할 것 처럼 호들갑 떨면서 주식을 시장에 대동댕이치는 사람들이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미국이 썩어 문들어져서 당장 망할 것 같아도 미국에는 이처럼 백년 대계를 생각하는 엘리트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일독할만한 글이다.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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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커의 은행개혁안에 숨은 또 하나의 의미 (매일경제)
최근 주가 폭락의 기폭제가 됐던 미국의 은행개혁안과 관련해 대다수 국내 언론이 간과하고 넘어갔거나 제대로 짚지 않은 게 있다.
이번 개혁안을 만든 인물이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폴 볼커 전 FRB(연준) 의장이었으며, 그의 존재가 시사하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관련 기사에서 오바마를 전면에 내세웠다. 폴 볼커를 언급한 곳조차 “오바마 ‘월가와의 전쟁’의 선봉장”이라거나 “폴 볼커의 부활” 정도로 취급했다. 어떤 언론은 그의 외모를 들먹거리며 “기회를 포착하면 거구를 이용해 단숨에 밀어붙이는 프로 레슬러를 닮았다”고까지 했다.
1987년에 FRB 의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렇다 할 공직을 갖지 않았던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분석으로는 그의 진면목은 물론이고 이후 나타날 큰 추세를 점검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못할 게 뻔하다.
왜 그런지 우선 ‘폴 볼커의 부활’이란 대목부터 보자.
일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볼커는 죽지도 않았거니와 소외되지도 않았다. 전면에 서지만 않았을 뿐 그린스펀이 장기집권 했을 때조차 미국 정가나 월가의 큰손들을 조율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IT버블이 꺼지고 회계부정이 잇달아 터져 월가가 휘청거릴 때 조용히 미국 재계와 금융계의 실력자들을 모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모임은 뉴욕의 외교협회에서 열렸는데 이들이 모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영진의 회계책임을 대폭 강화한 사베인스-옥스리법이 나왔다.
그만큼 그는 어디에 있건 미국 정계와 경제계를 주도하는 큰 인물이다. 그린스펀조차도 그의 앞에선 초라해보일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가 그를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다고 해서 그를 부리는 것처럼 보지만 오히려 오바마가 그의 의지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할 수도 있다.
볼커에 대해 이처럼 강조하는 것은 이번 개혁안을 단순히 은행규제 차원에서만 볼 게 아니라 미국 금융정책의 장기적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단서로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1979년 볼커가 FRB의장에 취임할 당시엔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치솟아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그 상황에서 볼커는 많은 반발을 무릅쓰고 금리를 수직으로 끌어올려 단숨에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제압된 뒤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고수했다.
시장 내에서만 돌며 투기수단으로 쓰이던 자금을 산업 쪽으로 밀어 넣으려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그의 뒤를 이어 FRB 의장이 된 그린스펀 초기까지 지속됐다. 이 기간은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로 이어지는 미국경제의 중흥기다. 볼커가 취임할 당시 12%를 웃돌던 미국의 통화(M3) 증가율은 아버지 부시의 말기엔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국 기업들은 이때 뼈아픈 구조조정을 거쳐 도약의 채비를 갖췄다. 덕분에 90년대 초기 미국은 일시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돈이 풀리면서 늘어난 불균형 때문에 지금 미국의 재정적자나 무역적자는 극단적 수단을 쓰지 않고는 해결이 어려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볼커의 대안은 은행만을 본 게 아니라 이런 거시적 상황까지 감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면 기본적으로 금융권 내 돈 수요가 줄어들고 자연히 경제 전체에 돌아가는 돈의 총량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가 극심하기 때문에 개혁안이 법으로 만들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게 안 되더라도 볼커의 의지가 미 연준의 정책에 반영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린스펀 중기부터 이어져온 초저금리 시대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기조를 바꾼다면 변화는 곧 세계로 확산될 것이다. 이미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돈의 가치가 귀해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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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폴 볼커
치대생 조회수 : 590
작성일 : 2010-02-25 19:30:37
IP : 125.187.xx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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