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캄비세스왕의 재판4 : 스트라스부르의 달걀

프리댄서 조회수 : 714
작성일 : 2009-12-07 00:09:33
사실은 삶은 달걀을 먹다가 문득 또 당신께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언젠가 나도 삶은 달걀을 먹던 중에 목이 메는 느낌을 경험했던 것 같았거든요. 그때가 언제였더라, 언제였는지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죠. 껍질을 깐, 그 미끈한 물체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다가 별안간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때. 아니면 그저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급하게 먹다가 단순히 목이 멘 것이었는지도.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늘 이런저런 실수를 저지르니까요. 그러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말입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어떤 남자도 그랬다는군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한 허름한 호텔에서. 당신에게 그 남자 얘기를 잠깐만 하고 싶습니다. 그 남자 얘기를 듣다 보면 삶은 달걀이 얼마나 위험한 음식인지를 알 수가 있죠. 삶은 달걀은 정말 위험한 음식이랍니다. 그걸, 그 남자 이야기를 통해 당신도 거듭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그 남자는 누이동생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행은 어쩌다 보니 미술 순례가 되어버렸어요. 그는 수많은 미술작품들을 봤습니다. 그 중에서 남자가 제일 먼저 언급한 작품은 헤라르트 다비드(Gerard David)가 그린 <캄비세스왕의 재판>이었지요. 벨기에의 브뤼주라는 도시에 있는 흐루닝헤 미술관에서 본 것이었습니다. 캄비세스의 난행 중에는 그런 것도 있었답니다. 그가 이집트를 점령했을 당시 뇌물을 받고 부정한 재판을 진행한 현지 재판관에게 벌을 내렸는데 (당연한 일인가요?), 그때 캄비세스가 내린 벌은  ‘생피박리형(生皮剝離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피박리, 말 그대로 산 사람의 살가죽을 얇게 벗겨내는 것이죠.

그래서 뇌물을 받고 그 뇌물을 준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재판관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졌습니다. 캄비세스는 그런 다음 그 재판관의 아들을 그의 후임으로 임명했죠. 아들이 앉는 의자에는 그의 아버지한테서 벗겨낸 살가죽을 깔개로 깔도록 했습니다. 재판관의 아들은 아버지의 피가 묻어있는 살가죽을 깔고 앉아 재판을 진행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헤라르트 다비드는 그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두 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재판관이 생리박피형에 처해지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캄비세스왕의 재판Ⅰ)과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살가죽을 깔고 앉아 신임 재판관으로 임명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캄비세스왕의 재판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헤라르트 다비드는 소재만 거기서 따왔을 뿐 그림의 시공간적 배경은 1498년의 브뤼주로 설정을 했답니다. 왜냐하면 그 그림은 시청에 걸 목적으로 그에게 청탁된 것이었기에, 그는 고대에 있었던 이야기를 1498년의 벨기에로 가져와 당시의 ‘모든 판사와 시참사(市參事)들’에게 부패와 결탁하지 말 것을 촉구해야 했던 것이죠.  

남자가 언급한 건 그 중에서도 <캄비세스왕의 재판Ⅰ>이었습니다. 남자는 그 그림을 보며 우선 ‘흐르는 피 한 방울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려내려고 하는, 가열한 사실정신(事實精神)에 압도당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또한 ‘당시 한자동맹의 자치상업도시로서 번영을 구가하던 브뤼주 시민들의 각박하고 가열한 합리정신’이자 ‘북방 르네쌍스의 정신적 풍경’이라고도 해석하죠.  

그런 생각을 하며 그 그림을 감상하던 남자의 눈에 어느 순간 처형대 위에 누워있는 재판관의 발목이 들어왔습니다. 형리(刑吏) 한 명이 마치 ‘양말을 벗겨내듯’ 그 재판관 발목의 살갗을 벗겨내고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 그만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던 것이죠. 남자의 아버지는 암에 걸려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 역시 그보다 세 해 앞서 암으로 돌아가셨구요. 두 분 모두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회한을 풀지 못하신 채였습니다. 남자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러니 또 잠깐만 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재일교포 1세대인 남자의 부모님은 둘째아들과 셋째아들을 고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더랬습니다. 그 아들들은 어느 해 방학에 평양을 방문했었죠. 그것이 ‘또 하나의 조국’에 대해 잘 앎으로써 민족적 자각을 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었든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든 간에 그 행위에 대한 내 생각은, 여기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로 말미암아 그 아들 두 명이 창졸간에 ‘형제 간첩단’이 되고 말았다는 것만 덧붙이도록 하죠. 1971년, 둘째아들은 스물다섯, 셋째아들은 스물두 살 때 일어난 일이었다는 점도 말씀드리는 게 좋을 듯싶군요.  

그 중에서 둘째아들 서승은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 20년형으로 차례차례 ‘감형’됐습니다. 셋째아들 서준식은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죠. 존 레논의 ‘Imagine'이 발표된 게 1971년이었던가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상상해보라는, 국가도 없고 전쟁도 없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보라는 그 노래가 발표된 그때에 형제는 감옥살이를 시작해야 했고 감옥살이가 시작되자마자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무자비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내게 사향쥐와 밍크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지요. 사향쥐와 밍크는 인간이 놓은 덫에 걸리면 자기 다리를 잘라서라도 자유를 찾아 도망친다고 하셨습니까? 형제는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더는 무자비한 고문을 견딜 수가 없어서. 마치 자기 다리를 잘라서라도 끝끝내 도망치고야 마는 사향쥐와 밍크처럼 형제는 목숨을 끊어서라도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내면의 자유’를 조종하려는 고문에서 해방되고자 했습니다.

둘째아들 서승은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그 안에 있는 난로의 기름을 자신의 몸에다 끼얹었죠. 그리고는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당신도 알고 있듯이 온몸에 ‘흉측한’ 화상을 입게 됐습니다. 셋째아들 서준식은 손목을 그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걸 ‘운명’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셋째아들이 자살을 시도한 날은 마침 날이 몹시 추워서 그 아들은 손목을 그은 뒤 손을 가슴에 얹고 옹송그린 채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동맥에서 흘러나온 피가 셔츠에 엉겨붙어 있었습니다. 그 덕에, 날이 추웠던 덕에, 그래서 두 손을 가슴에 올려놓고 곱사등이처럼 옹송그리고 잔 덕에 동맥의 피는 흘러나오다가 도중에 응고되어버렸고 하여 둘째아들 서준식은 죽을 만큼 피를 흘리지 못해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런 걸 운명이라 부르는 것이겠지요. 그는 그 기묘한 상황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분명히 감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죄양으로 점지된 자신의 운명을.

청죽처럼 푸르디푸른 나이의 아들 두 명이 고국의 감옥에 갇히게 되자 남자의 어머니는 막내딸과 함께 현해탄을 오가며 옥바라지에 나섰다고 합니다. 남자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난 누이는 바로 어머니와 함께 현해탄을 오가던 그 막내딸이었어요. 오누이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중간에 일정이 어긋나고 뭔가가 계속 어그러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남자는 짜증이 났죠. 그때 누이동생이 어머니 얘기를 꺼냈습니다.

“화내고 있어?”
“아니.”하고 내가 부인하건 말건 아랑곳없이 누이는 어머니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어머니가 아직 건강하셔서 누이와 함께 한국으로 형들의 옥바라지를 다닐 무렵, 두 형 중 하나가 대구라는 지방도시의 교외에 있었다. 서울에서 기차로 5,6시간 걸리는데, 그 무렵엔 차표 사는 일이 대단히 번거로웠다. 그런데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고향을 어릴 적에 등져야 했던 운명을 살아온 어머니는 모국어를 할 수는 있었으되, 읽고 쓰는 것이 되지 않아 그로 인한 불편이 늘 따라다녔다.

일본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지방도시로, 거기서 또 교외로, 먼 길이었다. / 게다가 그 여행은 감옥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가슴 아픈 여행인 것이다. / 어느 추운 날, 면회를 마치고 지쳐빠진 어머니와 누이는 어둠이 깔린 대구역의 혼잡 속에서 서울행 열차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영락없는 대학생 차림의 사나이가 다가와서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 “아주머닌 어딜 가시죠? 아, 서울. 일본서 오셨나요? 아유 그러세요? 어디, 차표 좀 보여주실까요?” / 교육을 받아본 일이 없는 어머니는 학생이라면 무조건 좋아하셨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어머니는 두 사람분의 차표를 내밀었고 그것을 받아 쥔 사나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꼭 자전거 도둑 같았어, 하고 누이가 말한 것은 데 씨까 감독의 이딸리아 영화 얘기다. /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누구나 암표라도 사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할 도리도 없어서 어머니와 누이는 두 시간 뒤에 있을 열차를 타기 위해 다시 긴 줄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그러니까, 하고 누이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유람하러 다니는 외국여행에서 당하는 얼마간의 고생 따위는 어머니가 겪은 회한과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처럼, 브뤼주에 있는 미술관에서 <캄비세스왕의 재판>을 본 이후 여행의 배후에는 늘 가족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게 됩니다. 그 그림에서 남자는 처형대 위에 누워있는 재판관의 발목을 보며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여기가 나른하구나’라고 중얼거리던 모습을 떠올렸었죠. 그때부터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 조각상 앞에서는 그 노예처럼 묶여있는 두 형들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어느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는 단정한 수도사들의 방에서 형들이 갇혀있는 0.72평의 공간이 연상돼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의 형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요? 물론 그들은 ‘여전히’ 갇혀 있었습니다. 20년형을 선고받은 둘째형은 물론 만기가 지난 셋째형까지도, 여전히. 셋째형 서준식은 7년의 감옥살이로 평양에 다녀온 ‘죗값’을 다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법의 족쇄에 묶여 10년을 더 갇혀 있어야 했어요.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그에게 보안감호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전향서 한 장만 쓰면 금방이라도 풀려날 수가 있었지요. 하지만 서준식은 전향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안감호처분 갱신 결정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그의 변호를 맡고 있던 이돈명 변호사가 법정에서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딱 한 마디 진술을 하라는 것도 거부를 했습니다. 전향서를 쓰라는 것도 아니요, 다만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선언으로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도모할 수 있다는 ‘우려’로 만기가 지났음에도 감옥에 잡아두는 것은 부당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뿐이었는데, 그는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던 것입니다. 국가가 인간의 내면을 간섭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요.

그러면서 그는 <서준식의 옥중서한>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온,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알게 된 예수가 힘없고 서럽고 배고픈 민중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었듯이 사랑에 새로이 눈뜨게 된 자기 또한 그 사랑에 충실하겠다는 뜻이었지요. 그때 그가 그 사랑에 충실하는 방법은 속죄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짓누르는 사회안전법 폐지를 위한 제단에 바쳐질 속죄양.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친척집에 맡겨진 고아소녀 스털링은 밤마다 양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했었습니다. 양들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지요. 그 양들이 내는 슬픈 울음소리에 밤마다 시달리던 고아소녀 스털링은 마침내 그 중에서 가장 어린 새끼 양 한 마리를 안고 도망을 치게 됩니다. 남자의 셋째형은 그때 새끼 양 한 마리를 안고 절실하게 어두운 밤길을 헉헉대며 달리던 어린 스털링의 심정이었을까요? 하지만 자기 다리를 잘라서라도 자유를 찾아 도망치려던 사향쥐와 밍크가 숱하게 다시 인간의 손에 잡혀서 향을 쥐어 짜이고 털이 벗겨지는 것처럼 스털링 또한 잡히고 말았어요. 그리고는 절도범으로 몰려 고아원에 보내져야 했습니다.

그러니 사랑, 참 좋은 말입니다. 아름다운 말이기도 하지요. 그 사랑으로,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형들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항의하며 50일 넘게 단식을 하고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단식을 하면서 최대한 버틸 수 있는 게 며칠 동안이던가요? 사랑도 좋지만,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새끼 양을 안고 달아나던 어린 스털링이 잡혔듯이, 그러다 형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생각이 유럽의 미술관을 순례하는 남자의 가슴속을 묵직하게 흔들어놓곤 했습니다. 또 고흐의 그림 앞에서는 고흐를 ‘생활인’으로 뒷바라지해야 했던 고흐의 동생 테오와 자신의 입장이 겹치기도 했죠. 당신도 그 남자가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꼭 고흐와 테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삶은 달걀을 왜 천천히 먹어야 하는지, 그걸 먹을 땐 왜 옆에 꼭 물이나 콜라 같은 음료수를 두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남자는 마침내 스트라스부르에 닿았습니다. 날쌘돌이 서정원이 뛰었던 축구팀이 있는 도시. 누이는 도중에 일본으로 돌아갔기에 남자는 혼자였어요. 혼자서 그곳에 있는 대성당을 돌아본 뒤 남자는 밤늦게 허름한 호텔에 들어 피곤한 짐을 풀었답니다. 몸은 무거웠고 배는 고팠는데 먹을 걸 파는 데가 있을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때 달걀 생각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남자는 어디선가 사서는 배낭 속에 넣어둔 삶은 달걀을 꺼내 껍질을 까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달걀이 비교적 귀한 음식이라 자주 못 먹었던 기억. 하지만 아버지는 날달걀을 수시로 드셨던 일. 그러다 제삿날이 되면 제사상에 삶을 달걀을 올리는 탓에 달걀을 실컷 먹을 수 있었던 일 등이 달걀 껍질을 까는 남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남자는 등 뒤에서 어떤 기척 같은 걸 느끼게 되죠.

창으로 달빛이 비쳐든다. 전등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 두 무릎 사이에 휴지통을 끼고 조심조심 달걀껍질을 벗긴다. / 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달빛이 미치지 않는 구석의 어둠속에 누군가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바로 내 시선을 살짝 벗어난 오른편 등 뒤다. 아까부터 거기 있었던 것이다. 내 등짝을 쳐다보고 있는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지 그것까진 알 수 없다.

내게는 조금치의 놀라움도 두려움도 없다. 오히려 마음은 지극히 평온하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얼마간은 예상도 하고 기대도 하고 있던 것 같다. / 돌아보지 마라, 하고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돌아보면 훌쩍 사라져버릴는지 모른다. 그건 서운한 일이다. /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아버지 같이 여겨졌다. 아버지는 몹시 괴로워하시다가 반년 전에 돌아셨다.

창 밖에는 검고 그로테스크한 탑, 달에는 커다란 달무리.

이런 데까지 오셨습니까, 보세요, 여기는 스트라스부르예요.... 등 뒤의 아버지에게 말하듯 중얼거려본다. / 대답은 없다. / 다 벗긴 계란을 한입에 먹었다. 목이 멜 뿐 맛이고 뭐고 없다....

그러니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삶은 달걀이 정말 위험한 음식이라는 걸? 삶은 달걀은 정말이지 너무도, 너무도 고약한 음식입니다. 그것은 문득 목이 메어오게 만들고 그 미끈한 몸뚱이처럼 어떤 기억을 쑤욱, 떠올리게 해 꾸역꾸역, 무엇인가를 꾸역꾸역 서럽게 삼키게 만듭니다. 하지만 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옛 이야기는 한결같이 우리들에게 ‘돌아보지 마라’고 경고를 하고 있지요. 구약에서도 롯의 아내가 ‘돌아보지 마라’는 경고를 무시했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만 일이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입니다.

그 남자의 이야기도 이제는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그의 두 형은 각각 20년, 17년의 형을 산 뒤 모두 출소를 했으니까요. 남자가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내가 처음 읽었던 것도 거의 15년 전 무렵입니다. 시간은 흘렀고 당신과 나는 그만큼 나이가 들었습니다.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도 나이가 들었을까요? 가끔은 시간이란 게 늙은 노파처럼 음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지난 일을 자꾸 돌이키며 그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삶은 달걀을 먹을 때는 천천히 먹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당신이 두고두고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옆에는 꼭 물이나 우유나 콜라 같은 음료수를 두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도 기억하세요. 그리고 그 남자가 삶은 달걀을 먹으며 느꼈던 어떤 뜨거움도 가끔은 한번쯤 되새겨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럼 저는 달걀을 마저 먹어야겠습니다. 안녕.


* 토요일 밤에 삶은 달걀을 먹다가. 결론은 야식을 먹었다는 야그... 흑.
IP : 218.235.xxx.134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프리댄서
    '09.12.7 12:10 AM (218.235.xxx.134)

    그림은 여기에.
    http://blog.naver.com/yamaedancer/90075592299

  • 2. 감사
    '09.12.7 12:26 AM (125.152.xxx.132)

    일단 감사 인사부터 드릴께요 ^^;
    님의 좋은 글을 그냥 날로 먹는 있는 사람입니다.

    저번에 추천해 주신 <치열한 법정> 검색해 보고 사서 정말 오랫만에 즐거운 독서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아이티 문제나 법관련 부분들이 정말 흥미진진 하더군요.
    좀 편집이 이상한 부분(오탈자가 상당히 많은)들이 있긴 했지만 일단 번역 하신 분이 원래 법을
    전공하신 데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우리나라 법에 비추어 상세히 각주를 달아 준 좋은 책이라 생각이 듭니다.
    영문판도 사고 싶지만 일반 영어가 아닌 법률 관련된 영어는 또 굉장히 다른 문제라
    오랫만에 공부하며 해 볼까 하는 상상도 해보네요.

    일단 감사 인사로 도장 찍고 지금 올려 주신 내용은 찬찬히 읽겠습니다. ^^

  • 3. 이런...
    '09.12.7 12:59 AM (125.129.xxx.45)

    내가 읽은 [소년의 눈물]...
    그 분 얘기였군요.............

  • 4. ...
    '09.12.7 1:36 AM (180.66.xxx.32)

    어이없는 일에 휘말려 젊은 날을 온통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그분들은 참으로 많은 책을 읽으셨답니다.
    한명숙 총리의 남편이신 박성준 교수도 그 덕을 많이 보았구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시공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네요.

  • 5. ..
    '09.12.7 7:40 AM (124.50.xxx.34)

    아침에 들어왔다가 님의 글을 보면서 눈물 흘렸습니다.
    언급하신 그 책, 저도 읽었어요.
    그 우울한 겨울 풍경들, 황량하고 아픈 그 마음이 떠올라서 마음이 무거웠던 책이지요.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6. 프리댄서
    '09.12.7 9:23 AM (218.235.xxx.134)

    사실은 이 글 지울까 하고 막 들어왔는데
    (이런 데 올리기엔 뭐랄까, 넘 감상적인 것 같아서..ㅠㅠ
    글쎄, 왜 저렇게 감상적인 기분이 빠졌었을까요.--;)

    근데 댓글들이 달려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겄네요.

  • 7. 하늘을 날자
    '09.12.7 10:28 AM (58.149.xxx.4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흐르네요.

    지우지 말아주세요.

  • 8. 프리댄서
    '09.12.7 10:35 AM (218.235.xxx.134)

    음... 좀 있다 지울게요.
    그냥 넘 감상적인 것 같아 신경이 쓰이네요.--;
    어쨌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구요.^^

  • 9. phua
    '09.12.7 10:45 AM (114.201.xxx.138)

    저는 읽었으니 지우셔도.. ㅎㅎㅎ
    감사해요.. 매번.

  • 10. 단면
    '09.12.7 11:13 AM (211.210.xxx.30)

    하나의 글에도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고
    생각해야할 다른면이 있다는걸
    댄서님의 글을 통해 매번 느끼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좀더 같이 생각하고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 글은 지우지 않으심이 어떨까요?
    잠들기 전에 쓰는 글은 언제나 감상적이 될 수 밖에 없고,
    아침에 읽으면 영 쑥스럽쟎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 보기엔 전혀 감상적이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 11. ...
    '09.12.7 11:36 AM (222.109.xxx.221)

    못 지우시게 댓글 달아요. ^^
    아름답고 생각 많이 하게 되는 글이네요. 늘 잘 읽고있어요.

  • 12. 댄서님
    '09.12.7 11:58 AM (203.247.xxx.210)

    부탁드려요...절~~때로 지우지 마세요...
    제가 따로 한글로 옯겨 놓기도 했었는데요...

    제자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게 제 맛이더라구요...
    다시보고, 나중에 찾아보기도 하고 그럽니다...

    이제 작가님의 손을 떠난 작품입니다...해해

    (찾아보니 옥중서한은 절판이네요...ㅜㅜ)

  • 13. 프리댄서
    '09.12.7 12:14 PM (218.235.xxx.134)

    아고.. 이거 제가 마치 지우지 말라는 댓글을 유도한 듯한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뻘쭘.
    음냐. (이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군요.^^)

    <옥중서한>을, 저는 도서관에 갔다가 마침 있어서 빌려 봤었어요. 김규항 씨가 운영하는 야간비행에서 나온 거였는데, 그것도 절판된 모양이네요. 근데 그 후 다시 노동사회과학연구소라는 데에서 재발간을 했네요. 여기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669535

    이번 판에는 서준식 선생이 감옥에 찾아와 종교적 귀의를 권하던 P라는 여성 전도사와 주고받은 서신도 들어있는 모양이에요. 집 근처 도서관에 이 책이 없다면, 빨리빨리 '희망도서'로 신청해주시는 센스를.^^

    <옥중서한>은 읽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거기에 사진도 들어 있었는데 21살에 서울대 기숙사에서 환하게 웃던 사진에서부터 첫 공판받는 장면, 그러면서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 사진들 자체가 마치 생피박리형을 집행하는 듯했던 '시대의 폭력'을 드러내주는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아프더군요. 저는 그래서 끝내 <옥중서한>을 다 읽지는 못했어요. 저도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재발간한 것으로 주문해서 틈틈이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암튼... 다시 한 번 뻘쭘.-_-

  • 14. 우와
    '09.12.7 6:51 PM (68.37.xxx.181)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책은 많이 팔려야 되는디...저도 책 주문하겠습니다.

    안 뻘쭘하시라고 리플답니당.^^;

  • 15. 不자유
    '09.12.8 12:17 AM (110.47.xxx.73)

    어쩌다 보니, 하루가 지나 읽게 되었네요.
    이런 저런 일로 고단한 하루였는데...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글이로군요.
    고맙습니다. 늘..

  • 16. 프리댄서
    '09.12.8 6:15 AM (218.235.xxx.134)

    부자유님. 그냥 X밟았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그 사람, 여기 회원들과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싸울 겁니다. 이번엔 어쩌다 부자유님이 걸리신 거고 다음은 제가 되려나요?^^; 그 사람은 그렇게 여기 들쑤시는 재미로 들어오는 모양이에요.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해 보이는 의견으로 슬쩍 미끼 던져놓고는 이곳이 부글부글 시끄러워지는 걸 즐기더라구요. 하는 짓이 꼭 동네 골목대장하면서 자기 맘에 안 드는 아이들 왕따시키는, 어느 동네 하나씩 있었던, 그런 덜 자란 아이 같아요.

    훌훌 털어버리세요.
    그리고 바쁘 시즌 뒤에 찾아온 달콤한 휴식을 마음껏 즐기시길...^^

  • 17. 가원
    '09.12.22 6:04 PM (125.128.xxx.1)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급하게 나갈 일이 있어 내일 길게 달겠습니다. 갑닥 울컥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ㅠㅠ 프리댄서님, 격하게 사랑하는 거 아시죠? 건강 잘 챙기세요^^ 내일 올께요(__)

  • 18. 프리댄서
    '09.12.23 2:12 AM (218.235.xxx.134)

    앗, 가원님. 오랜만이에요.^^
    근데 내일부터 제가 접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네요.ㅠㅠ
    그래도 꼭 접속해보도록 노력할게요.
    가원님께서도 건강 잘 챙기시구요... 저도 격하게 사랑하는 거 아시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682633 자유게시판은... 146 82cook.. 2005/04/11 154,576
682632 뉴스기사 등 무단 게재 관련 공지입니다. 8 82cook.. 2009/12/09 62,242
682631 장터 관련 글은 회원장터로 이동됩니다 49 82cook.. 2006/01/05 92,524
682630 혹시 폰으로 드라마 다시보기 할 곳 없나요? ᆢ.. 2011/08/21 19,975
682629 뉴저지에대해 잘아시는분계셔요? 애니 2011/08/21 21,672
682628 내가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 사랑이여 2011/08/21 21,380
682627 꼬꼬면 1 /// 2011/08/21 27,412
682626 대출제한... 전세가가 떨어질까요? 1 애셋맘 2011/08/21 34,607
682625 밥안준다고 우는 사람은 봤어도, 밥 안주겠다고 우는 사람은 첨봤다. 4 명언 2011/08/21 34,794
682624 방학숙제로 그림 공모전에 응모해야되는데요.. 3 애엄마 2011/08/21 14,851
682623 경험담좀 들어보실래요?? 차칸귀염둥이.. 2011/08/21 16,993
682622 집이 좁을수록 마루폭이 좁은게 낫나요?(꼭 답변 부탁드려요) 2 너무 어렵네.. 2011/08/21 23,214
682621 82게시판이 이상합니다. 5 해남 사는 .. 2011/08/21 36,193
682620 저는 이상한 메세지가 떴어요 3 조이씨 2011/08/21 27,399
682619 떼쓰는 5세 후니~! EBS 오은영 박사님 도와주세요.. -_-; 2011/08/21 18,311
682618 제가 너무 철 없이 생각 하는...거죠.. 6 .. 2011/08/21 26,632
682617 숙대 영문 vs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21 짜증섞인목소.. 2011/08/21 74,080
682616 뒷장을 볼수가없네요. 1 이건뭐 2011/08/21 14,556
682615 도어락 추천해 주세요 도어락 얘기.. 2011/08/21 11,626
682614 예수의 가르침과 무상급식 2 참맛 2011/08/21 14,361
682613 새싹 채소에도 곰팡이가 피겠지요..? 1 ... 2011/08/21 13,391
682612 올림픽실내수영장에 전화하니 안받는데 일요일은 원래 안하나요? 1 수영장 2011/08/21 13,646
682611 수리비용과 변상비용으로 든 내 돈 100만원.. ㅠ,ㅠ 4 독수리오남매.. 2011/08/21 26,041
682610 임플란트 하신 분 계신가요 소즁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3 애플 이야기.. 2011/08/21 23,543
682609 가래떡 3 가래떡 2011/08/21 19,759
682608 한강초밥 문열었나요? 5 슈슈 2011/08/21 21,819
682607 고성 파인리즈 리조트.속초 터미널에서 얼마나 걸리나요? 2 늦은휴가 2011/08/21 13,808
682606 도대체 투표운동본부 뭐시기들은 2 도대체 2011/08/21 11,933
682605 찹쌀고추장이 묽어요.어째야할까요? 5 독수리오남매.. 2011/08/21 18,084
682604 꽈리고추찜 하려고 하는데 밀가루 대신 튀김가루 입혀도 될까요? 2 .... 2011/08/21 21,835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