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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년 코난과 <에콜로지카>2 : '사랑해요'와 '도와줘요'

프리댄서 조회수 : 1,132
작성일 : 2009-11-23 01:25:51
장 자크 루소는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책세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방언어는 ‘나를 사랑해줘요’로부터 출발했고 북방언어는 ‘나를 도와줘요’로부터 출발했다고. 다시 말해 루소는 인간 언어의 기원이 ‘사랑해요’와 ‘도와줘요’라는 견해를 밝힙니다. (생각해보니 저 책의 번역자가 주경복 교수네요.^^)

그 전에 루소는 이렇게 말해요. 인간으로 하여금 말을 토해내도록 만든 것은 욕구(욕망)가 아니라 ‘정념’이었다고. 욕구는 ‘해소’할 수만 있으면 되는 거죠. 식욕, 수면욕, 성욕. 인간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저 세 가지 욕구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건 그것을 충족시킬 수만 있으면 바디 랭귀지를 하든 울부짖든 복화술을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념은 다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서 화산처럼 들끓는 그것은 충족이 되기 이전에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아주 고약한 것이죠. 누군가를 좋아해서 미칠 것 같을 때 우리는 그 누군가에든, 친구에게든, 자신의 미니홈피에서든 우선은 그 감정을 쏟아놓아야 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움, 증오, 분노 따위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루소는 정념이 인간에게서 목소리 언어를 이끌어낸 주범이라고 추론합니다.  따뜻한 지방에서는 ‘협력’이라는 것이 별 소용이 없습니다. 먹을 거리는 풍부하죠. 잠잘 곳도 나뭇잎 몇 개만(?) 얼기설기 엮으면 끝이니까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 그래서 우물을 팔 때도 따뜻한 지방에서는 누군가가 물이 솟아날 만한 자리를 파놓으면 누군가가 그 다음에 와서 우물을 ‘축조’합니다. 그 다음엔 또 누군가가 와서 거기에 두레박을 걸어놓죠.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고 해야 하는 상황도 연출되지 않습니다. 하여 그런 곳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말을 토해내도록 하려면 아주 ‘강렬하고 즐거운 정념’이 필요했어요. 그 ‘강렬하고 즐거운 정념’으로 사랑을 능가하는 것이 있을까요? 따뜻한 남방지역에서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처자와 그 처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는, 지나가는 도령의 불꽃 튀는 로맨스만이 몸짓 언어를 뛰어넘는 언어의 필요성을 이끌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처자는 물만 건넬 수 있었으나 그 위에 살포시 나뭇잎도 하나 띄우죠. 그 나뭇잎이 바로 최초의 목소리 언어라는 것입니다. 아, 가슴이 무섭게 뛰네요.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요.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네요. 온통 나비와 꽃이에요...(왠지 영화 <별들의 고향>에 삽입되었던 노래 ‘난 열아홉 살이에요’가 떠오르네요.ㅋㅋ 예전에 그 노래를 부른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윤시내 언니라는 거 알고 깜놀했었다는.-_-) 그러다 기어이 동물의 울부짖음과는 다른, 파도의 철썩임이나 대숲이 흔들리는 소리와도 명백하게 다른 소리가 그 처자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온 거죠. 사랑해요.

그에 비해 일 년의 대부분이 추운 날이었다가 겨우 몇 주 동안만 따뜻한 날이 이어지는 북방에서는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먹을 거리를 마련하는 것, 우물을 파는 것, 집을 짓는 것 모두가 다른 이와 힘을 합쳐야 하는 일들이죠. 거기서는 원초적인 욕구나 다를 바 없는 정념이 목소리 언어를 이끌어냅니다. 아, 추워요. 먹을 게 없어요.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도와줘요’

장 자크 루소가 살았던 시대는 야만과 문명, 미개인과 문명인의 구별이 뚜렷이 존재하던 시대입니다. 계몽주의를 열어젖힌, 당시의 진보주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저 책을 읽은 지 좀 돼서 정확히 기억하는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루소도 남방이 ‘야만/미개’라는 전제하에 그렇게 정리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북방이 더 발달할 수 있었던 거라구요. 남방 지역 사람들이 ‘사랑해요, 사랑해줘요’라고 하면서 ‘달콤한 인생’을 즐기는 동안 북방 지역 사람들은 ‘도와줘요’라고 힘껏 외치면서 이영차이영차 집을 짓고 그 집을 더 발전시키고 그 집에 놓을 난방기구를 계속 진화시켜 갔다는 얘깁니다.

제가 루소의 견해에 동의를 하는 건 아니지만요, ‘도와줘요’가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는 한번쯤 되새겨볼 가치가 있는 듯싶어요.^^

그런가 하면 루소는 그 책에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동정심은 인간의 천성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상상력이 없다면 전혀 발휘되지 않는다. (...) 동정심은 우리가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 고통을 겪고 있는 존재와 일체가 됨으로써 생길 수 있다. 우리는 그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도 내에서만 고통을 느낀다.(...)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고통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 성찰해보지 않은 사람은 관대할 수도, 바르고 선할 수도, 동정심을 가질 수도 없다. 그런 사람은 마찬가지로 악하고 복수심이 강한 마음을 가질 수도 없다.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만을 의식할 뿐이다. 그는 인류와 함께 살고 있지만 외톨이다. / 성찰은 비교 개념에서 생긴다.(...) 한 가지 대상만을 보는 사람은 비교할 것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소수의 대상만을 보거나 동일한 것들만 계속 보는 사람 역시 그것들을 비교하지 않는다....”

나경원과 강금실 전 장관이 다른 점, 또 나경원과 이정희 의원과의 차이의 기원을 저 말에서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루소를 말하다 보니 소설 <전쟁과 평화>의 한 장면도 슬쩍 떠오르네요. 그 소설에는 ‘모성애’라는 것이 지극히 근대적인 개념임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설에서 여주인공 나탈리아(나타샤)는 결혼후 마음의 안정을 찾고 활기찬 생활을 해나가는데 아기들이, 그녀가 낳은 그 자그마한 생명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시름시름 앓다가 ‘줄줄이’ 죽어버리는-_- 거였어요. 해서 절망에 빠져있는 그녀에게 남편인 피에르 베주호프 백작이 다가와 조심스레 말합니다.

이건 내가 장 자크 루소의 책에서 봤던 건데 많이 공감했던 말이라오. 그게 뭐냐면, 아기들은 엄마가 직접 젖을 먹이며 키워야 한다는 거였소. 나는 그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오. 아기들은 그렇게 키워야 하는 것 같애. 그래야 튼튼하게 자랄 수 있을 듯하다는 거지. 그러니 우리도 당신이 직접 모유수유를 해보면 어떨까 하오만.... (걍 제가 생각나는 대로 옮겨봤는데요, 대충 저런 말이었어요.)

<전쟁과 평화>는 1812년에 있었던,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19세기 초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라는 말입니다. 장 자크 루소가 <에밀>을 썼던 18세기는 에두아르 푹스가 <풍속의 시대>를 쓰면서 그 시대를 ‘색(色)의 시대’라 명명했을 만큼 향락의 풍조가 만연했던 시기입니다. 귀부인들의 드레스는 풍성하게 부풀어오르고 머리에는 온갖 요란한 장식을 하고 다녔죠.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한 영화 <마리 앙투와네트>를 보니, 그 시대 패션이 더욱 ‘현란하게’ 재현돼 있더라구요.^^ 영국 법관들이 아직까지도 머리에 쓰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남자들의 가발이 등장했던 것도 저 때입니다. (그 가발을 에두아르 푹스는 ‘알롱쥐페뤼케’라고 하던데, 혹시 저 철자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 분!--;) 바로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그처럼 ‘과장된’ 치장을 하고 다녔고 젊은이나 늙은이나 할 것 없이 정부(情婦)를 두고 아슬아슬한 ‘궁정풍 연애’를 즐기던 때죠.

그러니 귀부인들은 아이를 낳아도 제 손으로 키우지 않았습니다. 아이구, 아이를 직접 양육하다니요. 그건 귀족으로서 할 일이 못 되었어요. 그래서 귀족 집안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교외에 있는 유모에게로 보내 몇 년간 ‘방치’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 유모 집에서 자기 아이들이 죽은 일이 있어도 또 그 집에 맡기는 행위를 반복했죠. 자연으로 돌아가라. 다시 말해  인간사회는 ‘인위적인 것’들로 말미암아 오염되었고 그 때문에 악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인간 안에 잠들어 있는 본성인 ‘자연성’을 이끌어내 발현시켜야 인간사회가 보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 루소는 <에밀>을 통해 그러한 행태도 비판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유모에게 몇 년간 방치하는 것은 자연성에 배치되는 것이라고요. 그러니 아이를 직접 어머니가 젖을 먹이면서 키우도록 하라. 아이에게 가장 좋은 유모는 어머니이며 가장 훌륭한 교사는 아버지다.

뭐 널리 알려진 대로 루소는 저서에서는 그렇게 주장을 해놓고 정작 자기 아이들은 고아원에다 ‘유기’를 했었죠.^^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보면, 사실 루소는 ‘성실한 생활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만한 재목(?)’은 못 되었던 것 같아요.^^ 그는 풍운아였죠. 이 세계라는 무대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성실한 가장으로 건전한 삶을 꾸려가기보다는 매력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도발하여 그 때문에 이리저리 고독하게 떠돌 수밖에 없는 풍운아였던 듯싶어요.

암튼 남편의 제안을 받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나타샤는 그 다음에 또 아기를 낳게 되자 반신반의하며 모유수유를 실천해봅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아기들이 ‘죽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나지 뭐겠습니까! 그건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뜻에 따라 전쟁이 아닌 평화를, 억압이 아닌 자유를, 사적 재산의 무한한 축적 대신 공유할 수 있는 대로 공유하기를,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편협함이 아닌 관용과 자비를 주창했던 톨스토이적 인간이 무신론적 허무주의와 전쟁과 억압과 탐욕과 획일성과 편협함에 대항해 거둔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만물에 깃들어 있는 신의 섭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은 평화와 자유와 베풂과 다양성과 관용과 자비라는 신의 섭리가 바로 ‘생활’ 속에 가장 뚜렷하게 투영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생활에서부터 신의 섭리를 실천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생각했죠. ‘톨스토이적 인간’은 그리하여 기본이 ‘건전한 생활인’입니다.

그런데 <전쟁과 평화>는 1812년에 있었던,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19세기 초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말입니다. 루소의 <에밀>이 출간되자  귀족 집안의 양육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이 이루어지면서 귀부인들도 모유수유에 적극 나서게 됐습니다. 그때 귀부인들 중에는 모유수유를 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리기 위해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모유수유의 확산과 더불어 ‘모성애’라는 개념도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를 보면 적어도 19세기 초까지는 모유수유가 ‘관행’으로 정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죠. 즉, 모성애라는 개념도 그때까지는 그다지 폭넓게 통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성애가 지금처럼 만고불변의 진리로 자리 잡은 건 그 이후,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면서이지 않을까.... 나무꾼을 남겨두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 선녀처럼 여성들은 가정을 떠나 사회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모성애’라는 개념도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죠. (전적으로 제 생각-_-)

어쨌든 ‘도와줘요’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몰라도 인간사회는 계속 ‘진화’해 갔습니다. 혹자는 그 ‘진화’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역사 발전 법칙’이라는 것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죠. 그 역사 발전 법칙에 따라 인간사회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역시 계속 발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발전’은 필연성에 기초한 결과물일까, 아니면 자본주의 스스로 특정 유형을 선택하여 특정 방향으로 걸어온 결과일까.

<에콜로지카>에서 앙드레 고르는 후자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특정 유형을 선택하여 발전해온 자본주의는 현재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죠.  

* 쓰고 나서 보니, 본론 주위만 뱅뱅 맴돌다 끝난 것 같네요.--;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계속...
IP : 218.235.xxx.134
2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9.11.23 1:48 AM (121.161.xxx.232)

    지난 글들을 다 삭제하셨나요?
    1편이 있나 본데.
    혹 블로그 같은 거 안 하시나요.

    머리 맑을때 찬찬히 읽어 보고 싶은데...
    검색을 잘못했나.

  • 2.
    '09.11.23 2:42 AM (122.36.xxx.37)

    북방이 도와줘요...라는 개념은 적어도 진화론으론 설명안될듯. 인류 역사가 북방의 중위도 침입으로 깨지기 시작했으니까요. 흑인,황인,백인은 원래 위도 개념의 인종이죠. 흑인이 툰드라에 살리는 없을테니까요. 요즘 드는 생각은 인간이 인간으로 자각한 시대는, 적어도 글로벌하게 자각한 시간은 40년도 안될듯 합니다.
    재밌어요. 근데 코난 얘기는 없지만 코난같은 사람이 언젠가는 등장할거라고 믿는 1인. ^^

  • 3. 프리댄서
    '09.11.23 4:08 AM (218.235.xxx.134)

    ^^님. 그럴 경우엔요 '계속 검색'을 누르셔야 해요. 쑥스럽지만 지난번에 올렸던 글을 링크할게요.--; http://www.82cook.com/zb41/zboard.php?id=free2&page=1&sn1=&divpage=76&sn=on&s...

    글쎄요님. 제가 글을 헷갈리게 썼나 보네요. '남방/야만 : 북방/문명'이라는 도식이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되었음은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겠죠.^^ 글에서도 루소가 드러낸 그 시각은 당시 서구를 지배했던 식민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무리 뛰어난 진보적 지식인들도 그걸 뛰어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구요. 근데 헷갈리게 썼나 봐요.^^

    또 루소가 남방의 언어는 '사랑해요'에서 출발했고 북방의 언어는 '도와줘요'에서 출발했다고 하는 저 시대는 아주아주 아득한 고대랍니다. 인간의 언어가 막 탄생하던 때. 4대 문명이 출발하기 훨씬훨씬 이전... 아예 문명이라는 것 자체를 거론할 수 없던 때. 그러다 날씨가 따뜻하고 물이 풍부한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문명이라는 게 출현했구요, 말씀하신 대로 따뜻한 지역이 훨씬 앞서나갔죠.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따뜻한 지역이 뒤처지기 시작하다가 루소가 살던 18세기에 이르면 그 결과가 더욱 뚜렷해졌다는 겁니다. 그때는 이탈리아도 신통찮았으니까요.^^ 루소는 그 때 나타난 결과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는 프랑스도 추운 지역이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프랑스 북부는 뭐 제법 춥다고 하니까.--;

    오늘날 부유한 나라인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이 그때는 유럽에서도 가장 뒤처진 변방국가들이었고 가장 추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죠. 그런데 그 나라들과 가장 더운 지역인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나라들을 비교해봐도 추운 지역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더 낫지 않느냐, 그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더운 지역은 '협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고 추운 지역은 죽으나 사나 협력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루소가 말하는 '협력'은 일상생활에서의 협력이죠. 피라밋을 건설할 때와 같은 '대공사'에서의 협력이 아니라요.^^

    거듭 강조하건대, 그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저 방면으로는 사고에서 저런 식의 한계를 보였다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인간이 당대의 세계관을 완전히 뛰어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아무리 뛰어나고 독창적인 사람도 완벽하게 진보적인 사고, 완벽하게 새로운 사유를 펼쳐보이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모유수유는요, 글쎄요 그때는 분유가 없었을 때니 말씀하신 대로 '친모 수유 / 유모 수유'로 구분해서 불러야 하는 게 타당하려나.--; 물론 당시 유모를 둘 수 있는 건 귀족들이었습니다. 평민들이야 당연히 그럴 수 없죠. 하지만 중요한 건 프랑스 혁명 이전에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동적으로 생산해내고 확대해간 건 지배층, 즉 귀족들이었습니다. 루소의 <에밀>이 예로 들고 있는 것도 귀족 집안이고 그 책을 읽고 격렬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귀족들이었죠. 그 반향이 퍼져나간 것도 귀족사회부터였어요.

    그 과정에서, 다시 말해 '아이의 양육은 어머니가 직접 담당해야 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아주 마땅한 말이지만 그때는 깜짝 놀랄 만한 주장이 퍼져나가면서 '왜 아이의 양육을 어머니가 담당해야 하는가? -> 아이를 낳은 주체이기 때문에->그래서 아이에 대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 강하며 가장 헌신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 즉, 아이에 대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 그것은 바로 모성애'라는 생각도 '형성'되어 퍼져나갔다는 말입니다.

    아이에 대한 어미의 남다른 마음은 물론 고래적부터 있어 왔죠. 하지만 그것을 찬찬히 뜯어보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모성애'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혹은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에 모든 생물이 '공유하는 개념'은 모성애라기보다는 '보존해야 할 종족'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을 겁니다. 아주아주 옛날, 인간사회가 모계사회이던 시절을 봐도 아이는 공동체가 같이 키워 나갔죠. 아이와 생모 간의 '남다르고 특별하고, 다른 사람이 침범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애착'이 일대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일대일' 애착관계가 보편적으로 형성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면서라고 할 수 있어요.

    여성학계에서는 모성애를 근대의 기획물로 보는 시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책도 나온 것 같던데.. 제가 읽어보지 않아서 제목은 모르겠네요. 예전에 출간 소식은 들었었어요.^^ 에구... 급하게 댓글을 쓰다 보니 두서 없이 써진 것 같네요.--;

    'ㅋ'님. 근대 이전에 쓰인 '고전'들을 읽다 보면 그 표현이나 생각에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것들도 많고(이렇게 유명한 책이 이렇게 - 지금 보기에-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문장들로 이루어져있었어? 뭐 그런...ㅋㅋ) 사유를 전개하는 방식에서도 요걸 논리적이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는 방식들과 종종 마주치게 되더라구요.^^ 근데 처음의 '생경함'을 넘어서 계속 읽다 보면 그게 묘한 매력이 있답니다.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도 보면 루소가 생각을 전개해나가는 방식이 좀 거칠어요.^^

    근데 그게 '직관'에 의존해 쓴 결과라는 것. 오늘날에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참고문헌들에 의지하지 않고 그동안 본인이 쌓아놓은 학문적 소양에 기초, 직관을 펑~ 터트린다는 것. 그래서 읽다 보면 오히려 그 책들이 더 재밌기도 하다는 것.^^ 지금은 이미 다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잘못 설명해나갈 때조차, 아니 그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설명해나가기 때문에 더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 흔히 고전이라 일컫는 책들을 읽다 보면 그런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것 같아요.^^

  • 4. 프리댄서
    '09.11.23 6:52 AM (218.235.xxx.134)

    글쎄요님. 우선 저랑 거의 동일한 시간대마다 접속하신 점 반갑구요. 하하.
    근데 아무래도 제가 글을 몹시 헷갈리게 썼나 봅니다. 글쎄요님. 루소의 견해는 '언어학적으로 유효'한 견해가 아닙니다. '사랑해요'와 '도와줘요'가 인간 언어의 출발점이라는 것도 실제로 남방 사람들이 '사랑해요'를 발성했고 북방 사람들이 '도와줘요'를 발성했다는 게 아니죠. 루소는 정념이 인간으로부터 목소리 언어를 이끌어낸 가장 주요한 요소일 것이고, 따뜻한 지역에서 그 정념이라는 것은 아주 강하고 즐거운 것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추운 지역에서는 강하고 즐겁지 않은 정념이라도 인간으로 하여금 목소리 언어를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구요. 그걸 상징할 수 있는 표현이 '사랑해요/도와줘요'라는 말이죠.

    저건 루소 개인의 견해일 뿐이에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언어학적으로 전혀 유효한 견해가 아닙니다. 언어학적으로 '검증'을 받아 객관적인 이론으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에요. 루소가 견해가 이상하다,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오늘날 언어학 서적에 어마어마한 양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 비과학적인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루소의 저 책이 오늘날에도 읽히는 까닭은 비과학적 사실이 포함된 내용들마저도 우리들에게 뭔가를 생각하게 해주고 시사해주는 바가 있기 때문이겠죠. 구체적으로는 직관에 기반해 사유를 전개하는 방식(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참고자료들을 줄줄 읊어대며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저술에 익숙해져 있죠)과 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좀더 웅숭깊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루소가 '인간 언어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말하고 있는 바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결국 인간은 무리를 이루어서 사는 존재고,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서로 도우면서 될 수 있는 한 평등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바탕은 타인에 대한 연민 혹은 타인의 처지에 대한 상상력의 발휘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것이 원래 인간 본성에 어울린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가 있는 의견'은 그 시대 세계관의 한계를 보여주는 거구요.

    아, 제가 헷갈리게 쓰는 바람에 논의가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린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 바 루소의 견해는 언어학적으로 유효한 견해가 아니랍니다. 저 또한 그렇다고 전제해서 이 글을 쓴 게 아니구요.^^ 하지만 '사랑해요'와 '도와줘요'의 대비 및 비교에서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고 해서 이 글에 끌어드린 거예요. (남방에서 나온 것이고 북방에서 나온 것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모성애를 '근대의 산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모성애를 본능이라고 볼 것인가, 후천적으로 키워지는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뜻으로 쓴 거랍니다. '어린 것'을 대하면 인간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누구나 기쁨과 연민을 느끼게 되고 보살펴주고 싶은, 혹은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어린 것'을 직접 양육하는 사람이 그 '어린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더 말할 필요가 없죠. 모성애라는 것은 그 아이를 낳은 생모든 잠깐 키워주는 유모든 생판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그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품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것은 후천적 요소가 더 강하지 않을까..(생모가 느끼는 감정이 더 남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요, 모성애는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기보다는 후천적이로 길러지는 측면이 더 강하지 않을까 하는 말입니다)

    거기다 근대로 오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졌고 피임법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키워야 이 사회가 존속될 텐데 그것이 위태로워지게 된 거죠. 그래서 모성애라는 개념이 전면에 나서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근대에 와서 아이들은 세심하고 섬세하게 양육되어야 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건 인권이라는 개념의 출현, 그것의 신장과 관계가 있을까요? 부드러움, 친밀감 같은 요소들이 강조되었죠.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존재로 엄마만한 사람들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모성애가 처음부터 주어진 본능처럼 강조되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또 인류 사회가 모계사회로부터 출발했다는 건 '보편적인 이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부 부족에서만 관찰되는 사회 형태가 아니라요.--; 그리고 현재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행하는 건 교육과 모계사회에서 공동체가 아이들 양육을 담당하던 것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 제가 말하는 공동 육아와 님께서 말씀하시는 공동 육아는 아주 많이 핀트가 엇나간 것 같네요...

    아고... 암튼 제가 글을 헷갈리게(?) 써서 빚어진 혼동인 것 같구요, 어쨌든 이 글 읽으시는 분들 다들 좋은 하루 되시길.^^

  • 5. 프리댄서
    '09.11.23 6:54 AM (218.235.xxx.134)

    앗, 댓글 쓰는 사이에 다시 댓글을 쓰셨네요. ㅎㅎ
    그럼 어쩌나. 저걸 수정해야 하나... 하다가 저도 귀찮아서 걍 놔두렵니다.

    글쎄요님, 즐거운 하루 되세요.^^
    ( 근데 혹시 외국이신가요? 새벽에 움직이셔서..^^)

  • 6. 프리댄서
    '09.11.23 8:54 AM (218.235.xxx.134)

    헉! 혹시 하면서 다시 들어왔더니, 글쎄요님께서 다시 답글을.. 흐흐.
    졸리신데도 불구하고 상세한 답글, 감사합니다.^^

    음..근데 모성애에 후천적인 요소가 많다는 건 직관적 사유가 아니라 보통 역사적 논증을 통해 파헤치고 있는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회학자와 여성학자들이 그 선두에 서 있죠. 멀리 갈 것도 없이 근대 직전만 가더라도요 평민들 집안에서 아이들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어요. '한 줌'밖에 안 되는 귀족(양반) 계급이야 먹고 살 걱정이 없지만 평민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요즘 시각으로 보면 그때는 '아동학대'가 빈번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학대'가 아니었죠. 일반적인 양육법이었습니다. 말 안 들으면 두들겨 패고, 먹을 것 없으니 아이들이라도 남의 일을 해야 했고 구걸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내다 파는 일도 심시치 않게 있었죠. 흉년이 심한 해에는 아이들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때에는 어머니들이 모성애가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죠.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에 대한 부모의 특별한 감정은 있고 특히나 어머니들이 애끓는 감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때는 다만 생존 자체가 관건이어서 여유가 없는 탓에 아이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베풀기가 힘들었을 뿐이죠. 거기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아이들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부속품이었구요, 또 하나의 일꾼이었죠. 아이들은 무조건 고분고분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해서 바로 잡아도 되었습니다. 아니, 그래야 했습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을 아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마음이 존재했죠. 헌데 그것이 지금처럼 뭐랄까... 섬세하고 체계적으로 다듬어진 무엇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모성이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건 신화만 봐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어요. 메데이안가요? 갑자기 떠올리느라 이름이 잘 생각 안 나는데, 그리스 신화에도 보면 아이를 죽인 어머니 얘기가 등장합니다. 동서를 통틀어 신화, 전설, 잔혹동화 등등에서 아이를 미워하고 아이를 버리고 더 나아가 제가 낳은 아이를 죽이는 어머니 얘기는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에밀레종 설화도 그런 심리의 반영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주아주 옛날에도 그러면서 좀 꺼려지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들이니까요! 그래서 아이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은, 또는 훌훌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묘한 두려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렇죠. 문제는 그 사랑을 벗어던질 수도, 그 사랑에서 깨끗하게 해방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끔씩 왈칵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건 아닌지 짐작해봅이다. 아이를 죽이는 생모의 이야기들은 그 두려움이 야기한 혼란을 투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절대적인 것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구강기니 뭐니 하는 프로이트의 이론도 거기에 아주 크게 이바지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근대로 들어오자마자 모성애가 확, 부각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디게 모성애가 절대적인 것으로 다듬어졌다는 것입니다. 루소가 살았던 18세기에 이미 그것이 정립 완료되었다는 말이 아니라요.

    그리고 여성의 사회참여와 피임법은... 산업사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싶군요. 근대에서도 본격적인 산업사회 단계로 접어들면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슬슬 이루어지기 시작했구요, 피입법과 낙태술이 개발되었습니다. 후기 산업사회로 오면서는 피임법이 더욱 다양해졌고 여성의 사회참여는 더욱 활발해졌죠. 그건 앞서도 제가 말한 바대로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죠. 그러자 더더욱 모성애라는 개념이 어떤 과정 (제가 예전에 TV에서 그런 다큐를 본 적이 있어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중산층 가정에 진공 청소기를 파는 일이 어려웠답니다. 중산층 주부만 돼도 청소는 직접 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자제품 회사에서는 진공청소기로 하는 청소가 걸레를 들고 하는 청소와 다르다는 점, 그건 절대로 중산층의 품위를 훼손시키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그래서 진공청소기를 들고 직접 청소하면서 오븐에다 빵과 쿠키도 맛있게 굽는 엄마가 진정한 현모양처임을 강조하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뿌렸답니다. 그 덕분에 미국 중산층 주부들이 진공청소기를 사용하게 되었다는군요. 그러니까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과 같은 개념으로 통용되지 않았을까 한다는 거예요.

    거기다 산업사회가 가져온 심한 경쟁은 한편으로는 정신적 평화를 찾는 뉴에이지 류의 흐름을 낳았으며 한편으로는 온갖 심리이론의 난무를 가져왔습니다. 아동심리도 마찬가지죠. 전에는 몰랐던 아동들의 심리가 속속 파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라 아이들은 더더욱 섬세하게 키워야 하는 존재가 됐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들의 양육 참여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아주 교묘하게 모성애가 더욱 강조되었다는 거예요. 그 분기점이 아마도 모유수유가 좋다는 게 이론적으로도 검증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은데, 모유수유가 하나의 진리처럼 통용되면서 엄마와 아이는 더더욱 밀착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내 아이를 위해서는 마땅히 모유수유를 해야 하고 훈육을 할 때는 폭력이 아닌 방법을 쓰며 아이들의 심리를 설명한 책을 몇 권 통독함으로써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이해하는 태도.. 그것이 진정한 모성애의 발휘요, 엄마의 자세다.. 뭐 이런.

    거기다 '전업주부'라는 '계층'은 근대 이후에 생긴 것입니다. 먹고 살 걱정이 없는 귀족계급을 중심으로 해서 유한마담들이야 예전부터도 있어 왔죠. 그러나 가정에서 아이들 양육을 책임지며 가족들을 전적으로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의 주부는 그 전에는 없었습니다. 여자들도 들일이며 길쌈이며 남의 집살이며... 하다하다 안 되면 몸이라도 파는 일까지, 어쨌든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죠.

    전업주부의 등장은 모성애를 더욱 공고화하는 데, 그것을 절대화하는 데 더 기여를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웅, 제 생각은 그런데요... 일단은 여기까지 쓰고 진짜 로그아웃을 해야겠네요. 공동양육 등에 대한 건 나중에 하겠습니다.^^ 그리고 근대가 노동착취로부터 해방시켜줬다는 건 착각이고 오히려 노동의 소외가 심해졌다는 것이 앙드레 고르의 생각이랍니다.^^

    글쎄요님. 아까 피곤하시다고 하시던데 휴식 잘 취하세요.^^ 저도 컴퓨터 앞을 떠납니다. 총총...

  • 7. 프리댄서
    '09.11.23 8:55 AM (218.235.xxx.134)

    아고, 그 사이에 또 댓글을... 하지만 일단은 자리를 뜹니다. 크크.
    글쎄요님, 또 봬요.^^

  • 8. 아...
    '09.11.23 9:04 AM (203.152.xxx.121)

    지난번 글처럼 흥미롭게 접근하려고 했는데
    댓글에서 완전 어려워져서 어쩔줄 모르는 1인입니다 ㅠㅠ

  • 9. phua
    '09.11.23 9:54 AM (218.52.xxx.109)

    아... 님~~
    저두요^^ 원글을 보면서 히~~힝 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구나 했더만
    댓글에서의 이해도는 %&@#$%... 입니다.

  • 10. faye
    '09.11.23 11:14 AM (216.183.xxx.71)

    정리

    1. 루소의 언어의 기원

    1) 댄서님/ 루소의 언어기원은 야만/문명의 이분법적 구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도와줘요'라는 인간 공동체의 '협력'에 대한 중요성을 직관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논구할 가치가 있다.

    2) 글쎄요님/ 루소의 언어기원은 이미 말도안되는 오류로 판명난 마당에 다시 쳐다볼 가치가 있나?

    2. 모성애

    1) 댄서님/
    - 현대사회(근대사회라 지칭) 에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성애'의 실체는 과거에서 부터 주욱 있었던 본능적인 여성의 성질이 아님.
    - 산업사회와 여성 노동의 증가로 인한 양육노동력의 부족 현상 -> 양육이 부실해지니 다음세대의 노동인력의 창출에 문제 -> 양육문제를 매우기 위해 '모성애'라는 이미지 창출,쇄뇌
    - 근거 : 모성애는 본능적이 아니라 양육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후천적인 감정.

    2) 글쎄요님/ 과거의 양육방식과 현재의 양육방식 모두 큰 역할부분은 친엄마에게 할당, 근대이후에 친엄마의 양육역할이 달라졌다고 보기는 무리.

    3. 모계사회
    1) 댄서님/ 인류사회은 모계사회로 부터 출발
    2) 글쎄요님/ 최근 인류학적 연구에 의하면 모계사회는 아프리카 일부에 극한된 사회에서만 발견 보편화되기 무리.

  • 11. 오.
    '09.11.23 11:57 AM (211.210.xxx.62)

    댓글에서 완전 어려워져서 어쩔줄 모르는 1인입니다 2222222222222

  • 12. 와아~
    '09.11.23 7:38 PM (68.37.xxx.181)

    저도 어려워서 어쩔 줄 모르긴 하지만....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계속 이어지길...;;;

  • 13. 프리댄서
    '09.11.24 8:06 AM (218.235.xxx.134)

    아, 그리고 '글쎄요'님.
    모계사회에 대해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몰라서 엥겔스 등등이 떠들어댔던 대로 말씀드린 거였는데, 글쎄요님 말씀 듣고 '음..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렸어요. 흐흐. 혹시 그 쪽으로 추천해주실 책이 있으신지...^^

    그리고 알롱쥐페뤼케 철자가 어케 되는지 아시는 분은 없나요?ㅠㅠ (이 댓글을 보실 분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 14. faye
    '09.11.24 11:27 AM (216.183.xxx.58)

    러시아어 인지, 불어인지 잘모르겠네요.
    하여튼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 입니다.

    Allongeparykk (av det franske allonge, «forlengelse») er en type høy, krøllete parykk med midtskill og skulderlange lokker som var mote for menn i den europeiske overklassen fra omkring 1650 til 1720.

    불어로는 Allonge perruque 인것 같구요. perruque 는 period 라는 뜻이라네요.
    "알롱지 시대"라는 것 같구.
    나폴레옹법전과 관련있어 보입니다.

    Allonge (from French allonger, "to draw out"), a slip of paper affixed to a negotiable instrument, as a bill of exchange, for the purpose of receiving additional endorsements for which there may not be sufficient space on the bill itself. An endorsement written on the allonge is deemed to be written on the bill itself. An allonge is more usually met with in those countries where the Code Napoleon is in force, as the code requires every endorsement to express the consideration. Under English law, as the simple signature of the endorser on the bill, without additional words, is sufficient to operate as a negotiation, an allonge is seldom necessary.

  • 15. faye
    '09.11.24 12:15 PM (216.183.xxx.58)

    본문글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붕괴'에 대한 것 듣고, 할까 했는데...손이 근질거려서...

    루소가 말한 '도와줘요'라는 말에 대해, 어떤 배경에서 그런 생각이 튀어 나왔는지 생각해 봐야 할거예요. 루소가 말한 것은 이미 '맹자'가 루소보다 거의 20세기 전에 한 말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서...

    집단을 이루어서 집단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 내는 것, 흔히 사회 라고 부르는 것은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개체가 가장 잘 이루어 놓은 것이잖아요. 집단을 이루면, 훨씬 강해진다는 것을 동서양 막론하고 이미 오래전에 깨우쳤고, 실행했죠.

    한집단내에서의 단결이 물론 다른 집단의 침략으로 이어지는데 아주 유용하게 되었지만,...

    루소가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인류사의 역사가 집단의 힘으로 이미 이루어져 왔죠.

    근데 왜 루소가 그당시에 그말을 했냐고, 유추해보면, 중세 근대로 유럽역사를 관통하는 끊임없는 전쟁때문일거예요. 전쟁에 대한 환멸이 결국 그런식으로 튀어나온거라고 봐요.
    계몽주의도 결국은 전쟁의 산물...

    톨스토이식의 관용과 자비는 결국 전쟁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부분이 크다고 봐야죠.
    그래서, 그게 전쟁을 막는 이념적 사상이 되기에 불충분합니다.

    전쟁의 근원문제, 근본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모성애의 부분에서 댄서님과 글쎄요님의 엇갈림은 서구 유럽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입니다.

    근대유럽의 귀족들 중심의 육아문제를 들여다보면, 댄서님의 주장이 과히 틀리지 않겠지만, 그것을 조선의 양육문화와 비교해보면, 어긋남이 있죠. 우리가 익숙한 조선의 혹은 지금 한국의 양육문화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의아해 질 수 밖에 없다고 봐요. 물론 현대 자본주의 시대는 이미 유럽출발의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타당성이 인정되기도 하지만...

    현대 인류학에서 말하는 부족, 씨족 사회에 대한 논의는 글쎄요님이 말한 생물학적 유전적인 성과 이외에는 별로 볼것이 없다고 봅니다. 인류학의 연구들은 거의가 다 어느 특정 목적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연구되는 것이 거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별로 학자적 양심을 기대하기 힘든 분야일거예요. (이말 듣고 열받는 사람 많을라나?)

    부족시대, 씨족시대에 대한 것은 우리가 정확한 실체를 알기 너무 힘들고, 왜곡될 가능성이 너무 크므로 부족시대의 양육문제는 패스...

    본문에 역사발전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도달한다라는 명제는 가설이고, 사실 말하자면 오문입니다.
    서양식 기독교적 창조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니 그런식으로 밖에 못 보는 거겠지요.

    뭐 불교식 순환론을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하여튼..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도 많은 사람이 잘못알고 있는데, 시장경제=자본주의 의 등식이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생산수단의 소유방식의 차이로 자본주의를 구분하죠.

    ...............

    여하튼 '붕괴'편이 기대되는 군요....

  • 16. 프리댄서
    '09.11.25 7:53 AM (218.235.xxx.134)

    perruque는 '가발'이라는 뜻이네요.^^ 음... allonge는 불어 단어 'allonger'에서 유래했고, 저 기나긴 설명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부전(附箋)'이라고 영어사전에 나와 있군요.ㅋㅋ

    또 불어 단어 'allonger'는 'to lengthen, extend, stretch'라고 나와 있는 것으로 봐서 <풍속의 역사>에 등장했던 '알롱쥐페뤼케'는 'allonger perruque'인가 보네요. 고딩 때 배웠던, 아주아주 일천한-_- 불어실력을 바탕으로 발음을 유추해보면 저건 '알롱쥐페뤼케'가 아니라 '알롱제 페뤼크'로 해야겠네요! 영어는 어륀지니 뭐니 하면서 되도록 현지인(미국인)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려고 하지만 기타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는 '간편성'을 주 원칙으로 두고 있죠. 까페보다는 카페라고 하는 게 발음 및 표기에서 간편하다... 하여 cafe는 카페, Paris는 빠히 또는 빠리가 아닌 파리. 따라서 perruque도 뻬휘끄 또는 뻬뤼끄가 아니라 페뤼크라고 해야 할 듯.

    근데 와... 저게 맞다면 어떻게 '알롱제페뤼크'를 '알롱쥐페뤼케'라고 할 수 있는지. allongy나 allongy라면 알롱쥐라고 해야겠지만. perruque도 끝 모음 e위에 악상 표시가 없으므로 페뤼'케'가 아니라 '크'가 맞을 텐데. (ㅋㅋ잘 모르면서 떠드는 것임) <풍속의 역사>에서는 또 저런 용어 옆에 원어를 병기하지도 않았더라구요. 전에 <대영박물관이 만든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이라는 책에 첫 부분부터 상형문자 발음을 (내가 알기로는) 잘못 적은 게 있어서 출판사 이메일로 보냈더니 씹어버리데요?--;

    뭐 암튼... 근데 저걸 뭐라고 '뒤치면' 좋으려나? 연장(延長) 가발? 확장 가발? 늘어뜨리는 가발?.... 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위엄 가발'로 옮기면 어떨까 싶네요. 퐁탕쥬(그러고 보니 이것도 퐁탕'주'라고 표기해얄 듯싶고..)나 알롱제 페뤼크나 처음 의도는 위엄을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에요. 바로크 말기에서 로코코시대에 이르기까지 저어기 서양 왕이나 관료, 법관들이 알롱제페뤼크를 착용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구요. 잡아당기고 늘어뜨리고 부풀어오르게 하면서 위엄을 나타낸 것이었으니 위엄 가발???

    암튼 faye님 알려주셔서 땡큐베리베리베리감사예요.^^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 미치지 않는 영역(계몽주의자들의 표현으로는 미개/야만)을 인간의 무지몽매함과 맹목적인 종교 교리 등이 인간을 놓고 전쟁을 벌이는 곳으로 보면 계몽주의가 전쟁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또 톨스토이식 관용과 자비는 기독교 사상(그는 당시의 '타락한'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초창기 기독교를 동경했었습니다)을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으로 꽃피었는데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전쟁에 대한 회의도 기여를 했겠죠.^^ 근데 그보다는 도스토옙스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 즉 인간이 너무나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이 그를 종국에는 기독교로 이끌지 않았을까 해요. 톨스토이 생애 자체가 그걸 입증하고 있구요. 젊은 시절에는 니힐리즘에 사로잡혀 감각적인 생활에 빠져들었었고 중년부터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로 말미암은 인생 무상의 감정 때문에 또다시 허무주의와 싸워야 했죠.

    그래서 그의 소설은 무신론적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과(거기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브론스키 백작처럼 방탕한 인간도 있고 <전쟁과 평화>의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처럼 아주아주 명철하여 날카로운 지성을 자랑하는 인간도 포함되죠) 신의 뜻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생활'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생활'을 보다 나은 것으로 개척해보려는 인간 유형이 대비되어 있는 게 특징인데, 결국 전자는 몰락하고(안나 카레니나는 자살하고,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부상 후유증으로 죽는 등...) 후자는 건재하게 되죠. 다시 말해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여 신에 의탁하고, 그를 통해 내부의 혼란을 수습한 인간들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더라구요.

    그 생활(삶이 아니라 '생활')의 긍정. 그것을 신의 뜻에 따라 꾸려가는 것. 잘은 모르지만 톨스토이 소설 몇 편을 읽으면서 저는 그가 주창한 사해동포주의가 그 노력의 확장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근데 재밌는 건 제 눈에 톨스토이는 끝까지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다가왔다는 거예요.^^ 아마도 고집스럽게 끝까지 그를 떠나지 '않은' 그 성향이 그의 소설을 완전한 종교소설로 빠지는 것을 막아준 게 아닐까...^^

    그리고 <자본론>에 기독교적 세계관이 구현되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구요, 그걸 또 여기서 맞네 그르네, 말이 되네 마네를 따지면 기독교적 세계관이 새로울 것 없는, 다른 데서도 떠들어대는 걸 갖다가 마치 자기네 독창적인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네 그렇지 않네..로까지 발전해서 또 하드코어를 찍을 수 있으므로 오케이, 거기까지~!

  • 17. 프리댄서
    '09.11.25 8:34 AM (218.235.xxx.134)

    '글쎄요'님. 아 제 말은 모성애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요(ㅋㅋ 좀 그렇게 오해될 소지가 있었죠), 그리고 페미니즘도 모성애를 아예 부정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모성신화'를 좀 뒤흔들고 싶었달까. 페미니즘이 노린 건 그거였다고 생각해요.^^ 암튼 저도 모성애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본능이라는 것에 좀 회의가 들었다는 거죠. (달리 표현하면 후천적 요소가 적지 않게 들어 있다는 말)

    제가 그 회의를 품게 된 계기가 예전에 무릎을 다쳐서 한의원을 들락거린 적이 있는데요, 그 건물에는 산부인과도 있었답니다. 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산부인과에서 붙인 모유수유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거기에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죠. 모유수유는 엄마의 당연한 권리. 제가 뭐 좀 쓸데없이 삐딱해서 그런진 몰라도 그걸 보는 순간 '당연한 권리?' 그런 의문이 들면서 모유수유가 엄마에게 아기를 더욱 딱 달라붙게 만드는, 아기를 '전적으로' 엄마의 품에만 양도하고자 하는 무슨 정치선전처럼 느껴지더라구요. 근래에 들어와 '교묘한' 방식으로 모성애가 강조되고 있다고 한 건 그런 배경에서 드린 말씀이었어요. 저는 좀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아주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모성애를 주입시키고 있는 그런 분위기.^^

    그리고 faye님 의견에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맞아요, 제가 유럽 쪽 사회환경에 더 적합한 말들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근데 조선의 양육문화를 봐도 크게 다를 건 없지 않나 싶어요. 조선과 유럽의 차이는 조선의 양육문화가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을 더 크게 요구하는 것이라고나 할까?-_- 여성들의 무한한 헌신, 끝 모를 희생이야 말로 진정한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칭송해왔죠. (모성애와는 다른) 모성신화가 좀더 강력하게 전해 내려온다고 할까요?

    또 엄밀히 말해 조부모, 엄마의 사랑의 대상은 아들이었습니다. 저 전통은 제가 어렸을 때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어요. 동네에서 함께 큰 제 또래 여자아이들은 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불 때면서 저녁밥 하고 그랬어야 했어요. 엄마들이 다 바닷일로, 들일로 바빴기 때문에 부모님이 일을 끝내고 돌아오실 시간에 맞춰 저녁을 해야 했죠.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밥 하는 걸 깜빡했다, 그럼 부지깽이를 들고 딸들을 '팹니다'. 그 엄마들이 딸들이 특별히 '미워'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죠. 딸들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들들만 사랑했을 뿐. 그리고 실제적으로 가진 게 없으면 없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낮을수록 아들이 없으면 더 무시당하는 게 맞았구요.--; 그래서 더더욱 아들만 사랑했을 뿐.

    저는 다행히(?) 부모님께서 구멍가게를 하셔서 엄마가 늘 집에 계셨기 때문에 밥을 안 해도 됐었는데요, 동네 아줌마들이 막 뭐라고 수군댔었어요.@.@ 저희 어머니께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도 했었답니다. 이 집 딸은 밥 하는 꼴을 한 번 못 보겠네?-_- 저희 동네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제가 자라던 시절 전국의 농어촌 풍경은 매일반이었는데, 딱 잘라 말하자면 '모성애'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딸에게만은. 물론 그렇다 해도 그 어머니들은 그 어머니들 처지에서, 그 어머니들 방식대로 딸들까지 사랑했던 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여성들이 무한대로 희생해온 흔적이 그때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희생을 어머니의 사랑이라 칭송하면서 모성신화를 계속 이어왔다는 거구요.

    어쨌든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모성애는 상당히 뭐랄까... 그때의 그것과는 다른, 부르주아적 교양에 기초한 세련미랄까, 뭐 그런 식으로 다듬어진 것 같다는 말씀이죠.--; (근대의 노동계급에는 그래야 먹히니까????) 근데 자꾸 모성애를 이런 식으로 말하다 보니 저도 제가 참 재수없게 느껴져요...

  • 18. 프리댄서
    '09.11.25 1:30 PM (218.235.xxx.134)

    근데 여기에 자꾸 같은 제목으로 글을 올리는 게 그렇네요.--; 그래서 다음 편은 올리지 말까, 생각 중...

  • 19. 와아~
    '09.11.25 8:59 PM (68.37.xxx.181)

    프리댄서님, 다음편도 올려주세욧^^;;
    어려워서 댓글은 못달지만 잘 읽고 있습니다.


    (좀 핀트가 다른 얘기인데 모성애라니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모성애에 대해서 제 엄니는 당신은 선천적인 모성애는 없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어요(제 20대의 어느날, 둘이 얘기 나누다가 하신 말씀)이유인즉,다른 여자들은(소설이나,친구) 아기를 낳고, 아기와 첫대면때,아이구 내새끼(?) 눈물도 나고 뭐...핏줄이 땡겼음직한 그런 감동적인 게 있다던데, 제 엄니는 말씀하시길,
    그때 아무 애기나 데려와 니 아기다 했어도 내 아기인 줄 알았을거라고, 내 아기라고 하니 그런줄 알지, 핏줄이 땡긴다는 그런 감정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그래서 속으론 좀 뭣하더라고(다른이들은 안그렇다니)하시더군요. 키우면서 이쁜거지, 나자마자 내 아기라서 이쁘다 라는 건 솔직히 엄니는 없었다고 하시면서, 그때 엄니는 모성애는 오랜 세기에 걸쳐서 필요에 의해 여자들에게 교육되어진 것이 아니라면, 자신은 모성애 결핍인 사람인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하셨어요.
    (제엄니께선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물론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으시며 자란 분이시고,
    또 당신이 저희를 키우실 때도 거의 스텐바이 하시면서 사랑을 주신 분이세요)

    근데요, 실제로 다른 어머님들은 자녀를 낳고 보자마자 아이구 내새끼 류의^^;; 사랑이 진짜 마구 일어나셨는지(저는 비혼. 아기를 낳았더라면 그런 순간을 알텐데^^;;)아니면 그저그런 감정이셨는지 참 궁금합니다.^^;;

  • 20. 프리댄서
    '09.11.26 8:05 AM (218.235.xxx.134)

    '와아~'님. 그러게요, 저도 궁금하네요. 저도 출산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근데 여기 게시판에서도 종종 아이를 낳은 후 아기가 이쁘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글이 가끔, '아주 가끔' 올라왔던 것 같아요. 그러자 댓글에서 많은 분들이 백일을 전후해 이쁜 마음이 생긴다고 답변들을 하시더군요. 그때쯤 되면 아기 외모가 '고구마나 외계인'-_-에서 좀 '사람다워'지기도 해서 정말정말 이쁜 생각이 든다고. 그리고 그때쯤에야 아기와도 '친해져서' 비로소 모성애가 생기기도 한다구요. 한두 분이 그러신 게 아니라, 제법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셨고 그에 동의를 하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와아~'님 말씀 들으니까 또 하나 생각나는 얘기가 브리지트 바르도 얘기네요.^^ 바르도가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아기에 대한 애정을 전혀 드러내 보이지 않았대요. 임신을 했을 때도 '뱃속에서 종양이 자라고 있는 것만 같다'는 말로 임신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었구요, 출산 후에도 저런 식의 뜨악한 반응을 보였었죠. 그러다 출산한 지 9개월쯤 됐을 때 손목을 그었었어요. (바르도가 자살시도를 여러 차례 했었답니다) 아기는 내내 할머니가 키웠구요. 그 아기가 지금은 장년의 나이가 됐는데 바르도와는 계속 데면데면하게 지낸다고 하네요.

    그런 예도 있기는 있네요.

    또 제 친구들도 님 어머님과 비슷한 의견을 말했는데요,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긴 아기 낳고 나서 아기랑 첫 상봉을 하는데 '누구냐 넌? 넌 어디서 온 거냐, 대체?' 이런 생각만 들더래요.ㅋㅋ 얼굴도 솔직히 원숭이^^ 같아서 이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감격스럽지도 않았고... 오히려 남편이 찔끔거리고.^^ 그런데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린 순간 그때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가슴 뭉클함에 눈물이 왈칵 나오더라나요? 그러면서도 그 친구와 아기를 처음 볼 때부터 '아이구 내 새끼'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친구 모두 한 목소리로 (저랑 비슷하게 생겨 먹어서인지 몰라도) 모성애는 생겨나는 것이지,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더군요.ㅋㅋ

    근데 어머님께서 굉장히 날카로우세요.^^ 당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모성애는 오랜 세기에 걸쳐서 필요에 의해 여자들에게 교육되어진 것'이라고 추론을 해내시다니요! 와, 멋지셔라.^^

  • 21. 프리댄서
    '09.11.26 8:17 AM (218.235.xxx.134)

    그리고 알롱제 페뤼크(정확하게 이게 맞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알려주셔서, faye님 진짜 고마워요. 아.. 얹혔던 속이 뚜러뻥으로 뚫은 것 마냥 후련해졌습니다.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리고 싶네요.^^ (근데 뭔 말을 저렇게 장황하게 했는지... 쏟아놓고 나면 늘 얼굴 화끈, 후회. 좀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버릇을 들여야 할 텐데...)

  • 22. 프리댄서
    '09.11.27 8:48 AM (218.235.xxx.134)

    앗, '글쎄요'님. 크...댓글을 다 지우셨군요.
    음.. 저도 '모성애가 과연 본능인가? 어떤 기획의 산물은 아닌가?'라는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었지, 그것과 관련해서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답니다. 그러다 님의 문제제기로 그나마 좀 더 고민해 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왕좌왕한 흔적이.. ㅋㅋ)

    암튼 잘 지내시구요, 계신 곳이 외국이라면, 그래서 그곳이 지금 밤이라면 좋은 꿈 꾸시길 바랄게요.^^

  • 23. 하늘을 날자
    '09.11.27 1:08 PM (121.65.xxx.253)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잘 읽었는데, 댓글은 잘 이해가 안되네요. 글쎄요님의 댓글도 봤었습니다만, 잘 이해가 안되네요. 저와 입장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음냐.;;; 암튼, 저번 글의 댓글에서 얼핏 나오긴 했지만, 제대로 된 본론은 아직 안나온 듯 보여서... 다음 글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 24. faye
    '09.12.2 1:43 PM (216.183.xxx.194)

    일주일에 한번씩 라디오를 듣는데, 며칠전에 미시마 유키오의 자결에 대한 얘기가 나오더군요.
    (11월 25일이 자결한 날이라서.... 전 미시마 유키오란 이름을 댄서님 글을 보고 처음 들었는데요....) 그사람이 유명하긴 유명했던 모양이더군요....
    전 왜 유명한지 모르겠지만...ㅋㅋ

    바쁘신가봐요....

    3편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올리신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 25. 프리댄서
    '09.12.2 4:08 PM (218.235.xxx.134)

    핫. 3편을 기다리신다고 하니... 빨랑 써야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ㅋㅋ
    '콜~' 하는 소리에는 언제나 팔랑팔랑..^^

    사실은 <에콜로지카>를 한번 더 읽고 나서 써야지.. 했는데 다른 거에 집중하느라 그럴 여력도 못 내고. 뭐 그러면서도 한게임 스파이더2 카드놀이는 (머리 식힌다는 핑계로) 열나게 하긴 합니다만.--;

    저번에 2편 끝내면서 제목은 생각해뒀는데. 살모사의 눈에 비친 현란함.
    이따 보면서 시간 나면(?) 써볼게요. 막 무슨 대단한 거 올리는 것처럼. ㅋㅋ
    근데 여기다 올릴지 어쩔지는 아직 결정을 못했네요.-_-

    근데 라디오 무슨 프로에서 미시마 유키오 얘기를 하나요?
    <세상의 모든 저녁>???

  • 26. faye
    '09.12.2 11:34 PM (216.183.xxx.194)

    여기 안올리면 어디로 가시나요? 쿠오바디스..... ^^

    kbs1 라디오에서 였는데, 오늘의 역사 뭐 그런거였어요. 그날이 미시마 유키오가 자결한 날이라서...
    무슨 대학 교수가 나와서 미시마 유키오의 자결과 일본의 우익의 재 부흥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미시마 유키오 윗 세대 "무슨 료이치" 라는 소설을 쓴 사람 얘기와 그 소설을 읽으며 성장한 미시마, 그리고, 미시마의 영향을 받은 요즘의 무슨 우익인사... 그런 얘기를 하던데...

    박정희는 그냥 박정희가.... 어쩌고 저쩌고.... , 일본의 작가는 그분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무척 거슬렸다는...

    단순한 친일을 넘어 무슨넘의 사대가 저리 뼈속까지 박혔을까 했음...

    미사마가 잘한게 하나 있죠...
    앞으로 질식사할 일본의 운명을 잘 예견한거? ^^

    주인이 배고프면 사냥개를 잡어먹는데........

  • 27. 프리댄서
    '09.12.3 10:33 AM (218.235.xxx.134)

    쿠오바디스, 중학교 1학년 때 읽고는 '어, 이거 황미나의 <아뉴스 데이>랑 비슷하네?'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아뉴스 데이>가 황미나 초창기 중에서도 초창기 작품인데 초딩 6학년 때 친구네 집에 갔다가 그거 빌려 읽고는(친구 언니가 순정만화광에다 여학생 잡지를 꼬박꼬박 구독해서 잘 빌려다가 읽었었죠.^^) 얼마나 울었던지... 그리고 대체 '아뉴스 데이'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혼났었네요. '아, 뉴스데이!'하면서 무슨 뉴스보는 날도 아닐 테고... ㅋㅋ 지금처럼 지식인 같은 게 있었으면 거기다 물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런데 암튼 <쿠오바디스>를 읽으니 <아뉴스 데이>랑 내용이 너무 비슷한 거예요! 그때 느낌으로는 그랬는데... 모르죠, 어떻게 된 사연인지.^^ 아, 황미나 얘기 나오면 또 사설이 길어지는데...

    전에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자 대학생 두 명이 그런 대화를 주고 받더라구요. 자기는 한솥도시락만 보면 고3 때가 생각난다고. 한솥도시락에서 도시락 사먹고는 막 뛰어서 독서실로 갔던 그때, 독서실을 향해 '막 뛰어가던' 자기 모습을 떠오른다구요.^^ 그 얘기 듣고 있으니까 저도 막 숨가쁘게 뛰어서 어딘가를 향하던 때가 슬며시 떠오르더라구요. 그 '어딘가'는 바로 만화방. 중학교 1학년 때 암튼 황미나 만화에 미쳐서는 수업이 끝나 집에 돌아갈 때는 (시내버스가 없는 동네라서 무조건 다 걸어다녔던 터라) 시내로 접어들 즈음부터 막 달리기 시작, 헉헉대면서 만화방에 도착하여 젤 먼저 하는 말이 "아줌마, <이오니아의 푸른 별> 4권 들어왔어요? <굿바이 미스터블랙> 7권은요? 아악, <녹색의 기사> 3권도 아직 안 들어왔어요?!!!!!"라는 질문.ㅋㅋ

    근데 라디오를 왜 '일주일에 한번씩'만 들으시나요?
    암튼 3편은 좀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글쎄요, 여기 올릴까, 아님 여자들이 많은 사이트에선 놀 만큼 놀았으니까 이젠 남자들이 많은 사이트에 가서 미친 척하고 올릴까(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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