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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2 우리 아이 일기 좀 봐주세요

논술선생님계시면 조회수 : 1,197
작성일 : 2009-12-11 15:55:55
전 사교육이라곤 피아노, 미술 말고는 시키는 게 없거든요.
흔한 학습지도 한번도 안시켜봤고요.
근데 요즘 주위에서 보면 저학년에 논술까지 시작하는 아이들도 꽤 되더라구요.
저는 그냥 일주일에 사,오일 정도 일기쓰는 것으로 글쓰기 공부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왔거든요.
적어도 고학년 되기 전까지는요.
다행히 아이가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 그런가 일기도 그리 힘들게 쓰지는 않는 것 같긴 한데
(선생님도 잘쓴다고 칭찬하시고 일기 쓰기 대회에서 학급 대표로 뽑혀 상도 받긴 했어요)
제가 워낙 주위 엄마들과 교류도 잘 안하고 또 사교육쪽에 대해선 잘 모르는터라
솔직히 우리 아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네요.
혹시, 논술 선생님 계시면 좀 봐주십사 부탁 드리며 몇 개만 올려 볼게요.


X월 X일
<다시 태어남>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까, 안태어날까 엄마께 여쭤보았더니
엄마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셨다.
내가 그럼 하느님이나 신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끝도 없이 무한한 우주와 지구외 모든 별을 다 다스리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냐고 물어 보셨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은 안보이기 때문에(기체처럼 형태가 없기 때문에)
몸을 끝없이 늘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X월 X일
<잃어버린 연습장>
작년에 쓰던 연습장에 볼 게 있어서 찾아봤더니 없었다.
엄마께 여쭈어봤더니 너무 오래되어서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엄마가 귀한 금반지를 잃어버렸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
안찾는다면 어떻겠냐고 했다.
엄마가 내 연습장을 찾아주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하시는 걸
믿겠다고 말했다.
그러다 엄마가 결국 찾아주셨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X월 X일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참 불쌍하다.
그리고 많은 시민이 슬퍼했다. 우리 엄마도 많이 슬퍼하셨다.
노무현 대통령의 아내와 아들과 딸과 손녀도 슬퍼했다.
손녀랑 같이 놀던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까
손녀도 슬퍼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았다.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이 이렇게 많이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X월 X일
<비>
하루종일 비가 많이 왔다.
나는 비가 싫기 때문에 학교 가는 데도 불편했다.
그리고 집에 올 때, 전에 안가져온 우산이랑 두 개를 가져와서
더 불편했다.
비는 나에게 불편한 점을 주지만 장점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식물들을 잘 자라게 해준다.
그래서 비가 싫지만
꼭 비가 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X월 X일
<암행어사와 수퍼맨>
암행어사 박문수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암행어사는 꼭 수퍼맨같다.
수퍼맨도 평범한 회사원으로 있을 때는 수퍼맨일 줄 몰랐다가
무슨 일이 닥치면 수퍼맨 옷으로 갈아입고 그 일을 처리하러 가는데
그 회사원으로 변신한 수퍼맨이랑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암행어사도 평소에는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녀서 나그네 같은데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사람이니까 그런 점이 닮은 것 같다.


X월 X일
<부메랑 같은 일>
좋은 말을 하면 부메랑처럼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
예를 들어서, 엄마 아빠를 왕이랑 왕비님이라고 하면
나도 왕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말을 하면 그것도 나에게 되돌아온다.
예를 들어 엄마 아빠를 거지라고 하면 나도 거지가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
그러니까 좋은 말을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것과 같다.


X월 X일
<나쁜지 안나쁜지>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건 육식동물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기가 사람이나 동물 피를 빨아먹는다고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기가 피를 빨아먹는다고 해충이라고 생각하지만
모기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일부러 그러기도 한다.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기도 한다.
나는 절대로 일부러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2학년 들어서 쓴 일기가 벌써 여덟권이라 그 중에 몇 개만 추렸습니다.
아이는 일상적인 일 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주로 적는 편이구요.
어차피 일상이야 맨날 똑같으니까 적을 거리가 없기도 하지만요. ㅎㅎ
이 정도 일기면 글쓰기 능력이 어떤 수준인지 모르겠네요.
주위에 아는 분도 안계시는터라 이 곳에 여쭤봅니다.
혹시 전문가 선생님들께서 보신다면 어떤 점이 부족한지,
논술 수업이 필요할지의 조언도 주심
정말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

IP : 114.205.xxx.236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09.12.11 3:58 PM (218.239.xxx.174)

    전 논술선생님은 아니지만 초2가 일기를 참 잘썼네요
    제딸은.....쓰기싫은거 억지로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일주일에 겨우 한번 후다닥 써가는데
    내용이 아주 어이없어요ㅠ.ㅠ
    제목 <비>
    난 비가 싫다
    주르륵 주르륵 빗소리는 듣기 좋은데
    비오는게 싫다
    왜냐면..비는 산성비라 탈모가 되니까...

    이렇게 썼더라구요ㅠ.ㅠ 에휴ㅠ.ㅠ

  • 2. 아이쿠..
    '09.12.11 3:59 PM (61.98.xxx.253)

    상받아도 될 실력이네요...
    참고로..울 아들도 2학년이에요...
    님아드님 솜씨는...아주 뛰어난것 같아요..

  • 3. 둘다
    '09.12.11 4:02 PM (211.49.xxx.123)

    너무 귀엽네요..
    우리 조카도 2학년인데 일기장좀 훔쳐봐봐야겠네요~~

  • 4. 세상에나...
    '09.12.11 4:05 PM (211.237.xxx.172)

    자랑하려고 올리신거 아니죠. 어른인 저보다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한거 같네요. 너무 부러워요. 일기 모두 모아서 잘 보관하셨다가 이다음에 두고두고 봐도 좋을듯 싶네요~~~

  • 5. 초콜릿
    '09.12.11 4:07 PM (61.40.xxx.10)

    너무 잘 썼어여^^ 보물1호라 해도 부족하지 않아여..울딸두..이렇게 키우고싶어여.. 부럽삼~

  • 6. 생각이
    '09.12.11 4:10 PM (125.178.xxx.192)

    아주 깊네요.
    계속 책 많이 읽고 자기생각을 자주자주 적는 연습하면
    그게 곧 논술력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넘 사교육에 무지한걸까요

  • 7. 부러버라~~~
    '09.12.11 4:20 PM (219.241.xxx.43)

    진짜 자랑하려고 쓰신 것 같네요^^

    9살 생각에서 나온 글이 저리 심오할까??
    울아들 5학년인데,저런 일기 엄두도 못내네요.

    그저 매일 일상생활..
    그러니 일기도 짧고,쓰기도 싫어하고.

    주제를 정해서 너의 생각을 써봐라~해도
    안되니...
    그래서 논술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일기라도 잘 써보라고..

    논술선생님 계시면 제 답변도 해주세요^^
    논술 보내면 나아지겠나요?

  • 8. 6학년아들
    '09.12.11 4:25 PM (211.218.xxx.130)

    우리 아들보다 훨씬 잘썼네요~
    에휴~ 논술이다 뭐다 다 필요없더군요~
    책,책,책을 많이 읽어야지요~~

  • 9. 졌다
    '09.12.11 4:26 PM (124.50.xxx.202)

    부러워서 졌다..

    아..저도 논술은 ㄴ도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을 잘정리해서 적은거같아요.

    울애 일기장보면 7살때나 지금이나 똑같애요.
    어휘력도 마찬가지..ㅠㅠㅠㅠ

  • 10. 不자유
    '09.12.11 4:55 PM (110.47.xxx.73)

    10년차 논술 강사입니다.
    고등부, 재수생들을 주로 가르치지만
    초등 논술 교재 검수도 해 보았고
    제가 초등 자녀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일기, 독후감을 많이 봅니다.

    논술 선생 입장에서 말씀 드리자면
    사고의 참신함, 논리적 서술 능력이 참 좋습니다.
    동네 글짓기 학원의 때가 묻어 있지 않아 좋구요.
    (논술은 느낌을 쓰는 글이 아니므로
    감성의 풍부함은 배제하고 보더라도 말이지요.)

    일기 자체로 보더라도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장점.
    문장력, 진솔함 모두 좋습니다.

    논술 학원 보내지 마시고, 지금처럼 책 많이 읽게 하세요.
    저는 우리 딸들 논술 훈련 안 시킵니다. 전혀.
    대신 일기뿐 아니라, 독서 감상문도 슬슬 써보게 하세요.
    일기는 자기 생각 그대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글짓기와 연결되지만
    독서 감상문은 책을 읽고, 그에 바탕해 쓰기 때문에
    일기보다는 독서감상문이 논술훈련에 가깝습니다.

    아주 훌륭한 자질을 가진 아이 같네요.
    우리 딸들도 글짓기,독후감, 일기, 편지 쓰기 대회 상을 많이 받는데...
    심사위원들이 보는 가장 큰 기준은 스킬이 아니라 사고의 참신함입니다.
    어릴 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론하고,또 직접 쓰고,
    그것이 논술의 핵심입니다. 그것 이상이 없어요.
    책 같이 읽어주시고, 지금처럼 아이와 대화 많이 나누시고,
    아이가 쓰는대로 격려해 주세요.
    논술 학원 다니는 아이들보다 논신이 될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 11. 와우
    '09.12.11 5:20 PM (218.49.xxx.177)

    대단해요.
    진짜 부럽습니다. 저도 저런 일기는 못쓰는데....
    초1 우리아들은 일기 쓰는데 한시간은 고민하다가 오늘 뭐했다...로 마무리 합니다. ㅠㅠ
    책 많이 읽혀야겠네요. 많이 반성하고 갑니다.

    정말 제목이 예술이구요, 어떻게 저런 비유를 하는지...입이 딱 벌어져요. 아드님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 12. 원글이
    '09.12.11 6:16 PM (114.205.xxx.236)

    와~ 댓글들 많이 주셨네요. 특히 따뜻한 칭찬 많이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 지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아 올리면서도 좀 조마조마했는데...^^;;
    제 생각에도 독서가 중요한 것 같긴 해요.
    아들녀석이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을 때는 꼭 책을 들고 있거든요.
    不자유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독서감상문 쓰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되는 거였군요.
    아이 학교는 독후감 숙제가 거의 없는 편이라 방학 숙제 외에는
    일부러 쓰게 하진 않았거든요.
    항상 재밌는 책을 읽으면 책 내용에 대한 자기 생각을 조잘조잘 얘기하곤 하는데
    앞으론 글로 표현해보라 해야겠습니다. 귀한 조언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겠네요.

    근데 윗님, 울 아들 안만나보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아마 한 시간만 함께 계심
    그 수다수다에 만난 걸 금세 후회하실 듯...ㅎㅎ

    좋은 댓글 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내일 놀토네요.
    가족과 함께 편안하고 즐거운 주말들 맞으세요.^^

  • 13. 왠만한
    '09.12.11 6:40 PM (118.35.xxx.28)

    소설책보다도 더 재밌어요.
    다른 일기도 궁금해지는데요 ^^

    글 너무 잘쓰는거 같아요.

  • 14. 2탄
    '09.12.11 8:35 PM (124.199.xxx.22)

    3탄..올려주세요..
    아들 자랑하시는 것 같아요..ㅎㅎㅎㅎ

    저희 아들도 일기 나름 잘 쓰는 편인데..2학년이구요..
    저희 아들 일기는 웃는 내내 배꼽 잡게 되거든요.....

    님 아이의 일기는....수필을 읽는...시를 읽는 느낌이 드네요....

  • 15. 논술밥
    '09.12.11 9:27 PM (119.148.xxx.227)

    제가 훌륭한 교사가 아니어서 감히 평하기가 주제넘지만
    그래도 논술밥 언15년이라 지나치지 못하고 씁니다.
    게다가 저희 아이도 2학년이라서요 ..
    단순히 글을 전개하는 논리적 구성 능력과 문장력의 우수함으로도 돋보이는 글입니다.
    그러나 더욱 인상적인 것은 상황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깊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태어남><나쁜지 안나쁜지>는 철학적 깊이가 묻어있는 성찰입니다.
    또래의 아이들에게서 나오기 쉽지 않은 글감입니다.
    요즘과 같은 교육현실에서는 또래 뿐만 아니라 저런 생각 근처에도 못가는 고3도 태반입니다.
    물론 그 소재가 책이나 부모님과의 대화 중에서 알게 된 것이라 해도
    이런 주제를 이런 방법의 논리를 풀어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연습장><암행어사와 수퍼맨>은 대상을 인식하고 비유로 나타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글입니다.
    <비>와<부메랑같은 일>은 자신과 주변의 관계를 인식하는 깊이가 돋보입니다.
    아이의 일기를 하나하나를 평가하자는게 아니라 그냥 막연히 잘썼다라고 두루뭉실 칭찬하기엔 아이의 사고와 실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쓰는 일기, 타인의 생각을 읽는 독서 감상문은 초등과정에서 좋은 훈련이 됩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보자면 사회의 쟁점이 되는 문제들 이를테면 <기술발전을 포기하고 환경을 보존해야 할까? 아니면 기술을 발달을 추구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발달시켜야 할까/>
    <다수결 원칙을 따라야 할까?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할까?>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할까? 폐지해야 할까> 등등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근거를 들어 써보는 훈련도 도움이 될것입니다.
    논술학원은 보내지 마시고( ...아마도 보내시려고 해도 학년별로 반이 짜여지는 일반적인 논술학원에는 아이의 수준에 맞는 반이 없을 듯합니다.) 엄마가 조금만 앞서서
    아이에게 주제를 던져주거나
    한 주제로 묶을 수 있는 책을 준비해 주거나
    쟁점이 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를 내용으로하는 책을 구해주는 정도
    로만 이끌어 주시면 될 것같아요
    논술을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요런 조언들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같은 9살 녀석의 엄마로서는 그저 깨갱일 뿐입니다. 다른 면으로는 아이를 알 지 못해 감히 말씀을 못드리겠지만 정말로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입니다.

  • 16. 전 글쓰기 선생
    '09.12.13 1:03 AM (124.216.xxx.90)

    내용이 다양해서 재미있네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독서일기나 동시 일기가 아니라면
    매일 대화글을 넣어서 써 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아마 같은 내용이라도 읽기에 숨차지 않고 훨씬 풍부한 글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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