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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되면 나 이렇게 살 줄 알았다..

아고라 펌^^ 조회수 : 6,798
작성일 : 2010-01-11 10:54:18
요즘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문득 차장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화장대 거울이나 화장실의 거울에 비친 모습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 속에
묻혀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영락없는 불혹의
아저씨 한 명이 초점 없이 멍하니 서 있습니다.
많은 사람 속에서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지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 40살 되면 골프 치고 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난...가끔 동네 사람들이랑 아직도 당구 치고 다닌다.
웃긴 건, 20년 전에 200 쳤는데 지금 120 놓고 물리고 다닌다.



나 40살 되면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 맡아서 팀원들 이끌고 밤샘 회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난...아직도 아침에 출근해서 밑에 직원들 오기 전에
사무실 화장실 청소한다.
웃긴 건, 직원들이 화장실 막혀도 날 찾는 거야. 부장은 부장인데...화장실
관리 부장인가 봐.



나 40살 되면 항공사 마일리지 엄청 쌓여 있을 줄 알았다. 사진첩에
몽마르트 언덕 노천카페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 한 장 즘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난...태국에서 코끼리 엉덩이 만지며 어색한 미소 짓는
사진 한 장이 다야
웃긴 건, 그 사진도 신혼여행 때 사진이야. 그때 태국이라도 안 갔으면
아직 외국 한번 못 나가 본 거였어



나 40살 되면 우리 집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집처럼 집안에 계단 있는
복층 집에서 사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난...좁은 집에서 부모님, 우리 부부, 남매..이렇게 여섯 식구가
박터지게 살고 있다.
웃긴 건, 방은 세갠데 남매들이 자꾸 커 간다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형제나
자매를 낳을 걸 그랬어.



나 40살 되면 부모님 엄청 호강시켜 드릴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 80세 되신 아버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다니고 밤에는 집안에 재활용 분리수거 담당이다.
웃긴 건, 재활용 버리러 나가셨다가 아깝다며 주워 오는 물건이 더 많으셔



그리고 어머니 아침, 점심, 저녁으로 화투 패 뜨기를 하시는데 똥광이 한 장
없어서 서비스 패를 똥광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치셔
웃긴 건, 어느 날 똥광이 있기에 찾으셨나 했는데 여전히 서비스 패가 한 장
보여서 물었더니 이번엔 홍싸리 한 장이 없어졌데



나 40살 되면 우리 남매 남 부럽지 않게 키울 줄 알았어
그런데 두 남매 동네에서 아는 분이 주시는 옷 물려 입어. 물론 다 작아서 못 입는
옷 서로서로 바꿔 입으면 좋은 일인 거 알지만..
웃긴 건, 내가 사준 옷보다 그 옷을 더 좋아한다는 거야..메이커가 틀리데



나 40살 되면 동갑내기 아내 호강시키며 살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 아내 몇 년째 맞벌이하면서 시부모 모시고 살고 있어
슬픈건, 아내는 아직도 내가 결혼하기 전에 호강시켜 주겠다는 말을 현재진행형으로
알고 살고 있다는 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튕겨 나가듯 지하철에서 내려서 아직도 쌓여 있는 눈을 밟으며

집에 들어왔습니다.
현관문을 여는데 아버지와 아내가 식탁에서 막걸리 한 병과 돼지고기 보쌈을 먹고
있습니다.



"다녀오셨습니까~~" 내복 남매의 인사
"애비야 수고했다 한잔해라" 아버지의 얼큰한 목소리
"자기야, 한잔하고 씻어" 아내의 더 얼큰한 목소리
"홍싸리 찾았다" 어머니의 해맑은 목소리



엉거주춤 식탁 앞에 서서 목구멍으로 시원하게 넘어가는 막걸리 한잔에
불혹의 나이를 시작합니다. ㅎ


IP : 114.204.xxx.189
2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나야나
    '10.1.11 11:01 AM (121.154.xxx.97)

    아고라에서 유명하신 분이시죠.
    글을 참 유쾌하게 잘 쓰셔서 인기가 많으시고 얼마전에 책도 엮으시고~~

  • 2. 뭔지 모를
    '10.1.11 11:02 AM (119.196.xxx.239)

    동질감과 씁쓸함이 있네요^^

  • 3.
    '10.1.11 11:03 AM (222.235.xxx.45)

    저도 40 되면 인생 여유롭게 살 줄 알았어요.
    집은 자가에서 전세로... 남편도 급여문제로 나왔지만 역시나 왕창 깍여서 다른데 들어갔답니다.
    애들도 이쁘게 키우고 살 즐 알았는데 애들과 맨날 싸우고 삽니다.

  • 4. 호강
    '10.1.11 11:05 AM (114.206.xxx.64)

    시켜 준다는말을 현재진행형으로 믿고 산다는부분을 보니 저같아요.ㅜ.ㅜ

  • 5. 그래도
    '10.1.11 11:39 AM (211.176.xxx.215)

    마지막 글이 화목해 보여서 좋네요....^^

  • 6. 옆에
    '10.1.11 12:20 PM (61.79.xxx.85)

    앉아 있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 당신 나 호강시켜 줄꺼야?"
    답이 없네뇨...

  • 7.
    '10.1.11 12:57 PM (125.134.xxx.171)

    남편에게 제가 호강시켜준다고 했는데....
    제나이 마흔....
    제등에는 둘째가 업혀자고 있어요..
    언제 키워놓고 돈벌러나가나요?......ㅠ.ㅠ

  • 8. 울었어요
    '10.1.11 2:34 PM (61.81.xxx.206)

    너무 감정이입했나봐요 ㅋㅋㅋ
    너무 웃긴데 너무 슬프고 너무 짠하고 그러네요

  • 9. 가슴에
    '10.1.11 2:48 PM (121.166.xxx.183)

    와 닿네요..
    꿈이 많았고, 뭐든지 다 이룰 것 같이 당당했던 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지요..
    꺽어진 80..인생의 중턱에 서서, 올려다보니 아직도 까마득하고, 내려다보니 그 또한 아득하기만 해서...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시 묵묵히 발걸음 내딛게 되네요....점점더 무거워지는 어깨와 발걸음을 느끼면서..

  • 10. ..
    '10.1.11 3:20 PM (112.144.xxx.74)

    내 나이 올해 40...
    급 동질감을 느낍니다

  • 11. 포비
    '10.1.11 5:34 PM (203.244.xxx.6)

    씁쓸하다가.. 마지막엔 기분이 좋아지네요.
    눈물도 찔끔 ㅋ

  • 12. 가슴에
    '10.1.11 11:44 PM (118.219.xxx.210)

    와닿는말이네요
    돈 암만 많으면 뭐합니까 가정이 화목해야지요
    그래도 그집 가정은 행복한거같네요

  • 13. 우울증..
    '10.1.11 11:44 PM (118.45.xxx.75)

    나도 마흔 불혹의 나이인데...
    어느날 볼살 쪽 빠지고 눈가의 주름이 어느덧 내 자리인듯 차지한 얼굴이 버티고 있어요.
    어릴적 마흔이면 엄청 아저씨 ,아줌마였는데...
    내가 마흔되니 아직도 청춘이고 싶네요.

    삼십대 마지막즈음에...나 뭐했났지 하는 생각에 우울증 오더라구요.
    이제 시작이다 싶어요.
    아이들 학교 끝날때까지 제 인생 한창 진행형으로 살랍니다.

  • 14. 크...
    '10.1.12 2:01 AM (125.141.xxx.91)

    정말 소주를 부르는 글입니다...

  • 15. ㅋㅋ
    '10.1.12 2:24 AM (218.156.xxx.138)

    사십도 지나고 한살 더 먹은 지금....
    그저 내 앞날에 아프지않고 건강하기만을...
    젤로 큰 욕심을 부려보내요..

  • 16. 인생
    '10.1.12 2:29 AM (112.144.xxx.163)

    뭐다그런거죠.. 오십되면 좀낳아질래나 자꾸속는기분으로 또한해를
    보내는거죠.. 그런데 부모님 모시고 재미있게 잘사시는걸로
    만족하시고 아내에게 칭찬 많이하세요 요즘부모님모시고 사는사람
    별로 없어요 모처럼마음에 와닿는 좋은글이네요

  • 17. 그래도
    '10.1.12 2:42 AM (220.117.xxx.153)

    막판에 반전이 있네요,,어느정도는 행복하신듯,,,

  • 18. 아~더도말고
    '10.1.12 5:15 AM (121.223.xxx.253)


    마흔살만 되어도...

  • 19. ..
    '10.1.12 5:56 AM (122.43.xxx.123)

    나도 마흔....
    해놓은건 없구...
    호강시켜 준다는 남푠도 없다는...ㅎㅎㅎ

  • 20. .
    '10.1.12 7:36 AM (99.7.xxx.39)

    세월이 갈수록 더 박탈감에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그러네요
    30땐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하루 보내는것도 다행이다싶고요

  • 21. 바로
    '10.1.12 8:22 AM (61.253.xxx.58)

    내 이야기군요

  • 22. 에고고
    '10.1.12 8:26 AM (119.71.xxx.4)

    우리들 삶이 그렇죠~~ 허무하기도하고 뿌듯한 순간이 점점 희미해지고~~

  • 23. ..
    '10.1.12 8:38 AM (112.170.xxx.155)

    40까지 돈 빡세게 벌고 그 이후엔 여행이나 하며 살겠다던 사람이 있었지요.
    지금은 50으로 수정했지만 곧 60으로 수정될듯..ㅎㅎ...ㅠㅠ

  • 24. .....
    '10.1.12 8:54 AM (112.150.xxx.180)

    금년에 40되요. 넘 맘이 아픈데(동질감을 느껴서) 너무 재미있네요.

    아자! 그나마 난 자매당...흐흐흐

  • 25. 2년후에
    '10.1.12 9:34 AM (210.103.xxx.21)

    저도 이 글을 읽고서...가만히 나를 생각했어요
    2년후에 40인데...어쩌나...

  • 26. 000
    '10.1.12 9:42 AM (211.203.xxx.190)

    저도 이년후면 불혹인데, ㅠㅠ

  • 27. ㅠ.ㅠ
    '10.1.12 10:23 AM (220.64.xxx.97)

    깊이..깊이 공감합니다.

  • 28. ^^
    '10.1.12 10:41 AM (221.151.xxx.105)

    나에겐 40이 없을줄 알았죠
    이런 40은 싫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삽니다

  • 29. ....
    '10.1.12 10:51 AM (61.77.xxx.250)

    공감 되면서 넘 잼나게 적으셔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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