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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재작년이네요.

-용- 조회수 : 492
작성일 : 2010-01-13 15:20:11
엄청 추운날입니다.
안녕들 하셨어요?
그사이 용산학살열사님 추도를 위한 매일미사를 돕기 위해 다니다가
지난 토요일 모란공원에서 평안을 빌고 왔습니다.
벌써 재작년이네요
6월 24일인가 명동성당 서울교구청에서 정진석추기경님 면담을 요청(후에 면담은 했지만...)하는
4박5일의 단식을 끝내는 날 오후에 전국에서 모인 불교신자 군중이 어마어마했었지요.

그리고 다음 다음날인 30일 월요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시청앞에서 있었고
몇분의 신부님의 단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주무대(?)가 명박이의 언론장악을 저지하기 위한 KBS천막 지킴이였기 때문에 단식을 끝낸 후 KBS 앞으로 복귀하였습니다. 그 후 시국미사는 경찰의 방해로 시청 앞이 아닌 경향신문사 옆 프란체스코회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렸습니다.

시청 앞천막 때 가출하여 KBS 앞에 만 있어 매주 미사를 빠뜨린 관계로 6차때인지 7차때인지
콧수염을 기르신(지금은 뉴질랜드 계심)젊으신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며 눈물을 흠뻑 흘린 적이 있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고해성사 후에 보속 -지은 죄를 용서를 받기 위한 신부님이 내리시는 숙제(?)-을 내리시는데
‘집을 나와 길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속을 받았다’며 안주십디다.

그 당시 시국미사를 집전하셨던 노래를 잘 하시는 최종수신부님께서
지난 1월6일 용산에서 장례미사를 지내시고 난 후 전북으로 내려가신 후 쓰신 글이 있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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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에게 겨울은 휴가다. 봄여름가을 삼철 노동의 무게는 허리가 부러질 정도다.
얼치기 농부인 나에게도 겨울은 휴가철이다. 두 해에 걸쳐 대설이 내렸다.
이곳 금계곡 만나생태마을에도 25Cm의 눈이 내렸다. 마을전체가 설화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녹아내린 눈이 얼은 길에 또 대설이 내려 길이 더 미끄럽다.
연말에 마을을 방문한 형제님이 마을입구의 작은 언덕을 오르지 못해 길가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걸어와야 했다.
사륜구동이 아니면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6일 오후 7시, 용산참사 추모미사가 있는 날이다. 사륜구동차를 빌려 타고 시장도 볼 겸 형제님과 전주로 향했다. 우림성당에서 동료 사제들과 봉고차로 출발했다. 고속도로 주변의 풍경 역시 백설의 나라였다.
오후 5시경에 남일당 참사현장에 도착했다. 동료사제들이 기도회 천막에 옹기종기 모여 이불을 덮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유족회 어머님들이 준비한 식사였다.
이구동성으로 ‘오늘 저녁이 마지막 식사’라며 서운해 했다.
아직 반찬이 남았는데도 접시 채 들고 가 가득 채워왔다.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이런 어머니들의 남편을 정부와 경찰과 보수언론이 테러리스트로 몰았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오른 사람들이 하루 만에 숯덩이가 되고 말았다.
누가 몰아간 죽음인가. 개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몰라보는 사람들,
그래서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회자되는가 보다.

열사들의 미망인들 두 눈에서 고드름보다 차가운 이슬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자 장백의를 입은 사제들이 기도회 천막주위로 모여 들었다.
멀리 제주도에서 품고 온 따뜻한 섬나라의 안부도 혹한의 추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발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허리에 열파스를 붙였지만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주 날개 밑’ 성가에 따라 100여명의 사제가 입장하며 추모미사가 시작되었다.
열사들의 미망인들 두 눈에서 고드름보다 차가운 이슬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분노의 눈물이자 희망의 이슬이며 사랑의 꽃이었다.
혹한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한 손마다에서 국가폭력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양심에서 타오르는 반성의 빛이자 진리를 향한 절규의 빛이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폭력과 은폐가 평화와 정의를 이길 수 없다.

젊은 사제는 강론에서 예언자처럼 남일당 망루 꼭대기 종탑에서 희망의 종을 울렸다.
한 젊은 사제의 고뇌는 십자가형을 앞두고 예루살렘을 보고 흘리신 스승 예수의 눈물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010년 전 스승 예수의 눈물은 돈의 우상에 사로잡힌 오늘의 서울과 권력에 눈이 먼 청와대를 보며 흘리신 눈물이었다. 강론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렀다.
작은 희망의 실개천으로 흐르기도 하고 긴 호흡을 가다듬는 고요한 호수가 되기도 하더니 어느새 급류가 되어
구석구석에 박힌 온갖 추접한 쓰레기들을 뿌리 채 뽑아버리고 장애물처럼 물길을 막고 있는 집체만한 바위를 쓸어버리고 철옹성처럼 버티고 선 둑마저 무너뜨리는 듯한 거대한 강물이었다.
생명을 향한 연민의 강물, 정의와 평화를 향한 갈증을 토해내는 강론이었다.
아니 불의에 타서 쩍쩍 갈라진 대지를 흠뻑 채우는 정의의 단비였다.

열사들의 영정 앞에 촛불이 하나 둘 봉헌되었다.
심장 한 쪽을 도려내어 만든 붉은 초가 미망인들의 손에서 먼저 봉헌되었다.
어린 손자의 손을 이끌고 가는 할아버지 손에서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돈이 없어도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픈 희망의 촛불이, 가난한 이들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교회와 수도회가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수도자들의 간절한 기도의 촛불이,
가난과 정의와 평화의 빛이 깜빡거리는 교회에서 스승 예수를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이 불의한 권력의 참사현장인
남일당 미사에서 스승 예수를 체험하고 스스로 가난과 정의와 평화의 빛이 되겠다는 다짐의 촛불들을 봉헌하고 있었다.

미사는 성혈이 얼지 않는 성당에서만 봉헌해야 한다고(?)

기브스 한 사제의 손에서 성체와 성혈이 드높이 올랐다.
성체는 차가운 남일당 골목에 앉아 있는 선한 눈들과 멀리 30층 아파트 꼭대기 네온사인과 겹쳐졌다.
성체는 돈의 욕망으로 쌓아올린 아파트 위에 보름달처럼 솟아올랐던 것이다.
재개발 이익에 눈먼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빛이었다.
용역철거반원들과 합동작전을 한 경찰과 아들이 아버지를 불태워 죽인 파렴치범으로 몰고 판결한 검사와 판사들, 권력에 눈이 멀어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시장도, 건설귀족 출신으로 건설대기업의 편에서만 재개발정책을 추진하는 청와대에 사는 국민의 종은 볼 수 없는 빛이었다.
스승예수께서 빛이 세상에 왔음에도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라 질타 받은 사람들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진리의 빛이었다.
성체와 성혈을 어둔 하늘로 치켜세우던 기브스 한 사제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문고리에 손이 달라붙듯이 성작에 손이 달라붙은 것일까. 영원한 생명의 피, 그 성혈이 혹독한 추위에 얼어버렸다.
성혈이 얼어버린 미사는 한국교회 역사상 첫 사건일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염원하며 수 없이 많은 길거리 미사를 드렸지만 성혈이 얼기는 처음이다.

피가 얼면 사람은 죽는다.

성혈이 얼었으니 미사도 죽은 미사일까. 바리사이들은 말할 것이다.
그래서 미사는 성혈이 얼지 않는 성당에서만 봉헌해야 한다고, 화려한 성당에서 엄숙하고 거룩하게만 드려야 한다고…. 추모미사는 끝났지만 수배자와 형을 선고받은 이들,
수사기록 3,000 쪽의 진상규명과 올바른 재개발정책을 향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내가 남일당 재개발이익의 수혜자인 건설대기업의 임원이 될 수도 있었고,
또 당신이 4지구에서 권리금과 영업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상인이 될 수도 있었다.
내 형이 승진에 보답하려는 경찰청장의 지시로 농성 하루밖에 되지 않는 망루 진압에 투입되어 불타 죽은
경찰이 될 수도 있었고, 또 대학 4년 등록금을 책임져야 하는 내 아버지가 남일당 옥상 망루에서 불타 죽을 수도 있었다.

1년 가까이 죽은 자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한 정권이 국민 앞에 회개하지 않는 한, 책임자가 처벌되고 범법자들이 무죄로 석방되며 원주민들이 억울하게 쫓겨나지 않는 올바른 재개발정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어제는 용산참사 열사들이 오늘은 내가 내일은 당신이 참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냉동실에서 성혈처럼 얼어있었던 망자들을 품에 안아 주실 이

미사 후 동료사제의 사제관으로 갔다. 내 집처럼 편안했다. 성혈을 얼게 한 혹한에 부들부들 떨었던 몸을 소주로 덥혔다. 술잔과 주고받은 훈훈한 이야기에 피로마저 말끔히 가셨다. 다음날 아침 개봉역에서 전철을 탔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일주일 전에 친정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낸 자매님에게 위로의 점심을 대접했다.
전주로 가는 일반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를 떨어뜨리고 잤다.
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20분가량 걸었다. 다시 30분가량을 기다렸다 시내버스에 올랐다.
안내방송 실수로 한 정거장 앞에 내려 걸어야 했다. 군데군데 빙판길에서 넘어질 뻔했다.
20분을 기다렸다 부귀면 소재지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자매님이 사륜구동차를 타고 외출을 나갔다.
마을입구까지 택시를 타고 갈 수 있었으나 걷고 싶었다.

50년대 목조건물이 남아있는 면소재지를 걸었다. 멀리 중학교가 보이고 눈이 녹지 않는 도로는 빙판길이었다.
들판을 가로지른 도로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았다. 북쪽으로 나 있는 시멘트 도로는 눈이 다져져 백색도로였다.
홀로 사는 할머니 집을 지나 차 한 대 밖에 갈 수 없는 산모퉁이 길로 접어들었다.
갈매봉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보이자 언덕에 등대처럼 서 있는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거실에 밝힌 불이 따뜻해 보였다. 개 짓는 소리도 정겹게 들려왔다.
초저녁 으스름한 어둠 속에서 형님이 손을 흔들고 있다.

봉쇄수녀님들은 일생동안 수녀원 돌담에 갇혀 살지만 끊임없이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어쩌면 그런 수도자들이 있어 세상에 희망이 있는지 모른다.
백 평의 아파트에 살아도 농부가 비지땀을 흘려 생산한 유기농산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도시 부자가 시골 농부와 공생해야 하는 이유다. 자연 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없듯이 빈자 없이 부자가 존재할 수 없다. 세상과 정치 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없듯이 교회와 신자 없이 사제가 존재할 수 없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스승 예수는 정치범으로 사형을 당했다. 세상과 정치는 구원의 터전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제는 세상과 정치의 한복판에서 스승 예수처럼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세상과 정치를 구원하려는 남일당 골목 미사에서 성혈이 얼고 말았다. 2010년 교회의 역사상 첫 사건일 것이다.
정성을 아시는 스승 예수께서 355일 동안 영하 40도의 냉동실에서 성혈처럼 얼어있었던 망자들을 품에 안아 녹여주실 것이다. 가난한 자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부자가 천국의 바늘귀를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쓴 이

최종수 (전주교구 신부. 진안 부귀에서 공소사목을 도우며 농촌환경사목을 맡고 있으며,
자급자족하는 생태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신자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지독한 갈증>과 시사수필집 <첫눈같은 당신>이 있다.)
IP : 119.192.xxx.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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