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도 한참 맞벌이 하다가 전업 된지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그 동안 모시던 시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이제
고1, 고3이 됩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집안 살림보다는 바깥일에 더 능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에요.
그 동안 정말 경제 활동이 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지만 집안 상황이 어쩔 수가 없어서
여태 전업으로 살았네요.
50을 코 앞에 둔 나이....이제 시간이 많이 자유로워졌는데
막상 할 만한 일이 없더군요.
어디든 거의 40세 이하....많아도 45세 이하...
하긴 이제 몸도 여기 저기 삐거덕 거리고 눈도 침침하니 내가 고용주라도 나같은 사람은 꺼릴듯 ㅠㅠ
더구나 내가 오랜동안 했던 일은 금융계 일이니 딱히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온 거에요.
과거 하던 일 계통의 회사에 계약직으로 일을 좀 할 수 있겠느냐고...
업무는 크게 어려운 게 아닌데 급여가 한 달에 100만원 정도라네요.
주5일,9시에서 6시...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도 들고
실로 오랜만에 내 손으로 돈을 벌어보리라는 기대도 들어서 반승낙을 해놓고
퇴근하는 남편에게 얘기를 꺼냈더니....
"니가 100만원짜리 밖에 안된단 말이가? 치아라~"
-지금 내가 어딜가든 그 정도밖에 받을 수 없는거 맞는데!
"그럼 혹시 200만원 준다면? 300만원 준다면?"
"택도 읍따! 그냥 집에 있으마 내가 니 가치를 알아줄낀데 머할라꼬 종일 묶여서고생할라꼬?
그동안 고생 마이 했따. 그냥 살림이나 살살 하고 운동이나 해라. 무신 떼돈을 벌끼라꼬 고생을
사서 할라카노? 읍떤 일로 하래이"
처음엔 나의 부푼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살짝 약이 올랐습니다.
조금 고액인 편이긴 하지만 자기도 월급장이고 일궈논 재산도 없는데 무슨 똥배짱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피곤에 절어 먼저 곯아 떨어져 코를 골아대는 남편 옆에 누워
생각해보니 갑자기 이 사람이 고마워지는 겁니다.
없는 집 장남으로 태어나 여태까지 가족부양의 의무를 어깨에 고스란히 지고 살아온 사람..웬만하면
아내가 조금이라도 벌어 보태는걸 바라기도 하련만
결혼 초반엔 맞벌이 하느라 힘들었고 퇴직후에는 노부모님 모시느라 애썼던 마누라의 고생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구나...싶기도 하더군요.
특히 세상과는 다르게 저의 가치를 아직도 높게높게 쳐 주는 것 같아 웃음이 나면서 참 마음이 따뜻해
졌습니다.
밖에선 100만원짜리지만 남편에겐 천만원, 일억짜리는 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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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치
전업10년 조회수 : 454
작성일 : 2010-02-20 13:25:23
IP : 210.116.xxx.86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아휴~
'10.2.20 1:36 PM (121.136.xxx.196)멋진 남편이시네요. 요즘 남자들 단돈 몇십만원이라도 어디가서 안벌어오나..
눈 부라리는 사람도 많다는데...그 가치를 알아주는 남편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일단 그것과는 별개로...나이 50줄에 새롭게 할만한 일 정말 없습니다.
돈100이면 그나마 괜찮은 거구요. 혹시라도 님께서 정말 일이 하고프시다면
한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해요.2. 넹~~
'10.2.20 11:26 PM (116.39.xxx.22)일단 아내의 가치를 발견하며 말해준 남편 고마운 분이네요.
하지만 저는 돈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한 바깥일을 더 좋아하신다니
일해보시라 감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돈백만원 이지만 그 가치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무한하다고 봅니다.
쉽지않은 사회생활이지만 그속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자신을 더 단단하고 사회속의 일원으로 탄탄하게 만들거라 생각합니다.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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